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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오는 석상을 조각 중인 케일을 바라보았다.
인간을 본 따 만든 인조인간.
지구에서 온 인간이 지구의 과학과, 이 세계의 마법공학 지식을 이용해 만들어낸 결과였다.
그는 리오가 뒤에 가까이 다가왔음에도 뒤를 돌아보지 않고 계속해서 석상을 조각했다.
케일을 지켜보던 리오는 신음을 흘렸다.
"거기. 틀린 것 같은데요… 좀 더 이렇게.“
"알고 있습니다. 리오. 추후에 수정할 예정입니다."
"뭐, 그렇겠죠."
머리를 긁적거리며 리오는 말문이 트인 사이처럼 말했다.
"다시 조각을 할 필요가 있나요? 제가 더 이상 배울 건 없을 것 같은데."
케일의 조각상들은 단순한 장식품이 아니었다.
하나 하나가 앤서러의 동작이며, 아지트의 벽화처럼 인간에게 앤서러를 가르쳐 주는 용도였다.
2년 전. 리오는 앤서러를 익히며 석상들을 파괴했었다.
앤서러에 대해서 완벽히 익힌 리오는 케일이 다시 석상을 조각하는 걸 이해할 수 없었다.
"필요가 없다니, 필요가 있으니 하는 일입니다. 앤서러의 역사는 리오대에서 끝이 나는 게 아니잖습니까?"
리오 다음으로 올 인간을 위해서 조각한 다는 말이었다.
'깜빡했군. 분명 내 다음에도 다른 지구인이 이곳에 올 텐데.'
이럴 줄 알았으면 석상들을 파괴하지 말걸 그랬다며 리오는 미안한 마음을 품었다.
"도와드릴 거 없습니까?"
"필요한건 미리 준비해두고 시작합니다. 조각상 하나에 둘 이상의 조각사는 필요 없죠. 뱃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가질 않습니까?"
무미건조한 말투, 인공 성대에서 흘러나오는 말은 리오의 웃음을 터트리기 충분했다.
오직 지구인만 알법한 말과 의미를, 탑의 세계에서 만들어지고 살아간 케일은 알고 있었다.
"큭큭. 정말 인간이나 다름 없으시네요."
"부모가 인간이면 그 자식도 인간이길 마련입니다 리오."
그 말에 리오는 가슴이 따끔한 기분이 들었다. 부모를 따라 자식이 태어난다면, 자신은 무엇일까.
외형은 인간이지만, 그 안에 든 것은 욕망에 흔들리며 중심을 잡지 못하는 괴물이다.
자신의 본능에 충실한 이종족보다. 못났다.
본능을 억제하고 참고 참다가. 폭발 시키며 참아왔던 것을 터트린다.
그건 인간이 아니고 인간의 탈을 쓴 괴물이다.
"케일씨가 저보다 더 인간 같습니다.."
"최고의 칭찬입니다."
기쁜 걸 정말 숨기는 걸까, 케일의 몸속에서 기계 구동음이 한순간 크게 들려왔다.
리오는 감정표현까지 인간 같은 그에게 감탄을 하며, 주위의 다른 석상들을 둘러보았다.
이미 수십, 수백번 조각을 해온 케일의 솜씨는 흠잡을 때가 없었다.
조용히 석상을 감상하며 이동하는 리오의 발걸음.
케일의 사각 사각. 조각하는 소리.
그런 고요함을 깨며 케일의 저택을 향해 한 마리의 매가 울부짖었다.
둘의 머리 위를 서너번 날더니, 곧 내려와 하나 씩 편지 한통을 내려놓았다.
리오는 자신의 편지를 뜯기 전에, 케일에게 온 편지가 궁금해졌다.
한 떄 검사를 두들기는 대장장이로 유명했던 케일.
지금은 아는 이가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로 적었다.
'케일과 편지를 주고 받아…? 누구지?'
말은 하지 않았지만, 리오가 관심을 보이는 듯 하자 케일은 편지를 뜯자마자 리오에게 던졌다.
"요즘 들어 이런 편지가 자주 옵니다. 리오도 저랑 마찬가지 입니까?"
"무슨 편지길래?"
무심코 편지를 펼쳤다. 그곳엔 익숙한 내용의 문장이 쓰여있었다.
'페이스의 편지인가. 하긴 케일님도 엄연히 말해선 템플러였으니까.'
템플러인 이상, 케일에게도 페이스의 편지가 가는 것은 당연했다.
빈과는 달리, 리오는 케일에게 템플러를 구입했다는 것을 말했었다. 그것을 떠올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템플러라면 모두가 이 편지를 받았던 것 같더군요."
케일은 인간을 위해서 만들어진 기계였다. 리오는 그에게 템플러 아지트에 있었던 일들을 발설해도 큰 문제가 없을 거라 여겼다.
"페이스라는 템플러가 보낸 겁니다. 그놈은 오라클을 부활시키려 하고 있습니다.
케일은 조각하던 손을 멈추고 리오를 향해 돌아보았다.
"그 말은 아지트를 가보셨다는 말이군요. 리오는 어떻게 하실 생각하십니까?"
"누군가 오라클을, 아니 오라클과 비슷한 템플러 단체를 만드는 건 이미 예상한 일이었습니다. 대처는 생각해두지 않았지만, 이미 제가 해온 일이 있습니다. 오라클이 다시 부활한다고 해서 예전과도 같은 명성을 떨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말을 내뱉고 리오는 잠시 생각에 빠진 뒤, 다시 입을 열었다.
"아니, 힘들겠지요."
백퍼센트 불가능할 거라는 생각과 말을 철회했다. 페이스라는 템플러가 있는 이상, 템플러들의 욕구가 있는 이상.
언젠가는 예전과 같은 명성을 되찾을 수 있을 것이다.
케일은 도구들을 정리하며 물었다.
"어찌할 생각이십니까? 지금이야 템플러들은 겁을 먹고 리오에게 침입을 하지 않지만, 언젠가는 그때처럼 행동할 겁니다."
"이미 손을 써두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만약 이 말을 내뱉는다면 케일이 무슨 생각을 할지 리오는 고민 해보았다.
"어디까지나. 수를 쓰기 위해. 저는 신생 오라클에 가입했습니다."
챙.
케일이 조각칼을 떨어뜨렸다. 놀란 감정의 기복을 드러내듯. 큰 구동음이 들려왔다.
"언젠가. 예상하고 있던 일이었습니다만."
케일조차 이렇게 놀라는데, 다른 주민들은 어떨까.
리오는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조만간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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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이 중천에 떠오를 정도로 늦은 밤이 되었다.
시끌벅적한 시장에서 적당히 요기를 떼운 리오는 자신의 집 근처에 모인 주민들을 보고 놀랐다.
"무슨 일이지?"
다급한 발걸음으로 집에 다가갔다. 주민들은 수근거렸고, 근처를 서성거리던 경비병은 리오에게 인사했다.
"앤서러 리오님 되십니까?"
"그렇습니다. 제 집에 무슨 일이라도 있습니까?"
리오의 집은 마법사의 공방과도 같기 때문에 여러 보안마법을 설치해 두었다.
누군가 강제로 침입을 하려고 하면, 마을의 치안유지단체에 소식을 전한다거나 하는 여러 마법이 걸려있었다.
이렇게 경비병들이 자신의 집 주위를 서성거리고, 주민들이 모여있다면 보안마법이 파괴되었다는 말이었다.
"예. 보다시피 이렇습니다."
경비병이 자리를 비키자 그의 뒤에 대파된 마당과 문짝이 보였다.
리오는 신음을 흘리며 그려놓은 마법진에 다가갔다.
'단순히 때려 박아서 파괴시킨건 아니군. 마법 자체가 파괴된 건 아니야.'
리오의 마법은 상상하면 이루어지지만, 세밀한 상상과 더불어 현실적 근거가 필요하다.
근거란 마법의 수식을 의미했다.
'구동원리나 수식들은 모두 스승님께 배운거지. 이런 짓을 할 정도면 마법의 서클이 높을 뿐만이 아니라 이해도도 높다는 거야.'
머릿속에 몇 종족들이 스쳐지나갔다.
마법의 달인이라는 엘프, 마족, 노움, 용족, 골렘, 언데드 등.
그 중에서 자신에게 원한을 가지고 집을 침입할 주민.
'원한이라하면 샐 수도 없군.'
리오는 집 안으로 들어가기로 했다. 경비병들은 마법사의 공방이기 때문에 주인의 허락이 있지 않는 이상 들어갈 수가 없었다.
"들어 가보겠습니다."
"조심하십시오. 안에 아직 누군가 있을 지도 모릅니다."
걱정 말라는 듯. 리오는 고개를 끄덕이고 안으로 들어갔다.
'거실은 문제가 없군.'
집 내부는 바뀐 점이 없었다.
누군가 뒤져보았거나, 무언가를 흩트려놓은 흔적은 없었다.
단순히 보안마법만 파괴했나 싶었을 때, 리오의 시야에 붉은 반점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바닥의 붉은 반점. 방금 전까지 없었던 것들이었다.
무언가의 마법은 아니었다. 탑의 축복 : 탐색이 발동된 것이었다.
'발자국인가?'
발자국을 보면 인간과 비슷한 신체를 가진 이종족인 것 같았다.
'이런 발사이즈는 여자야. 마법을 잘 다루고, 인간 크기의 이종족 여성이라면…'
그래도 범인을 추측을 할순 없었다.
고민을 하던 사이. 리오의 시야에 흑색의 기류가 나타났다.
'마력이군. 엘프는 제외인데.'
바닥에 나타난 붉은 반점을 따라 이동했다.
기이하게도 침실로 이어져있었고, 리오는 한숨을 내쉬었다. 다행이도 침실에는 중요한 것들이 없었다.
문 너머에 침입자가 무슨 짓을 저지르고 있을지 상상하며 리오는 문을 열었다.
덜컥!
움직임을 봉쇄하는 홀드 마법을 준비했을 때, 리오는 덜컥 숨이 먿었다.
"네가 왜 여기에 있지?"
새근새근 잠든 쿠란.
자신이 무슨 일을 저질렀는지, 아무것도 모르는 듯 태평하게 잠을 자고 있었다.
보통 때라면 리오의 말에 깨어나야 정상이건만, 그럴 기색이 없었다.
"으…응."
악몽이라도 꾸는 듯, 쿠란은 뒤척거리며 식은땀을 흘렸다.
'무슨 일이라도 있었나?'
자신의 파티를 어디다 두고 온 걸까. 리오가 알기로 쿠란은 여관 하나를 빌렸다.
쿠란이 잠을 잘 장소는 여관이다. 그곳이 집이고 가족들이 있다.
"이봐. 돌아가야지."
말은 그렇게 해도 리오는 손으로 쿠란을 흔들어 깨우지 않았다.
식은땀을 흐르는 이마를 닦아주고, 이불을 끌어올려주었다.
"리오씨! 괜찮습니까?"
밖에서 경비벼의 말이 들려왔다.
집으로 들어가서 아무런 소리조차 들려오지 않자 걱정하는 것이었다.
리오는 쿠란을 잠시 돌아보고 밖으로 나갔다.
"문제없습니다. 보안마법만 부수고 도망친 모양입니다."
"다행이군요. 그럼 저희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예. 제가 올 때까지 지켜주셔서 감사합니다."
경비병이 사라지자 모여들었던 주민들도 하나 둘 떠나가기 시작했다.
아는 이웃들에게도 별일 없다는 제스쳐를 취하고 리오는 집으로 다시 들어갔다.
'후, 복구하려면 돈 좀 깨지겠는데.'
한숨을 내쉴 때 미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미, 미안. 정신이 없었어. 함부로 문 따고 들어와 버렸네."
이제야 깨어난 쿠란은 헝클어진 머리를 흔들며 사죄했다. 횡설수설 하는 모양새가 제정신이 아닌 모양이었다.
리오는 어두운 집안을 밝히며 욕실을 가리켰다.
"자세한 이야기는 씻고 나서 이야기하지."
"응.'
쿠란은 아무런 거리낌 없이 훌렁훌렁 벗고 욕실로 향했다. 그 사이 리오는 대파된 문으로 다가갔다.
"여자가 내 집에서 씻고 있고, 문짝은 부숴졌다. 이건 무슨 상황일까."
궁시렁거리며 문을 대강 수리했다. 문을 새로 주문하고 마법을 새로 설치하려면 수백골드는 깨질 것 같았다.
"끝났어. 리오."
뒤를 돌아보자 검은 머리와는 비교될 정도로 뽀얀 피부의 쿠란이 있었다.
무심코 입을 벌리자 원래 이런 냄새였나 의심할 정도로 향긋한 비누냄새가 맡아졌다.
"응? 왜 그래? 아, 혹시 샤워한 직후의 내 모습에 반해버렸다던가?"
킥킥. 웃으며 쿠란이 리오의 어깨에 팔을 걸쳤다.
"… 그럴 리가."
자신을 지그시 바라보는 쿠란의 시선을 피하며 리오는 팔을 조심스럽게 쳐내었다. 거실로 이동하자 쿠란은 여전히 장난스런 말투로 말했다.
"칫. 재미없는 남자. 여자의 도발을 받아쳐야지 그렇게 흘려버려서 되겠어? 그러니까 그런 나이가 될 동안 결혼도 못하고 혼자 사는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