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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의 탑-98화 (98/1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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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차피 여기 있는 주민들 중에 너보다 인간을 모르는 인물은 없어. 그리고 탑의 규칙은 너에겐 관대한 편이잖아? 뭘 그렇게 몸을 사려.”

그러나 차원의 틈은 다시 열릴 기미가 안보였다. 픽시는 그대로 모습을 감추었다.

흥이 식은 듯, 아르토는 혀를 차며 말했다.

“뭐, 보는 데로다. 본래대로라면 과거로 돌아가야 하지만… 탑이 날 주민으로 인식했어.”

이 상황은 이례적이다.

지구에서 온 인간이 두 명.

타종족과 다르게, 1층부터 지급받은 축복이 두 개나 존재하는 상황이다.

가이드 픽시의 경우. 본래라면 두 명이지만, 아르토와 함께했던 픽시는 사망했으니 아르토의 픽시 밖에 없다.

‘… 인간이 두 명, 축복이 두 개. 픽시가 하나.’

등골을 타고 싸늘한 무언가가 타고 올라왔다. 리오는 아무도 듣지 못할 정도로 중얼거렸다.

그 목소리는 정말 작았지만, 반이 엘프고 반이 마족인 빈의 귀에는 똑똑히 들렸다.

빈은 입술을 씹는 리오를 보고 고개를 갸웃했다.

“… 탑이 당신을 주민으로 인식하고 있다면 저에겐 본래 시간대로 돌려드릴 방법이 없습니다."

“네 역할은 따로 있어. 아니, 다른 놈도 할 수 있는데… 굳이 말하자면 네가 해주었으면 하는 일이랄까, 좋게 끝나면 너에게도 좋은 일이고.”

“그게 뭡니까?”

리오의 물음에 아르토는 모만을 바라보았다. 그에게 질문을 넘기려는 듯 했다.

“예전의 알터도 이런 상황에 빠진 적이 있었네. 그 자는 상황이 많이 달랐지만… 자신의 소환수가 주민이 되어버렸다는 건 똑같았지.”

알터가 비슷한 상황에 빠졌다면, 결국 해결을 보았다는 것.

모만이 들려주는 말에 리오는 집중했다.

“자네와 비슷한 이 상황에서 알터는 싸우는 것으로 해결을 보았네. 탑의 주민이 된 소환수가 죽으면 어떻게 되겠나?"

길게 생각할 것도 없었다. 그저 모든 것이 있어야 할 곳으로 돌아갈 뿐이었다.

소환수는 본래의 시간대로, 소환사의 것은 소환사에게로.

그건 결국 리오도 아르토와 싸워야 한다는 것이었다.

‘… 어쩔 수 없는 건가?’

자신에게는 방법이 없다.

아르토를 위해, 자신을 위해, 이 일은 해결을 빠르게 봐야한다.

제시된 방법은 이것 하나뿐이다.

그렇다면 어쩔 수 없다.

“대답은 굳이 들을 필요도 없지 않나? 다른 선택지가 있는 것도 아니고. 결판을 짓고 싶은 날에 탑으로 올라와. 이쪽은 템플러고 모만 영감도 있으니까 네 움직임 정도는 알 수 있거든.”

아르토는 리오의 대답을 듣지도 않고 케일의 저택 밖으로 나갔다. 모만은 고개를 절로 흔들었다.

“…  이 상황은 해결을 봐야한다고 나도 생각하네. 양쪽 다 원하는 방향이 아니지 않은 가?"

리오는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떨구었다. 자신은 또 다시. 누군가를 죽여야 하는 가.

결코 이렇게 되고 싶지 않았다. 이렇게 되고 싶지 않아서 많은 준비를 했고, 조심스럽게 아르토를 대했다.

그러나 결국 이꼴이다.

눈앞이 뜨거워지려는 걸 가까스로 참았다.

"아르토에게 전할 말이라도 있는 가?”

“아…니요. 없. 습니다. 제 잘못이니까요.”

아르토의 뒤를 이어 모만 또한 자리를 비웠다. 마지막으로 남아있던 빈은 리오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축복을 사용할 수 없는 것입니까?”

화들짝 놀란 리오는 허탈한 웃음을 지었다.

방금 전. 픽시가 아르토의 말에 나오는 걸 보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리오는 자신의 강탈 축복을 사용했었다.

아무도 들을 수 없을 정도로 중얼거린 것을, 이 반 엘프는 들은 것이다.

“탑은 선객에게 모든 걸 줘버린 모양입니다.”

공허한 표정이 된 리오의 말에  빈은 입술을 깨물었다.

"리오님에겐 탑이 준 축복만 있는 게 아니잖아요? 나약한 척은 하지 말아줘요. 언제나 이종족들이 인간에게 무릎을 꿇었던 이유는 단순히 강한 축복을 가졌기 때문이 아니니까."

'축복 때문이 아니다라.'

빈은 그 말을 남기고 모만과 아르토를 따라나갔다.

케일과 단 둘이 남은 리오는 생각에 빠졌다.

자신은 더 이상 마법을 사용할 수 없다.

검의 대한 재능도 사라졌다.

강탈로 리오가 빼앗은 모든 재능들이 사라졌다.

그동안 쌓아온 모든 것들이 사라진 기분은 참으로 암담했다. 손에 쥐었던 대부분의 것들이 사라졌다.

자신은 앞으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가진 것은 부모님에게서 물려받은 나약한 육체와 이기적이고 기회를 노리는 정신뿐이다.

‘남은 건……!’

리오는 이 상황을 연출해낸 인물을 바라보았다.

손님의 정체를 숨긴 케일.

딱히 그가 원망스러운 것은 아니었다. 어차피 이런 상황은 언젠기 다가올 것이었다.

오히려 이제 도움을 청해야 한다. 나약한 몸에다 사회에 찌든 정신상태로 배운 것.

앤서러를 단련시켜 줄 수 있는 건 케일 뿐이었다.

검사를 두들기는 대장장이.

리오는 대장장이에게 말했다.

“약속대로 날 제련해줘.”

그 말을 기다렸다는 듯. 케일은 손을 내밀었다.

제 30장 두 명의 인간

평범했다.

한 번 본 것을 잊어버리지 않는 천재, 단 번에 바위를 부실 정도의 괴력을 가진 천재.

태어날 때부터 마법을 다룰 줄 아는 천재, 활로 무엇이든지 맞출 수 있는 천재.

가지각색의 장기들을 가진 천재들 사이에서 나는 특별할 만큼 평범했다.

이종족이라는 천재들을 볼 때마다 평범한 인간인 내가 자괴감에 빠져드는 것은 당연했다.

그때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이 있을지 수도 없이 고민했다.

생각 끝에 내려진 결론은, 그저 내게 주어진 시간을 열심히 살아가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 시간이라는 것조차도 모두에게 똑같이 주어진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 것은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생각해보면 당연하다.

이종족과, 인간의 수명은 비교할 수 없다.

가지고 있는 재능조차도 비교할 수 없다.

그래서 나는 인간을 포기하고 템플러가 되었다.

***

리오는 오랜만에 탑의 앞에 섰다고 생각했다.

케일은 앤서러를 가르치기 위해 만들어진 것처럼, 정해진 계획대로 리오를 쉴 틈 없이 가르쳤다.

리오는 정해진 날이 없었지만, 내일 당장이라도 결전을 치룰 것처럼 최선을 다했다.

하지만 완벽히 배웠다고 한들, 불안한 마음은 가시질 않았다.

‘… 이길 수 있을까?’

지금 리오는 탑의 축복 : 강탈로 얻은 재능들은 모두 사용할 수 없다.

강탈로 얻었던 마법사로써의 재능, 검사로써의 재능이 없다.

지금 자신에게 남아있는 건. 처음부터 있었던 ‘강탈’이 아니라, TP로 구입한 축복들뿐이었다.

‘강탈을 제외한 다른 축복들은… 도움이 안 될 테거야.’

과연, 완숙된 자신의 앤서러가 아르토에게 통할지 걱정부터 들었다.

케일에게 20층을 오르던 시절의 아르토는 앤서러를 완벽하게 구사했냐고 물으니, 그는 대답을 하지 않았다.

직접 확인을 해보라는 것일 터.

“믿을 건 이거 밖에 없어.”

한숨을 내쉬고 탑으로 들어갔다. 적당한 층에서 대기를 하고 있으면 아르토가 탑의 축복 : 템플러를 통해 리오에게 침입을 할 것이었다.

‘그나마 방해가 없는 1층이 좋겠지.’

1층에서 아르토를 기다렸다. 잠시 뒤. 템플러의 침입을 알리는 리오의 목걸이가 부르르 떨기 시작했다.

리오의 주변에서 마치 픽시가 나타나듯. 커다란 차원의 틈이 나타나며 아르토가 모습을 드러내었다.

탑의 축복 : 템플러 탓에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사전에 나누었던 대화 때문인지 그가 아르토라는 확신이 들었다.

“나는 분명히 빨리 돌아가고 싶다고 말했을 텐데…? 너무 늦게 온 거 아니야?”

“기한을 걸어두고 약속을 하지 그러셨습니까? 절 배려해주시는 줄 알았습니다.”

아르토는 혀를 차며 클레이모어를 꺼내었다.

“그래. 내 잘못이지…. 그러니까 빨리 끝내자고. 난 내 시간에서 사랑스런 아내가 기다리고 있으니까.”

그 말에 리오는 이리나를 떠올렸다.

“이리나씨라면 이 시간대에도 있지 않습니까? 굳이 과거로 돌아가셔 합니까?”

“무슨 개소리를 하는 거야? 내가 돌아가는 편이 서로에게 좋잖아? 빈이라는 놈에게 들었어. 너 축복도 못 쓴다며, 픽시도 되찾아야 하잖아? 나는 여기서 이득 볼 것도 없고, 돌아가서 살던 생활을 이어가면 되.”

“그렇긴 하지만…….”

“뭘 그렇긴 하지만 이야!”

짜증을 내며 아르토는 대검을 리오를 향해 휘둘렀다. 중력계열 축복이라는 걸 깨달으며 리오는 앤서러를 사용했다.

완숙된 앤서러는 중력이나 열, 전기 같은 무형의 에너지도 무효화 시킨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인식할 수 있을 때다. 자신을 표적으로 공격하거나, 주변에 있다고 인식하고 있을 때의 이야기.

막연히 무적은 아니었다.

“… 중력을?”

아르토는 한순간 놀란 표정이 되더니, 리오가 자신의 공격을 와해 시켰는지 이해했다.

“하긴, 축복도 사용 못하는데… 내 앞에 맨손으로 나타날 리가 없지.”

순식간에 아르토는 자리를 박차며 리오에게 달려 나갔다.

중력을 이용한 대쉬. 리오를 향해 대검을 휘두르더니 어느 순간 방향을 전환했다.

‘큭!’

앤서러를 사용하여 반격할 준비를 잡고 있던 리오는 자세를 무너뜨렸다.

‘어, 어디로 갔지?’

좌우를 둘러보았으나 아르토의 행방은 보이질 않았다.

그 순간.

리오의 뒤통수를 향해 대검 한 자루가 운석 마냥 떨어졌다.

콰아아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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