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의 탑-72화 (72/190)

<-- 72 회: 3-6 -->

***

알과 만나 적당한 방패를 구입하고, 리오는 자신의 스승인 안드레이를 찾아갔다.

‘그러고 보니… 스승님도 다른 인간에 대한 중요한 진실을 숨기셨지.’

리오는 20층을 오르기 전. 자신의 스승에게 다른 인간들에 대해 질문했다.

안드레이는 모든 것을 대답하는 것처럼 보였으나, 단편적인 부분만… 깨끗한 부분만을 리오에게 보여주고 들려주었다.

의도적으로 그랬다는 것쯤은 리오도 눈치 챌 수 있다.

옛 조상들이 모두 템플러가 되었다는 말을 듣게 되면 충격을 받고 괜히 이런 저런 일에 흔들리게 될테니 숨긴 것일 것이다.

모만도 마찬가지로 굳이 이야기를 할 필요는 없으니 템플러와 관계된 이야기를 할 때마다 그 사실을 고의로 숨긴 것일 것이다.

자신의 동족들 대부분이 악독한 인물이었다는 건, 들려주어서 좋은 일이 없을 테니까.

‘한 동안은 모르는 척을 하고 있어야겠지. 언젠가… 제대로 말씀을 해주실 거야.’

용의 성지로 도착한 리오는 안드레이의 마중을 받았다.

근처에만 도착해도 제자의 기척쯤은 가뿐히 잡아내는 안드레이는 놀란 얼굴로 리오를 맞이했다.

“무슨 일이더냐? 마법을 포기한 이후로는 이 근처로 얼씬도 안하던 놈이. 하하.”

평상시 깔끔한 모습을 유지하던 그의 옷차림은 오늘따라 유난히 유색으로 물들어져 있었다.

“앞으로 제 일정과 묻고 싶은 게 있어서 잠시 들렸습니다. 그리고 20층을 돌파 했다는 보고도 하고요.”

“네놈이 20층을 어떻게 통과하는지 모두 보고 있었다. 축하한다.”

그럴 만한 사이도 아니건만, 부드럽지 못한 안드레이의 손바닥이 리오의 어깨를 두들겼다.

“수고했다. 20층은 10층과 달리 마음고생이 심했구나. 나와 한 약속 때문에 너무 자신을 몰아세우지는 말거라.”

“그냥 제 자신이 못난 탓에 고생을 했던 걸요… 그보다. 무슨 실험이라도 하고 계셨던 겁니까?”

드래곤의 얼굴을 가진 안드레이는 자신의 몸에 코를 들이대고 냄새를 맡더니 인상을 찡그렸다.

“드라칸이라도 이 마을의 주민이 아니더냐. 먹고 살기 위해 이런 저런 일을 하고 있지.”

드래곤과 드라칸.

마을 주민들이 공물이라도 받쳐야할 대상이건만, 그들 스스로 재화를 벌고 있다니. 흔히 듣던 판타지의 용족과는 역시 들렸다.

‘그래도 드래곤이나 드라칸 정도면 세금 같은 걸 받아먹는 줄 알았는데, 그런 특권 같은 건 없는 모양이군.’

안드레이는 리오가 생각에 빠진 사이에 마법을 이용하여 스스로에게 정화마법을 시전했다. 순식간에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꾸릿한 냄새와 옷의 얼룩들이 사라졌다.

“아까 앞으로의 일정이라고 했나? 생각해둔 것이라도 있는 모양이군. 듣자하니 쿠란이라는 마족과 함께 움직이기로 했다는 것 같은데. 그 문제라면 난 별로 상관없다. 난 그저 네가 탑을 오르는 모습만을 보면 되니까.”

“그런 이야기가 아닙니다. 애초에 쿠란과는… 문제가 있어서 헤어졌으니까요.”

“그래? 그 마족의 파티는 분명 너에게 도움이 될 것이거늘…….”

리오에게 선물한 팔찌를 통해 탑을 어떻게 오르는지 모두 보고 있었던 안드레이다.

그는 쿠란의 파티에서 리오가 빠져나온 것이 아쉬운 모양이었다. 틀림없이 그 파티에 있었다면 무척이나 빠른 속도로 정상을 향해 나아갈 테니까.

“그럼 그게 아니라면 무슨 이야기지?”

“긴 이야기가 될 것 같은데…….”

용의 성지 안에 있는 안드레이의 방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던 리오였지만 안드레이는 생각이 다른 듯 했다.

“음. 나도 내 제자와 함께 차라도 기울이며 여유롭게 이야기를 나누고 싶지만… 지금 용의 성지는 아무리 너라고 해도 들어올 수가 없다.”

“예? 그럼 할 수 없죠. 밖에서 이야기 하시렵니까?”

“그랬으면 좋겠구나.”

용의 성지를 뒤로 하고 리오와 안드레이는 왁자지껄한 마을의 번화가로 이동했다.

탑의 근처로 이동한 까닭에 리오와 안드레이를 보는 눈이 많아졌지만. 둘은 이미 그러한 시선에 익숙한 사람들이었다. 누가 흉을 보든, 누가 어떤 자신의 이름을 거론하며 대화를 나누든.

그게 당연한 것이라며 생각할 정도로 둘은 주민들의 주목에 익숙해져 있었다.

‘스승님과 펍 같은 곳을 다 올 줄이야. 예전이라면 생각도 못했는데.’

아직 낮이긴 하지만, 적당히 분위기 있는 펍으로 둘은 이동했다.

“어서오십시오! 노움이 빚은 콜……! 히익!”

주인장의 씩씩한 목소리가 울리다 중간에 멎었다. 드래곤의 하수인. 드라칸 안드레이를 보고 놀란 것이었다.

“호오. 정령왕이 술집 따위를 하고 있다니… 아니 아니, 술집 따위라니. 실례로군. 사과하도록 하지.”

자주 오는 펍이었건만, 주인이 정령왕이라는 사실은 또 처음 듣는 리오였다.

‘다른 곳에 비해 확실히 술맛은 으뜸인데… 값이 싸더라니만. 정령왕의 횡포로 만들어진 술인가.’

“재미있군. 펍을 오는 것은 오랜 만인데… 내 제자가 생각보다 안목이 있군.”

스승의 드문 칭찬에 리오는 웃음을 터트렸다.

주인장에게 맥주를 주문하고 둘은 술잔을 기울이며 입을 열었다.

“그래. 이야기를 해 보거라. 앞으로의 일정과, 나에게 묻고 싶은 것이고 하지 않았더냐?”

안드레이의 말에 대답하기 전에 리오는 맥주를 한 모금 들이켰다.

앞으로. 어떻게 할지. 이야기를 꺼내기가 조금 망설여지기 때문이었다.

듣기에는 허무맹량할 이야기. 아니, 애초에 인간이 탑을 오르는 것부터 허무맹량하다.

자신감을 가지고 리오는 입을 열었다.

“스승님께서는 저에게 선물한 팔찌를 통해… 제가 탑을 어떻게 오르는지 모두 보고 계시죠?”

“당연한 질문을 하는 군. 어떤 기발한 방법으로 올라가는지. 탑이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사고, 다른 종족들이 가지지 않은 인간의 특징 같은 걸 나는 찾고 있다.”

“그렇다면 알고 계실 겁니다. 제가 탑을 오를 때마다 가장 위험을 처하는 상황이 어느 때 인지.”

떠보는 투로 말한 것처럼 들렸지만, 정말 안드레이가 리오를 보고 있었다면 알 수 있는 물음이었다.

그러나 안드레이는 쉬이 대답하지 못했다. 왜냐하면 그가 본 리오는 항상 손쉽게 탑을 올랐고… 목숨이 처할 정도로 어려움이 없었다.

“거짓말을 한 것처럼 되어버렸구나. 사실을 말하자면… 아무리 나라고 해도 탑 내부에 있는 너를 항상 볼 수 있는 건 아니다.”

리오로써는 전혀 예상도 못한 대답이었다. 항상 지켜보고 있을 거라 생각했건 만…….

“예? 무슨 말씀이십니까?”

“이따금씩 네 모습을 보지 못할 때가 있더구나. 단순히 탑 때문에 그런 거라 생각해서 그동안 잠자코 있었는데, 이렇게 된 김에 확인을 해야겠군. 그래. 혹시 10층, 17층 20층을 오를 때. 무슨 일이 있었더냐?”

“10층, 17층… 20층……?”

안드레이의 말에 리오는 인상이 구겨졌다.

10층과 20층만이 안드레이의 마법을 방해한다면 고개를 끄덕일 수 있다.

그 층들은 나름 중요하다고 할 수 있는 층이다. 최상의 컨디션을 위해 탑이 리오의 몸에 걸린 마법을 모두 일시적으로 해지한다던가… 하는 일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17층은 다르다. 리오의 기억으로 17층은 애를 먹긴 했지만 어려울 것 없는 평범한 층이었다.

10층과 20층처럼 리오가 피를 흘리는 일 따위는 없었다.

‘… 17층에서 내가 무슨 일이 있었지?’

17층에 오르던 날을 조심스럽게 회상했다.

그 날 아침.

탑을 향해 가던 도중, 탑의 입구에서, 탑의 대기실에서, 탑의 내부에서…….

“아!”

“뭔가 알아낸 모양이구나.”

10층과 17층 그리고 20층의 공통점.

이 층들에는 모두 리오의 앞을 가로 막는 잔인무도한 예언자들이 있었다.

‘오라클들… 그래. 내가 있는 층에 그들이 침입을 해왔어. 오라클들이 침입을 해오면 스승님은 나를 볼 수 없게 되는 건가.’

알게 된 사실을 안드레이에게 말하기로 했다.

“실은… 방금 말씀하신 그 층에는 모두 오라클들이 있었습니다. 아마 그놈들 때문에 제가 보이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안드레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가… 하긴, 오라클들이 가진 축복은 살인의 흔적을 남기지 않는 것인데. 누군가가 지켜보고 있다면 흔적이 남을 수밖에 없지. 그래서 내 마법이 차단 된 건가.”

마법을 보강할 수 있는 방법이 있을지 고민에 빠진 안드레이에게 리오는 입을 열었다.

“실은… 아까 제가 드린 질문과 그놈들이 연관이 있습니다.”

“아까 질문? 아아. 네가 가장 위험에 빠질 때라고 했나?”

“예.”

템플러와 리오를 연관 짓자 안드레이 또한 떠오르는 것이 이것 저것 있는 모양이었다. 표정이 급격히 굳어지기 시작했다.

“… 그래. 그놈들이 너에게 관심을 유독 보일만 하지. 혹 네가 가장 위험에 빠질 때가 그놈들이 네가 있는 층으로 침입을 해올 때이더냐?”

당연하다는 듯 리오는 말없이 술로 목을 축였다. 맛이 나던 맥주는 씁쓸하게 느껴졌다.

“삼파전이니까요. 탑이 내어준 목표를 상대하기도 버거운데, 더 강한 놈들이 절 노리니까… 가장 위험해질 때죠.”

“그래서? 그 질문을 한 의도는 무엇이더냐?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거지?”

마지막으로 맥주를 모두 들이켰다. 리오가 앞으로 할 말은 인생최대의 목표가 될 수도 있었다.

사실. 탑의 모험가라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다. 모두가 템플러를 어찌할 수 없는 자연재해라고 무의식적으로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그들이 미쳐 날뛰고 있는 것이다.

17층. 그 곳에서 리오를 상대한 템플러가 말했듯이. 범죄자를 보고 도망쳐야하는 게 아니라. 전력으로 상대해야 한다.

“위험요소의 제거. 라고 하면 설명이 되겠습니까?”

설명 없는 몇 마디뿐이었다. 그것으로 충분했던지 안드레이의 용안이 크게 떠졌다.

“정말이지. 인간다운 말도 안 되는 생각만 하는군.”

오라클에 대한 정보는 아무것도 없다.

얼굴은 물론, 몸의 대략적인 형체나 냄새 따위를 맡을 수도 있는 것이 아닌 이들을 잡겠다고 나서는 것이다.

말하자면, 그림자뿐인 살인마. 그것도 한두 명이 아니다.

“그래. 네가 탑을 오를 거라면, 그 놈들을 모두 처리하는 편이 좋다. 인간이랑 오라클들은 인연이 긴 편이니까… 분명 마지막까지 방해가 될 테니 미리 처단하는 편이 좋겠지.”

하지만 템플러는 병균과 같다. 수를 줄여도 줄인 것처럼 보일 뿐, 잠복기간이 지나면 다시 모습을 드러낼 것이며 오라클이 괴멸하더라도 오라클과 비슷한 새로운 조직이 나타날 것이다.

그러나 이건 어디까지나 리오가 오라클들을 괴멸시켰을 때의 이야기다.

“제자야. 당연하지만 알고 있겠지? 어떻게 템플러를 잡을 생각인지는 모르겠다만. 아마 잡기 위해서는……”

드물게도 리오는 존경하는 스승의 말을 끊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