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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의 탑-102화 (102/1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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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31장 소환사인

리오는 대거로 손바닥을 그었다.

슥. 소름끼치는 소리가 들렸고, 이내 붉은 선혈이 바닥에 수를 놓기 시작했다.

'50층 완료.'

어느새 세 개의 다리를 가진 까마귀가 바닥에 그려졌다.

삼족오. 리오가 소환사인으로 사용하는 짐승이었다.

"원래 앞자리가 바뀌는 층은 소환사인을 남기지 않으셨잖습니까?"

갑작스럽게 누군가 리오에게 말을 걸었다.

얼굴이 검은 안개로 가려진 이, 남성인지 여성인지 알 수가 없었으며, 목소리는 변형되어 있었다.

그러나 리오는 상대방이 누구인지 알아챘다.

자신에게 침입할 만한 템플러는 적었다. 그 중에서도 자신의 사정을 알고, 등 뒤를 잡고도 공격을 하지 않는 주민은 단 한명 뿐이었다.

"빈씨."

옛 도서관의 사서장 빈.

몸에 엘프와 마족의 피가 동시에 흐르는 하프 블러드였다.

동시에 몇년 전까지, 템플러들의 조직 오라클의 간부이기도 했다.

"아. 왜 소환사인을 남겼냐고 물으셨죠?"

소환사인은 리오가 만들어낸 마법이었다.

탑에 남겨진 소환사인을 통해 누구나가 리오를 소환할 수 있게 된다. 다만 진짜 리오가 소환되는 것은 아니었다. 해당 층을 오르던 시절의 리오가 소환된다. 전반적인 상황과 지식을 가지고 서.

간단히 말하자면, 알터의 사령술과도 같았다.

단지 충분한 마나만 있다면, 누구든지 사용할 수 있다는 점만 달랐다.

일종의 도우미였지만, 탑을 오르는 것을 마냥 도와주는 건 아니었다.

리오가 전력을 다해 탑을 오르는 걸 도운다면, 너도나도 리오가 있는 층까지 올라올 수 있다.

하지만 그랬다간, 탑을 오르는 주민 본인의 성장은 없다.

리오가 남긴 소환사인은 그저 말 그대로 도우미 역할이었다.

사소한 것들만 돕고, 중요한 건 모두 주민에게 맡겨, 성장을 재촉한다.

리오는 그저 최악의 상황이 오는 것을 방지하는 역할만 수행만 했다.

빈이 물어본 것은 소환사인의 이 점을 지적한 것이었다.

어째서 주민들의 성장이 드러나는 층에서 소환사인을 남기느냐.

"50층은 다른 층들과 다르게 매우 어렵습니다. 10층, 20층, 30층… 앞자리가 바뀌는 다른 층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 입니다. 아마 여기서 많은 주민들이 죽어가겠죠."

리오는 50층을 돌파하는 데 3달 가량이 걸렸다.

탑의 절반인 50충은 그동안 모험가가 쌓아온 모든 지식과 경험을 시험했다.

"그렇다고 50층에서만 소환사인을 남기시는 건…"

빈이 할 말을 리오는 이해했다.

그녀는 리오가 선조들처럼 주민들을 성장시키지 않고 위로 올라가는 것을 염려하는 것이었다.

리오도 50층에 소환사인을 남길지 남기지 않을지 고민했다.

그러나 이렇게 남긴 것은 다른 이유가 있어서였다.

"많은 주민들이 여기서 죽을 것 입니다. 그걸 알고도 모른 척 할 수는 없어요."

굳은 의지가 담긴 목소리로 리오는 말헸다.

빈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로써는 리오를 막을 힘도, 소환사인을 없앨 수도 없었다.

그저 리오의 생각을 물어본 것뿐이었다.

이건 지난 3년간, 리오가 템플러 아르토를 살해한 뒤 쭉 해온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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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에서 나온 리오는 모험가들 사이로 몸을 숨겼다.

로브를 뒤집어 쓰고 이동하는 그의 모습은 마치 탑에서 도망치는 듯 했다.

조심스럽게, 은밀히 자신의 정체를 숨기며 리오는 탑을 모방한 건축물, 길드로 향했다.

인간 길드로 가는 것은 아니었다. 길드 포탈의 앞에서 리오는 눈앞에 나타난 홀로그램을 조작했다.

포탈을 관리하는 길드 직원은 리오의 행선지를 알 수 없었다. 그저 포탈을 열고 닫고 하는 역할만 수행 했다.

"이동하시겠습니까?"

마법에 대해서는 엘프, 마족 만큼이나 일가견이 있는 노움이 리오에게 물었다.

홀로그램의 조작이 끝나자 리오는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뒤, 익숙한 포탈이 열리고 리오는 안으로 들어갔다.

길드 아지트는 본인의 종족에 따라서 결정된다. 인간이면 인간 길드 아지트, 오크면 오크 아지트, 엘프면 엘프.

길드 포탈의 용도는 한정 되어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곳에 있었던 모든 주민들은 리오가 인간길드 아지트로 가는 것이라고 추측했다.

그러나 리오가 포탈을 이용해 도착한 곳은 인간길드 아지트가 아니었다.

퇴폐적인 분위기의 주점.

탑의 축복 : 템플러를 사용하는 주민들의 길드였다.

템플러들의 길드 아지트는 엄연히 탑이 아니기 때문에 축복이 발동 되지 않고 있었다.

그 때문에 이곳에 모인 모든 템플러들은 각자 자신의 재량에 따라 변장을 했다.

리오로 까마귀 가면을 착용하고 빈 테이블로 향했다.

템플러들의 아지트는 주점 분위기를 띄고 있으나, 그 누구도 알코올을 입에 대거나 시끄럽게 떠들고 있지 않았다.

평소에 이곳에 자주 오지 않는 리오로써는 평상시의 모습이 어떨지 모르지만, 아마 항상 이렇게 조용할 거라고 생각했다.

그야, 템플러들이다, 자신의 지인조차 믿지 않는 그들인데, 같은 템플러들이 모인 곳에서 술을 마시거나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였다.

아지트에 우스꽝스러운 광대분장을 한 템플러가 들어왔다.

리오가 이 세계로 오기 전 부터 템플러 아지트에 자주 나타났고, 오늘 이렇게 템플러들을 모이게 한 자.

광대 모습의 템플러. 페이스는 주점 한 가운데에 놓인 단상에 곧장 올라갔다.

"여러부운 안녕하십니까아! 오늘 이렇게 모여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페이스는 늑대 같은 여러분들이 이렇게 한 자리에 모이니 너무나도 감격스럽네요오!"

모습만큼이나 발랄한 분위기의 목소리를 가진 이였다. 단상 위에서 그는 진짜 광대처럼 몸을 덩실덩실 흔들었다.

"이렇게 모인 여러분들을 위해 숨겨둔 장기 하나 꺼내도록 하죠오!"

여러 자루의 대거를 꺼내고, 자신의 아공간에서 커다란 공을 꺼낸 페이스는 곧장 묘기를 부리려 했다.

그 꼴을 두고 볼수 없던 템플러 한 명이 입을 열었다.

"에라이 미친 자식아. 불렀으면 그딴 병신 같은 짓 그만두고 용건이나 꺼내!"

"미, 미쳤다고요오! 크으으. 마법보다 신비한, 축복보다 재미있는 재 묘기를 그렇게 말씀하시다니, 우으으 화가 납니다!"

페이스의 광대 분장이 변했다.

하얗던 얼굴은 붉게 변했다. 루돌프 코 같던 코의 장식은 노랗게 변했다. 눈 주위의 화장은 붉은 색에서 검게 변했다.

'요란하구만.'

이쯤하면 광대로 변장을 한 게 아니라, 본직이 광대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어느새 모락모락, 자신이 열받은 것을 드러내듯 페이스의 주위엔 수증기가 올라왔다.

리오는 그가 재미있다고 생각하며 이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한 마디 내뱉었다. 자신도 말을 꺼낸 템플러처럼, 페이스의 용건을 어서 듣고 싶었다.

"페이스. 당신 쇼는 그 단상 위에 올라가는 순간 시작되었어. 재미없다고 투덜대는 관객에게 그래선 안 되지."

그 말이 끝남과 동시에 페이스의 분장이 다시 원래대로 돌아왔다.

"헤헤. 사실 방금 전의 분장변화가 제가 준비한 것이었습니다. 어떠셨는지요. 까마귀씨."

"개인적으로 재미있었어. 그러니 이제 용건을 꺼내주지 않겠어?"

광대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도록 하죠오."

리오는 광대가 입을 열기 전에 주변을 둘러보았다.

처음 아지트에 왔을 때보다, 더욱 늘어났을지 언정 줄어든 기색은 없었다.

분명 광대의 행동은 한숨을 자아나게 만들고, 이곳을 떠나게끔 하고 있었다.

그러나 아무도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는다. 그것은 리오도 마찬가지고, 방금 전 광대에게 불만을 털어놓았던 템플러도 마찬가지 였다.

'하긴, 어쩔 수 없나.'

페이스라는 광대는 우스꽝스러운 행동을 하고 있지만, 그는 마을 전역의 템플러들을 끌어 모은 자다.

탑의 축복 : 템플러의 특성상, 어느 주민이 템플러인지 결코 알 수가 없건만, 페이스는 모종의 방법으로 모든 템플러들의 신상정보를 알아내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템플러인 주민에게 편지를 보낼 수 있을 리가 없다.

상대에 대한 정보를 확실히 가지고 있고, 누가 템플러인지, 아닌지 확실히 구별한다.

리오가 이런 추측을 한 이유는 그가 편지를 아무에게나 보낸 것이 아니라는 걸 확인했을 때 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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