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5 회: 2-31 -->
곰곰이 생각해보았지만 더해야 할 것이 없던 리오였다.
“일단 내 손을 잡고 복창해.”
“그러지.”
실로 ‘여자’라고 인식할 만한 이성의 손은 잡는 것은 너무나도 오랜만이었기 때문에, 쿠란의 손을 잡는 순간. 리오는 화들짝 놀랐다.
‘여, 여자 손이 이렇게 부드럽고 따뜻했던가?’
“왜 그래? 혹시 마력에 닿으면 곤란한 체질이야? 내 손에 닿는 순간 심장이 크게 요동치는데…… 으음 곤란한 걸.”
“아, 아무것도 아니다.”
그 대답에 아직 이름도 모르는 동료들이 웃음을 터트렸다.
“큭…….”
“풉…….”
“소문대로 재미있는 인간이야.”
영문을 모르는 쿠란은 고개를 갸웃하더니 상황이 정리되는 듯 하자 말을 이었다.
“나. 리오는 앞으로 쿠란의 파티에 들어가며.”
“나. 리오는 앞으로 쿠란의 파티에 들어가며.”
“나. 파티장인 쿠란을 주인님이라 부르며 평생 존칭과 함께 섬길 것을…….”
“거기. 마족에게는 성수가 쥐약이라고 하던데, 그 뒤에 있는 놈들 성수 없나……. 제길. 스승님께 이런 거라도 받아두는 건데.”
멍한 표정으로 변한 쿠란에게서 멀어지며 리오는 탑을 향해 걸어갔다.
“네가 제정신이 아닌 마족이라는 걸 깜빡했다. 쿠란.”
쿵쾅대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리오는 탑의 입구 앞에 섰다.
“어서 20층 갑시다. 파장님.”
***
-20층 틈
서로 가볍게 통성명을 나누고 20층에 입장한 순간.
리오의 눈앞을 가벼운 한 글자가 가렸다.
‘틈…?’
20층의 이름은 틈.
그게 무엇을 말하고 있는 걸까. 다시 한 번 머릿속에 떠올릴 여유도 없이 이변은 시작되었다.
화르륵.
10층과 전혀 다른 시작점.
옹기종기 모여 있던 쿠란 일행들은 서로의 얼굴을 확인하고 주변을 살폈다. 흡사 도미노처럼 불이 밝혀지기 시작하는 20층은… 건물 안에서 이루어지는 전쟁터를 떠올리게 했다.
그러나 전쟁은 건물 안에서 이루어지지 않는다.
전쟁 따위가 건물 안에서 이루어지면, 무너지고 만다.
공성병기라 알려진 거대한 화살 형태의 발리스타를 건물 내부에서 반대편 벽을 향해 쏘는 행위 따위는 절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 뭐야 이건?”
퉁명스러운 쿠란의 말이 들려온 순간, 리오는 당황했던 정신을 번쩍 차렸다.
방금 전 통성명 했지만, 이제 막 만난 동료의 이름을 리오가 기억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거기 아까 라이칸스로프! 그리고 거기 바포멧트!…… 그리고 너! 미안! 이름 다 까먹었어. 너. 너! 너! 당장 저거 잡아!”
다급한 리오의 목소리가 도미노처럼 횃불이 켜지고 있는 건물 내부에 울렸다.
아마도… 횃불은 타임 리미트였다. 이 20층이 시작되는 건. 횃불들이 모두 켜지는 순간이다.
그 전까지 이곳을 모두 파악해야하고 앞으로 이루어질 전쟁을 대비해야만 한다.
발리스타 같은 것들이 괜히 있을 리가 없었다.
탑은 오로지 필요한 것들을 주어준다. 불필요한 것은 주지 않는다.
하지만 이제 막 파티에 참여한 리오의 말을 쿠란 일행들이 순순히 들을 리가 없었다.
그들이 리오를 신뢰하고 말고를 떠나서, 10층의 인원들과 달리 각자 한 실력 하는 주민들이었다.
누군가의 명령을 받는 것도 서글픈데, 파티장도 아닌 놈의 명령이라니.
“그런 말투는 그만 둬…….”
힘 좀 쓴다는 듯. 거대한 쇠망치를 들고 있는 바포멧트는 리오의 말에 이견을 다려다 중지 할 수밖에 없었다.
반대쪽에서, 어떠한 생명체가 날아오르려고 날개짓을 하고 있었다.
그 행동을 쿠란은 물론이고 리오. 그리고 그 일행들조차 모두 알아차렸다.
“뭐해? 당장 리오말 안 들어? 우리가 그렇게 힘든 게 한 걸 혼자서 한 인간이야!”
쿠란의 말에 어떤 고생을 했었을 지 리오는 상상을 하지 않았다.
그럴 여유가 없었다는 게 맞았다.
적은 아직까지 뭉쳐있는 쿠란 일행을 향해 어떠한 공격을 퍼부었다고, 감지했기 때문이었다.
‘발리스타는 공성병기! 그것이 건물 내부에 있다면 적은… 다수의 적 같은 게 아니야. 거대한 소수의 적! 혹은 하나!’
공성병기 다수를 설치해놓을 정도로 압도적인 크기를 가진 적의 공격.
리오는 일행의 가장 앞으로 나서며 방패를 들이 밀었다.
방패로 모든 것을 막아낼 생각은 없었다. 상대의 크기를 짐작해보니 아마도 대형급이었다.
정면에서 맞서는 것은 절대로 무리였다. 하지만… 지금은 등 뒤의 동료들을 위해서 해야만 했다.
무리를 해서라도 동료를 지킨다. 그것이 방패의 들고 있는 자의 숙명이 아닐까.
‘내가 이대로 쓰러져도…. 쓰러뜨릴 수 있을 거야.’
형태가 보이지 않는 공격이었기 때문에 리오는 완벽히 앤서러를 할 수 없었다.
콰아아앙!
“우와아아! 리오!”
모든 것을 막아낸 리오는 뒤로 데굴데굴 날아갔다.
인간의 몸으로는 감당해낼 수 없는 충격을 감당해낸 리오는 순식간에 망가진 방패를 보고 멍한 표정이 되었다.
‘내가 앤서러를 개판으로 하기는 했지만… 방패가…?’
벽에 처박힌 리오를 누군가 안고 이동하기 시작했다. 안전한 위치로 이동되자 아까 인사를 나누었던 뱀파이어가 리오의 목덜미를 물었다.
“윽… 안돼.”
“걱정하지 말아요. 나도 리오씨 같은 자식 가지고 싶지 않으니까. 리오씨 같은 남성은 파트너로 둬야하지 않겠어요? 단순히 치료행위에요.”
“치료… 행위?”
“예. 인간의 몸이 그렇게 나약하지 않다는 걸 리오씨가 몸소 보여주고 계시잖아요? 저의 피를 조금 넣는다고 해서 리오씨는 뱀파이어가 되지 않아요. 그저 제 피의 좋은 부분만 이용하시고 쓸모 없다는 듯 버리시겠죠. 남자들이 여자들을 버리는 것처럼.”
몸이 아픔에도 뱀파이어의 비유에 리오는 웃음을 터트렸다.
하지만 확실히, 그녀의 말대로 리오의 몸이 뱀파이어 바이러스를 죽이고, 이용할 수 있는 부분은 전신에 돌았다.
수분 만에 전신이 회복된 리오는 놀란 표정으로 뱀파이어에게 말했다.
“와, 이거 놀라운데… 회복 마법보다 좋잖아.”
“중독 되면 큰 일나요. 나중에 가면 많은 량의 피를 투입해야 하고… 그러다 보면 뱀파이어가 되는 거죠. 물론 그 전에 제가 중독되서 리오씨를 한 번에 흡혈 해버리겠지만.”
너무 무리하지 말고, 자주 다치지 말라는 말이렸다. 리오는 고개를 끄덕였다.
“… 전선에서 너무 이탈했다고. 돌아가지.”
일행을 공격했던 괴물의 괴성과 발리스타의 투성음이 들리는 곳으로 이동하자 리오는 적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저건……. 드레이크군.”
“예. 리오씨가 저희를 지켜주신 덕분에 기회를 잡을 수 있었던 모양이에요. 용캐도 날아다니는 걸 발리스타로 맞췄네요.”
“음……. 그건 아닌 모양인데.”
리오는 땅바닥에서 바둥 거리는 드레이크 향해 발리스타 전탄이 빗나가고 있는 걸 보고 웃음을 터트렸다.
쿠란은 발리스타 사수를 맡고 있는 자들을 향해 악담을 퍼붓고 있는 중인 모양이었다. 옆에서 좀 더 제대로 하라며 손짓 몸짓으로 욕설을 내뱉고 있었다.
그러다 제정신을 차린 드레이크가 다시 날아오르려 하면, 발리스타를 내려놓은 바포멧트가 쇠망치를 휘휘 흔들더니 투척한다.
쿵!
“이야….”
맑은 종소리가 울리는 듯한 착각조차 들렸다.
‘저 쇠망치 투척술은 뭐… 거의 백퍼센트 명중률이라도 봐도 되겠지. 제법 익숙해 보였어.’
시간이 생겼다고 판단한 리오는 쿠란의 옆으로 이동했다.
“좀 더 제대로 안 할래! 이 멍청한 멍멍아! 마계에 있는 삼두견의 머리가 하나 없는 상태인데, 네 머리로 할까? 응?”
“비, 빌어먹을 내가 왜…….”
힘들게 애를 쓰고 있는 라이칸스로프를 위해 리오는 쿠란에게 말을 걸었다.
“이봐. 할 말이 있다. 소중한 파티원을 갈굴 때가 아닌 것 같은데.”
“뭐야?”
“20층의 이름은 틈이다. 근데 지금까지 이 틈이 무엇을 말하는지, 나는 아직 떠올릴 수가 없어. 10층 같은 경우는 딱 오자마자 알아차렸지만……. 다른 분들은 틈에 대해서 감이 오신게 있습니까?”
파티장에게는 반말을 내뱉고, 파티원들에게는 존칭을 하니 쿠란의 눈이 붉게 변했다.
마족들의 특징 중 하나였는데, 하는 행동이 귀엽고 예쁘기까지 하니, 그 눈이 리오의 눈에는 무섭기보다 홍옥같이 보일 따름이었다.
“당신은 없습니까? 파티장님?”
“흥. 뭐 그런 거 아니야? 난 여태 바포맷트의 쇠망치를 맞고 육신 멀쩡한 놈을 본적이 없어. 그럼 이거지. 열심히 두들겨서 저 단단한 도마뱀 비늘에 틈을 만들어라. 그리고 그걸 공략해라. 이거 아니야?”
“음…. 경황이 없어서 아직 그렇게 까진 생각하진 않았는데…… 확실히 그럴 법하군.”
하지만… 설치되어 있는 발리스타를 보니 리오는 틈을 만들어야 하는 조건이 발리스타로 고정되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괜히 발리스타가 있을 것 같지는 않아. 단순히 날아다니는 놈을 떨어뜨리는 건 모험가의 재량으로도 할수 있거든. 아마도 틈을 만들기 위해서 있는 것 같은……….”
“어이. 대장. 발리스타 다 떨어졌는데? 반대쪽도 다 떨어진 모양이고.”
들려오는 소식에 리오의 표정이 굳었다.
‘느낌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