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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 1층의 지반이 붕괴되며 숲속이 뒤집어졌다. 졸졸졸 흐르고 있던 시냇물은 폭풍이 몰아치는 파도 마냥 땅을 뒤덮었다.
먼지구름이 피어오르고 폭심지를 가렸다. 다른 종족도 아니고, 두 명의 인간이 만들어낸 파괴력은 1층을 단 번에 클리어 시킬 정도였다.
이미 이곳을 지나간 전적이 있던 둘이라, 강제로 이동되는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짐승 같은 감이군. 그걸 피해 내다니. 단 번에 두개골을 뭉개버릴 생각이었는데.”
“뒤통수를 당한 전적이 한 번 있어서 말이죠…. 그 이후로는 조심하고 다닌답니다.”
아르토는 중력을 이용해 하늘로 치솟았다. 그리고 운석이 낙하하듯. 인간의 몸으로 상공 수십 킬로미터에서 대검을 내리찍었다.
그 말도 안 되는 일을 해낸 아르토의 몸이 온전할 리가 없었다.
뜨겁게 달아오른 아르토의 몸은 당장이라도 녹아내릴 듯 했다. 오직 이 기술을 위해서 아르토는 많은 TP로 자신의 몸을 강화했다. 열에 대한 내성을 가지기 위해.
그러함에도 상태가 몹시 좋지 않아보이는 건, 역시 인간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지금도 시냇물이 범람하여 몸을 식혀주지 않았더라면 어떻게 되었을지 몰랐다.
‘… 모두 계산하고 한거겠지만.’
리오는 계산적인 아르토의 행동에 일이 쉽게 풀릴 것 같지 않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내가 앤서러를 완벽히 구사할 줄 안다는 걸 확인하자마자 초강수를 두었어. 길게 가면 자신이 불리하다는 걸 안거야.’
리오의 앤서러는 아르토의 모든 공격을 무효화 할 수 있다.
단번에 그걸 파악한 아르토는 일격필살의 기술을 사용한 것이다.
… 그리고 그 기술은 리오에게 치명타를 안겼다.
“앤서러라는 건 정말 대단한 것 같아. 설마 하니 그걸 막아낼 줄이야.”
뜨거운 열을 내뿜는 아르토의 상태도 썩 좋아보이진 않았지만, 리오에 비하면 양반이었다.
아르토의 대검은 리오의 팔뚝에 박혀 있었고, 온몸에 타박상이 가득했다.
물론 열을 내뿜는 건 리오도 마찬가지였다. 비유에 가깝지만, ‘운석’이 된 아르토와 부딪혔다.
리오는 1차적인 피해만 막아낸 것이지, 2차적인 피해까지 막은 게 아니었으니까.
‘역시 앤서러를 단 기간에 완벽히 익힐 순 없었나. 꽤나 성장하긴 했는데….’
팔뚝에 박힌 대검은 몹시 뜨거워 피조차 증발시키고 있었다.
“이걸 막아냈다고 해야 합니까? 앤서러를 사용했다면 온전히, 아무런 피해 없이 받아냈어야 했는데.”
고통을 참아내며 리오는 아르토를 밀쳐내었다.
값비싼 힐링포션을 꺼내어 온몸을 들이붓고 치유가 되는 것을 기다렸다. 아르토는 그걸 멍하니 바라보다 웃음을 터트렸다.
“그렇게 살고 싶냐?”
“당신과 달리, 저는 현재를 살아가는 몸이라서요.”
아르토는 잊고 있었던 듯. 자신이 과거에서 소환되었다는 걸 깨달은 모양이었다.
놀란 표정이 되었다 웃음을 터트렸다.
“그렇지. 나는 과거에서 살았고, 이미 귀환을 했고, 죽었지.”
“알고 계시면 그냥 쓰러져주시면 안됩니까? 모두 제 잘못이긴 합니다만.”
“될 리가. 아무리 사정이 딱하거니와, 너보고 한 번 죽어달라고 하면 기분이 좋겠어?”
기대조차 안한 질문이었다. 리오는 팔이 원상태로 돌아오자 아르토를 향해 몸을 날렸다.
아르토가 중력을 이용해서 공격하는 일이 또 다시 벌어져서는 안 되었다.
‘지금 나에겐 이 두 주먹뿐이지만!’
케일에게서 앤서러는 맨 손으로 하는 것이 좋다고 하기에, 리오는 그 말에 따랐다.
애초에 검의 재능도 잃어버렸기 때문에, 검을 놓았고, 그 탓에 리오는 무장을 들고 오지 않았다.
할 수 있는 건 주먹을 휘두르는 것 뿐.
“큭큭…!”
허공을 가르는 리오의 주먹을 보고 아르토는 비웃음을 흘렀다.
육중한 무게의 대검을 지닌 아르토 조차 피할 정도의 주먹이다.
빈틈이 너무나도 많기에 원래라면 회피 후 대검을 휘두를 테지만, 아르토는 하지 않았다.
리오가 주먹을 휘두르는 건 도발이다.
앤서러는 반격기술. 아르토가 리오를 공격하는 순간 이 싸움은 끝난다.
아르토는 리오의 주먹을 피하며 말했다.
“그러고 보니 아직도 템플러가 되지 않았다지? 어째서? 지구에서의 습관을 아직도 버리지 못했나? 진 작에 인간이기를 포기했다면… 지금쯤 그 두 주먹은 나를 수도 없이 두들겼을 것 같은데 말이야.”
“난 당신처럼 되지 않기로 했어.”
아르토는 자신의 축복을 이용해 뒤로 멀리 이동했다. 마법의 보조가 없는 리오로써는 도저히 따라잡을 수가 없는 속도였다.
“나처럼 되지 않기로 해? 거참… 편한 길을 포기하고 왜 그러지? 이 세계를 다녀간 대부분의 인간들은 나랑 똑같았어. 누군가를 죽이고 빼앗고… 거짓말이 아니야. 그 모만 영감이 알려준 거니까.”
리오는 자신이 행한 일이 떳떳하다는 투로 말하는 아르토를 향해 이를 갈았다.
탑을 오르는 주민을 급습하여, TP를 빼앗는 템플러.
탑의 세계에 온 인간 들 중에, 가장 처음으로 템플러가 된 인물.
그 인물 때문에 아르토를 비롯한 뒤의 인간들이 그 행동을 따라하고 있다.
선지자의 지혜가 마냥 좋을 순 없다는 걸 왜 모두 깨닫지 못하는 걸까.
분명 이 세계에서 빠져나가는 최선의 방법일지는 몰라도, 최고의 방법은 아니다.
그래서 리오는 선지자의 행위들을 보고 분노하고 불쾌감을 느꼈다.
따라하지 않기로 하고, 멀리하기로 했다.
마치 자신의 조상들이 한 일을 속죄라도 하듯, 정 반대의 일을 하기로 했다.
그런데, 아르토라는 선대는 후대에게 이런 말을 내뱉는가!
“나는 인간으로 죽고, 인간으로 귀환하기로 했어, 당신들과 정반대의 방법으로 탑을 오를 거라고!”
아르토는 비웃듯이 크게 웃었다.
리오는 그의 사정을 보지 않은 채 다가갔다. 주먹을 말아 쥐었을 때, 아르토는 웃음을 가까스로 멈추었다.
“하하…큭큭…. 이봐. 누가 보면 나를 비롯한 다른 인간들은 그런 노력을 안 해본 줄 알겠어? 이 우연히 좋은 축복 받은 놈이.”
조금이라도 자신의 부족함을 채우기 위해 아르토는 템플러가 되었다.
이종족이라는 이름의 천재들.
단 한 가지라도. 장기를 가진 이종족들에게 뒤처지지 않기 위해.
아르토는 템플러가 되었다.
그러나 리오는 템플러가 될 필요가 없다.
강탈이라는 축복이 있는 이상.
이종족의 재능을 얼마든지 빼앗을 수 있다.
자괴감을 느낄 필요가 없다. 인간이기를 포기할 필요가 없다.
‘나라고 이 꼬라지가 되고 싶었던 건 아니라고!’
오히려 리오의 모든 것이 질투가 난 아르토는 대검을 쥐었다.
앤서러고 뭐고 이제 눈에 보이지 않는다. 눈앞의 후대를 한 대 쥐어박지 않는 이상 가슴이 후련해지지 않는다.
‘자신의 한계를 맛보지 못한 거야. 저놈의 축복은 한계가 없으니까.’
끼이익!
바닥에 박혀있던 대검이 뽑혀지자 리오는 아르토의 말을 듣고 충격 받었던 정신을 되찾았다.
역시 선조들은 마냥 악인은 아니었던 것이다. 그런 생각을 했을 때….
리오의 목걸이가 부르르 떨기 시작했다.
‘…… 이, 이건!’
아르토의 대검을 가까스로 피해내고 리오는 그의 후미를 잡았다.
“… 방금 전 공격은 앤서러로 반격할 수 있었을 텐데.”
아르토를 향해 리오는 자신의 목걸이를 던졌다.
흑진주 목걸이가 부르르 떨고 있는 모습은 기괴했다. 아르토는 익숙한 목걸이를 보고 콧소리를 내었다.
“나 말고 다른 템플러가 너에게 침입을 시도했군?… 가만. 너에게 볼일이 있는 놈이라면 오라클놈들 밖에 없잖아.”
리오로 인해 중심이 와해된 오라클.
오라클들은 주민들이 합심하여 수색한 결과. 현재 잔당들만이 남아있는 상태였다.
그 잔당들이 리오에게 왔다는 건… 한 가지를 이야기했다.
‘이 탑의 세계에서 살아가는 이상. 언젠가 잡히고 말테지… 그 전에 나에게 복수라도 하러 온 건가.’
바퀴벌레도 밟으면 꿈틀거린다. 오라클에게 있어서 이것은 마지막 발악이었다.
자신들을 비극으로 치닫게 한 리오가 정말 죽이고 싶을 만큼 원망스럽지 않을까.
‘하필… 이런 상황에서.’
하나 둘 씩 나타나는 오라클들을 보며 리오는 식은땀을 흘렸다.
이전에 만났던 그들의 여유로운 모습은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마치 그들 모두가 자신을 보는 듯 했다.
오로지 이 탑의 세계를 살아가기 위해, 탑을 올라가기 위해 최선을 다해 노력하는 모습.
인간의 모습이 이종족들에게서 보였다.
서로 적이라는 입장만 아니었다면, 쿠란처럼 서로 경쟁하는 사이가 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개소리인가. 이런 상황이 아니었으면… 저런 모습이 나올 리가 없지.’
헛웃음을 터트리자 아르토는 리오에게 말을 걸어왔다.
“뭐냐. 이제 상황이 꼬여버리니 미쳐버린 거냐?”
“하하하. 아니 아니요. 그냥…. 인간은 이종족을 닮아가고, 이종족은 인간을 닮아가고 있구나. 라고 생각해서요.”
“개소리를 하고 있군. 누구나가 타인을 닮는 거야. 다른 종족이 볼 땐 인간 또한 이종족이다. 즉. 모두가 서로를 닮는다는 거지.”
차자자장!
아르토와 리오의 대화가 끊어졌다. 침입한 오라클의 잔당들은 각자의 병장기를 꺼내었다.
“앤서러 리오에게 침입한 자가 있길 래… 우리의 원한을 풀기도 전에 죽었나 싶었소. 하지만 그 모습을 보니 괜한 걱정이었나 보구려.”
“확실히 말하자면… 죽을 뻔 했지. 당신 눈에는 여기 1층에서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보이는 모양이야?”
아르토가 비아냥 거리듯 말했다. 천지개벽이 일어나듯 뒤집어진 땅. 범람하고 있는 시냇물.
푸르름이 넘쳐나야 할 숲은 황야가 되어 있었다.
“그건 아니오. 확실히 큰 일 있었던 모양이지만…. 그 쪽의 용무가 무엇인지 통 모르겠구려. 우리와 같은 축복을 사용하는 자이기는 하나, 앤서러 리오에게 친분을 드러내니…….”
오라클 잔당의 말에 아르토는 리오를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