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1 회: 3-25 -->
탑에서 나오는 온갖 재료들은 이곳 저곳에 쓰인다.
예를 들자면 지구의 전기 대신에 사용되는 것이 마나석이고, 그 마나석은 탑의 내부에서만 얻을 수 있다.
실제로 이 세상은 신이라 말할 수 있는 ‘탑’이 관리 하는 세상이기 때문에, 물가 혼란 같은 건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마을에 마나석이 부족하다면, 누군가 탑을 오르다 발에 채일 정도로 마나석을 얻게 될 뿐이다.
‘딱히 물가 때문에 문제시 여기는 건 아니야, 단지… 이대로는 내 계획에도 영향을 줄테니까.’
리오의 계획.
리오의 계획은 인간 혼자만 탑을 오른다는 것이 아니라, 이 마을에 사는 모든 주민들과 함께 탑을 오른다는 것이다.
주민 모두의 수준을 끌어올려, 탑을 무난히 올라갈 수 있게끔, 누구나가 100층을 올라 탑을 정복할 수 있게끔 하는 것이 목표다.
사실상 꿈같은 이야기, 불가능한 이야기이지만, 주민들이 인간을 기대는 태도만큼은 고치고 싶었다.
그 목표를 위해서 리오는 행동하는 것이다.
다른 인간들처럼 귀환한다면, 지구로 돌아가도 떳떳하게 살아갈 수 없으니까.
“사고가 났다고 들었는데…. 멀쩡하게 돌아다니군.”
탑을 향하는 리오에게 푸른 비늘의 리자드 맨이 말을 걸어왔다.
“숨는다고 어떻게 해결 될 문제가 아니거든. 끝장을 볼 생각이야.”
리자드 맨은 칼은 리오의 계획에 대해 미리 들었건만, 그 말에 깜짝 놀랐다.
“농담하지마라, 오라클 녀석들과 끝을 보겠다고? 무슨 수로? 소문으로 네가 무슨 짓을 저질렀다고는 나도 들었다만….”
“장난으로 하는 말이 아니야. 저번에 말했지? 나는 모든 주민들이랑 함께 위로 올라가고 싶다고. 모두가 나를 의지하는 이 상황이 부담스러워서… 해결하고 싶다고.”
푸른 리자드 맨은 고개를 숙이고 자신을 올려다보는 인간의 두 눈동자를 바라보았다.
“그래서?… 그 일의 첫 번째 일이 그놈들의 박멸이냐?”
고개를 끄덕인 리오는 칼을 뒤로 한 채 탑의 안으로 들어섰다.
수많은 문이 차례대로 나열된 탑의 대기실에 도착하자 픽시가 곧바로 모습을 드러내었다.
“한 동안은 탑에 오르지 않으신다고 하지 않으셨던가요? 무슨 일로 갑자기 탑을…….”
탑을 무슨 이유로 왔는지 설명을 하지 않았던 리오였다. 픽시에게 설명을 하기보다 리오는 몇가지 질문을 던졌다.
“픽시. 여기 대기실은 나만의 공간이 맞지?”
“무슨 의도로 하시는 질문이신지는 모르겠지만… 맞아요. 그 누구도 침범할 수도 없는 리오님 만의 공간이죠.”
“가령, 누군가에게 탑의 세계 어느 곳이든 훔쳐볼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하자. 그 축복 소지자는 대기실까지 볼 수 있을까?”
계획 했던 일의 최종확인이었다. 혹시 모만이 자신의 대기실을 볼 수 있을 지도 몰랐기 때문이었다.
“불가능해요. 그 어떤 축복이든 대기실에 있는 리오님을 훔쳐볼 수 없어요. 축복이 아니라 마법, 혹은 리오님이 계셨던 지구의 과학이라는 것을 이용해도…. 이곳에 들어온 리오님에 대한 정보는 일체 차단되어요.”
그 말에 리오는 즉시 축복을 사용했다.
예정대로, 축복을 통한 외형 변이, 탑의 세계에서 가장 흔히 보이는 이종족으로 변했다.
코는 돼지처럼, 어금니는 날카롭고 입술 밖으로 튀어나왔다.
어딜 보아도 인간이었던 모습은 온데 간데 없고, 흉측한 오크로 변했다.
‘어디서 본 것 같은데…….’
흔히 보이는 오크들이기 때문에 딱히 오크 개개인의 특징을 기억하진 않는 리오였다.
그러나 거울을 통해 본 자신의 오크 얼굴은 어디선가 익숙한 느낌이 들었다.
혹여나 이 모습을 하고 마을을 돌아다니다 본래의 얼굴 주인과 마주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곧 이 오크 얼굴의 주인이 누구인지 깨달았다.
‘… 2층에서 내가 가장 처음 죽였던 오크였나.’
테일러와 함께 힘내서 쓰러뜨렸던 오크. 설마 자신이 오크를 만날 줄이라고는 생각도 못했던 때.
너무나도 힘들고, 처음으로 오크를 죽였던 때라 그 얼굴이 뇌리에 박혀있었다.
‘재능을 빼앗을 뿐만이 아니라… 모습까지 빼앗았구나.’
자신의 빼앗는 축복에 대해 기구한 운명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감성에 젖을 시간은 없었다.
리오가 다시 탑의 출구로 몸을 돌리자 픽시는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
“어라? 탑에 오르는 게 아니었나요? 오크로 변하시고 마을로 돌아가시다니…….”
“오르기 전에 해야 할 일이 있거든.”
탑 밖으로 몸을 옮기자 오감을 뒤흔드는 감각이 다시 찾아왔다. 익숙한 찬바람이 온 몸을 휘감았다.
눈바람이 몸을 차갑게 만들었지만, 인간이었을 때와는 확연히 다른 이종족의 특징이 느껴졌다.
‘그렇게 춥지가 않아.’
간단한 로브를 두르고 리오는 도서관으로 향했다.
생각보다 많은 주민들이 도서관을 들락날락거리고 있었다. 그 곳에 오크 한 마리가 섞여 들어가는 것은 크게 문제없었다.
익숙한 걸음으로 도서관 부지로 들어가, 포장된 길이 아닌 숲속으로 리오는 이동했다. 사서장의 골렘이 알려주었던 건물을 향해서.
‘어떻게 안으로 들어갈 지가 문제인데….’
시간은 밤도 아니고 해가 떠있는 아침이었다. 볼일이 있는 건물의 앞은 수많은 마차와 호빗들, 그것을 지키는 경비원들이 예리한 눈으로 주위를 살피고 있었다.
‘저번처럼 입구에서 무슨 볼일이냐고 물어 볼 텐데….’
안으로 들어갈 다른 통로가 없을지 고심해보았지만 섣부르게 움직이다간 괜한 오해를 살 필요가 있었다.
그때였다. 풀숲에서 고민하고 있던 리오의 앞에 마차 한 대가 멈춰섰다.
‘운이 좋군.’
앞에 있던 마차에 문제가 생긴 듯. 쉽사리 인쇄소로 들어가지 못하고 있었다.
마부들이 마차에서 내려 다른 마차를 확인하러 가는 사이, 리오는 재빠르게 짐짝에 올라탔다.
들썩!
“응? 방금 누가 보였던 것 같은데…….”
“그러게? 무슨 소리 나지 않았어?”
‘이런……. 투명화라도 할 걸 그랬나.’
식은땀을 흘릴수록 경비병들의 발소리가 점차 가까워지는 것이 느껴졌다.
“이봐. 여기 좀 도와줘. 책이 쏟아졌다는 군.”
“흐음…. 멍청한 놈들. 고정 좀 제대로 하라 그래. 저번에도 그러더니…… 쳇.”
발소리가 멀어지는 것이 느껴졌다. 수분 뒤, 다시 말의 발굽소리가 들려오며 마차가 전진하기 시작했다.
등이 축축해진 리오는 한숨을 쉬며 밖을 살폈다.
‘… 다행히 그 건물로 들어간 모양인데…….’
임시창고인 듯, 주변이 온통 어두웠다. 곧 마부들로 추정되는 말소리가 들려왔다.
“으아! 새벽부터 끌고 오느라 힘들었다! 밥이나 먹으러 가지!”
“잠깐만. 건초 더미 좀 골라내고…….”
마부들이 대화소리가 멀어지자 리오는 마차에서 조심스럽게 나왔다.
주변을 둘러보자 온갖 수많은 마차들이 있었고, 말들이 갑작스럽게 나타난 침입자를 보고 비명을 질렀다.
히이이잉!
‘일단 이 건물에 대해서 모르니… 큰일인데. 그 금서보관소에 볼일이 있는데.’
창고는 어두웠으나, 인간과 달리 오크라는 몸은 밤눈에 밝았다.
고양이 발걸음으로 주변을 조심스럽게 살피자, 도움이 되는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위치 안내도인가. 금서보관소는 반대편……. 멀어. 곤란해.’
직원인척 지나갈 수도 있었지만, 누군가 신분을 묻는다면 곤란했다. 여기서 먼 금서보관소까지 갈 수 있는 방법을 고민 할 때.
벌컥!
창고의 문이 벌컥 열리며 누군가 안으로 들어왔다. 화들짝 놀란 리오가 후다닥 근처의 마차 뒤로 숨자 들어온 이는 마치 들으라는 투로 말했다.
“분명 오늘 아침에 들어온 다고 했는데… 어느 마차에 있으 려나…….”
‘빈?’
사서장 빈은 임시창고에 모인 마차들을 하나 둘 둘러보기 시작했다.
“어디보자… 분명 마차 번호가 47번이었는데…. 아 저기있군.”
운명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빈은 리오가 숨어있는 마차에 다가오고야 말았다.
‘이… 이런.’
덜컥!
당황한 리오가 다른 마차로 몸을 숨기려고 했으나, 실수로 소음을 내고 말았다. 귀가 예민하다고 알려진 엘프가 이 소리를 못 들었을 리가 없었다.
아니, 굳이 엘프가 아니더라도 못 들었을 리가 없다.
“… 거기 누구 계십니까?”
침을 꼴깍 삼키며 리오는 한숨을 내쉬었다. 이렇게 된 이상 아는 척을 할 수밖에 없었다.
‘축복을 풀어야 하나.’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폭력을 행사하는 건 원치 않았다. 하는 수 없이 축복을 해제하고 인간의 모습으로 돌아가려던 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