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툭!
고민에 빠져있는 리오의 앞에 안드레이는 책 한권을 던졌다.
“그 책에 네 지문이 가장 많이 묻어있더군. 잠깐 훑어보니 네가 말한 대로… 마치 주민목록 같더구나.”
책은 리오가 읽었던 것과 똑같았다.
두꺼운 커버, 케일에 대해 적힌 내용.
“어떻게 할 생각이더냐? 그걸 공개하고. 해당 주민이 오라클인지 아닌지 확인을 해볼 터냐?”
“못 해볼 것 없잖습니까. 아직 이 책이 오라클 명부인지 아닌지 확실치 않지만. 의심스러운 자들이 적혀있는 것 같습니다. 거기다… 금서보관소에는 금서로 지정된 도서들만 보관되어야 하는데, 이게 있던 것도 이상하고요. 단순히 사서들의 실수라기엔 의심스러운 부분들이 많습니다.”
사서들의 실수. 자신이 들고 있는 이 책이 우연히 금서보관소로 흘러갔을 가능성을 배재할 순 없었다.
리오가 오라클과 관련된 도서를 읽은 날.
마을에서는 잠잠하던 놈들이 날뛰고, 자신이 템플러가 되기를 기다리던 것을 그만둔 것.
이러한 연관성들을 보면 이 책은 반드시 검증이 필요했다.
‘빈씨를 포함한… 도서관, 이 책에 적힌 주민들을 조사해야겠지.’
하지만.
이 일은 이제 리오의 손을 떠났다.
리오가 할 수 있는 일은 여기가 끝이다.
도서관을 샅샅이 수색하고, 마을을 돌아다니며, 주민들을 조사하는 건 리오 혼자 해내서 할 수 없다.
그런 일은 따로 하는 주민이 있고, 리오가 할 수 있는 일은 지금까지 해온 일들과 같은 것들이다.
‘이 책이 정말 오라클의 명부라면….’
휘두른다면 사람 한 명은 잡을 법한 두께의 책.
수십, 수백 명의 인원들이 모두 오라클이라고 가정할 시, 오라클은 아예 없어진 것이나 다름없다.
‘오라클… 끝난 건가….’
리오는 마치 탑을 한층 오른 듯한 성취감을 느꼈다.
“이런 쪽은 잘 몰라서… 스승님께 부탁드려도 되겠습니까?”
책을 한차례 훑어보고 안드레이에게 건네었다.
“… 뭘 끝났다는 얼굴을 하고 있는 것이더냐? 오라클은 사라지지 않는다. 현실적으로 불가능하지. 잔당들이 남을 테야. 그리고 그들은 너를 여전히 노릴 테고.”
깜빡 잊고 있던 것을 깨닫자 리오는 신음을 흘렸다.
“아아… 그래도 전 보다는 낫지 않겠습니까?”
“그건 두고 봐야하고… 하여튼. 수고했다. 리오. 나와 다른 드라칸들 조차 할 수 없던 것을 해낸 네가 자랑스럽다.”
리오는 안드레이의 연이어지는 칭찬에 쑥스러워하다 밖으로 나왔다.
집에 도착하고, 평소와 달리 활짝 열려있는 문을 보고 그제야 잊고 있던 것을 떠올렸다.
‘…아직 끝나지 않았어.’
싸움은 이어지고 있다.
***
마을을 돌아다니며 후드를 눌러쓰게 된 것이 얼마만일까.
그런 생각을 하며 리오는 마을의 가장 큰 여관으로 이동했다.
이 마을의 가장 큰 여관이라고 하면, 리오와 인연을 맺은 적이 있는 나가족 이리나의 여관이었다.
그러한 여관을 운영하고 있는 만큼, 이리나의 나이는 추측할 수 없다.
리오는 아마 각 총판의 주인들과는 인연이 있을 정도로 그녀가 힘을 가졌고, 동등한 삶을 살아왔을 거라고 생각했다.
‘… 이것저것 생각해보면 평범한 여관 주인이라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지.’
오랜 기간 탑에서 생활 해온 점. 독특한 이 마을에서 가장 큰 여관을 운영한 점.
수많은 탑의 모험가들을 상대해온 점.
그것만으로도 리오가 궁금해 하는 것을 그녀는 알고 있을 지도 몰랐다.
“가볼까….“
탑의 모험가들은 대부분이 여관을 떠났을 시각. 아무리 장사가 잘 되는 여관이라도 한가할 때였다.
시끌벅적한 시장을 헤치며 수많은 이종족들이 밟고 지나간 거리를 밟았다.
여관의 정문에는 마당을 쓸고 있는 청소부들, 무거운 짐을 가지고 이리저리 움직이는 짐꾼들이 있었다.
그 중앙에는 목청을 드높이는 뱀눈의 여자가 파이프를 피며 성을 내고 있었다.
닦달하는 그 모습을 리오가 물끄러미 바라보자, 뱀눈의 여성은 시선을 느낀 듯 파이프를 내려놓았다.
“어머, 일하는 모습을 들켜 버려서 부끄럽네요. 반갑습니다. 리오님. 무슨 일로 저희 여관을 찾아오셨습니까?”
“부끄러울 것까지야….”
리오는 후드를 눌러 쓰고 있음에도 자신을 단 번에 알아채는 이리나를 보고 쓴웃음을 지었다.
그와 동시에 리오라는 말에 주변 주민들의 시선이 느껴졌다.
리오가 안드레이에게 건네었던 책.
책의 내용을 확인한 결과. 오라클에 가담한 주민목록이라는 것이 밝혀지고 나서 리오의 주가는 요 근래 더 올라갔다.
업적갱신이라는 자신을 위한 행위보다, 탑의 세계 전체를 위한 일을 리오가 해내었다.
그 때문에 자신은 어딜 가도 그 장소는 시끄러워지길 마련이라, 얼굴 가리고 이동하고 다녔다.
후드를 쓴 건 결국 그 이유였다.
“개인적인 용무로 왔는데… 시간 괜찮으십니까?”
“개인적인…? 잠깐이라면 괜찮습니다. 들어오세요.”
이리나를 따라 여관 안으로 들어섰다.
“로빌. 제 방으로 라프라스의 차랑 적당한 먹을거리를 가져오세요.”
“알겠습니다. 주인님.”
이리나는 자신의 방으로 리오를 들이던 중, 주변을 지나가던 부하직원에게 차와 먹을거리를 가져올 것을 지시했다.
자신의 방으로 남성을 들인다는 것도 놀랍지만, 리오는 그것보다 이리나가 라프라스의 차에 대해서 알고 있다는 것이 놀라웠다.
‘… 저 태도는 인간이 라프라스의 차를 좋아한다는 걸 알고 있는 거야.’
어떻게 알고 있는 것이냐고 묻고 싶었지만. 자신의 용무를 처리 후에 묻기로 했다.
“남자를 들이는 건 오랜만이네요. 대략 육십년 만인가?”
이리나의 방에 들어서자 코가 뚫리는 박하향이 났다. 기분이 나쁘진 않았다.
“최근 일에 대해서는 정말 축하를 드리고 싶었어요. 오라클을 무찌르시다니… 정말 인간답게 큰일을 해내시군요.”
“… 인간답게 큰일을 해낸 겁니까….”
이리나의 입장에서는 앞서 지나간 인간들처럼, 똑같이 길이 남을 대단한 일을 해낸 리오를 칭찬한 것이지만.
리오의 입장에서는 그들의 추악함을 알고 있기에 전혀 기분이 기쁘지 않았다.
마치, 어쩌다 보니 그들을 닮아가는 것 같았다.
“… 왜 그러시죠?”
“아, 아닙니다. 그냥. 아직 그분들을 쫓아가려면 멀구나 싶어서요. 그나저나. 선조분들의 일을 모르시는 분들이 많은데, 이리나님은 알고 계신 게 많으신가 봅니다.”
이리나는 입가를 가리며 호호 웃었다. 그러한 태도가 아무것도 알려주지 않겠다는 것처럼 보였다.
“저야 평범한 여관주인인데요 뭘…….”
‘평범한 여관주인이라… 과연.’
무슨 수를 써야 자신이 궁금한 것을 그녀를 통해 알 수 있을지 고민을 할 때, 이리나가 지시했던 차와 다과가 도착했다.
라프라스의 차라 불리는 것과 건포도가 박힌 쿠키.
리오는 차를 한 모금 마셔보고 입을 열었다.
“제가 오늘 알고 싶은 건… 한 인간에 대해서입니다.”
“인간이라… 이 세상에서 인간을 가장 잘 알고 계신 건 리오님이신데…. 저에게 무슨 볼일이신지 참… 곤란하네요.”
부채로 입가를 가리며 웃고 있지만 뱀눈은 차갑게 리오를 노려보기 시작했다. 리오는 갑작스러운 오한을 느꼈다.
‘이 마을에서 가장 큰 여관을 운영하고 있다면… 여관조합에서 꽤나 힘을 쓰고 있겠지. 그런 당신이라면 수십 년전에 아르토를 고용했던 여관주인이 누구인지 알 수 있을 거야.’
“정확히 몇 년 전인지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한 인간이 여관에서 일했던 것은 알고 있습니다. 그 인간의 이름은 아르토. 아르토가 어느 여관에서, 어느 여관주인의 밑에서 일했는지 알고 싶습니다. 만나서 대화를 하고 싶어요. 알고 싶은 게 있어요.”
탑의 세계에 인간은 둘 이상 존재 할 수 있다. 단지.
지구인은 단 한 명뿐이다.
둘은 없다.
그렇기 때문에 희귀한 인간에 대한 기억은 없어질지언정, 기록은 사라지지 않는다.
마지막까지 있던 인간이 어디에 있었는가, 언제 어디서 무엇을 했고, 어쩌다 탑을 들어가게 되었는가, 그런 성격이 되어버렸는가.
리오는 아르토에 대한 모든 것들이 알고 싶었다. 그리고 공감하고 싶었다. 동족에게까지 검을 겨누어야하는 이유.
그렇지 않으면 자신은 또 다시 ‘강탈’해야 한다.
지구에서 온 동족까지도,
아들에 이어, 아버지까지.
“아르토. 그 이름도 참 오랜만이네요.”
리오는 이리나의 말에 설마 하는 표정이 되었다.
나가족 여성. 여관주인 이리나는 아르토를 알고 있다.
‘… 설마 아르토의 일기장에 나온 여관주인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