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의 탑-84화 (84/1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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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6장 도서관.

다음 날 아침.

리오는 이른 시간에 케일의 집을 방문했다.

부탁한 광석들을 건네주기 위함은 아니었다. 템플러인 자가 어째서 자신에게 재료공수를 시킨 것인지 궁금했던 것이다.

‘어쩌면… 나 말고 다른 인간들이 모두 템플러가 되었던 건, 케일 때문일지도 몰라.’

단도직입적으로 물을 생각을 하며 그를 마주했다.

기계장치로 이루어진 케일을 보며 리오는 광석들이 담긴 주머니를 내던졌다.

광석 주머니가 탁자를 내려치며 큰 소리를 내었다. 화들짝 놀라지도 않고 케일은 기계음을 내며 리오를 바라보았다.

“수고하셨습니다. 리오.”

“덕분에 8층에서 꽤나 고생했습니다. 인간들에 대해 자세히 알고 있다더니 그것만큼은 사실인 모양입니다?”

어제 일을 떠올리자 괜히 화가 났다. 템플러 케일은 설마 자신을 죽이려고 일부러 그곳에 향하게끔 한 것일까.

앤서러로 상대하기 곤란한 적. 언더랜드 가고일은 확실히 인간의 천적이었다.

‘의도적으로 날 그곳으로 보낸 것이라면…….’

케일은 저번과 다르게 공격적인 말투의 리오에게 이상함을 느낀 듯. 말없이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 얼굴이 뻔뻔하다고 생각하며 리오는 물었다.

“한 가지 대답해주지않겠습니까? 당신이 템플러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게 사실입니까?”

이미 픽시에게 확인된 사항이었기 때문에 굳이 물어볼 필요는 없었다. 그저 본인의 입으로 직접 듣고 싶었을 뿐이다. 템플러인지 아닌지.

감정의 기복이 없는 인공생명체답게, 기계와 마법으로 이루어진 케일은 당황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저 어디서 그런 정보를 얻었는지 그것만이 궁금한 모양이었다.

“이 개자식!”

검을 뽑아들며 리오는 케일에게 달려들었다. 벽으로 밀치고 목에 검의 코를 들이대자 케일은 눈을 빙그르르 돌리며 말했다.

“그 검으로 저를 찌르셔도 이곳의 규칙상 저는 망가지지 않습니다. 리오.”

“알아. 하지만 정신을 잃고 있는 너를 광장으로 데리고 갈 순 있지.”

“광장…? 거기서 무엇을 하실 생각이신 겁니까?”

리오는 어느 주민이 템플러라는 것을 알아내었을 때, 어떻게 해야 처벌이 가능할지 미리 생각 해두었다.

“광장에서 네가 템플러라는 걸 밝힐 거다. 직접적인 처벌은 주민들이 알아서 해주겠지.”

누군가가 템플러라는 사실이 일상생활에 알려진다면 어떤 피해를 받을까.

가장 쉽게 생각할 수 있는 건 ‘배척’이다. 탑의 세계의 규칙상 탑 내부가 아니면 죽일 수 없으니 마을 주민들은 배척할 것이다.

아무것도 거래 하지 않고, 아무도 눈길을 주지 않는다. 템플러에게 악감정이 있는 자는 케일을 통해 기분을 풀 것이다.

케일은 리오의 검을 맨 손으로 잡으며 말했다. 강철로 이루어진 몸이니 당연히 손에 상처하나 나질 않았다.

“죗값은 이미 수백 년전에 치뤘습니다. 리오. 그래서 그 사실을 아는 주민은 이제 손에 꼽힐 정도고, 아무도 저에게 손가락질을 하지 않습니다.”

“죗값을…? 그런 걸 누가 정하지? 네가 템플러로 살았던 이상, 죗값은 사라지지 않아.”

끼기기긱!

케일 손과 리오의 검이 듣기 싫은 소리를 내었다. 서로를 밀어내는 싸움을 하던 중. 케일은 보기 드물게도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그의 몸속에서 들리던 구동음이 커졌다.

“으윽!”

압도적인 힘으로 리오를 밀어낸 케일은 손가락을 확인하며 물었다.

“힘으로는 저를 이길 수 없습니다. 리오.”

“그럼 기술로 이겨야지!”

폴의 재능으로 인한 영향. 앤서러의 묘리가 담긴 검을 리오는 케일을 향해 휘둘렀다.

다시 한 번 구동음이 커진 케일은 리오의 검을 잡아챘다.

“뭐…?”

앤서러의 묘리가 담긴 검은 방어 할 수가 없다. 방어무시의 공격이다.

그러나 케일은 리오의 공격을 받고도 아무렇지 않은 모양이었다. 연이어진 모든 공격을 막아내었다.

‘이, 이럴 리가?’

어제의 가고일은 이종족의 우월한 신체능력으로 리오의 검을 피해낸 것이다. 케일처럼 공격을 받고도 아무런 피해가 없던 것이 아니었다.

혹시 자신이 검을 잘못 휘둘렀나 싶었지만… 어제와 오늘의 차이를 인식하는 순간 리오의 검이 산산 조각났다.

“큭!”

손 가죽이 찢어지며 붉은 선혈을 내었다. 걸레처럼 변한 손바닥을 내려다보고 리오는 소리를 질렀다.

자신의 공격을 받고도 아무렇지 않다. 그것은 자신과 똑같은 기술을 사용하고 있음을 말하고 있었다.

“설마… 앤서러를 사용하는 거냐!”

인간을 흉내낸 모습으로 인간의 기술을 사용하다니, 믿을 수 없었지만 그것 말고는 생각 할 수 없었다.

“그 질문에는 부정을 표하도록 하겠습니다. 그야 당신도 그렇지만… 저도 앤서러를 흉내 내고 있을 뿐입니다.”

“흉…내?”

“예. 흉내입니다. 저와 리오는 앤서러를 제대로 사용하고 있지 않습니다.”

자신보다 잘 알고 있다는 투로 말을 하자, 리오는 넋두리처럼 말했다.

“인간만 쓸 수 있는 게 아니었나…….”

“인간만 쓸 수 있는 건 맞습니다. 보다시피 전… 인간을 본 따 만든 인형이니까요. 흉내정도는 할 수 있습니다.”

리오는 케일의 말에 들끓는 가슴을 진정시켰다.

상대는 앤서러 구사자고, 아무래도 자신보다 우위에 서 있다.

템플러고, 선조들에 대한 정보를 쥐고 있다.

거기다 자신과 거래를 하고 싶어 한다.

‘… 무슨 목적인지 몰라도 일단은 관계를 유지해볼까. 템플러랑 엮이는 건 썩 기분이 좋진 않지만.’

검을 거두고 옷매무새를 가다듬었다. 그제야 케일의 몸에서 들리던 작은 소음도 멎었다.

“템플러 라는 말에 실수를 저질렀군. 사죄하지.”

이미 한 번 엎질러진 물을 다시 완벽히 담을 수 없듯, 리오의 말투는 원래대로 돌아 올 수 없었다. 그것을 내심 불편해하며 케일을 살폈다.

“괜찮습니다.”

“흠. 그럼 다시 저번에 했던 거래 이야기로 돌아가서…. 당신과의 거래조건이 이런 거였지. 나는 당신을 돕고, 당신은 나에게 선조들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고.”

“그렇습니다. 마음이 변하셨다면 조건을 얼마든지 바꾸셔도 좋습니다. 단지 저의 검이 되어주신다는 약속만 지켜주시면 됩니다.”

“좋아. 그럼 조건을 바꾸도록 하지. 인간에 대해서, 그리고 템플러에 대해서도 알려주었으면 좋겠어.”

“승낙하겠습니다.”

변화 없는 표정을 보여주며 케일은 리오의 정면에 섰다. 인간이라면 방금 전에 싸운 일로 무언가 불쾌감을 표현하련만, 인공생명체답게 아무런 불만을 표하지 않았다.

“나는 일단 당신이 부탁한 저 광석들을 가져왔다. 그럼 질문을 하는데 큰 불만은 없지?”

톱니바퀴가 돌아가는 소리가 났다. 고개를 끄덕이는 걸 확인하고 리오는 질문을 시작했다.

“템플러들의 조직인 오라클에 대한 정보가 필요해. 아는 것이 있으면 싹 다 말해줬으면 좋겠어.”

케일은 보기 드물게도 말을 골랐다.

“오라클…. 그 조직에 대해서 저는 아는 것이 많지만, 리오에게 도움이 되는 정보는 없습니다.”

“도움이 될지 말고는 내가 정해.”

“설명을 드리겠습니다. 저는 분명 오라클의 창단멤버이긴 합니다. 하지만 오라클에서 나오고, 템플러로써 활동하지 않은지 이미 수백 년이 넘었습니다. 알고 있는 건 역사나 다름없는 것뿐이고, 지금 현재 누가 가입되어 있는지, 어디서 모임이 벌어지는지 알 수 없습니다.”

이어진 설명이 리오는 입을 다물었다.

케일이 템플러라는 사실이 과거에 이미 알려졌으면서, 아무도 손을 대지 않고, 이제는 그 사실을 알고 있는 주민조차 없다는 이유가 방금 전 이해가 되었다.

‘템플러이면서 템플러가 아닌 건가…. 빌어먹을. 도움이 안 되는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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