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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둔 방법이 있습니다. 잘될지는 모르겠지만……. 제가 제 주변 사람들을 모두 오라클로 의심하는 그런 상황은 오지 않을 겁니다.”
안드레이는 걱정 어린 얼굴로 남은 술잔을 비웠다.
“그래. 그럼 앞으로의 일정이라는 건 결국 그거더냐? 그놈들의 박멸.”
“예. 저를 비롯한… 모든 탑의 모험가들이 뒤를 걱정하지 않도록 오라클들을 없앨 겁니다.”
얼마 전 칼과 리사에게 말한 리오의 계획과 동일선상에 있는 일이었다.
모두의 뒤를 밀어준다. 모두가 탑을 오를 수 있도록….
“내가 얼마나 힘이 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만. 도움이 필요하다만 말 하거라.”
“아. 예… 그리고. 묻고 싶었던 것입니다만…….”
리오는 사령술에 대해 질문을 하려 했다.
‘가만, 20층을 스승님이 보지 못하셨다면… 내가 아르토를 소환했다는 것도 모르시겠군.’
어떻게하면 탑을 먼저 앞서간 인간들. 선조들을 자신이 손쉽게 사령을 할 수 있을지 질문을 하려 했지만 리오는 그만 두기로 했다.
아르토를 소환하여 사령했다는 건, 아르토의 신체 중 일부를 리오가 가지고 있다는 말이니 혹여나 인간의 과거를 리오가 알았다는 걸 깨달을 수도 있었다.
‘괜한 걱정을 하실 것 같군.’
질문을 바꾸기로 했다. 어떻게 하면 아르토를 마음대로 사령할 수 있을지 연관이 있는 소환 마법을 통해 알아보기로 했다.
“… 혹시 소환 마법에 대해서 알고 계십니까?”
"건방진 제자 같으니, 확실히 네 스승이 세상의 모든 마법에 대해서 알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소환 마법 정도라면 어느 정도 알고 있느니라.“
거드름을 피며 안드레이는 맥주를 더 주문하기 위해 정령왕인 펍의 주인장을 불렀다.
정체를 숨기고 펍을 운영하던 주인장은 불편한 기색으로 리오와 안드레이의 앞에 왔고, 그가 맥주잔을 체우고 있을 때 안드레이는 말을 이었다.
“하지만… 네가 소환 마법에 대해서 알고 싶다면야. 나보다는 소환 마법 전문가한테 배우는 편이 좋겠지. 그렇지 않은가 주인장?”
대뜸 불린 주인장은 당황한 기색으로 답했다.
“하하. 무, 무슨 말씀이십니까? 손님.”
“이보게 정령왕. 무슨 연유로 정령왕쯤이나 되는 인물이 이 세계로 왔고, 펍이나 운영하고 있는지 나는 알 도리가 없네…. 하지만 자네 같은 존재라면 펍만 운영하는 것도 꽤나 심심할 터. 비는 시간에 인간 한 명 맡아보는 건 어떠한가? 자네 전문인 소환 마법에 관심이 있다는데.”
“하하. 제 전문은 노움들 닦달하여 술 빚는 일뿐이지요. 무슨 소환 마법입니까? 자. 여기 시원한 맥주 나왔으니 한 잔 들이키시지요.”
“뭐, 그런가. 자네 의지가 그렇다면 할 수 없군.”
안드레이는 그 말을 마치고 리오에게 시선을 돌렸다.
“소환 마법의 대가 앞에서 내가 이렇다 저렇다 할 말이 없구나. 나로서는 네가 저 친구에게 배웠으면 한 다만…….”
그가 무슨 말을 하고 싶어 하는지 리오는 눈치를 챘다.
‘… 내가 설득 하라고?’
리오는 고개를 끄덕였다.
“스승은 스스로 구해야하는 법입니까…. 알겠습니다.”
“그래. 그럼 더 할 말이 없으면 난 이만 가보겠느니라. 잘 해보 거라.”
용무가 끝난 듯 보이니 안드레이는 맥주를 깔끔히 비우고 자리를 떴다.
배웅을 하고 제 자리로 돌아온 리오는 펍의 주인을 설득할 방법을 곰곰이 생각했다.
‘… 오히려 잘 된 걸지도. 소환 마법에 대해 이것저것 묻다보면 아르토에 대해서 스승님에게 말을 할 수밖에 없게 될지도 몰라. 그렇게 된 다면 내가 내 선조들이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알았다는 걸 깨닫게 되실 거고…. 그래. 이 편이 낫지.’
주인장과 말문을 트기 위해 리오는 펍을 둘러보다 익숙한 술을 발견했다.
‘… 저건 설마?’
병에 담긴 걸쭉한 하얀 액체. 막걸리와 비슷해 보이는 주류를 발견한 리오는 눈을 부릅떴다.
“저거 혹시 막걸… 아니. 이 이름은 아니겠지…… 한 잔 부탁드립니다.”
리오의 말에 주인장은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다.
그는 안드레이가 있을 때와는 변한 말투로 말했다.
“음? 저건… 보는 눈이 있군 애송이. 저건 제가 직접 담근 건데…….”
내어줄지 말지 고민을 하는 듯 하더니, 결국 하얀 탁주를 진열대에서 꺼내었다.
뚜껑을 열자 익숙한 냄새가 났다. 곡식들을 발효시켜 만든 탁주가 리오의 잔을 가득 채워졌다.
“예전 생각이 나는 군. 사실 예전에… 너 같은 어느 애송이 인간에게 이런 술이 있다는 말을 들었지. 전 세계의 모든 명주는 다 마셔본 나인데, 그때 그 인간이 말한 술이 도대체 무엇인지 몰라서… 어쩌다 보니 그놈이 말한 대로 내가 만들고 말았지.”
흔한 이종족들이 들락날락 거리는 펍의 주인 연기하고 있는 주인장.
사실은 정령왕인 그의 눈이 과거를 회상하는 듯 흐릿하게 변했다.
“이름도 모르는 젊은 청년이었다. 뭐 당연하지만 지금쯤 늙어 죽었겠지. 엄청 오래되었으니….”
확인을 하듯 주인장은 눈가를 치켜 올렸다.
“이 술은 내가 만든 것이니 이 세상 어디에도 없다. 하지만 그 인간과 동족인 너라면… 알고 있겠지. 이게 그 인간이 말했던 술이 맞나? 곡식을 물과 함께 오랜 시간 숙성시키는 술.”
막걸리를 말하는 것이렸다. 리오는 주인장이 직접 제조한 술에 입을 대었다.
‘탁주는 별로 안 좋아했는데…….’
술의 맛에 리오는 감탄했다. 지구에서 흔히 먹던 그런 맛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을 정도였다.
사흘을 굶고 먹는 밥처럼 꿀맛이 날 정도였다.
“그 설명과 이 맛. 확실히 제가 있던 세상의 것과 비슷하네요. 그런 설명만으로 직접 만들어내시다니 대단하신데요?”
“흥. 애주가인 내가 맛보지 못한 술이 있다는 게 그저 분했을 뿐이다.”
리오에게 볼일이 끝난 듯. 펍의 주인은 몸을 돌렸다.
본래 정체가 모든 정령들을 다스리는 정령왕임에도 평범한 펍의 주인을 하고 있다니.
‘… 막걸리를 그냥 먹으니 역시 좀 뭔가 부족한데.’
하얀 탁주와 항상 함께 먹던 것이 떠올랐다.
마침 서비스로 내놓아져 있던 탄산음료를 리오는 술에 섞었다.
“사장님. 이거 한 번 드셔보시렵니까?”
“흥. 그건 제조하면서 지겹게 먹었다.”
“개인차가 있긴 하지만… 원래 그 술은 다른 거랑 섞으면 맛있거든요.”
리오의 말에 호기심이 동한 듯 싶었으나 그는 리오의 잔을 잠시 바라보다 눈을 돌렸다.
“근무 중이다.”
일하는 시간이라 리오는 그에게 더 이상 술을 권하지 않았다.
“그럼… 마법을 부려놨으니 한 번 맛보시길 바랍니다.”
계산을 하고 리오는 밖으로 나갔다.
제 24장 새 만남
이튿 날.
리오는 명장이라 불리는 케일을 만나기로 했다.
조렌의 소개로 만나기로 한 케일과는 딱히 구체적인 약속을 하지 않았다.
그저 본인의 위치만을 리오에게 알려왔으니 시간이 있을 때 아무 때나 오라는 말이었다.
‘여기쯤인가?’
명장이라 불릴 정도면 꽤나 유명할 건데, 리오는 케일을 만나기 전에 여러 주민들과 대화를 해보았지만 아는 이들이 없었다.
칼과 리사도 모르는 눈치였고, 마을에서 가장 큰 여관의 마담인 이리나 조차 모르는 것 같았다.
모만에게 질문을 하고 싶었지만 그가 있을 법한 곳에 도착할 때면 항상 그는 어디론가 사라져있었다.
결국 케일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른 채로 리오는 그의 집을 방문했다.
‘대장장이들이 몰려있는 곳과 떨어져있군.’
마을에서 무기를 만들 줄 아는 모든 대장장이들은 조렌총판의 소속이었다. 조렌총판은 무기총판이니 당연한 이야기였다.
조렌총판은 무기를 만들기 위한 모든 물자를 대주고, 대장장이들은 만든다. 그리고 일정 대금을 받고 수제무기를 조렌총판에게 넘긴다.
이 시스템을 위하여 모든 대장장이들은 총판과 가까운 거리에 위치해 있었다. 그 탓에 총판의 주변은 대장장이들의 망치가 끊이질 않는다.
하지만… 이 명장이라는 주민은 그 시스템에서 일탈해 있다는 걸 리오는 그의 집앞에 도착하자마자 느낄 수 있었다.
명장으로써의 자주권이라고 하기엔 부자연스러웠다.
명장이라면 좀 더 총판과 교류를 하며 만들어진 체계를 이용해야 한다.
비유를 하자면 이 탑의 세계는 전쟁 전의 어느 국가와 같다.
명장이라고 불릴 정도의 대장장이라면 우수한 탑의 모험가에게 질 좋은 재료로 만들어진 우수한 검을 선사해주어야 한다.
이 세계의 상황과 흘러가는 분위기는 그러하니까.
결국 탑의 세계에서 귀환하는 건 모험가 혼자지만, 누군가 해낸다면 주민 전체가 귀환하는 것 같은 대리만족을 모두가 느끼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누군가 업적을 갱신하고 누군가 탑을 오를 때마다 마치 한 가족처럼 기뻐해주는 것이다.
그 대리만족을 가장 크게 느끼는 것이 바로 대장장이다.
그들이 피땀을 흘려 만든 수제 무기로 누군가 위대한 일을 해낸다면 그들로써는 더할 나위없는 기쁨이다.
적어도 리오가 총판에서 일 할 적, 만난 대장장이들은 모두 그러한 듯 했다.
‘이 케일이라는 분은 더 이상 무기를 만들지 않는 걸까?’
대리만족을 좀 더 느끼기 위해 대장장이들은 총판의 주변에서 생활한다.
리오가 생각하기로는 케일이 무기제작을 통한 대리만족을 더 이상 느끼지 못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했다.
‘단순히 날 찾는 건. 예전에 만들어두었던 무기의 사용자가 궁금했을 뿐일지도.’
리오가 케일의 집에 일정거리 이상 다가가는 순간이었다. 대문에 그려져 있던 사자 얼굴 조각이 움직였다.
“이 앞은 케일님의 사유지. 그대는 누구이며 방문목적은 무엇인가?”
이러한 보안마법은 자주 보았기 때문에 리오는 자연스럽게 대답했다.
“… 인간 리오입니다. 케일이라는 분께서 저를 한 번 만났으면 하신다고 하셔서 찾아뵙게 되었습니다.”
사자 조각은 한 동안 말이 없다가 입을 열었다.
“케일님의 허가가 떨어졌다. 출입을 허한다.”
드르륵.
그다지 크지 않은 대문이었건만, 사자 조각의 얼굴이 갈라지며 듣기 싫은 소리를 내었다. 기름칠이 안되어 있더라도 방문이 잦더라면 이런 소리는 나지 않을 터였다.
힘겹게 열리는 것을 기다리자 케일의 생활처를 두눈으로 볼 수 있었다.
쾅! 쾅! 쾅!
대문의 안으로 들어오는 순간부터 망치소리가 들려왔다. 여전히 케일이 명장으로써 활동하고 있다는 것을 드러내는 듯 했다.
“… 운동장과 목각인형, 동상… 수많은 무기들이라.”
넓은 사유지의 안쪽에는 기괴한 풍경이 펼쳐져있었다.
온갖 이종족들을 조각한 동상. 지금 당장 일어날 것처럼 생동감이 살아있었다.
그리고 저택의 앞에 있는 운동장은 케일의 정체가 무엇일지 고개를 갸웃하게 만들었다.
무기를 만드는 장인일 것인데, 운동장과… 그 운동장을 차지하고 있는 수많은 목각인형, 그 앞의 수많은 무기들.
마치 영화에서나 보았던 단체 수련장을 떠올리게 했다. 목각인형을 상대로 신체를 단련하는 풍경.
“뭐, 흔히 소설을 보면 검사가 대장장이로 직종 변경하는 건 흔했으니까…. 케일이라는 분도 그런 걸려나.”
케일에 대해서는 대충 넘겨짚었지만. 마당을 이런 흉흉한 분위기로 조성해놓을 것을 보아 제대로 된 성격이 아닐 것만은 분명했다.
“그럼… 어디로 가야하려나. 안내인도 없고…. 망치소리를 따라가면 되려나.”
사유지를 울리는 망치소리를 따라 리오는 걷기 시작했다.
바닥에 깔린 가지런한 블록, 곳곳에 있는 동상들.
하나 하나 둘러보며 케일이 있을 장소에 도착했다.
‘그러고 보니 케일씨에 대해서 조렌님은 말씀하시길 꺼려하셨지. 아니… 말로 표현하기 힘들다는 분위기였는데.’
명장 케일은 어떤 종족일까. 어떤 종족이기에 수백 년을 살아온 조렌의 입을 막은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