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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탑으로 향한 리오는 익숙한 얼굴들에게 반갑게 인사했다.
얼마 전에 만난 리자드 맨 커플. 칼과 리사.
여전히 부러울 정도로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유지하고 있었다.
“네놈한테 정말이지 리사씨는 아깝구만.”
“뭐냐. 리사에게 반했나? 인간치고 보는 눈이 있군.”
“위층가면 다들 그렇게 미치는 건가? 나도 단단히 각오해야겠군.”
농을 던지자 농담으로 대답이 들려왔다. 칼과 리오의 대화에 점잖은 리사조차 끼어들었다.
“제 남자로는 부족하지만 위로 올라오면 사윗감 정도로는 괜찮지 않을까요? 칼씨?”
“그, 그건 좀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 한다만…….”
‘거기선 완강히 거부를 해야지!’
깨알이 쏟아지는 둘을 보자 리오는 머리가 아파왔다. 언제부터 우리가 이런 관계가 된 걸까.
그때였다. 탑 앞을 서성거리던 모험가들을 헤치며 어느 무리가 리오에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최근 탑의 세계를 뒤흔드는 단 하나의 파티.
검은 머리의 마족이 이끄는 파티였다.
“오랜 만이야 리오. 또 저번처럼 힘없이 끙끙거리고 있는 줄 알았다고.”
쿠란의 말에 리오는 귀가 뚫리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심장은 여전히 두근거렸다.
“그땐 그럴 사정이 있었던 것뿐인데…. 힘없이 끙끙이라니 좀 봐줘.”
“아니 진짜로 그때 리오는 힘없이 끙끙거리는 느낌이었으니까. 강아지 같아서 귀여웠다고.”
여전히 경국지색의 미모를 가진 쿠란이었다.
그녀는 리오의 곁에 다가와 묘한 웃음을 흘리며 말했다.
“근데 지금은 사나운 늑대 같아. 언제라도 목을 물어뜯을 것 같아서 정말… 가지고 싶어.”
쿵쾅대는 심장을 애써 진정시키려 하며 리오는 쿠란과 함께하는 파티원들을 보았다.
그 인원은 20층을 오를 때보다 더욱 늘어나 있었다.
‘컬렉션…. 이종족 도감이같군.’
파티원 전체가 오직 쿠란을 위해서만 움직인다. 동시에 파티원은 쿠란의 살아있는 도감 같았다.
한 때. 자신은 저 생물도감의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리오는 불쾌감이 치솟는 것으로 쿵쾅거리는 것을 없앴다.
“저기 리오. 우리 다시 내기할까? 이번에는 네가 나를 쫓아오는 건 어때? 일정기간 동안 날 따라오지 못하면…….”
“각오는 되어있는 거지? 만약에 내가 널 따라 잡으면 네 파티는 내 파티가 되는 거야.”
리오의 말에 쿠란은 입을 다물었다.
리오가 쿠란의 파티에서 나가게 된 원인을 따지고 보면 쿠란 본인에게 있었다.
그녀는 굳이 리오에게 ‘자신이 내기를 어겼다. 파티를 나갈 것이냐.’ 라는 말을 할 필요가 없었다.
리오를 진짜 원한다면 자존심은 굽힐 수 있는 것이 그녀였다. 애초에 진중한 이야기가 오고간 계약이 아닌 둘만의 ‘내기’였으니까.
리오를 자신의 파티에 넣고 싶다는 마음만큼은 진짜인 쿠란이 왜 굳이 그 이야기를 꺼내었을까?
그 이유는 함께 20층을 통과하며 생긴 ‘불안감’ 때문이었다.
자신이 만든 파티가 리오에게 빼앗긴다는 불안감.
20층을 오를 당시. 쿠란은 아무것도 한 것이 없었다.
다른 파티의 리더가 무엇을 하는지 본적이 없었고 전투 중에 리더가 무엇을 해야 하는 지 그녀는 알지 못했다.
쿠란을 대신해서 리오는 쿠란의 파티원들을 손발처럼 이용했다.
누군가는 발리스타를 잡게 하고, 누군가는 발리스타용 화살을 옮기게 하고, 누군가는 적의 시선을 끌었다.
리오의 지휘 덕분에 20층을 쉽게 통과할 수 있었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없다.
모두의 중심은 자신이건만, 중심이 리오에게 옮겨갈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생겨났었던 쿠란이었다.
‘알고 있었어….'
자신이 리오를 더 가지고 싶게 된 이유이며 쫓아내게 된 이유를 본인이 알고 있었다.
드물게도 분한 표정을 지으며 쿠란은 리오의 말에 대답하지 못했다.
리오는 매력적이다. 여성으로써 끌린다는 말이 아니라, 함께 행동했던 파티의 일원으로써 끌린다.
오죽하면… 그녀는 단 한 번뿐이었던 그때의 전투를 계속해서 상기하며 리오를 본받으려 하고 있었다.
남아있는 파티원들이 이탈을 하지 않도록.
“농담이다. 다시는 너랑은 내기 같은 거 하지 않아.”
분한 표정을 지었던 쿠란을 보고 당황한 리오는 상황을 넘어가기 위한 말을 둘러대었다.
“흥. 근데. 한 동안 탑에는 안 보이더니 갑자기 바람이 불은 거야?”
그 점은 주변에 있던 리자드 맨 커플도 궁금한 듯 관심을 보였다.
“아는 분이 개인적인 부탁을 해왔거든, 8층을 가서 광석을 캐야 해.”
“8층? 아 거기…. 광석을 캐려면 혼자는 힘들 텐데…….”
쿠란의 얼굴에 묘한 미소가 머무는 것을 본 리오는 그녀가 무슨 말을 하기 전에 몸을 돌렸다.
“내 도움이 필…….”
“돈을 목적으로 가는 게 아니니까 금방 갔다 올 생각이야. 점심 전에는 내려오겠지.”
리오가 탑으로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아쉽게 입맛을 다시는 소리가 뒤에서 들려왔다.
그러나 수초 뒤, 쿠란은 무언가 떠오른 듯 감탄사를 내뱉고 탑에 들어가려는 리오의 어깨를 붙잡았다.
“정말… 어지간히도 끈질긴 마족이군. 네 파티는 어쩌고 나랑 뭘 어쩔 생각인데?”
“응? 무슨 말이야?”
멋대로 쿠란이 자신과 8층을 가려고 마음을 먹은 게 아닐까 했지만, 늘 있던 리오의 착각이었다. 괜히 얼굴이 붉어지는 것을 숨기며 리오는 물었다.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무슨 일이야? 네 거대 파티나 관리하라고.”
쿠란의 파티원들이 리오를 무시무시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사랑스러운 파티장님을 외간남자가 차지하고 있으니 어쩔 수 없었다.
“내 파티에 대해서는 내가 알아서 해. 그건 그렇고… 물어 볼 게 있어서.”
“저 같은 평범한 인간은 대마족 쿠란님께 알려드릴 만한 게 없습니다만.”
화르륵. 쿠란의 주변에서 검은 화염이 한 순간 불타올랐다. 장난을 치지 말라는 경고에 리오는 식은땀을 흘렸다.
“무슨 일인데… 요?”
“저번에 널 쫓아온 오라클들을 만났을 때. 나는 널 보고 있었어.”
20층의 일을 말하는 것이었다. 별 좋은 기억은 아니었기 때문에 리오는 인상을 찡그렸다.
솔직히 그때를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두통이 일어날 정도였다.
“… 앞에서는 드레이크가 날 뛰고, 뒤에서는 오라클들이 기습했는데 우리 파티장… 아니, 쿠란님은 놀고 계셨습니까?”
“파티원의 역량을 파악하는 것도 중요하니까. 사실 그럴 생각은 아니었는데… 네가 사용한 마법 때문에 시선을 빼앗기고 만 거야.”
“마법?”
마족인 쿠란의 시선을 빼앗을 만한 마법.
안드레이 만큼은 아니지만 쿠란도 제법 마법에는 일가견이 있는 편이었다.
무엇보다 마족이다. 태어날 때부터 마법을 다루는 종족 중 하나로 유명하다.
그런 그녀가 한낯 인간이 사용한 마법에 관심을 보이다니, 리오는 웃음을 터트렸다.
알터의 흑마법이 대단하긴 한 모양이었다.
“흑마법을 사용하긴 했는데… 네 시선을 빼앗을 만한 마법이라면 하면 역시 그거겠지.”
자신이 해낸 마법에 대해서 이야기를 할까 했지만 리오는 자세히 말하지 않는다면 상관없을 거라 생각했다.
“흑마법 계통의 그러니까… 네크로멘시 계열의 소환 마법이다만?”
“뭐?”
어이가 없다는 얼굴이 된 쿠란은 재차 물었다.
“정말 소환마법이야? 내 눈에는 아무것도 안보였는데? 무얼 소환 한 건데?”
“아무것도 못 봐? 드레이크를 상대하느라 그런 거 아니야?”
요란 법석한 정도는 아니었지만, 아르토는 확실히 눈에 띄었다. 정말 쿠란이 리오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면 아르토를 보지 못할 리가 없었다.
애초에, 아르토라는 존재를 목격했다면 무슨 마법을 시전 한 것인지 질문을 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마법만큼은 나한테 거짓말을 하지 않아주었으면 좋겠어 리오.”
차가운 얼굴로 쿠란이 말했다. 리오는 무언가 이상함을 느꼈지만 자신이 틀린 말을 한 적이 없었으므로 마주보며 말했다.
“난 틀린 말을 한 적이 없어 쿠란.”
여전히 표정을 고치지 않던 쿠란은 말없이 몸을 돌려 자신의 동료들에게 돌아갔다.
‘뭐지….’
쿠란을 이해할 생각이 없었던 리오는 언잖은 기분을 참으며 탑의 안으로 들어갔다.
‘대체 무슨 용무였던 건지…….’
쿠란과의 일은 그만 잊기로 하고, 앞으로의 일에 신경 쓰기로 했다.
‘8층… 예전에 혼자 지나갈 때는 아무런 위험 없이 돌파했었지. 하지만 그건 위험 내가 피한 거야. 혹시 모르니 조심 해야지.’
손쉽게 넘어갔던 8층이지만, 색다른 경험을 해야 하므로 리오는 자기점검을 철저히 했다.
그런 리오에게 픽시가 모습을 드러내며 입을 열었다.
“리오님. 아무래도 이번 8층을 혼자 오르시는 건 무리일 것 같아요.”
“무리 일 것 같다고?”
맘 같아서는 혼자 8층을 다녀오고 싶었지만, 픽시가 괜히 이런 소리를 하는 것은 아닐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