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의 탑-80화 (80/190)

<-- 80 회: 3-14 -->

‘하기 사, 채굴을 방해하는 놈들도 있을 테니… 혼자는 힘들겠어.’

내키지는 않지만 결국 누군가와 함께 해야 한다는 말이었다.

할 수 없이 리오는 남의 손을 빌리기로 했다.

“8층을 오르는 파티들 중. 적당한 곳에 참여의사를 전해줘. 아니면… 나처럼 파티를 구하고 있는 채굴꾼이라도 좋아.”

리오의 부탁에 픽시는 반투명한 홀로그램을 출력해내었다. 파티원을 모집하고 있는 파티를 이리 저리 둘러보다 리오에게 입을 열었다.

“이미 채굴파티는 다들 떠난 모양인데…… 으음. 아. 리오님처럼 파티를 물색 중이신 드워프 한분이 계시네요. 8층의 광석채집이 목적이면 한번 같이 가보겠냐고 이야기를 나눠볼까요?”

“단 둘이서 가는 게 차라리 낫다고 생각해. 가능하면 꼭 함께 가고 싶다고 전해줘.”

픽시는 리오처럼 탑의 대기실에서 파티를 찾고 있는 드워프에게 말을 전달했다.

잠시 뒤, 리오의 눈앞에 파티결성 안내 메시지가 나타났다.

‘드워프 하드람… 이라는 분이시군. 직접 채굴을 하러 나온 걸 보면 총판과 계약하지 않은 대장장이이려나?’

드워프 모두가 대장술을 익한 장인이라고 생각할 순 없지만. 그들 모두가 신의 손을 가진 장인이라는 말은 리오는 들었다.

그 때문에 조렌은 가능한 모든 드워프들과 계약을 해두려 한다.

계약의 내용은 딱히 의무적으로 매달 무언가를 만들어 내놓으라는 그런 것이 아니라, 그저 무언가를 판매하게 되면 구매우선권을 내어달라는 말이었다.

구체적인 내용은 계약 당사자가 아니므로 리오도 모르지만, 적어도 서로에게 불이익이 되는 내용은 아니라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

‘서로 윈윈하는 내용일 건 뻔한데… 총판과 계약하는 걸 꺼리는 장인들이 적지 않게 있다고 하던가.’

왜 장인들이 총판과 계약하는 걸 꺼리는지 드워프 하드람을 통해서 알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며 리오는 파티결성에 응했다.

잠시 뒤, 리오의 대기실과 하드람의 대기실이 서로 이어지며 둘은 만날 수 있었다.

모두가 그렇듯, 리오의 허리쯤 오는 키를 가진 하드람은 구릿빛 피부를 드러내며 리오를 놀란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세상에, 그 유명한 앤서러와 함께하게 되다니… 영광이오.”

자신이 유명하기는 하지만, 무슨 떠받듯 말하는 하드람을 보고 리오는 씁쓸하게 웃었다.

“영광까지야…. 저야 말로 드워프 하드람씨와 함께 일하게 되어서 영광입니다.”

하드람은 작은 체구에 어울리지 않는 웃음 소리를 내었다.

“하하. 이거이거 참. 늦잠을 자는 바람에 오늘은 빈손으로 가야하나 했는데… 하늘이 날 도왔군. 채굴파티의 호위들 따위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호위를 얻었으니!”

“예. 방해하는 놈들은 저에게 맡기시고 하드람씨는 채굴에 신경 써 주셨으면 합니다.”

“알겠네. 자네는 따로 필요한 광석이 있어서 이 8층에 온 것이겠지? 어떤 광석이 필요한 건가?”

리오는 케일에게서 받은 편지지 일부를 하드람에게 건네주었다.

“흐음… 꽤 깊숙이 들어가야겠군. 화약도 꽤나 챙겨야겠고… 아무리 자네라지만 위험할지도 모르겠어.”

“하드람씨가 편히 채굴을 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부탁드리겠습니다.”

하드람은 고개를 끄덕이고 채광도구들을 챙기기 시작했다.

“그럼 가도록 하지.”

“예.”

***

8층 ‘계주’.

퀴퀴한 냄새가 가득 찬 광산이며, 본래대로라면 일정 포인트에 화약을 설치하고 광산을 탈출해야한다.

하지만 광산이다보니 질 좋은 광석들을 캘 수 있고, 광산에 화약을 얼마만큼 터트리냐에 따라서 희귀한 광맥도 발견 할 수 있다고 한다.

리오는 마냥 위로 올라가는 것만 생각했기 때문에 설마 8층에서 광석을 캘 수 있으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그 때문에 픽시에게 이야기를 듣고, 하드람의 채굴하는 모습을 보는 순간 미묘한 기분이 되었다.

공략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엄연히 이것도 공략법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이 세상에서 순응하며 살아가는 모습 같다.

“후우….”

수건에 땀을 하드람을 보고 리오는 마법으로 냉수를 만들어내었다.

차가운 물이 수건을 적시고, 뜨겁게 달궈진 신체를 식혀주자 하드람은 기분이 좋은지 신음을 내었다.

“고맙네. 자네 같은 친구는 처음이군.”

“전 당장 할 일이 없으니까요.”

하드람은 리오의 말에 쓴웃음을 지었다. 어느새 주변에 자욱한 자이언트 웜들의 시체는 리오가 할 일을 충분히 다했음을 말하고 있었다.

다시 곡괭이를 쥐고 하드람은 광석을 캐기 시작했다.

둘에게 필요한 량은 그렇게 많은 량이 아니었다. 문제가 벌어지지 않는다면 저녁 전에 돌아갈 수 있을 것이었다.

하루 일과를 마치고 여관에서 마시는 차가운 맥주는 소름이 끼칠 정도로 맛이 난다.

오로지 그 맛을 느끼기 위해 일하는 것처럼, 하드람은 곡괭이를 내리쳤다.

‘음…?’

곡괭이를 내리친 순간. 등에 무언가 묻는 느낌이 들었다. 하드람은 작업을 중지하고 뒤를 돌았다.

거목과도 같은 두께를 자랑하는 자이언트 웜을 도륙하는 리오가 보였다.

자유자재로 다루기 쉬운 한손 검을 휘두르며 ‘앤서러’라 불리는 검술인지 체술인지 모를 것을 사용하고 있었다.

탑을 오르는 모험가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드워프답게 장인이기도 한 하드람은 리오의 모습을 보고 어색함을 느꼈다.

부자연스럽다.

모양이 다른 톱니바퀴를 어거지로 끼워 넣은 느낌이라고 해야 했다.

각기 다른 톱니바퀴를 어거지로 끼워 넣고, 주변 다른 부품들은 어떻게 해서든지 기계장치가 돌아갈 수 있도록 마모가 되어있다.

하드람은 계속해서 리오의 부자연스러운 전투를 지켜보았다.

그는 리오가 싸우는 모습을 처음 보는 것이 아니었다. 개벽축제 때. 리오와 오우거 도날의 싸움을 구경했었다.

그 당시에는 멀리서 바라보는 것이었기 때문에 이러한 부자연스러움을 눈치 챌 수 없었다.

‘그러고 보니 그 당시에는 방패를 들고 있었지. 오늘은 보이지 않는데…….’

수분 뒤, 자이언트 웜들을 모두 처리한 리오에게 하드람은 질문을 던졌다.

“자네. 방패를 쓰지 않았던가?”

의외의 질문이었지만 당황하지 않고 리오는 대답했다. 별 숨길 것도 없었다.

“예. 저번 20층을 오르던 도중에 좋은 방패를 하나 망가뜨리고 말았거든요. 방패를 새로 구해야하는데 적당히 마음에 드는 게 눈에 띄질 않네요.”

사실 리오는 20층을 오른 뒤, 탑을 오르지 않는 기간 동안 이런 저런 일을 하며 개인수련에 힘을 썼다.

당연히 개인수련에는 방패가 빠질 리가 없었다. 리오는 적당한 방패를 구입했었지만….

불가사의할 정도로 리오의 앤서러를 따라와주는 방패가 단 하나도 없었다.

수십 개의 방패를 연습도중 망가뜨렸다.

‘앤서러는 충격을 상대방에게 되돌리는 기술이야. 근데 방패가 부숴진다는 건 충격을 방패가 흡수하고 있다는 거지. 내 앤서러에 문제가 있어.’

애초에 앤서러는 장비에 구애를 받지 않는 무술이었다. 그 어떤 무기를 들어도 발휘할 수 있고, 맨손으로도 가능했다.

창조자인 김체건은 검 한 자루로 사용하였으니, 리오도 굳이 방패에 얶메일 필요는 없었다.

그동안 방패를 고집한 것은 그저 익숙하기 때문이었으니까.

사정을 모르는 하드람은 리오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이 느꼈던 부자연스러움은 방패의 존재유무 때문일 것이라 추측했다.

“검으로도 방어를 하고 있더군. 내 자네의 검을 한번 봐도 되겠는가?”

“뭐… 한 동안 웜들은 나타나지 않을 테니. 얼마든지요.”

하드람은 리오의 검을 건네받은 순간 눈이 휘둥그레졌다.

검 자체가 내구성을 위해 검날을 포기하고 있었다. 일반적인 검사가 휘두른다면 베어낸다는 게 아니라 후두려 팬다는 말이 맞았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