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의 탑-76화 (76/190)

<-- 76 회: 3-10 -->

차가운 냉수를 들이켰다. 식도를 타고 몸의 내부에 흘러들어가는 것이 느껴졌다.

리오는 자신이 마법원리와 자신이 동족인 아르토라는 인간을 소환하려고 했다는 걸 설명했다.

탑의 규칙상 자신이 설명을 하려고 해도 상대가 듣지 못할 가능성이 있었지만, 베로드는 꽤나 높은 층까지 올라가본 듯 했다.

리오의 모든 이야기를 그는 이해했다.

“… 죽은 인간을 되살리려고 했다라. 동화로 써먹기도 힘든 이야기로군.”

“제 목적을 확실하게 말씀드리자면, 아르토라는 분을 저는 이용하려고 소환 했을 뿐입니다. 딱히 죽은 사람을 되살리려고 하는 그런 목적은 아니었습니다. 그저. 소환사가 소환수를 소환하여 부하로 다루는 것 처럼이요.”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는 이해했다. 하지만 네 경우는 다르지. 너는 자신의 조상격인 인물을 부하로 두고, 개처럼 부리려 했다. 정말… 흑마법사라는 놈들은 목적과 수단을 가리지 않는군.”

기분이 나쁜 듯 보이는 베로드였다.

리오 또한 그의 비꼬는 듯한 묘한 말투에 기분이 내심 좋지는 않았다.

하지만… 무어라 항변을 할 수 없다.

확실히 자신은 잘못했다. 이유가 어찌되었든, 자신은 이용하려 했다. 개처럼 부리려 했다.

자신이라면 같은 인격체며 인간인 아르토를 미끼로 하여 탈출 계획을 세울 수도 있다.

대를 위해 소를 희생하듯. 아르토는 언제든지 소환할 수 있고, 이미 죽은 사람이기에 누군가 다시 죽여도 아무 문제가 없으니까.

‘빌어먹을….’

무심코 한 생각에 속으로 신음을 삼켰다. 자신이 원래 이기주의적이라는 것은 알았지만. 남을, 그것도 한 인간을 희생하여 살아남을 생각을 하다니.

베드로의 앞에서 큰 일을 저지른 것 같은 죄책감을 느끼며 리오는 아무렇지 않은 척, 아무것도 깨닫지 못한 척을 연기했다.

“무슨 말씀이십니까?”

“알고도 모른 척 하는 거냐? 아니면 눈치를 채지 못한 것이더냐? 네가 했던 일, 그리고 하려는 일은 후손이 조상의 무덤을 파헤치는 일과 같다. 너와 종족이 다른 내가 할 말은 아니지만 죽은 자는 그대로 두는 편이 옳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다.”

리오의 성향을 파악 하려는 베로드의 질문이었다.

리오에게 있어서 탑의 세계를 앞서간 인간들은 남남이지만. 누군가를 마음대로 되살리고, 자신의 부하로 만드는 일은 인륜에 어긋나는 짓이다.

베로드가 말하고자 하는 것을 파악한 리오는 입술을 깨물었다.

방금 전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아르토를 비롯한 다른 인간들이 어떤 참혹한 짓을 했는 설명을 해야 한다.

말을 한다고 해서 믿을까? 베로드가 악용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 놈들은 그런 짓을 당해도 괜찮다. 라는 말은 해선 안 되겠지. 맞아. 원래 누가되었든 죽은 자를 되살리고 내 마음대로 조종하는 건 옳지 않아.’

그렇다고 사령술을 포기하는 것은 아쉬운 생각이 들었다.

그건 틀림없이 리오의 어깨에 날개를 달아줄 진정한 마법이다.

먼저 이 탑의 세계를 앞서간 다른 인간들을 사령체로 둔다면… 파티라는 시스템은 필요가 없다.

귀환을 하는 것은 보다 빠를 것이다.

‘사령술을 포기해야할 까?’

템플러 아르토가 보여준 압도적인 무력. 그것을 자신이 취할 수만 있다면 이 탑은 식은 죽 먹기다.

하지만 템플러 아르토, 그 외의 다른 인간들을 사령체로 두는 것은 리오가 인간으로써의 자긍심을 버리는 것과 같다.

템플러가 되지 않으려 노력을 하고 있지만, 결국 사령체를 휘하에 두는 건 지구인으로써 자신을 포기하는 것과 같다.

흘러가는 시간을 붙잡고 빠른 귀환을 한다. 그 대가로 자신은 인륜을 저버린다

사람으로 써 지켜야할 것들을 지키고 옳바른 길을 걸어간다. 그 대가로 자신은 청춘과 인생을 탑에서 보내고, 인생의 말미즈음에 지구로 돌아간다. 귀환을 한다는 이야기 자체도. 확정적이진 않다.

후회 할지 몰라도 지금으로 써 리오가 선택 할 수 있는 건 하나였다.

‘그래. 알터의 사령술은 해서는 안 되는 짓이야.’

너무나도 아쉬움이 남아 리오는 양손을 쥐락펴락했다. 분명 베로드를 어떻게 속여 넘긴다면 사령술의 비기를 자신의 것으로 취할 수 있다.

‘안 돼. 난 인간이야. 지구로 돌아갈 거야. 여기서 지구인임을 포기 할 순 없어.’

여태 어쩔수 없이 자신의 손으로 죽인 이들의 얼굴이 스쳐지나갔다. 이미 자신은 짐승의 길로 가고 있다.

그렇다면 좀 더 일탈해도 되지 않을 까…….

“애송이. 그 얼굴을 보아하니 갈등하고 있는 모양이군? 하긴… 이 탑의 세계에 있던 인간들은 대부분이 잘나갔다고 하더군. 그런 놈들을 네 밑에 둘 수만 있다면야 탑을 정복하는 건 쉽겠지. 그래서 갈등하는 건가? 인륜을 무시하는 흑마법사가 될지, 아니면 사회에 섞인 인간으로 남을지.”

리오는 베로드의 말이 들리지 않았다. 깊은 고민에 빠져 주변을 인식 할 수 없는 상태였다.

만약 자신이 조상들로 파티를 구성한 다면…….

알레스터 크로울리. 알터라 불린 최악의 마법사도 자신의 수하로 둘 수 있다.

또, 길드 아지트에 벽화를 남긴 김체건도 마찬가지였다.

그 외의 이야기로만 들은 모든 인간들도. 1인분 이상 해내는 역전의 용사들을 파티에 넣을 수 있다.

그 누구도 리오의 앞을 막지 못한 채, 탑은 정복당할 것 이다. 그렇게만 된다면 귀환이라는 것은 시간의 문제다.

당초 목적이었던 주민 모두와 함께 귀환하는 것도 손쉽다.

그야 당연하다. 탑의 공략을 숙지한 정복자들이 혼자도 아니고 여러 명이 도움을 주는 거니까.

하지만 그 반대로, 리오가 사령술을 포기한다면 얻는 것은 무엇인가. 본인의 만족뿐이다.

사령술을 얻으면 할 수 있는 것과 달리 리오는 수년, 아니 수십년이 걸려서 탑을 오를 것이다.

어쩌면 영원히 지구로 돌아갈 수 없을지도 모른다. 다른 인간들과 마찬가지로 템플러가 될 지도 모른다.

어디까지나 가정이지만 리오는 사령술을 놓치기 싫었다.

그 속마음을 읽듯. 베로드는 웃음을 터트렸다.

“내 말소리도 듣지 못할 정도로 고민에 빠져 있는가… 하하. 정신 차려라. 애송이. 널 파악하기 위해서 한 말이긴 했지만 이럴 줄이야. 생각이 많은 놈이군.”

베로드가 어깨를 두들기자 그제야 상념에서 깨어난 리오는 넋을 놓은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새… 생각을 좀 해봐야할 것 같습니다.”

“욕심 많은 인간이라면 당연히 생각을 해봐야겠지. 그 욕심을 절반 정도만 버린다면 아마 생각할 필요도 없겠지만.”

“…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아까부터 도통 모르겠습니다.”

베로드 말을 고르더니 리오가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을 시작했다.

“너무 돌려서 말했군. 개념을 살짝 바꾸면 된다.”

고개를 갸웃하는 리오를 보고 한숨을 내쉰 베드로는 좀 더 쉽게 풀어내었다.

“알터의 사령술. 네가 익한 소환마법의 이론은 간단히 말하자면 이렇다. 과거의 인물을 네가 존재하는 현재에 소환해내어 사령하는 것.”

축약이 된 느낌이 크지만 맞는 이야기였다. 리오는 고개를 끄덕였다.

“구체적으로 네가 한 행동은 이렇다. 아르토라는 인간이 죽기 전 상태로 시간을 되돌린다. 그 이후 네가 있는 장소에 그를 소환 하고, 너는 그를 지배한다. 맞나?”

“맞습니다.”

“그래. 여기서 개념을 바꾸고, 욕심을 버리라는 말이다.”

베로드는 테이블 위에 있던 리오와 자신의 잔을 쥐었다.

두 잔에 있던 물중, 자신의 잔에 있던 절반 정도 마시고 난 뒤에 입을 열었다.

“개념을 바꾸라는 말은 누군가를 되살린다는 생각을 버리라는 말이다. 그저… 어느 시간대에서 네 동족을 불러들이고, 도움을 청한다. 이런 식으로 생각하라는 말이지.”

아직 걸리는 것이 많았지만 좀 더 할 이야기 있는 듯 하니 잠자코 듣기로 했다.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욕심을 버리라는 말은 굳이 아르토라는 인간이 가장 강력했을 죽기 전의 상태가 아니라, 좀 더 그 인간이 나약했을 때를 말하는 것이다.”

‘죽기 전의 상태가 아니라, 좀 더 나약했을 때?’

탑의 세계의 특성상 전성기는 죽기 직전이다. 늙고 노쇠했을 때야 말로 축적된 TP의 량이 많기 때문이다.

리오는 저번에 소환 할 때보다 좀 더 이전의 시간대로 그를 소환한다면 무슨 차이가 있을지 생각해보았다.

‘… 단순한 무력의 차이만이 있는게 아니야.’

100층에서 뒤로 갈수록 아르토에게는 힘의 차이만이 있는 것이 아니었다.

정신적인 변화.

냉혹한 템플러일 때, 가족이 생기고 욕심을 내다 버렸을 때, 탑의 정상에 가까워졌을 때.

가장 뒤로 간다면 템플러가 되기 이전의 아르토도 만날 수도 있다.

“욕심을 버리라는 말이 무슨 말인지 이해를 한 모양이군.”

“베로드씨는 너무 말을 어렵게 하십니다.”

“흥.”

간단한 맥주를 주문한 베드로는 안주를 질겅질겅 씹으며 말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