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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의 탑-78화 (78/190)

<-- 78 회: 3-12 -->

“지, 진정하십쇼. 죄송합니다. 하지만 사정을 모르는 제 입장으로써는 믿을 수 없지 않습니까? 신이나 할 수 있는 걸 인간이 하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는데…….”

마음만 먹는다면 탑의 세계의 기후를 잠시나마 조절할 수 있는 베로드는 겁을 먹고 안드레이에게 고개를 숙였다.

순식간에 기세가 누그러들며 안드레이의 온화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렇네. 자네 말대로. 그런 건 신이나 할 수 있지. 나의 아버지조차 할 수 없는 걸 인간이 할 수 있을 리가 없지.”

앞뒤가 맞지 않는 안드레이의 행동과 말에 베로드는 어느 장단에 맞춰야 할지 고민하다 말을 아꼈다.

‘도대체 어쩌라는 거냐? 개소리를 내뱉는 거냐고 물었더니 개같이 화를 내고, 또 갑자기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행동하지 않나… 미친.’

입술을 곱씹으며 화를 삭힐 때, 베로드는 문득 방금 전 보았던 가게의 상황이 지금과 다르다는 것을 깨달았다.

깨진 병은 하나도 없었고, 테이블들은 모두 멀쩡했다.

그렇다면 자신이 보았던 것은 모두 환각인가?

“… 아!”

자신의 질문에 환상을 보여준 안드레이의 의도가 무엇일지 베로드는 순식간에 이해했다.

“리오가 보았던 것들은 모두 허상이라는 말씀이십니까? 본인의 망상?”

“아마도 그렇겠지. 혹, 자네는 그 아이가 어떻게 마법을 시전 하는지 들었나?”

“자세히는 듣지 못했고… 마나 모아 사용하는 일반적인 마법사가 아니라고만 들었습니다만….”

베로드의 놀랄 표정을 기대하며 안드레이는 리오의 마법신념을 말했다.

“상상하라. 그리하면 이루어질 것이다.”

리오의 망상과 안드레이의 말.

말도 안 되는 리오의 마법은 도저히 이해 할 수 있는 범위를 뛰어넘어 있었다.

상상하면 마법이 시전 될 것이라니, 그래서 이루어진 것이 그 아르토라는 소환수라는 말인가.

“망상이기만 하면 상관이 없습니다. 하지만 듣기론 그 녀석… 아르토라는 소환수의 도움을 받아서 20층을 통과할 수 있었다고 했습니다.”

“술을 너무 많이 먹었군. 아까 말했지 않은가? 상상하면 이루어질 거라고. 적절한 대가 치루었다면 할 수 있는 것이겠지. 무엇보다 리오가 한 건 시간을 되돌리거나 한 인간을 되살리거나 누군가를 지배하거나 한 게 아니지 않는가?”

“윽…….”

안드레이의 말에 베로드는 말문이 막혔다.

리오가 상상을 한 것이라면 소환을 한 것 자체가 아니다.

본인이 그렇게 생각을 하고, 본인의 오감에 그렇게 보일 뿐, 현실에서는 소환이 되지 않았다.

그저 20층을 통과하는 데 도움이 되는 마법이 시전 되었을 것이다.

“답이 되었는가? 그 아이는 그저 독특한 마법을 구사할 줄 알 뿐인 게야.”

베로드는 딱히 떠오르는 이견이 없었기 때문에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으로써는, 이 답 말고는 딱히 떠오르는 것이 없었다.

“호기심이 생기지 않는가? 그 아이가 어떻게 탑을 오를지, 변할지, 나는 한 번 옆에서 지켜보고 싶어. 자네는 어떤가? 한 번 궁금증을 해결시켜 주며 끝까지 가르쳐 볼 생각이 없는 가?”

“이미 그 아이와 저의 볼일은 끝났습니다.”

“과연 그럴지 그게 끝 일지 의문이군.”

묘한 웃음을 남긴 채 어느 순간 안드레이의 모습이 사라졌다.

남은 술을 잔에 채우며 중얼거렸다.

“상상하면 이루어진다고? 왜 알터가 최악의 마법사라 불린지 대강이나마나 알겠군…….”

***

오늘 따라 집 주변이 시끄럽다고 생각하고 있을 때, 픽시가 말을 걸어왔다.

“독수리 울음소리? 아! 메신저. 리오님. 우편이 온 모양이에요.”

픽시의 말에 리오는 인상을 찡그리며 우편함에 다가갔다.

“… 케일씨? 아. 깜빡하고 있었군… 도와주기로 했었지.”

자세한 이야기는 추후에 전달한다고 했었다. 어쩌면 이 편지가 그 이야기일지도 몰랐다.

휘몰아치는 눈바람을 뒤로 하고 집으로 다시 돌아왔다. 그새 머리 어깨에 쌓인 눈을 픽시가 털어내며 리오의 어깨에 앉았다.

“케일씨가 그러던데… 자기는 탑의 세계에 살던 인간들을 모두 만나보았다고. 사실이야?”

진작 확인을 했어야 했지만, 아르토 소환에 대해서 머리가 복잡했던 관계로 잊고 있었던 리오였다.

확인을 촉구하자 픽시는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제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리오님이 탑을 앞으로도 오르실 거라면 그분과 친해지시는 편이 좋을 거 에요.”

“하긴, 그 분은 명장이라고 불리시던 분이니….”

어디까지나 대장장이이기 때문에 케일과 관계개선은 필수적이라고 리오는 생각했다.

탑이 지정한 리오의 가이드로써, 모든 것을 지켜봐온 픽시는 그 생각을 눈치 챘지만 별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곤란한 얼굴로 있을 뿐이었다.

‘케일님은 단순히 철을 잘 다루어서 명장이라 불린 것이 아닌데…….‘

“왜 그래? 안 어울리게 언짢은 표정을 짓고 있고.”

“아, 아니에요. 맞는 말이에요. 명장이시니 친해두시는 편이 좋죠.”

“또 뭔가 숨기는 거 아니지?”

“이제 안 그러는 거 아시잖아요? 깜빡하는 것뿐이지."

연기와 자기변호를 하며 픽시는 리오의 얼굴을 살폈다. 별로 신경 쓰는 것 같지 않았다.

“어디보자… 무슨 내용이려나. 나보고 자신의 검이 되어달라고 했으니… 보나마나 무슨 부탁 같은 거라고 생각이 되지만.”

주루룩. 거친 재활용 종이로 만들어진 편지봉투를 찢자 활자로 찍어낸 듯한 글이 보였다.

글에는 그 사람의 성격이 보인다고 하는데, 기계로 이루어진 케일다웠다.

“흐음… 재료공수인가. 이런 재료는 그냥 시장에서 사거나 총판에서 주문하면 될텐데 왜 굳이 나한테 시키는 건지…….”

리오와 함께 편지를 읽었던 픽시는 입을 열었다.

“그분은 총판과 계약한 대장장이이시잖아요. 그런 분이 직접 재료를 사고, 개인적인 용도로 총판에 재료를 주문하면 이런 저런 소리가 나지 않겠어요?”

“명장이 총판을 통해서가 아닌, 개인적인 용도로 재료를 주문한다라….”

이유를 고민하는 리오에게 픽시는 간단한 이유라는 듯 말했다.

“보통 모험가가 재료를 모아서 대장장이에게 가잖아요. 무언가를 만들어 달라고. 이건 그 반대인 것 같은데.”

“케일씨가 나에게 무언가를 만들어 주려고 한다 이 말이지? 재료를 구하는 건 내 몫이고.”

그렇게 생각하자 의욕이 샘솟기 시작했다.

결국 다른 누구도 아닌 자신을 위한 일이라는 말이렸다.

이어진 리오의 말에 픽시는 어두운 얼굴이 되었다.

“그분도 참 돌려 말하시는 군. 검이 되어달라니 그런 말을 할 필요 없는데… 그냥 솔직하게 말씀을 하시지….”

편지의 구체적인 내용은 리오가 개벽 전에 돌파했던 8층에서 광석을 채집하고 오는 것이었다.

8층의 이름은 ‘계주’였다. 배경 설정은 무너지는 광산이었는데, 일정 체크포인트에 폭탄을 설치하고 빠르게 광산을 탈출하는 것이었다.

“아아. 그러고 보니 들은 적 있어. 8층이 노다지라고.”

픽시는 리오가 이미 8층을 통과했기 때문에 8층의 모든 것을 말하기로 했다. 8층을 통과한 주민이라면 마을 도서관에서 책을 통해서 습득 할 수 있는 지식이었다.

“통과하셨으니 말씀드리는 거지만… 거기는 폭탄을 터트리지 않고 계속 광석을 캘 수 있어요.”

“응? 하지만… 광산이잖아? 광맥을 캐기 위해서는 폭탄이 필요한데… 내가 알기로 그 광산은 지반이 약하다는 설정으로 알고 있다고. 폭탄 잘못 터트렸다간 한 번에 무너지는 걸로…….”

리오는 말을 하다 머릿속에 어느 종족이 떠올랐다.

“… 드워프들이 있었지. 그분들이라면 그 광산에서 맘대로 폭탄을 터트리려나.”

“네. 거기다 폭탄을 많이 터트릴수록 희귀한 광맥이 나온다는 설정도 있죠.”

“8층에서 등장하는 놈들보다 스테이지가 더 무섭군.”

픽시는 광산을 두려워하는 리오에게 조심스럽게 말했다.

“한 가지 더 말씀드리자면… 그 광산… 오래 있을수록 강한 이종족들이 나온다고요? 지하에서 동면중이던 웜들이 깨어난다는 설정도 있는데…….”

다시 한 번 편지를 내려다 보며 리오는 8층이 맞는지 확인을 했다.

‘쉽지 않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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