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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래곤 랜드.
탑의 세계 최강의 종족인 용족들만이 생활하는 하나의 섬.
그곳이 50층의 주무대였다. 이전까지 상대해왔던 이종족들 하고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리오는 어려움을 느꼈었다.
용족답게 뛰어난 신체, 리오보다 뛰어난 마법력.
리오가 그저 할 수 있는 건, 탑에서 얻은 축복과 앤서러로 돌파하는 것뿐이었다.
주점을 운영하고 있지만, 정령왕이기도 한 베로드는 이미 50층을 예전에 돌파했었기 때문에 리오의 말을 이해했다.
“하긴, 거기는 나도 조금 애를 먹었지. 하지만 거길 인간의 몸으로 혼자 통과한 네가 할 말은 아니라고 본다. 괴물 같은 놈.”
정령왕인 베로드조차 50층은 누군가와 함께 오른 모양이었다.
상성이라는 게 있다보니, 아무리 대단한 주민이라도 어쩔 수 없이 타인의 힘을 빌릴 수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말씀하지 마십시오… 저도 너무 고생한 탓에 51층 부터는 파티를 결성했으니까요.”
베로드는 맥주를 들이키다 멈추고는 놀란 눈으로 리오를 바라보았다.
“… 네놈이 파티를? 영영 독고다이로 오를 줄 알았는데…….”
“저 그렇게 대단한 놈 아닙니다. 다들 여태 제가 아무런 도움 없이 혼자 오른 줄 아시는데…. 그럴 리가 없잖아요. 그냥 같이 오르던 분들이 중도탈락해서 어쩔 수 없이…….”
베로드는 리오의 변명은 귀에 들어오지 않는 듯. 다른 곳을 보며 말했다.
“흠. 파티는 네가 직접 짠 건가?”
“예. 제가 리더고, 그동안 탑을 오르면서 만났던 분들로 구성했습니다. 다들 제몫을 하는 분들이라서요.”
“네가 다른 파티에 들어간 게 아니라면…. 괜찮을려나. 천하의 앤서러 리오가 호언장담 할 정도로 훌륭한 동료들이 있는 모양이니 걱정할 필요는 없겠군.”
단순히 자신을 걱정하는 말인 듯 싶어 리오는 작게 웃음을 지었다.
그 모습을 보지 못하고, 베로드는 맥주잔을 기울이며 중얼거렸다.
“… 그래도 하필 거기 근처에서 파티라니.”
탑을 오르는 주민으로써 흘려들을 수 없는 말이었다.
마치, 50층 근처의 층에서 파티를 하면 문제가 된다는 듯한 말이었기 때문이었다.
“… 예?”
“아. 들었나? 그 정도는 탑의 규칙에 어긋날 정도는 아닌 모양이군.”
‘그럼 역시 방금 그 말은 윗층의 공략과 관련 된 말인가…….’
어느새 맥주잔을 비운 베로드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다시 일을 하러 돌아가야겠군. 이놈의 노움들은 내가 없으면 술을 빚질 않으니까….”
남은 맥주를 꿀꺽 꿀꺽 삼키는 리오에게 베로드는 살짝 걱정이 되는 투로 말했다.
“그러고 보니 아직도 알터의 마법들을 사용하고 있나?”
“네… 그렇습니다만.”
“알고 있겠지만, 그 마법을 사용하다 네가 미쳐버리면 여간 귀찮아지는 게 아니야. 대가와 조건은 충분히 있지만 상상하는 대로 이루어지다니…. 조심하도록.”
그가 걱정하지 않도록 리오는 장난스럽게 말했다.
“이 이상 미칠 것도 없어요.”
제 33장 결단
리오는 페이스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제가 여러분에게 신생 오라클에 대해 이야기 한지 벌써 한 달이나 되었습니다."
페이스는 아지트에 모인 템플러들을 쭈욱 둘러보았다. 지난 모임과 비교 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수의 주민들이 보였다.
"그 사이 이렇게 많은 분들이 신생 오라클에 참여의사를 밝혀주셨습니다. 여러분들이 있다면 옛 오라클의 명성을 되찾는 것도 무리는 아닐 것입니다."
저번과 달리 페이스는의 말투와 행동은 웅변가 같았다.
장난스러움은 사라지고 흐느적 거리는 몸짓은 절도가 넘쳤다.
단지 분장만은 그의 트레이드 마크마냥 광대 그대로였다.
"이 많은 수의 템플러분들을 저 혼자 관리하고 운영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 이 자리에서 우두머리를 선출 하려고 합니다."
사전에 편지를 통해 이야기 했던 부분이었다. 리오는 이의가 있다는 듯 조심스럽게 손을 들었다
"잠깐. 한 마디 해도 될까?"
"아직 이야기는 끝나지 않았는데..."
페이스가 불편한 투로 말했지만, 리오는 할 말을 하겠다는 듯 입을 열었다. 저번과 같이 까마귀 가면을 쓴 상태였다.
"총수를 뽑겠다는 건 하루 만에 끝날 일이 아니야. 어느 조직이 그렇듯. 자질을 가진 리더가 뽑혀야만 하지."
"그건 당연하지요."
"보아하니 투표로 총수를 뽑을 모양인데, 아직 우린 서로 간에 아는 게 없어. 누가 뭘 잘하고, 못하는지, 탑을 어디까지 올라갔는지. 최소한의 정보도 모르는 상태잖아?"
신분을 가린 리오의 말에 모든 이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상대에 대해 아는 것이 없는 이상, 신뢰할 수도 없고 명령에 따를 수 없는 건 모두 같았다.
페이스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했다.
"서로 알아볼 시간이라. 생각해두신 것이라도 있으신지요."
"당장은 없어."
"흐음. 그럼 당장 우리의 리더를 뽑을 수 없겠군요."
리오는 페이스의 생각을 떠보듯 말했다.
"당신이 리더가 되는 건 어때? 여기에 템플러들을 모은 장본인이기도 하고... 우리들의 신원을 모두 알고 있으니까."
페이스는 그제야 광대스러운 말투로 돌아오며 말했다.
"어라라. 그래도 되는 건가요오?"
"농담이야."
'이야기를 꺼냈을 때부터 예상했어… 역시 리더의 자리를 욕심내고 있는 건가.'
스스로 오라클 다시 만드려 하고, 리더에 대한 욕심을 가지고 있다.
그렇다면 자신이 리더가 된 이 이후의 일도 계획되어 있을 것이었다.
'무슨 짓을 하려는 거지?‘
그때, 검은색 풀 플레이트 아머로 정체를 가린 이가 입을 열었다.
“리더를 뽑겠다는 이야기에는 동의 한다. 방금 말한 녀석의 이야기도 옳다고 생각한다. 아무나에게 리더를 맡길 순 없지.”
철갑을 둘러싼 이는 페이스가 있는 단상위로 다가갔다.
“그러나 둘 다 무언가 착각을 하고 있는 것 아닌가? 여기에 모인 정체를 알 수 없는 템플러들 중에서. 리더가 되고 싶은 이들은 아마 없을 거다.”
그의 말에 동의를 하듯. 아지트에 모인 템플러들은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그야말로 악의 조직인 오라클.
그 조직의 총수.
모든 책임을 짊어져야하고, 조직 전체가 만족할 수 있는 ‘사냥감’을 지목하여야 한다.
만약 사냥감에게 역으로 사냥 당하거나, 리더로써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다면… 끌어내려진다.
즉. 오라클이 오라클에게 사냥당하고 만다.
일반적인 조직과는 개념이 다르고, 그 누구도 믿지 않는 템플러들의 우두머리라니.
총수가 되고 싶은 마음은 있겠지만, 감당할 자신은 없을 것이었다.
‘… 그런가.’
리오는 그들의 마음을 이해하는 한편, 잘 되었다고 생각했다.
‘템플러는 필요악이야. 관리 할 수만 있다면 탑의 주민들이 성장하는데 밑거름이 되어 줄 테지.’
그렇다면 자신이 관리를 하면 된다.
오라클의 총수가 되어, 이끌어 자신이 계획하고 있는 일의 주춧돌로 만들면 된다.
그렇게 생각할 즈음 페이스는 웅변가의 모습을 완전히 버린 채 어린애처럼 손을 흔들었다.
“리더? 총수? 나나. 저 페이스가 하고 싶은데요오.”
오라클의 리더가 한 낯 광대라니, 모두의 얼굴이 찌푸려지면서 신음을 흘렸지만, 이어진 그의 말에 아무도 뭐라할 수가 없었다.
“마침 저는 당신들의 신분을 알고 있고 말이죠오. 리더답게 말을 듣지 않는 아이에게 벌을 내릴 수 있는 채찍도 있죠! 어떠십니까아! 이 페이스. 시켜만 주신다면 뭐든 잘 할 수 있습니다! 광대란 자고로 못하는 게 없다고요!”
페이스의 말을 무시하며 어느 템플러가 손을 들었다.
"옛 오라클은 오로지 능력만 보고 우두머리를 추앙했다고 하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개인의 무력이 아니라 얼마만큼 조직을 잘 이끌어갈 수 있는지 보여줘라. 그렇다면 군말 없이 널 인정하도록 하지. 애초에 우리 템플러들은 능력말고는 아무것도 믿지 않으니까."
'능력만 있다면 누구나 리더가 될 수 있다는 건가. 정말 탑의 세계다운 말이군.'
대부분의 템플러들이 방금 전의 말에 수긍하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페이스는 굳은 얼굴로 할 수 없다는 듯 한숨을 내쉬었다.
"좋습니다아. 그거 마음에 들진 않지만 옳은 방법이기는 하네요. 그럼 능력을 증명하는 건 나중에 이야기를 하도록 하고... 저 말고 '총수'자리에 관심이 있으신 분 계십니까아?"
그 누구도 손을 들지 않았다. 분명 탐이 나는 자리이긴 맞지만, 위험이 너무나도 컸다.
주위를 한 번 둘러보고 리오는 손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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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이 되었다.
해가 있던 자리에 달이 들어서고, 봄기운 탓에 노란 빛이었던 탑의 표면이 달빛으로 변했다.
탑을 올라가려는 자, 내려가라는 자들이 한대 섞여 탑의 문앞을 서성거리고 있을 때 였다.
달빛 탑에서 어느 마족이 걸어나왔다.
힘없는 발걸음.
그 마족은 탑에 도전하여 실패했거나, 혹은 탑에서 동료를 잃은 것이 분명해보였다.
표정만 봐도 그 마족이 탑에서 어떤 일을 겪었는지 주민 모두가 예상할 수 있었다.
자신들도 한 때 저런 표정을 지었고, 똑같은 일을 당했었기 때문이었다.
"어이. 무슨 일을 당한 거야?"
누군가 정황을 파악하기 위해 입을 열었다.
위로의 말이라도 내뱉으려 했으나, 곧 마족의 얼굴을 보고 굳을 수밖에 없었다.
"… 쿠란?"
검은 머리 마족 여성.
'군세' 라고 불리는 거대 파티를 이끌기로 유명한 마족이었다.
수백 명의 탑의 모험가가 가입한 파티의 리더.
리더라는 입장 상 그녀는 혼자 파티에서 나올 수가 없었다.
파티와 함께 이동할 때도, 그녀는 파티의 중심에서 모두의 보호를 받으며 이동하고는 했다.
당당한 걸음. 만족감이 머무는 미소와 함께 여왕님처럼 언제나 탑의 세계를 행보했다.
그러나 지금. 그녀는 주변에 그 누구도 보이지 않았다.
여왕님 처럼 걷던 풍채는 사라지고, 몰락해 가는 왕마냥 한 걸음 한 걸음. 기운을 잃어가고 있었다.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고, 자리가 없어진 이상 그녀는 더 이상 여왕이 아니었다.
탑을 오르는 평범한 모험가에 불과했다.
한 때 탑의 모든 업적을 갈아치우던 그 모습은 사라졌다.
그녀는 자신에게 다가온 익숙한 얼굴들에게 물었다.
"리오는 어디에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