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의 탑-89화 (89/1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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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디선가 알싸한 냄새가 났다.

‘윽!’

정신을 잃기 전 상황을 떠올렸다. 사냥꾼처럼 자신을 몰아치던 템플러들, 무슨 수를 써도 도망 갈수 없던 자신.

모만에 대한 것을 떠올리고 방심했다. 그리고 정신을 잃었다.

‘… 여기는 어디지?‘

주변을 둘러보자 옹기종이 쌓여있는 나무통들이 눈에 들어왔다.

가까이 다가가자 나무통에서 술냄새가 났고, 곧 이곳이 저장고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동굴이라… 마을에 이런 장소가 있었나?’

자신이 누워있던 장소로 돌아가자 사용하던 검을 찾아낼 수 있었다.

‘무슨 자신감이지? 날 납치해놓고 무기를 그대로 두다니…….’

이곳에서 탈출하기 위해 주변을 수색하기 시작했다. 술이 가득한 저장소를 헤치며 출구를 찾으려 할 때,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일어났군. 애송이.”

건들거리며 술나발을 부는 펍의 주인. 베로드였다. 리오는 설마 그가 템플러일 줄은 상상도 못 했기 때문에 넋을 잃었다.

“뭐냐? 그 표정은? 설마 내가 오라클의 일원이라는 생각을 한 거냐? 은인에게 너무하는군.”

“으, 은인?”

“우연히 그 날은 일찍 장사를 접고 한잔 하고 있었단 말이지…. 기분 좋게 마시고 있었는데, 술잔이 계속해서 요동치더군. 무슨 일인가 하고 가보았더니만 글쎄 네가 자빠져 있더군.”

베로드의 말에 리오는 한숨을 내쉬었다. 정말 하늘이 자신을 도왔다고 할 수밖에 없었다.

‘베로드씨가 지나가지 않았더라면…….’

“감사하다는 말은 없는 거냐?”

술에 취한 기색은 없건만, 평소보다 큰소리로 베로드가 말했다.

리오는 동굴을 울리는 그의 말에 화들짝 놀라는 한편, 고개를 끄덕였다.

“… 감사합니다. 이 은혜는 다시는 잊지 않겠습니다. 언젠가 꼭 보답하겠습니다.”

정중한 리오의 말에 베로드는 웃음을 터트렸다.

“언젠가…? 기약 없는 그런 말은 하지 말고, 당장 나에게 보답을 하는 건 어떠냐?”

“베로드씨에게 지금 당장 제가 해드릴 수 있는 게 있을지 의문인데요…….”

“암. 있지. 알터의 사령술. 난 그게 보고 싶다.”

의외의 말에 리오는 당황했다.

베로드가 알터의 사령술에 관심이 있다는 건 눈치 채고 있었다.

전부터 마법을 시전 할 때 자신을 불러달라고 했었으니, 모를 리가 없었다.

“왜 그렇게 당황하지? 이미 그 사령술이라는 건 저번에 한 번 시도하지 않았던가? 또 다시 하는 건 어렵지 않을 터, 거기다 그때와 달리 지금은 기본이 되는 소환마법에 대한 지식도 갖췄다.”

“저 번에 보여드린다고…….”

“여전히 넌 내 말을 이해하지 못하는 군. 난 지금 당장보고 싶다는 거다.”

리오는 이를 질끈 깨물었다. 언젠가 해야만 하는 소환마법, 사령술이라면 베로드라는 강자가 앞에 있을 때 하는 것이 나았다.

자신이 실수 했을 때, 아르토를 사령하지 못할 때 베로드라면 어떻게든 도움을 줄 것이었다.

“… 알겠습니다. 지금 당장 보여드리도록 하죠. 마침 저도 아르토의 힘이 필요했었으니까요.”

오라클들에게 속수무책으로 당한 리오에게는 아르토의 힘, 혹은 자신의 성장이 필요했다.

앤서러를 자유롭게 다루는 아르토라면 성장의 밑거름이 되어줄 것이다. 케일에게 도움을 받지 않아도 앤서러를 완벽히 구사할 수 있게 될 것이었다.

“그럼…….”

마법사만이 사용할 수 있는 개인 아공간에서 아르토의 일기장을 소환해내었다.

마지막 페이지에 찍힌 붉은 글씨를 노려보며 리오는 입에 익숙하지 않은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베로드는 술 저장고를 메우는 검은 안개를 보며 생각했다.

‘상상하라. 그리하면 이루어질 것이다… 인가.’

오직 자신의 눈에만 보이고, 타인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자신만의 소환수.

리오의 눈에 아르토라는 소환수가 검을 들고 베는 행위를 한다.

현실에는 윈드커터가 나타나 적을 베고 지나갈 뿐, 실상은 상상 속에 자신을 가둔 마법.

베로드는 소환마법도 아니고, 원소마법도 아닌 알터의 흑마법에 대해 리오에게 어찌 설명해 줘야 할지 고민에 빠졌다.

***

“앞으로 어쩔 셈이냐?”

저장고에서 하루를 보낸 뒤, 베로드가 다음 날 식사를 가져오며 물었다.

“어찌고 자시고… 저도 할 일이 있습니다. 여기서 이렇게 묶여 있을 순 없습니다.”

아르토를 소환하고 진이 빠졌던 리오는 하루를 정신없이 잠에 들었다.

오늘도 하루를 그렇게 보낼 생각은 없었다.

베로드는 고심하는 표정으로 말했다.

“으음… 난 딱히 널 여기다 감금하려고 한 건 아니다. 단지 주민들의 눈을 피하기 위해서 여기다 널 넣어둔거지.”

“주민들의 눈…? 왜 시선을 피할 필요가 있죠?”

리오는 남들의 시선을 피하기 위해 자신을 이곳에 피신시킨 베로드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었다.

“사실 말이다… 네가 정신을 잃은 사이에 소동이 있었다. 내가 널 오라클들에게서 빼앗는 도중에 이런 저런 소란이 있었지.”

“예를 들면 어떤……?”

“여긴 탑이 아니고 주민들이 사는 마을이다. 나 말고 다른 주민들이 네가 잡혀가는 걸 보고 말았지.”

“이런….”

누군가가 리오를 습격한다.

그 장면을 보았다면 누구나가 쉽게 예상할 수 있다. 리오와 악연이 많은 오라클이 탑뿐만이 아니라, 마을에서 조차 괴롭히기 시작했다는 것을.

보통 템플러들, 그들의 조직이라 불리우는 오라클들은 신분의 노출을 염려하고 절대 마을에서는 누군가를 습격하지 않는다.

그러함에도 리오를 습격했다는 것은 한 가지 이야기를 의미했다.

오라클들이 신분의 노출을 각오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는 것.

그리고 그런 상황을 만든 것이 리오이기 때문에 그들은 리오를 공격했다.

“네가 그 날밤 어떤 꼴을 당했는지 이미 마을에 소문이 파다하다. 널 공격할 만한 놈은 오라클들 밖에 없고…. 그래서 현재 마을의 분위기가 좀 뒤숭숭한 편이다. 딱히 무슨 일이 일어날 것 같은 그런 건 아니지만…….”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알겠습니다. 가뜩이나 일반 주민들이나 저층구간 모험가들은 템플러들을 무서워하는데… 저에게 저번과 같은 일이 또 벌어지면 그런 주민들은 위축되겠지요.”

“뭐, 그것도 그렇고, 널 습격한 그 오라클이라는 놈들의 눈을 피하기 위해서 이기도 하지. 하여튼, 여기서 나갈 생각이라면 마음대로 해라. 딱히 널 가둬둘 생각은 아니다. 난 네 스승처럼 널 돌볼 생각도 아니고……. 단지 네 사령술이라는 것에 관심이 있었을 뿐이니까.”

베로드의 말에 리오는 문득 아르토가 있는 장소로 시선을 돌렸다.

그 시선을 따라 베로드도 얼굴을 돌렸지만, 그의 눈에 보이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보일 리가 없지.’

“한 가지 궁금한 것이 있다. 네가 오라클들에게 습격을 당한 것으로 보아, 아무래도 네가 그놈들의 약점을 쥔 모양인데? 그렇지 않고서야 그놈들은 마을에서 누군가를 습격하지는 않으니까. 아무리 인간에게 앙심을 품었다고는 해도, 여태 그런 일은 단 한 번도 없었거든.”

리오는 인상을 찡그렸다.

“약… 점이요? 글쎄요. 전 단지…. 그 날 템플러에 대해서 이것 저것 알아보고 있었달까요. 제가 자기들을 들춰낼까 싶어서 아무래도 수를 쓴 것 같습니다만…….”

거기까지 생각한 리오는 턱을 괴며 수초 생각에 잠겼다.

신분을 위장시켜주는 탑이 아닌 마을에서, 신분 노출의 위험을 각오하고 자신을 공격했다.

그 행동의 이유는… 자신이 그 날 하루 중. 템플러들의 조직. 오라클의 진실에 다가갔기 때문이 아닐까 싶었다.

‘그 날 내가 알아낸 건…. 템플러 케일에 관해서 또 무엇이 있었지?’

좀 더 그 날 하루를 객관적으로 생각해 보았다.

생활계획표를 늘여놓듯, 그 날 일었던 일을 회상하자 감이 왔다.

‘… 혹시 그건가?’

도서관.

사서장 빈의 도움으로 읽을 수 있었던 금서.

리오가 읽었던 부분은 케일에 관한 부분뿐이었지만, 그 외의 내용은 어떨지 몰랐다.

‘설마 그 책이 오라클들의 역린이라도 되는 건가?’

어디까지나 가정이었지만, 그렇게 생각하고 이야기를 진행하면 그 도서관 전체가 오라클의 둥지라고 여겨야 했다.

자신은 적의 소굴에 들어갔다 나왔다.

‘사서장 빈도… 오라클일 가능성이……?’

그가 왜 자신을 관심을 보였는가, 왜 자신에게 그 책을 보여주었는가, 왜 자신에게 골렘을 빌려주었는가.

하나 하나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그가 오라클이라 가정할 경우 앞뒤가 맞지 않았다.

‘아닐 거야. 단지… 그 금서 보관소에 오라클들의 역린과도 같은 게 보관되어 있던 것뿐이고, 내가 그걸 읽었을 거라고 그놈들은 착각했을 게 분명해.’

그 때문에 오라클들은 초조함을 가졌다. 자신들의 정체가 드러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서 자신을 습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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