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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의 탑-81화 (81/1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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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술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리오가 이 검으로 몬스터를 베어내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하지만 직접 두 눈으로 자이언트 웜을 베어내는 것을 보았으니, 아마 앤서러라는 무술과 연관이 있는 모양이었다.

하드람이 놀란 부분은 둔기와도 같은 무기를 검처럼 구사한다는 점이 아니었다.

내구성을 위하여 검날을 포기하고, 이렇다 할 멋도 없는 밋밋한 검.

그런 검에 작은 균열들이 곳곳에 나있었다.

탑의 세계의 규칙상, 특정 층을 공략하다 탑 밖으로 나가면 모험가는 완치되고 장비들은 파괴되지 않는 한 새것처럼 변한다.

즉, 이 튼튼한 검에 생긴 작은 균열들은 이번 8층을 오르면서 생긴 것들이라고 봐야했다.

‘… 무슨 수를 썼길 래 이런 상태로 만든 거지?’

하드람의 얼굴이 썩 좋은 표정이 아니자 리오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왜 그러십니까?”

검을 되돌려주며 하드람은 말했다.

“몇 마디만 하겠네. 내 말에 상처를 받지는 않았으면 좋겠군…. 인간들이 늘 익힌다는 앤서러 라는 무술이 얼마나 대단한 건지 모르겠지만. 그 무술에는 문제가 있는 것 같군. 아니면 자네에게 문제가 있다거나…….”

리오의 과거라도 보고 온 투로 말을 이었다.

“그 검을 보아하니, 자네가 망가뜨린 방패들이 어떤 꼴로 망가졌을지 훤히 보이네. 단순히 적의 공격을 막아내다 없어진 것이라면 역할을 다했으니 충분한데…. 주인에게 혹사당하다 갔겠군.”

한 순간, 심장에 바늘을 찌른 듯한 고통이 느껴졌다. 앤서러가 숙련되지 못했다는 점을 이 드워프는 검을 보고서 단 번에 알아차린 것이다.

“말을 조금 돌려 말했군… 쉽게 말하자면 이런 소리네. 방패란 적의 공격을 막는 도구지, 자네가 공격하기 위한 도구가 아닐 세. 자네는 무기와 방패를 공격하고 있어… 무슨 수를 쓴 건지는 나는 모르겠지만 말이네.”

하드람은 다시 곡괭이를 잡았다. 한참동안 광석을 캐다 생각에 빠져있는 리오에게 말했다.

“여기서는 더 이상 캘 것이 없군. 다음 위치로 이동하지.”

정신을 차린 리오는 하드람의 지적을 잊지 않고 하고 앞장섰다.

“예. 제 뒤에 계십시오.”

광산의 통로를 지나가며 하드람은 곳곳에 있는 광맥을 한 번씩 둘러보았다. 화약을 설치할 적당한 위치를 물색하는 듯 했다.

케일이 부탁한 광맥들은 꽤나 희귀한 것으로, 이 무너지기 쉬운 광산에다 많은 량의 화약을 터트려야 한다고 했다.

“여기가 좋겠군.”

화약을 터트려도 괜찮을 장소를 찾아낸 하드람은 곧 설치작업을 시작했다.

그의 가방에서 익숙한 물건이 나오는 걸 본 리오는 설마하는 심정으로 물었다.

“설마… 다이너마이트?”

실제로 본적은 없지만, 영화나 대중매체를 통해 이미지 정도는 알고 있었다.

원기둥 형태의 붉은 막대.

이 세계의 주민들이 독자적으로 만들었다고 생각하기에는 모양이 너무나도 친숙했다.

리오가 폭약에 대해 알고 있는 듯 하자 하드람을 고개를 끄덕였다.

“맞네. 다이너마이트. 자네와 같은 어느 인간이 만들었다고 하더군.”

‘다이너마이트 따위를 이 세상에 남기다니…….’

으드득. 이를 갈며 리오는 하드람의 설치를 도왔다

“이 정도면 충분하겠군. 미리 말하는 걸 깜빡했네만……. 내 미스로 인해서 광산이 무너질지도 모르네.”

다이너마이트의 위력과, 애초에 이 8층의 무서움을 알고 있는 리오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드람씨를 믿습니다. 적당량 사용하셨겠지요. 그러나 무너진다면…… 뭐, 그땐 유능한 채굴꾼이 아닌 하드람씨를 파티원으로 받아들인 제 불찰이 아니겠습니까? 원망 따윈 하지 않도록 하죠.”

“허허, 응근히 내 자존심을 건드리는구만. 자. 터트리도록 하지. 귀와 입을 막게. 다칠 수도 있어.”

둘은 안전한 위치로 이동하고, 폭발의 충격에 충분히 대비했다.

콰아아앙!

그 어디에서도 들어본 적이 없던 폭발음이 리오의 귀를 강타했다.

마법으로 인한 폭발음과는 비교도 안되는 물리적인 파괴력은 온 몸에 전율을 일으키게했다.

“후우…….”

리오는 폭발의 중심에서 흘러나오는 가스와 먼지들을 겉어내었다.

미약한 바람을 일으키는 마법을 이용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검은 연기는 순식간에 광산 밖으로 빠져나갔다.

“어디보자…. 여진 같은 건 없으니 무너질 기색은 없는 모양이고……. 자네가 원하는 그 광석은 이 아래에 있는 모양인데 어디 한 번 광맥이 드러났을지 확인 해볼까?”

싱글벙글 웃으며 드러난 광맥으로 다가가는 하드람을 리오는 만류했다.

“아직…입니다. 천천히 작업하도록 하죠.”

“응? 왜 그런가? 나는 가능한 일찍 돌아가고 싶네만….”

그때서야 이변을 깨달은 듯. 하드람은 표정이 변해갔다.

그 둘이 밟고 있는 땅바닥에 무언가 지나가고 있다.

여진이라고 하기에는 애매한 지진. 땅에 귀를 대고 있는 것처럼, 땅속에 무언가 지나가고 있다는 것을 둘은 깨달을 수 있었다.

굳어 있는 하드람에게 리오는 갑작스럽게 입을 열었다.

“하드람씨. 저는 분명 이 8층을 지나가긴 했습니다만. 그 당시에는 재빠르게 위로 올라가는 것만이 목표라서… 이곳의 희귀한 광석들 같은 건 눈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이곳에 무슨 몬스터들이 서식하는지 자세히 모릅니다.”

하드람은 리오가 말한 ‘재빠르게 위로 올라간다.’ 라는 목표가 무엇을 말하는지 금방 깨달았다.

그는 리오의 업적을 모두 알고 있었다. 그야 당연히도, 오크보다 못났다고 알려진 인간 따위가 ‘최단시간 내 돌파‘ 라는 타이틀을 거머쥐었으니, 잊을 리가 없다.

‘응?’

그 ‘최단시간 내 돌파’ 라는 업적에 대해서 떠올린 순간. 하드람은 식은땀을 흘렸다.

“자네는 이 층에서 누가 가장 강한 놈인지 모르겠군. 이곳을 최단시간 내 돌파했다면… 그놈을 볼 틈이 없었을 테니까.”

“그놈이 어떤 놈을 말하는 지 모르겠습니다만. 솔직히 말해서… 전 오늘 하드람씨와 함께하기 전까지 자이언트 웜이라는 몬스터가 있는지, 8층에 나타나는지 조차 몰랐습니다.”

자랑스러워해도 될 만한 이야기를 리오는 고개를 숙이고 말했다.

“제가 8층을 공략하는데 걸린 시간은 고작 세 시간 남짓……. 그 세 시간동안 8층에서 몬스터 같은 건 일절 만나지 못했으니까요.”

대단하긴 했지만 지금 상황에서 도움이 되는 정보는 아니었다. 하드람은 이 이야기를 꺼낸 리오의 의도가 궁금했다.

“갑작스럽게 무슨 말을 하나 했네만, 그런 고백을 하고 싶었던 건가?”

“예. 전 이곳 몬스터들에 대해서 모르니까요. 발밑에 있는 놈은 뭡니까? 아까 말씀하신 그놈…….”

리오의 입을 막듯, 둘의 앞에 자이언트 웜이 나타났다.

그동안 만나온 자이언트 웜과는 비교가 불가능할 정도로, 거대한 덩치를 드러내며 비명을 질러댔다.

“큭….”

새롭게 나타난 자이언트 웜의 덩치는 무척이나 거대했다. 백년 고목 같았고, 그 앞에 선 리오의 검은 이쑤시개에 가까웠다. 찌른다고 피해를 입을까 싶을 정도였다.

“그 광석을 캐려면 이놈을 쓰러트려야 하는 겁니까? 왜 미리 말씀해주지 않으셨죠?”

“아니… 굳이 말할 필요가 없었을 뿐이네. 이놈이 등장하는 건 드워프가 망치질 하다 자기 손가락을 내려치는 것보다 희귀한 확률이라서……. 우리 둘은 희귀한 광석보다 값진 녀석을 만난 거라고. 하하.”

리오는 혹시 모를 일을 대비해 만전을 다하기로 했다. 자신에게 신체능력을 상승시켜주는 온갖 마법을 시전했다.

자이언트 웜과 싸울 태세를 갖추는 리오를 보고 하드람은 잠시 멈출 것을 권했다.

“광석을 캐려면 이놈을 쓰러트려야 하는 건 맞네. 하지만 내가 말한 ‘그놈’은 이놈이 아니야. 기다리게. 조금 있으면 나타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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