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템플러를 비롯한 오라클에 대한 정보를 알고 싶은 주민은 리오 말고도 수 없이 있었을 것이다.
케일에게 정보를 캐려 했다면, 누군가 진 작에 캐내어 외부에 알렸을 것이다.
“템플러에 대해 알고 싶으시다면 저에게 묻는 것보다 마을의 도서관으로 가보시는 게 좋을 겁니다.”
“도서관? 거기에 뭔가 있는 건가?”
“확정적인 정보가 아니라, 그곳이라면 템플러에 대해 정보를 얻을 수 있으리라 추측되어 추천해드리는 겁니다.”
탑의 세계의 도서관은 단순히 책들이 모인 곳이 아니라고 리오는 들었다.
이 세계 역사가 기록되어 있으며, 이미 통과한 층에 대한 정보 등, 이종족 도감, 정보들을 열람할 수 있었다.
물론 평범한 책을 읽는 것도 가능했다. 하지만 대체로 도서관이 이용되는 건 탑에 대한 정보를 얻기 위해서였다.
‘도서관이라… 자주 가본 적은 없지만. 그래. 확실히 그곳이라면 템플러에 대해서, 특히 오라클에 대해서 알아 볼 수 있을지도 몰라.’
“그럼. 질문은 끝 입니까? 구해주셨으면 하는 다른 재료들이 있습니다.”
8층을 다녀온 것도 모자라, 다른 층을 다녀오게 하려는 케일을 리오는 만류했다.
“도서관에 대해서 알려준 건 고맙지만 바로 당장은 곤란한데.”
“안 됩니다. 제 검이 되어주신다는 약조를 잊으셨습니까?”
“단순히 재료가 필요한 거라면 나 말고도 다른 녀석들을 쓰면 될 텐데?”
리오가 보기에 케일은 무언가 다른 의도가 있어 보였다.
자신을 이용해서 무언가를 하려고 한다. 그것만은 틀림없다. 탑을 들락날락 거리게 해서 템플러들의 이목을 끄는 것이 목적일지, 아니면 자신의 한계를 파악하려 하는 걸지도 몰랐다.
‘이 녀석의 부탁을 다른 인간들 모두 이뤄주었다고? 왜? 어째서? 뻔히 이용하려는 것이 보이는데?’
8층에 앤서러로 상대하기 힘든 가고일이 있다는 걸 분명 케일은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곳에 일부러 리오를 보내었다는 건 무언가 의도가 있어보였다.
‘날 죽이려고 했던 걸까?’
이유를 알 수 없지만 케일도 앤서러를 사용 할 수 있는 것을 보아, 앤서러에 의존하는 리오의 약점을 확실하게 알고 있다.
이대로 케일의 부탁을 계속 들어주다간 또 가고일 같은 적을 만날 가능성이 높았다.
지금은 8층이라서 다행이었지, 마냥 좀 더 윗 층이었다면 어떻게 되었을지 몰랐다.
‘위험은 피해가는 게 좋아.’
케일은 리오를 마주 보며 숨길 것 없다는 듯 말했다. 이전과 다르게 그 답지 않은 절박함이 묻어났다.
“저는 인간이 아니면 안 됩니다. 당신은 좀 더 두드려야 하기 때문에……!”
‘인간이 아니면 안 돼? 날 두드려?’
무슨 말인지 이해가 가질 않았다. 대장장이가 두드린다면 철을 두드려야지, 왜 인간을 두드린단 말인가.
‘철?’
리오는 케일이 자신에게 부탁할 때 내뱉은 말을 떠올렸다.
‘검’이 되어달라. 그리고 지금 방금 전 말.
그 두 가지로 하나의 이야기가 도출되었다. 리오는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인간을 제련하는 대장장이라… 취미 참 고상하시군. 명장이라 불리면서 왜 아무도 아는 주민이 없나 했는데…… 단순히 네가 템플러이기 때문이 아니었어. 그렇지?”
케일이 어째서 조렌에게 명장으로 불리는 가. 그리고 마을 주민들에게 명장으로 기억되지 않는가.
방금 전 내뱉은 말로 리오는 확인할 수 없는 추측을 할 수 있었다.
“네가 만든 명검이라는 것들은 모두 인간인 거야. 그렇지?”
인간을 닮은 기계인간은 고개를 끄덕였다.
리오는 불쾌감을 숨기지 않고 자리를 박차며 일어섰다.
케일은 자신의 저택에서 나가는 리오를 바라보았다.
“리오. 당신을 저에게 맡겨보실 생각은 없으십니까?”
“… 누구한테 날 맡기라고?”
케일이 앤서러를 사용하는 것을 보면 한 가지 추측이 가능했다.
‘아마도 저 자식은 내 문제점을 해결할 방법을 가지고 있겠지.’
리오의 문제란 앤서러의 숙련을 말한다. 병장기의 내구도를 소모하고 있고, 본래 앤서러를 이용해서 할 수 있는 것들을 리오는 해내지 못하고 있다.
그러한 문제들을 케일은 해결할 수 있게 도와준다.
‘무슨 방법으로 인간이 아니면서 앤서러를 사용하는지, 이것 저것 물어보고 싶은 게 많지만…….’
템플러인 케일의 말을 모두 믿을 수는 없었다.
‘믿을 만한 녀석인지 좀 더 알아봐야겠어.’
리오는 케일의 저택에서 빠져나왔다.
***
케일과 헤어진 이후, 리오는 곧 바로 마을의 도서관으로 향했다.
탑을 오르기 전. 총판생활을 할 때는 이따끔씩 왔던 장소였다.
‘오랜 만이군. 탑을 오른 이후로는 책을 읽을 만한 여유가 없었으니…….’
익숙한 걸음으로 도서관의 안으로 들어갔다. 워낙 오가는 주민이 없다보니 예전과 달라진 것이 없었다.
케일과 같은 알려진 템플러가 또 없는지, 알아보고 있는 도중이었다.
“오랜만이십니다?”
정리된 탑의 역사서를 정독하고 있을 때, 피부색이 회색에 가까운 인물이 다가왔다.
‘누구지?’
상대방은 자신을 알고 있는 모양이었다. 리오는 얼굴을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얼굴을 반쯤 가릴 정도로 앞머리를 길게 늘어뜨린 사내는 리오의 기억 속에 없었다.
길게 드러난 귀, 머리에 솟은 뿔을 보아 엘프와 마족의 피가 반반 섞인 듯 보였다.
‘반은 엘프에 반은 마족이라… 하프 블러드랑은 내가 알고 지낸 적이 없는데?’
곤란한 듯한 리오의 얼굴을 보고, 상대방은 실수 했다는 듯 당황한 웃음을 지었다.
“아아. 그렇죠. 리오님과 저는 모르는 사이였죠. 저만 당신을 알고 있는…….”
입가에 묘한 웃음을 머금으며 그는 악수를 원하는 듯 회색 손바닥을 내밀었다.
“반갑습니다. 이곳 도서관의 사서장인 빈입니다. 예전, 리오님이 탑을 자주 오르시기 전에. 이 도서관을 자주 오시지 않으셨습니까? 사실 그때부터 리오님을 줄곧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지켜보시다니, 여성분이었다면 가슴이 뛸 뻔했습니다.”
단지 안면을 트고 싶어서 다가온 모양이었다. 가벼운 농을 섞은 말을 내뱉자, 빈은 웃음으로 화답했다.
“가슴이 뛰어야 하는 거 아닙니까? 전 여성입니다만.”
“… 예?”
남자인 줄로만 알았는데, 상대를 좀 더 자세히 보니 여자다운 구석이 보였다. 리오는 당황했다.
“… 하하, 이런 죄, 죄송합니다.”
“괜찮습니다. 남자 같다는 이야기는 전부터 자주 들었거든요.”
맘이 상 할만 했지만, 빈은 종족이 다르기 때문인지 아니면 정말 자주 듣던 말인 듯 아무렇지 않아보였다.
“분명 저번에 오실 때… 그러니까 벌써 일 년은 넘은 이야기군요. 그때 도서관에서 항상 소설을 읽고는 하셨는데…. 오늘은 역사서라니.”
“저 같은 남자한테는 안 어울립니까?”
“아뇨. 그냥 확실히 탑을 오르시면서 변하셨다 싶어서요….”
탑을 오르기 전과, 오르기 시작한 이후로 리오는 변했다는 말을 들었다.
전쟁터를 다녀온 사람은 변해버리는 것처럼, 리오 또한 어쩔 수 없었다.
“… 뭐, 역사서를 읽고 있기는 해도 별로 취미상 읽는 게 아닙니다. 그냥 이 세계에 대해 알고 싶은 게 있어서요.”
“알고 싶은 게 있다라…. 어떤 것을 알고 싶으신 겁니까? 제가 가능하다면 도와드리겠습니다."
빈의 친절을 거부하려고 했지만, 이내 누군가 빈을 찾으러 책장 속으로 들어왔다.
“빈. 잠깐 도와주었으면 하는 일이 있는데…….”
같은 도서관의 동료인 듯 싶었다.
“전 신경 쓰지 마시고, 동료분을 도우러 가셔도 됩니다. 빈씨”
“아…….”
자신이 먼저 말을 건 리오를 도울지, 아니면 같은 직장의 동료를 도울지 갈팡질팡하는 빈이었다.
그녀는 잠시 고민을 한 뒤, 주머니에 무언가를 꺼내었다.
‘인형?’
하얀 점토로 만들어진 곰 인형. 빈은 작은 목소리로 룬어를 읆더니 인형을 땅에 내려놓았다.
‘골렘…? 대단한 재주를 가지고 있군. 역시 마족과 엘프를 부모로 둔 하프 블러드 답다.’
수초 만에 리오의 허리 밑까지 커진 인형을 보고 빈은 말했다.
“제 조수… 는 아니고. 그냥 골렘이긴 한데 어느 정도 자아를 가지고 있어요. 찾고 있는 책의 내용에 대해서 말씀 하시면 찾는데 도움을 줄 거 에요.”
“이러지 않으셔도 되는데…….”
“책에 대해서 사서장에게 도움을 받는 걸 거부하시면 저는 무슨 일을 하나요?”
그 말에 리오의 입이 다물어졌다. 무언가 항변할 거리를 찾는 사이, 빈은 이미 모습을 감춘 뒤였다.
남아있는 골렘을 보고 리오는 머리를 긁적거렸다. 이렇게 된 이상 결국 도움을 받는 수밖에 없다.
“그럼…. 혹시 템플러에 대한 걸 찾아 줄래? 과거에 템플러와 연관 되어서 무슨 사건이 있었는지……. 아니다. 그냥 템플러와 관련된 걸 모두 찾아줘.”
골렘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고 책장 이곳 저곳을 돌아다니며 책을 가져오기 시작했다.
햇볕이 들어오는 자리에 앉아서 기다리니, 잠시 뒤 리오의 앞에 꽤 많은 책들이 쌓였다.
‘이걸 다 읽으려면 꽤나 시간이 걸리겠어.’
가장 맨 위에 있던 책을 향해 리오는 손을 뻗었다.
제목은 ‘죽음의 예언자.’ 소설 같은 제목을 가진 책이었다.
호기심을 가지고 책을 둘러보자, 누군가 이미 읽고 간 흔적을 발견했다.
‘책갈피?’
티가 나지 않게 책갈피가 책에 깊게 꽂혀있었다.
책갈피가 꽂힌 곳을 펼치자 리오의 흥미를 끄는 문장을 발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