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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가 있어보였지만, 한 가지 마법만 다룰 줄 아는 만큼, 그 하나에 대해선 전문가였다.
골렘답지 않은 빠른 공수변환, 강력한 파괴력과 성벽 같은 수비.
단점을 덮어버리고도 충분했다.
'저 부부와 빈은 굳이 다른 동료가 필요하지 않을 정도로 대단해. 그 어떤 상황이 오더라도 각자 제몫을 해줄 수 있어. 문제는….'
이 파티의 문제는 자신이었다.
동료들처럼 똑같이 자신은 다재다능하다. 하지만 인간은 한계가 명확하다.
'난 분명 모든 공격을 막아낼 자신이 있어. 반대로 공격도 할 수 있고. 하지만 언제까지 그럴 수 있는 게 아니지.'
이른 바 체력적 문제였다.
스스로의 몸을 태우는 촛불처럼, 자신의 모든 것을 연소시켜 능력을 발휘하기 때문에 리오는 길게 전투를 할 수 없었다.
'장시간 전투가 불가능하다는 점이 큰 문제야. 내 체력만 이종족들처럼 받쳐주었다면, 벌써 다음 층으로 넘어갔겠지.'
자신이 이 파티의 걸림돌이 되고 있다는 기분이 들자 동료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분명 더 깊숙이, 위로 갈 수 있는데 가지 못한다는 건 불만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지금 당장 방법은 없어. 힘을 내는 수밖에.'
리오가 굳은 표정으로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뒤 따르던 빈이 입을 열었다.
"무리 하시는 것 아닙니까? 평소라면 지금 쯤 돌아가셔야 하는 게 아닐까 합니다만."
"좀 더 갈 수 있습니다."
"저도 반푼이 마법사이기는 하지만, 리오가 사용하는 마법이 얼마나 몸에 무리가 가는지 알고 있습니다. 수명을 갉아먹는 것이겠죠."
모르고 있던 사실을 알게 되자, 칼과 리사가 놀랐다.
"그게 무슨… 정말 사실이냐?"
"평범한 마법과는 다르다고 생각은 했는데…"
리오는 담담히 말했다.
"여러분들이 크게 걱정하실 부분은 아닙니다. 어차피 탑의 내부에서 제가 잃어버린 건, 탑을 나가는 순간 되돌아오니까요."
"그건 그렇지만… 그것 때문에 장시간 탑을 오를 수 없던 거군요."
틀린 말은 아니었기 때문에 리오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신경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리고 아직 버틸만해요. 더 진행해도 될 것 같습니다."
"그만하지. 이미 우리의 진행속도는 빠른 편이야. 서두를 필요는 없다."
칼의 말에 빈도 동의했다.
"네. 이렇게 쫓기듯 탑을 오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리사는 별 말없이 리오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그런가?'
동료들의 말에 자신은 성급하게 움직이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알겠습니다. 돌아가도록 하죠."
이미 마음은 마을로 내려가야겠다고 먹었건만, 불안감이 들었다.
이래서 언제 귀환 할지, 자신이 늙기 전에 가능한 일 일지.
그리고 자신이 '군세'를 쫓아갈 수 있을지.
'조급하게 생각하지 말자.'
마을로 내려왔을 때였다.
반가운 주민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었다. 그들을 헤치고 한 마리의 매가 리오에게 날아왔다.
‘편지?’
갈색 부리를 가진 매는 리오의 앞에 접힌 편지를 내밀었다.
받자마자 빈에게 날아가 다른 편지를 내밀고는 금세 다시 날아갔다.
‘누가 보낸 거지?’
[슬슬 저희들의 우두머리를 뽑을 때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생각이 있으신 분은 길드 아지트의 저를 찾으시길.]
발신자가 쓰여있지 않았지만, 누가 보낸 것인지 눈치 채는 건 어렵지 않았다.
‘광대놈. 생각보다 움직임이 빠른데. 벌써 리더를 뽑으려고 하다니.’
리더를 뽑겠다는 이야기는 충분한 수의 템플러들이 참여의사를 밝혔다는 것을 뜻했다.
‘얼마나 가입을 했을까?’
아무리 그래도 예전 오라클처럼 많은 수는 아닐 것이다. 결코 그 정도의 위세는 떨치지 못할 것이다.
‘그래도 이대로 가만히 둘 순 없어.’
“리오?”
상념에 빠져 있을 때, 리오처럼 편지를 들고 있던 빈이 말을 걸어왔다.
“그 편지 설마….”
빈과 동시에 온 편지. 아마 빈도 리오와 같은 내용의 편지를 들고 있을 것이었다.
‘빈에게 내가 템플러가 되었다는 걸 숨겨야해.’
같은 시간에 편지가 왔으니, 리오가 자신처럼 템플러가 아닐지 의심을 할 수밖에 없었다.
아무렇지 않은 척 리오는 편지를 갈기갈기 찢었다.
“응? 편지? 스승님에게서 온 편지입니다만.”
“그렇군요. 잠시 착각을 했습니다. 그럴 리가 없는데…….”
‘역시 의심했군. 길게 속이기엔 힘드려나….’
언젠가 자신이 템플러라는 걸 밝혀야한다. 어쩔 수 없었던 사정이라는 핑계를 대면서.
그때가 되면 빈은 실망하고 파티를 떠날지도 모른다.
‘나중에… 나중에. 좀 더 빈이 이 파티에 있을 수밖에 없는 이유를 만들고…….’
반드시 언젠가 스스로의 입으로 말하리라. 다짐하고 리오는 이만 해산하기로 했다.
“오늘은 다들 수고하셨습니다. 내일 또 뵈요.”
“그러지, 조만간 다음 층을 오를 수 있을지도 모르겠어.”
“내일 봐요.”
칼과 리사가 먼저 무리에서 이탈했다. 리오는 빈을 바라보았다.
‘… 뭔가 석연치 않은 표정이야.’
“빈씨. 전 이만 가볼게요. 스승님이 부르셔서요.”
“… 예.”
빈을 두고 리오는 진짜 안드레이가 부른 마냥 용의 성지로 갔다.
빈이라면 자신의 뒤를 밟을 것 같았다. 진짜 스승님이 부른 마냥 행동 할 수밖에 없었다.
‘여기도 오랜 만인가….’
5년 전과 달리, 용의 성지 주변은 폐허라도 된 마냥 고요했다.
그게 그럴 수밖에, 3년전, 탑의 세계 최강의 종족인 드래곤이 수면에서 깨어난 탓이었다.
드래곤이 은연중에 내뿜는 질 높은 마나는 대부분의 종족들이 용의 성지 주변을 떠나게 만들었다.
그것은 리오도 마찬가지였다. 드래곤이 깨어난 이후로 리오는 가급적 이 근처를 지나가거나, 안드레이를 직접 만나러 간적이 없었다.
‘거짓말을 하더라도 좀 더 생각하고 내뱉을 걸….’
후회를 하면서 리오는 용의 성지로 향했다.
입구를 지키는 경비병이나 가디언 같은 것은 없어졌다. 드래곤의 물건을 훔치거나 해를 끼칠 간 큰 주민은 이 세계에 없었다.
예전처럼 성지의 본관으로 들어가려던 찰나, 누군가 리오의 발을 묶었다.
“어서오너라 리오. 굳이 들어갈 필요는 없다.”
“강녕하셨는지요.”
“물론, 그리고 네가 탑을 빈이라는 엘프에게 거짓말을 하는 것도 지켜보고 있었다.”
“아… 죄송합니다.”
안드레이는 리오에게 다가와 어깨를 붙잡았다. 그 순간 고서클의 마법 텔레포트가 시전되었다.
‘베로드씨의 주점이군….’
익숙한 주점으로 이동이 되자, 안드레이는 근처의 자리에 앉았다.
어디선가 베로드씨의 중얼거림이 들려왔다.
작게 웃음을 터트리자, 안드레이는 심드렁한 표정으로 말했다.
“나랑 네가 어지간히도 싫은 모양이구나.”
“별로 꼬인 일은 없지만, 불편한 상대라는 건 분명하니까요.”
잠시 뒤 접객원이 다가와 둘의 주문을 받았다.
간단한 맥주와 안주가 도착했을 때, 리오는 입을 열었다.
“성지 내부의 일은 잘 되어가십니까?”
“뭐, 매번 해오던 일이니까. 순탄하게 진행되어가고 있다.”
안드레이가 성지에서 하는 일은 탑의 세계에 무척 중요한 일이었다.
탑의 난이도는 주민들의 기량을 제외한, 육체적 전투력 평균으로 정해진다.
이전까지는 드래곤이 수면기라서 그로 인한 난이도 상승이 미비했다.
하지만, 수면기에서 깨어난 드래곤이 있다면 이야기는 달랐다.
단지 드래곤이 수면기에서 깨어났다는 이유로, 탑의 난이도가 대폭 상승했다.
드래곤의 잠자고 있던 육체에 피가 돌고, 활력이 생긴다. 느슨해진 근육이 다시 뼈를 지탱하고, 생기를 잃었던 비늘에 빛이 나기 시작한다.
그것만으로도 토끼가 이를 드러내고, 사슴의 뿔이 날카로워졌다.
드래곤으로 인한 변화를 최대한 억제시키기 위해, 드라칸들은 자신의 아버지를 다시 재우고 있었다.
“이렇게 잠시 자리를 비울 정도면 여유가 있으신 모양입니다.”
“드라칸 모두가 한 번에 힘을 모은다고 될 일이 아니니까. 시간을 들여 수면기로 접어들게 끔 해야 한다. 그 때문에 서로 돌아가면서 일을 하고 있지.”
“흐음. 어쩐지 여유가 넘치신다 했습니다. 평소에 제가 탑을 오르는 것도 계속 보고 계신 것 같고…….”
껄껄. 안드레이는 한 바탕 웃음을 터트렸다.
“아무리 시간이 없어도 너와 관계된 일은 항상 신경을 쓰고 있다. 이런 것도 줄 정도로 말이지.”
리오의 앞에 안드레이는 책 한권을 내던졌다.
“금서… 입니까?”
3년 전, 오라클의 둥지였던 도서관에서 리오는 수많은 금서들을 훔쳤다.
그 책들을 모조리 스승에게 맡기고, 안드레이는 이따금씩 리오에게 도움이 되는 금서들을 건네었다.
“슬슬 필요하게 될 거라고 생각했다. 누가 남긴 책인지는 몰라도, 너와 같은 세계에서 온 인간이 남긴 건 분명하겠지.”
안드레이의 말대로 책을 펼치자 익숙한 한글이 보였다.
알터처럼 책에다 잔재주를 부리거나, 아르토 때처럼 숨겨진 내용이 있는 것 같진 않았다.
‘지금 당장 필요할 것 같지는 않군.’
리오는 아르토와 싸운 이후로도 다른 인간들을 소환해내었다.
그때 마다 간신히 싸워 이겼고, 리오는 선조들이 쌓았던 TP들을 강탈했다.
그 탓에 리오는 현재 제법 많은 TP를 보유하고 있었다.
살만한 축복은 없고, 타인의 재능을 강탈해보았자 리오는 더 이상 자신의 성장은 없다고 판단하고 있었다.
지금 가진 것만으로도 벅찼다. 탑을 좀 더 쉽게 오르고, 힘을 기르기 위해선 새로운 재능을 가지는 것이 아니라, 가진 것들을 숙련시켜야 했다.
이런 상황에서는 다른 인간을 소환해서 이로울 것이 없었다.
“… 감사합니다.”
“감사할 것까지야. 다른 용무가 없으면 이만 가보록 하지.”
애초에 안드레이에게 별다른 용무가 있었던 것이 아니라, 단지 혹시 모를 빈의 의심 때문에 만났던 것이었다. 리오는 고개를 끄덕였다.
“예. 언제나 감사합니다 스승님.”
“마법에 대해서 궁금한 것이 있으면 예전처럼 아무 때나 오거라.”
안드레이를 밖까지 배웅했다. 그가 주점에서 보이지 않을 때쯤 되자 베로드가 말을 걸어왔다.
“어이. 인간.”
“무슨 일이십니까?”
베로드는 리오에게 맥주 한 잔을 건네며 말했다.
그의 손에도 술이 쥐어져 있는 게, 대화를 하고 싶은 모양이었다.
“오랜만이군. 그동안 이런저런 이야기를 소문으로 들었다. 얼마 전에 50층을 통과했다지?”
“예. 꽤나 힘들었습니다. 탑의 고작 반을 온 것뿐인데, 드래곤 랜드라니요. 상상조차 못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