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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오는 테일러를 통해 안나라는 인물과 그의 남편이 어떤 최후를 맞이했는지 읽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그들은 죽었어.’
아니, 테일러는 탑을 두 분이서 같이 오르다 행방불명이라 했다.
하지만 테일러가 성인이 될 때까지, 리오의 손에 죽고 나서까지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걸 보면… 그들이 죽은 건 분명하다.
아까는 일기장을 보기가 두렵다고 했지만, 지금은 뒷내용이 궁금해졌다.
‘여기가 끝이라서 써놓았지만… 아직 남아있어.’
조심스럽게 뒤를 넘겨보았다.
탑의 세계로 온지 50년째. 날씨 변덕이 심함.
드디어… 드디어. 내일 나는 탑의 마지막 층에 도전한다.
여기까지 어떻게 올수 있었는지 나 자신조차 알 수가 없다. 그저… 나에게 희생된 이들에게 미안할 따름이다. 난 이 일기장을 매일 같이 보며 내 죄를 잊지 않을 것이다.
애초에 그러기 위해 내 죄들을 기록해놓은 것들이니까.
잔인무도한 오라클들, 그리고 모험가연합, 나의 아내 안나.
모두와 함께 내일 탑을 오른다니. 정말 꿈만 같다.
오년 전. 내가 선택을 하려던 그날은 정말… 죽느냐 사느냐의 각오였는데. 모두가 결국 나와 함께 귀환을 하고 싶었다니. 설마 그 오라클 조차….
뭐, 탑의 눈동자는 나로 인해 모두가 인연에도 없던 주민조차 95층까지 올라올 수 있었다고 하면서 이게 인간의 힘 어쩌느니 한다.
그게 사실인지 아닌지를 떠나서……. 나는 여기까지 올라오면서 내가 누군가에게 받은 도움들을 떠올렸다.
수많은 고난들을 떠올리니 한 가지 사실은 확실하게 말 할 수 있었다.
이곳은 절대로 인간의 혼자 힘으로 오를 수가 없다.
이것만은 확실하다. 아무리 재수가 좋은 인간이라도 복권을 백번이나 연속으로 맞을 리가 없는 것과 같다.
그런데…….
어떻게 내 선조님들은 홀몸으로 탑을 정복하신 거지?
나는 그것이 궁금하다. 하지만… 지금은 내일 100층을 위한 준비만을 해야 하지 않을까 한다.
일기장의 다음은 부디 지구에서 이어서 쓸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음…….’
리오는 다음 장으로 넘기려던 손을 멈칫했다.
이미 엔딩을 알고 있는 책이었지만… 여러 가지 추측이 머릿속에 난무했다.
‘어떻게 죽었을까? 오라클들의 배신? 아니면 막강한 적이 100층에서 기다리고 있었다던가…….’
오로지 그가 실패하는 내용으로 모든 것을 예상했다. 그러나 뒷장의 내용은 뜻밖의 알 수 없는 메모들만이 적혀있었다.
‘내 이야기는 무수히 많은 공략법 중 하나일 뿐.’
‘자신이 가진 기술에 실망을 하지 말고 탑을 오르라.’
‘인간이 어째서 여태 혼자 귀환을 해내었는가. 그것은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어서일 뿐.’
가장 밑에는 원한이 깃든 것처럼, 피로 쓴 글씨가 쓰여 있었다.
‘탑의 난이도가 어떻게 잡아지는지 생각하라.’
질문을 던지는 듯한 메모에 리오는 손쉽게 답을 내릴 수 있었다.
‘이 세계는 이런 저런 종족들이 살고 있어. 그 수많은 종족들의 힘을 통계로 내어 1층부터 100층까지 난이도를 잡지.’
가령, 탑의 세계에 강한 힘을 가진 희귀한 종족들이 어느 순간을 기점으로 몰살당한다면…….
‘탑의 난이도는 내려가겠지…….’
95층부터 많은 수의 인원들이 함께 탑을 오르기 시작했다.
그 수는 점점 줄기 시작했을 것이고, 100층을 도전하는 당일.
무엇이 적으로 나왔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날 100층은 100층답지 않았을 것이다.
인간이 혼자 상대할 수 있을 정도로.
‘역시 보지 않는 게 좋았어…….’
중간부터는 흥미진진하게 읽기 시작했다. 하지만 역시나. 리오는 일기장을 모두 읽고 나서 후회를 하고 말았다.
선조들이 어째서 템플러를 선택했는지, 어째서 탑을 혼자 올라야만 했는지,
지구인이 저지르고 간 의 더러운 치부를 모두 보고야 말았다.
결국. 테일러의 아버지도 죽은 것이 아니라, 아들을 내버려 둔 채 혼자 귀환을 했으리라.
20장 20층
아무리 깨끗한 성인이라고 해도, 결국은 더러운 부분은 있길 마련이라는 걸, 리오는 어린 시절에 깨달았다.
아무리 대단한 위업을 이뤄낸 인간이라고 해도, 사실은 모두가 살인만의 탈을 쓰고 있다.
놀랄 것 없다.
자국에게는 영웅이라 불릴 위인도, 상대 나라에게는 잔인무도한 살인마, 악인일 것이다.
악은 어디에나 있고 그 반대도 마찬가지다.
지구의 생년월일대로라면 테일러의 아버지는 리오와 그다지 나이차이가 나질 않을 테지만, 이곳에 이동된 시간은 수십 년의 차이가 나는 모양이었다.
설사 동갑내기가 살인마라고 해도 놀라울 것 없었다.
“모든 일에 무감각해지는데….”
마음을 다잡고 리오는 20층으로 갈 준비를 시작했다.
일기장을 통해 알게 된 선조들의 악습은 리오가 굳이 이어나갈 필요가 없다.
누군가는 과거의 기록을 통해 미래를 예지한 다는 말을 했지만.
인간은 과거의 기록을 통해 똑같은 일이 되풀이 되지 않도록 잘못 된 점을 고친다.
‘그래. 고치면 되. 허심탄회하게 풀어놓자. 스승님이나 모만씨에게… 혹은 앞으로 함께 할 동료들에게.’
당장 물색해둔 동료들은 없었지만. 조만간, 리오는 함께할 이들을 스스로 만들어 내거나 찾아낼 것이었다.
‘어쩌면 쿠란과 함께 할 지도 모르고.’
슬슬 위로 가는 것이 벅찼다. 인간의 한계라는 것이 다가오고 있었다.
‘이렇게 빨리 혼자 다니는 걸 포기할 줄이야…….’
탑을 향하고 있을 때, 누군가 리오의 앞을 가로 막았다.
“어이!”
상당이 무례하기 짝이 없는 말투에 행동이었지만, 리오의 얼굴을 보고 넘어가기로 했다.
“아침부터 네 얼굴 보는 게… 뭐, 내 입장에선 딱히 기분 나쁜 건 아닌데. 무슨 용무지?”
제법 사근사근해진 말투로 대답하자 쿠란은 기분 좋은 미소를 내보이며 손을 내밀었다.
“으흠! 건방지게! 이제 약속대로 내 파티로 들어와 주지 않겠어?”
그 말에 설마 하는 표정으로 리오는 물었다.
“… 맙소사. 벌써 20층에?”
“그래. 네가 오늘 20층에 도전하는 것 같아서 조금 서둘렀지. 아니, 네가 일부러 날 기다려 준거 아니야? 어제 하루는 푹 쉬었던 모양인데…… 집에서 하루 종일 내 생각 한 건 아니지?”
어제 하루는 푹 쉬지도 못하고 심란한 채로 보냈던 리오는 쿠란의 말에 한숨을 내쉬었다.
천진난만한 성격은 도대체 얼마나 강하기에 무법지대인 마계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는지 의문이 들었다.
“하, 한숨까지……. 위험한 남자야! 널 파티에 넣고 야영 같을 걸 하면 안 되겠어!”
“이왕이면 파티 이야기는 없던 걸로 하지 않겠어? 난 밤이 되면 짐승이 된다고.”
“괜찮아. 내 파티엔 뱀파이어도 있고… 라이칸스로프도 있으니까.”
밤이 되면 진짜 짐승이 되는 이들이 거론 되었다. 리오는 무심코 쿠란의 뒤에 있던 이들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하얀 피부를 가진 미모의 여성이 송곳니를 내보이며 리오에게 짧게 인했다.
그 뒤를 이어 상체를 훌러덩 벗고 있는 늑대인간이 리오에게 눈으로 인사했다.
‘내가 알기로 라이칸스로프와 뱀파이어는 서로 상극인 걸로 아는데…… 두 종족을 같은 파티에 넣다니, 뭐 당사자들의 합의가 있겠지만은. 대단한 여자군.’
어떤 집념이 강한지는 이미 맛볼 만큼 맛보았으니 리오는 어쩔 수 없이 쿠란의 파티에 들어가기로 했다.
‘이 파티는 그냥 쿠란의 마음에 든 인물들만 있는 게 아니야. 확실히 추려진 정예만 있군. 들어가도 나쁠 건 없겠어.’
“아아…. 알았어 알았어. 내가 졌다. 그냥 네 파티에 들어간다고 말하면서 손 잡으면 되던가?”
“아니. 다른 것도 해야지.”
파티를 아예 해본적이 없던 것도 아니기 때문에 리오는 쿠란의 말에 의아한 얼굴이 되었다.
‘손을 잡고, 파티에 들어간다는 의사표현 말고도 무언가 내가 해야하는 것이 있었던가?‘
그 행동만으로도 탑은 리오를 쿠란의 파티멤버로 인정하고 서로 같은 층으로, 같은 장소로 입장 할 수 있게 도움을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