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의 탑-74화 (74/190)

<-- 74 회: 3-8 -->

‘일단… 인간은 아니겠지.’

그런 생각을 하며 작업실에서 막 나오고 있는 케일을 리오는 목격했다.

‘… 체형은… 인간형인가? 엘프? 아니야. 엘프였으면 조렌씨는 속 시원하게 말씀해주셨을 테지. 분명 말로 표현하기 힘들다고 하셨으니까.’

그렇다면 탑의 사전에도 등록되지 않은 희귀종족.

혹은 그 어느 차원에서나 희귀한 종족이거나 어느 차원에서는 존재하지 않는 종족이라는 말이었다.

리오도 알고 있을 정도로 오크나 엘프 같이 유명한 종족이 아닌….

“으음.”

케일로 추정되는 인물에게 좀 더 빠르게 리오는 다가가기 시작했다.

작업실에서 나와서 리오를 기다리고 있는 케일.

점점 가까워지자 리오는 그의 형체를 하나 둘 눈에 담을 수 있었다.

가지런한 다섯 개의 손가락.

평범한 넓은 가슴, 등 뒤에 날개도 없었고 귀는 돋아나 있지도 않았다.

머리 위에는 뿔도 없었고, 피부가 딱딱하거나 비늘이 있지도 않았다.

그야말로 평범. 마치 리오 자기 자신을 보는 듯한 평범함.

그렇다고 해서 리오와 쏙 빼닮은 외형을 가지고 있다는 말은 아니었다.

전체적인 외형을 보았을 때 그렇다.

인간처럼 생겼다.

자신이 살해했던 어느 동족의 첫 만남과는 다르게 리오의 숨이 가쁘게 뛰기 시작했다.

심장이 쿵쾅거리기 시작했고, 등골을 타고 전율이 솟아올랐다.

상대의 모습이 인간인지 확실하게 확인하기 위해 리오는 기어코 뛰었다.

그리고 명장이라 불리는 케일과 근접했을 때, 가열로처럼 뜨겁던 심장이 빙벽처럼 변했다.

‘무슨 기대를 한 거냐.’

몸의 열기를 밖으로 내뱉듯 리오는 한숨을 내뱉었다. 당연하지만 이 세상에 자신 말고 인간은 없다.

모만은 리오가 처음 탑의 세계로 왔을 때, 마치 리오 말고도 다른 인간이 있다는 투로 말했지만 그것은 이제 막 이 세계를 방문한 주민을 안정시키기 위해 한 말이나 다름없다.

그 사실을 모만이나 픽시가 말해주지 않아도, 그동안 이 세계를 살아온 리오는 무의식적으로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다른 인간은 없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희망을 품었던 것은 다른 이들이 확실하게 말해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없다’와 ‘있을지도 모른다.’의 차이는 크다.

전자는 희망조차 갖지 않지만, 후자는 희망을 갖고 희망고문을 가지게 한다.

지금은 누군가 확실하게 ‘없다’고 말해주면 좋을 테지만, 탑의 세계로 이제 막 왔었던 외톨이‘리오’에게는 희망고문이 필요하다.

‘나 말고 다른 인간은 없다는 걸… 알고 있었는데. 나는 또 기대를 품었구나.’

울상으로 변한 리오를 보고 케일이 입을 열었다.

기계적인 음성.

그런 느낌이라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기계적인 음성이었다. 마법과 대장술로 만들어진 가짜 폐. 인간을 본 따 만든 가짜.

음의 높낮이는 없고, 외부에서 들어온 공기의 압력을 조절하여 내는 소리였다.

“무슨 일이라도 있으신 겁니까? 표정이 좋지 않습니다.”

턱의 관절이 벌어지는 모양. 가까이에서 들리는 톱니바퀴가 돌아가는 소리.

“아, 아닙니다. 그냥… 저 혼자 착각을 해서. 죄송합니다.”

수백 년을 살아온 조렌이 케일의 종족에 대해서 제대로 설명 못한 것도 당연했다.

케일은 그저 인간의 모습을 본 뜬 인형.

인간 같은 외형을 지녔지만, 결코 인간이 아니다.

인형이라고 말하기에는 평범한 인형도 아니었다.

***

감정을 추스른 리오는 케일을 따라 그가 생활하는 장소로 이동했다.

으리으리한 저택을 두고도 작은 집에서 생활하는 그는 무척이나 괴짜처럼 보였다.

‘… 실은 자기 집이 아니라던가…?’

그런 리오의 생각을 읽었던지, 케일은 기계음을 내며 말했다.

“왜 저 큰집을 두고 이런 누추한 곳에서 생활하는지 궁금하십니까?”

“거짓말을 하고 싶진 않군요. 예. 왜 저 좋은 집을 두고 이곳에서 생활하시는 지 무척 궁금합니다.”

케일의 눈동자가 돌아가기 시작했다. 동공 안의 여러 기계부품들이 맞물려서 움직이는 것이 훤히 보였다.

“겉에서 보기엔 좋은 집일지 몰라도 실은 저곳은 창고입니다. 저 안에는 제가 만든 물건들이 있죠.”

아무리 본인이 창고라고 해도, 본래 집의 용도는 누군가 생활하는 곳이다.

편한 집을 물건에게 양보하고 본인은 불편한 생활을 하다니, 예술가는 이해할 수 없다며 리오는 고개를 저었다.

“그럼… 제가 리오를 찾았던 용건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케일은 대화를 시작하기 전에 리오에게 익숙한 차를 내어왔다.

‘이건…….’

라프라스의 차. 녹차랑 다를 것이 없는 차였다.

지구에서는 녹차를 좋아하지 않았지만, 이 세계에서 생활하다 보니 어쩔 수 없었다.

그리움에 사무 칠 때면 이따금씩 입에 대는 차.

만약 이 자리가 무언가 협상을 하는 자리였다면 케일은 자신에게 이로운 조건으로 거래를 이루어냈으리라고 리오는 생각했다.

그 정도로 자신은 이 차에 약했다.

‘우연인가? 인간의 모습을 한 인형이 나에게 녹차를 내어오다니.’

우연이라고 넘겨짚기에는 케일의 생김새 때문에 작위적인 느낌이 들었다.

“왜 그러십니까? 이 차를 좋아하지 않으십니까?”

기계음을 내며 케일이 물었다.

라프라스의 차를 좋아하지 않는다니,

‘질문이… 내가 이 차를 좋아하는 걸 알고 있어?’

미묘한 얼굴이 된 리오를 보고 케일의 동공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제 서야 리오는 케일의 눈동자가 움직일 때마다 무언가 탐색하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자신의 변화.

이를 테면 얼굴 표정, 눈동자의 흔들림, 피부색과 호흡.

‘들어본 적 있어. 얼굴을 보기 만해도 그 사람이 어떤 감정을 가지고 있는지, 거짓말을 하는지 알 수 있다고… 이건 그건가?’

“이유를 모르겠습니만, 리오는 저를 의심하고 계신 것 같습니다. 그렇게 생각하시는 건 그만두시겠습니까? 해명을 해드릴 테니.”

이어진 케일의 말에 리오는 놀랐다.

의심을 품었던 순간에 곧바로 들려오는 말은 의심을 더욱 커지게 했다.

“전 제가 좀 더 인간에 가까워지기 위해, 리오와 같은 인간들과 교류를 쌓으려 노력 하고 있습니다. 그 때문에 여러 인간들을 만나왔습니다만…. 다들 이 차를 좋아하시더군요. 그래서 혹시나 하고 물어본 겁니다. 이 차를 싫어하는 인간도 있나 해서…….”

눈동자 한 번 깜빡이지 않고 높낮이도 없는 말투로 케일이 말했다.

진실성이 있는지 없는지 판단할 수도 없었다. 마음이 없는 기계를 상대로 생각을 떠보고 하는 짓은 리오는 하지 않기로 했다.

이 케일이라는 마도기계인형은 그저 수없이 많은 행동양식에 따라 대답하고 움직일 뿐이다.

정해진 행동양식을 역으로 타고 올라가기만 하면 된다. 생각을 떠볼 필요도 없다.

‘다른 인간이라…….‘

케일이 만났다는 다른 인간은 역시 자신의 선조. 얼마 전 소환해내었던 아르토도 포함되어 있을까?

확인을 위해 묻기로 했다.

“다른 인간이라면… 역시 저 보다 먼저 이 탑을 지나간 분들을 말씀하시는 것이겠지요. 케일씨.”

“그렇습니다.”

“그럼 케일씨라면 대답할 수 있는 질문 한 가지를 여쭈어도 되겠습니까?”

“대답 할 수 있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대답해 드리겠습니다.”

기계와 대화를 나눈다는 느낌은 전혀 없었다. 인형임에도 부자연스럽지 않은 대화였다.

“아르토… 라는 인간에 대해서 알고 계십니까?”

케일은 입을 열었다. 그러나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성대에서는 아무런 소리조차 들려오질 않았다.

‘이건……?’

한참 동안 소리 없는 말을 내뱉으며 케일은 입을 뻥끗거렸다. 본인은 충분히 말했다고 생각했던지 아르토에 대해서 설명이 끝나는 듯한 어투만이 들려왔다.

“…입니다.”

케일이 연기를 한 것이 아니라는 것쯤은 리오도 알 수 있었다.

지금의 음성차단은 틀림없는 ‘탑의 규칙’ 때문이었다.

리오가 아직은 알아서는 안 되는 이야기.

‘주민을 수를 줄이면 탑의 난이도가 내려간다.’ 이러한 비밀을 알고 있음에도 리오가 알아서는 안 되는 이야기라니. 어이가 없는 웃음이 나올 뿐이었다.

‘탑의 공략과 관련된 이야기인가? 아니야. 나는 아르토라는 사람이 어떤 인간인지 물어보았던 건데…….’

잔뜩 굳은 얼굴로 리오가 고민에 빠져있자 케일은 말을 이었다.

“덧 붙여 한 가지 말씀을 드리자면… 제가 만들어진 이래로 저는 이 탑의 세계를 방문하는 모든 인간들과 만남을 가졌습니다.”

“재미있는 이야기이군요. 좀 더 듣고 싶습니다. 주변에서 다른 인간들은 어떤 생활을 보냈는지 구체적으로 알려주는 분이 없었거든요. 케일씨라면 알고 계실 것 같습니다만.”

모만과 안드레이가 그동안 단편적인 이야기만을 해주었다는 사실을 깨닫고 리오는 선조들에 대한 궁금증이 더욱 커졌다.

알아서 자신에게 도움이 될 것은 없을테지만, 같은 지구인이 어떻게 이곳에서 생활했는지 정도는 호기심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얼마든지 들려드릴 수 있습니다. 허나, 제 쪽에서 요구하는 걸 들어주신다는 조건입니다.”

‘조건?’

“사실 자리를 마련한 이유도 부탁을 드리기 위해서였습니다. 어떻습니까? 리오는 저에게서 정보를 얻고, 저는 리오에게 몇 가지 청을 하는… 상부상조 하자는 말입니다.”

상부상조라는 말이 케일의 입에서 나오자 리오는 작은 웃음을 터트렸다.

인간을 닮은 인형이 인간만이 쓰는 말을 내뱉다니, 누구보다도 인간다워 보였다. 자신보다.

“… 일단 이야기를 들어보도록 하죠. 케일씨는 저에게 어떤 부탁을 하고 싶으신 겁니까?”

케일의 입장에서 자신에게 부탁할 만한 것들을 상상해보았다.

일부 층에서만 발견되는 희귀 원석이나 어느 몬스터의 시체. 보통 그러한 것들을 대장장이들이 자주 찾는다.

실제로 리오도 주수입이 그러한 것들이었고 케일이 부탁할 만한 것도 그런 심부름이라고 생각했다.

“제 검이 되어주시겠습니까?”

‘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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