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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의 탑-87화 (87/190)

<-- 87 회: 3-21 -->

키가 작은 호빗들 사이에 있다보니, 거인처럼 보이는 사서장 빈이었다.

“오셨군요. 제가 모셔야하는데… 골렘 따위로 안내를 해서 죄송합니다.”

“별로 신경쓰실 필요는 없습니다. 이 골렘한테는 도움을 받았으니까요…. 헌데 무슨 일이십니까? 이 건물은 별로 외부인에 대해 친절하지 않은 것 같은데, 저를 다 부르시고.”

리오의 말에 빈은 무턱대고 고개를 숙였다. 무턱대고 고개를 숙이는 게, 여자답지 않은 태도였다.

“무, 무슨…?”

“부탁드릴 것이 있습니다. 마법사라고 들었는데, 맞나요?”

“마법사가… 맞긴 하죠. 높은 성취도는 이루지 못했… 아니, 못하지만요.”

그것만으로도 대답이 충분했는지, 빈의 얼굴이 펴졌다. 동시에 주변에 있던 호빗들이 환호성을 질렀다.

“저희 도서관은 도서관을 운영하면서도 도서총판의 일을 하고 있습니다. 이 건물은 책을 직접 찍어내는 일을 주로 하고 있는데… 인쇄기가 고장이 났거든요. 당장 일이 급해서 고쳐야만 하는데, 담당 마법사가 휴가를 간 모양입니다.”

“그래서 제 도움이 필요하다. 이 말씀이시군요.”

“예. 단순히 마법도구를 고치는 건 마법사의 높은 수준이 필요한 게 아니잖습니까? 리오님이라면 충분히 고쳐주실 수 있으실 것 같아서… 물론 사례를 하겠습니다.”

급한 일이 없는 리오로써는 거부할 이유가 없었다. 마법도구를 고치는 일이라면 그녀의 말대로 마법실력이 필요한 것이 아니었다.

“하긴 하겠습니다만… 빈 사서장님도 마법사 아니십니까?”

리오의 물음에 살짝 놀란 투로 그녀는 답했다. 무언가 석연치 않은 대답이었다.

“아… 아니, 저는 그게 사실은… 골렘을 다룰 정도의 마법사이기는 하지만… 기본이 부족하거든요. 피가 섞였다보니… 엘프나 마족쪽에서 마법을 제대로 가르쳐 주지도 않았고요.”

그녀의 사정을 이해하고 수긍하기로 했다. 말없이 인쇄기로 눈을 돌린 리오는 회로판에 그려진 룬어를 점검했다.

별 집중할 만한 일도 아니다 보니, 리오는 오는 길에 궁금했던 것을 물어보기로 했다.

“이 건물에는 유독 호빗들이 많군요.”

“예. 다들 적성에 맞는 일자리가 없어서 말이죠.”

일자리가 없다는 말에 리오는 고개를 갸웃했다.

“예? 일자리가 없다니요? 호빗의 적성에 맞는 일자리라면… 농사 짓는 거 아닙니까?”

리오는 모만을 통해서 호빗의 종족특징이 땅을 일구는 것이라고 들었다.

이 탑의 세계는 항상 양질의 땅이 넘쳐난다.

땅으로 인해 싸울 일이 없다. 그런데 호빗이 일자리가 없다니, 말도 안 되는 이야기였다.

빈은 얼굴을 반쯤 가렸던 앞머리를 쓸어 넘기며 말했다.

“호빗에 대해서 잘 모르시는 모양이군요.”

“무슨 말이신지…?”

빈은 창가에 있던 분화에 다가갔다.

“리오님은 혹시 이 세상에 온 뒤로, 땅에 아무 식물이나 키워보신 적이 있습니까?”

“아니오.”

“그럼 모를 수도 있으시겠군요. 호빗이라는 종족의 장점은 땅을 일구는 것. 즉 농사를 짓는 것이 맞습니다. 하지만… 그 어느 종족이라든지, 농사를 잘 짓게 된다면요?”

깊이 생각할 것도 없이 리오의 머릿속에서 대답이 바로 나왔다.

“장점이 아니게 되네요.”

“예. 이 비옥한 토지를 제공한 탑의 세계 탓에, 호빗들은 일자리가 없습니다. 누구든지 땅에 씨앗을 심기만 해도 잘 자라거든요.”

먼저 말을 꺼내기는 했지만, 썩 좋은 이야기는 아니었기 때문에 리오의 입이 다물어졌다.

하지만 대화가 끝나지 않은 빈은 계속해서 말을 이어갔다.

“그래서 오갈 곳이 없던 호빗들은 우연히 어느 인간, 어느 호빗의 도움을 받아 새로운 적성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바로 이렇게 책과 관련 된 일을 하는 것이죠. 주로 직접 쓰는 걸 좋아하는 편입니다.”

‘인간과 호빗?’

인간과 마족이 연을 맺은 이야기를 안 것이 얼마 전이었다. 곧 바로 호빗과 인간의 이야기를 알게 되니 리오는 웃음이 흘러나왔다.

“자, 끝났습니다.”

마법 인쇄기의 수리를 끝낸 리오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럼 전 이만 가보겠습니다.”

“답례라도 하려고 하는데, 잠시 시간 괜찮으십니까?”

빈의 친절이 기쁘게 했으나, 리오가 굳이 인쇄기를 고친 이유는 골렘을 빌려준 것 때문이었다.

“답례라니, 괜찮습니다. 아까 골렘 때문에 한 일인 걸요. 저는 다시 책이나 읽으러 가겠습니다.”

“그 책을 읽는 수고로움을 제가 덜어드릴 수 있습니다. 템플러에 대해서 조사 중이시지요?”

“그렇긴 합니다만….”

골렘을 통해서 리오가 무엇을 조사하는지 알고 있는 빈이었다. 그녀는 리오에게 따라오라는 제스쳐를 취했다.

인쇄소를 빠져나오고, 관계자 외 출입금지라는 팻말이 붙여진 곳으로 빈은 리오를 이끌었다.

입구에는 ‘금서보관소’라고 쓰여 있었다.

“이런 곳으로 절 데려오시고… 괜찮은 겁니까?”

“괜찮습니다. 그보다… 템플러에 대해서 조사하는 걸 제가 도와드리겠습니다.”

빈은 어느 책장에 다가갔다. 책장 옆에 붙여진 팻말은 척 보기에도 함부로 읽으면 안 된다는 표식이 그려져 있었다.

‘금서인 것 같은데, 마음대로 읽어도 되는 건가……?’

리오의 걱정 어린 시선을 느낀 듯. 빈은 웃으면서 책 한권을 건네었다

“금서이긴 해도, 크게 문제가 되는 게 아니라면 괜찮습니다. 리오님이 이 일을 밖으로 발설하지만 않으신다면…….”

“… 적어도 그럴 일은 없을 겁니다.”

빈이 건넨 책을 펼쳤다. 템플러에 관하여 착실히 정리가 된 노트였다.

‘템플러 멤버들에 대해 적혀있어…? 케일과 같이, 이미 정체가 알려진 녀석들인가?’

각 인물에 대한 상세한 조사를 한 적이 있었던지, 어느 인물의 취향이나 취미까지 적혀있었다.

‘일단 케일에 대해서… 한 번 읽어볼까?’

케일이 정말 자신에게 도움이 되는 인물인지 알기 위해, 리오는 목차에서 케일을 찾아내었다.

‘있다!’

‘명장 케일.

오라클의 창립일원 중 한 명인 길리엇이 만들어낸 인공생명체.

기계장치와 마법으로 이루어진 몸을 가지고 있으며, 인간의 모습을 흉내낸 형상을 가지고 있다.

그 외모와 같이, 실제 본인이 하는 행동도 인간을 흉내내고는 한다. 그 때문인지 인간만의 전유물인 고유무술 ‘앤서러를’ 불완전하나, 따라할 수 있다.

그가 명장이라는 불리는 이유는 단 하나.

스스로 템플러임을 밝힐 때, 인간이라는 검을 스스로 단련시켰다고 주장했다.

과거의 기록을 보아, 그와 접점을 가졌던 인간들은 모두 앤서러를 완벽하게 사용 하던 것을 확인 알 수 있었다.‘

리오가 집중하고 금서를 읽던 도중, 사서장 빈은 갑작스럽게 책을 빼앗았다.

“밖에서 누가 오고 있어요.”

외부인인 리오가 이 곳에 있는 것을 들키면 꽤나 사단이 일어날 것이었다. 리오는 빈의 의도를 단 번에 파악했다.

“… 숨어야한다는 말이군요.”

“제가 시선을 끌고 있을 게요. 그 사이에 밖으로 나가주셨으면 해요.”

금서를 더 이상 읽지 못한다는 말이었다. 아쉽긴 하나 리오는 빈의 말에 따르기로 했다.

잠시 뒤, 그녀의 말대로 누군가 방에 들어왔다.

“말 소리가 들린 것 같은데…… 거기 누구 있나?”

“저에요. 여기 잠깐 와서 도와주실래요?”

“사서장님? 아! 예. 알겠습니다.”

순찰을 돌던 인물이 빈에게 다가갔다. 다른 책장 뒤에 숨어 있던 리오는 재빠르게 방을 빠져나갔다.

사서장 빈은 리오가 빠져나가는 것을 확인하고 한숨을 내뱉었다.

“이건 확실하게 보여주었다고. 남은 건 리오님이 어떤 행동을 보여주나 인데…….”

방금 전까지 순찰대원 행세를 하고 있던 인물은 넉살좋게 웃으며 물었다.

“크게 걱정하지는 말라고, 우리가 괜히 예언자라는 이름을 사용하고 있는 건 아니잖아? 모두 계산대로야.”

“… 그렇지.”

빈은 리오가 읽고 있던 책을 들었다.

맨 앞쪽에 있던 명장 케일에 관한 페이지를 덮고, 책의 뒷부분을 펼쳤다.

현 오라클의 일원. 골렘사 빈.

도서관 사서장.

그녀는 10층과 18층, 그리고 20층에서 리오를 막아섰던 템플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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