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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상들을 지나치고, 대장간을 지나쳐 저택에 당도했다.
‘… 저번에는 대장간에서 케일씨와 녹차를 마신 것 같은데.’
처음 케일을 만났을 때, 대장간에서 숙식을 해결하는 그를 보고 리오는 이상하게 생각했던 것을 떠올렸다.
왜 좋은 집, 넓은 대저택을 두고 옆의 조그마한 대장간에서 생활을 하냐고 질문까지 했다.
그리고 그는 이렇게 답했다.
겉에서 보기엔 좋은 집일지 몰라도 저곳은 창고라고. 저 안에는 자신이 만든 물건들이 가득 들어 있다고.
그런데 오늘은 저택의 안으로 자신을 초대하고 있었다.
“케일씨. 저번에 저택은 창고나 다름없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케일은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표정은 그대로고 목소리는 무미건조했다.
“리오는 별걸 다 기억하고 계시군요. 맞습니다. 창고나 다름없죠. 마음 같아선 제가 생활하는 곳에서 리오와 손님들을 모두 대접해드리고 싶지만… 아시다시피 거기는 좁고 덥습니다.”
‘선객이 한 명이 아닌 건가….’
누구일까. 어떤 인사를 건네야할지 말을 고르며 안으로 케일과 함께 리오는 들어갔다.
밖과 똑같이 케일이 조각한 석상들이 즐비한 곳. 다른 점이라면 역시 그의 말대로 석상들이 실제 장비를 착용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그런 케일의 작품들을 감상할 틈도 없이, 리오는 먼저 케일을 찾아온 인물들을 만나야만 했다.
이 정도로 큰 저택이라면 따로 접객실이 있기 마련이건만, 선객들은 저택의 바로 문 앞에서 리오와 케일을 기다리고 있었다.
“서로 인사들 하시길 바랍니다. 이쪽은 앤서러 리오.”
케일이 자신을 소개했지만, 리오는 선객들을 보고 호흡을 멈추었다.
마치, 이곳에 있으면 안 되는 인물들을 본 것처럼.
“… 윽!”
입을 틀어막고 뒷걸음칠 쳤다. 그 행동을 보고 선객들 중 가장 젊은이가 웃음을 터트렸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놀라서 숨이 막힐 정도는 아니잖아? 죽었다 살아난 것도 아닌데.”
마지막 만났을 때와 행동거지가 달랐다.
리오가 소환했던 인간.
아르토는 인형 같았던 모습을 탈피한 채 였다.
그의 곁에는 리오가 배신감을 느낀 호빗과, 도서관을 습격하게 만든 결정적 원인제공자가 있었다.
“모만씨! 빈 사서장!”
모만과 빈도 템플러며 오라클이다. 어째서인지 명부에는 적혀있지 않지만, 리오가 느끼기로는 그들은 틀림없다. 증거가 없을 뿐이다.
“진정하게나. 모두 자네를 위한 일이니까.”
빈은 리오를 향해 작게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모두 리오님을 위해서였습니다. 리오님도 저에게 말씀하시지 않으셨습니까? 자신과 함께 하고 싶으면 오라클을 나오고, 탑의 축복 템플러를 버리라고.”
그 말에 리오는 빈의 정체가 누구인지 깨달았다.
10층과 18층, 20층에서 자신을 괴롭혔던 골렘술사.
막혔던 구멍이 뚫리는 기분이 드는 것과 함께 한숨이 절로 나왔다. 그래서 오라클의 명부를 의도적으로 자신에게 보여준 것인가.
“모두 서로를 알고 계신 것 같아 다행입니다.”
케일의 말에 아르토는 코웃음을 쳤다.
“알다마다. 저 녀석은 나랑 쌓인 일이 좀 있거든.”
아르토는 곧장 무기를 쥐었다. 주변에 있던 석상에서 적당한 검 한 자루가 스르르 그에게 날아갔다.
마치 마법을 사용하는 듯한 모습이었다.
‘마법이 아니야, 저건 축복을 사용하는 거야… 분명 중력계열 축복이었지.’
“아르토. 아직 그럴 때가 아니라고 했을 텐데? 그리고 여기는 마을이다. 싸워봤자 득이 될게 없다.”
보기드문 모만의 화난 목소리였다. 아르토는 모만의 말을 곱씹다가 이를 갈며 검을 돌려놓았다.
“영감. 나는 빨리 돌아가고 싶다고.”
“안다.”
‘… 돌아가?’
리오는 어느새 뽑혀 있는 자신의 검을 바라보았다. 그 정도로 아르토는 리오에게 있어서 공포 그 자체다.
20층에서 처음으로 죽는 다는 공포를 맛보았다.
검 한 번 부딪치지 않고, 단순히 표적이 되어진 것만으로도 그 정도다.
‘그때의 아르토가 아닌데. 나도 너무 예민하군.’
“자네답지 않게 행동하는 군. 리오. 보다시피 자네의 선조라는 놈은 천둥벌거숭이 같은 놈이야. 젊을 때는 매번 저런 식이었지. 뭐… 나중에는 상당히 괜찮은 놈이 되었지만.”
리오는 모만의 말에 쓴웃음을 지었다. 일기장을 통해 본 아르토의 정신적 변화는 고개를 주억거리기에 충분했다.
뒤에 있던 아르토는 “영감. 미래의 이야기 따위를 들려주지 마. 미래의 나라니, 괜히 기대되잖아.”라며 얼굴을 붉혔다.
“저 녀석에게 자네가 한 일에 대해서는 들었네…. 알터의 마법으로 소환을 해내었다지? 나는 마법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지만… 분명 대단한 일을 해낸 것이겠지. 아무도 못해내던 일을 한 것이니까.”
“예. 분수에 맞지도 않는 짓을 해버렸죠. 아르토씨가 저에게 불만과 적의를 드러내는 건. 혹시 마법이 잘못 된 겁니까?"
모만은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건 아니야. 자네가 누구에게 마법을 배웠는가? 드라칸에게 배웠지 않은가? 잘못 될 리가 없지. 너무 완벽해서 문제야. 저 녀석은 20층을 오르던 당시의 모든 것들을 가진 채로 소환되고 말았어. 마법이 너무 완벽했던 거지. 보통 소환사들은 불필요한 것들은 소환하지 않고, 오히려 제거하는 편인데 말이지.”
소환사는 소환수의 감정을 제어하고 기억을 제거한 뒤에 복종 시킨다.
리오는 그러한 일을 하지 않았다.
소환사에게 일반적으로 불필요한 것들이지만, 리오에게는 필요했다. 인륜을 저버리고 자신의 동족을 노예처럼 부릴 수 없다는 양심 때문이었다.
모만은 그것이 문제가 되었다는 걸까.
‘하지만 나는 아르토를 소환하고, 단 한번도 명령을 내리거나, 부탁을 하거나 한 적이 없어. 불쾌하게 느낄 만큼 무언가를 한 적이 없는데, 왜 날 적대한 거지?’
이유라고 하면… 단순히 20층을 오르고 있던 자신을 소환한 것이 문제일까.
아르토에게 있어서는 무언가 일을 하고 있던 도중에, 소환된 것이니까 기분이 불쾌할 만하다.
하지만 그게 동족에게 검을 겨눌 정도의 일인가?
리오가 소환을 해제 했다고 한들. 아르토는 본래 소환 당했던 그 장소, 그 시간으로 돌아간다. 피해 볼 것이 없다.
‘그 외에 나에게 적의를 품을 만한 일이라면… 아. 잊고 있었군. 테일러가 아르토의 아들이라는 걸. 하지만… 테일러가 태어난 건 아르토가 중년이 되어서야. 20층을 오를 때니까 딱히 자신의 아들을 죽인 살인마에게 불만을… 품을만 한가?’
테일러를 죽였던 것은 입이 두 개라도 할 말이 없다. 서로의 오해로 일어난 일이고, 어쩔 수 없었던 일이다. 사죄를 하라면 할 의향은 있다.
하지만 아직 태어내도 않은 자식 때문에 싸울 필요는 없다.
“너무 완벽해서 탈이라는 말씀이신데, 무엇 때문에 아르토와 싸워야하는지, 저는 아직도 모르겠습니다.”
“음. 그 말도 맞지만… 그냥 간단히 말해서 소환하는 시기가 안 좋았어. 20층을 오를 때라면 아르토가 가장 행복할 때를 소환했으니……. 손에 들어온 행복과 강제로 단절되었는데, 기분이 좋겠는가? 다시 손에 쥐고 싶지 않겠는가?”
기분이 좋을 리가 없다. 당연히 다시 손에 쥐려 한다. 인간이라면, 지적 생명체라면 당연한 욕구다.
리오는 아르토의 기분을 이해할 수 있었다.
‘기분이 좋을 때라…. 이리나씨와 잘 되가고 있을 때려나?’
그렇다면 자신이 백번 잘못했다. 자신이라도, 아르토와 똑같은 행동을 할 것이었다.
하지만.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기 전에 리오는 먼저 따져보아야 할 것이 있다는 걸 깨달았다.
아르토는 과거로 돌아가기 위해, 리오의 소환을 해제시키기 위해 자신을 공격했다.
그리고 리오는 가장 쓰고 싶지 않은 방법, 꺼려하는 셧다운 마법을 사용했다.
소환수에게 향하는 마나를 모두 차단하는 마법. 즉 아르토에게 흘러들어가는 리오의 마나를 모두 차단한 것이다.
본래대로라면 아르토는 진 작에 소환이 해제되고 본래 있던 시간대로 돌아갔어야 했다.
“… 왜? 아직도 돌아가지 않았지?”
멍한 표정이 된 리오는 아르토를 바라보았다.
아르토의 얼굴은 일그러지더니, 곧 미소를 지었다.
“픽시. 네 옛 주인님 얼굴이나 보자고.”
“뭐…?”
설마 하는 심정으로 리오는 아르토의 주변을 살폈다.
곧 익숙한 차원의 틈이 나타는 걸 보고 비명처럼 외쳤다.
“나오지 마! 인간 말고 다른 주민들 앞에서 나오면 안 된다는 걸 잊었어?”
핑계다. 그저 아르토의 명령에 픽시가 나오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에서 하는 말이었다.
리오의 진심이 전해졌던 걸까, 아니면 픽시는 탑의 규칙을 고려한 것일까. 벌어졌던 차원의 틈은 다시 좁혀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