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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장 기록
리오는 예전처럼 순탄하게 탑을 오르는 생활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쫓기는 기분이 드는 건 이유는. 여전히 새로운 업적 갱신이 없는 상태였으며 10층 이후로 쿠란일행이 하루에 1층씩 진행하던 것을 그만 두고, 무리하게 진행을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벌써 내 뒤를 바짝 쫓아왔나…….’
쿠란이 이미 18층을 진행하고 있음에도 리오는 하루의 여유를 두기로 했다.
무리를 하고도 여유 있는 이종족들과 다르게, 리오의 몸은 하루에 1층씩 올라와도 무리를 하고 있는 것이었다.
20층의 앞에서 하루 쉬기로 한 리오는 저번처럼 준비를 철저히 하기로 했다.
장비점검과 자기발전을 하고 있을 때, 한동안 얼굴을 본적이 없던 안드레이가 직접 리오를 찾아왔다.
“오랜만이구나.”
“스, 스승님?”
아무런 말도 없이 집으로 직접 찾아온 안드레이를 보고 리오는 화들짝 놀랐다.
“호오. 그 사이 제법 듬직해졌군. 마법은 이제 어쩔 도리가 없으니 길을 돌렸나?”
마법을 거론하는 안드레이의 말에 리오는 뜨금했다.
“기, 길을 돌렸다니, 무슨 말씀이신지요?”
“다른 쪽으로 활로를 찾았나 이 말이다. 본래 앤서러를 사용하기도 했고, 검과 방패를 사용하기도 했으니, 몸이 변하는 건 무리도 없다만…. 이렇게 육체가 짧은 시간 내 변할 리가 없는데……. 어쨌든 노력하고 있는 모양이군.”
‘내 몸이 변했다고?…… 아아. 폴의 재능 때문이겠군.’
리오는 안드레이가 말하는 육체의 변화를 폴의 재능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본래 소드 마스터의 재능을 가지고 있었던 폴. 그러나 본인이 하고 싶었던 것은 마법이었던 엘프.
그의 재능을 강탈로 빼앗은 이후, 리오는 마땅히 쓸 재능이 없었기 때문에 항시 폴의 재능을 사용하고 있었다.
‘TP로 축복 강화를 구입하길 정말 잘한 것 같아. 두 개의 재능을 동시에 사용할 수 있으니…….’
평상시에 리오의 전부라고 할 수 있는 앤서러를 매일같이 단련하고 있었다. 그 와중에 검을 휘두르는 일이 잦았는데, 아무래도 그 때문에 폴의 재능과 앤서러가 상호작용을 일으킨 모양이었다.
‘검을 휘두르기 쉽게… 몸이 변하고 있다는 건가.’
“몸을 이용하는 거라면 내가 딱히 도와줄 수 있는 게 없군. 원한다면 육체개조라도 해줄 수 있다만 그건 원치 않겠고…….”
“잘 아시네요.”
안드레이는 한계에 가로 막혔던 리오에게 아무런 도움을 줄 수 없었던 자신이 한탄스러웠다.
스승이라는 작자가, 제자에게 아무런 방향 제시조차 할 수가 없다니. 포기라는 단어만을 권할 수밖에 없다니. 더 이상 그런 것은 사양이었다.
“무언가 도움이 필요한 것은 없더냐?”
탑의 세계가 아니었다면, 직접 제조한 수준 높은 마법이 걸린 아티팩트 같은 것을 리오에게 선물 했겠지만, 탑의 세계에는 광산이 있는 것도 아니었고 모든 종족들이 드래곤과 드라칸에게 재물을 받치는 것도 아니었다.
모든 자원들은 일정하게 생산되고, 귀한 물건들은 모조리 탑의 내부에서만 희박한 확률로 얻을 수 있었다.
드라칸이라고 해도 총판을 통해서 마법재료들을 구입해야하고, 희귀한 재료에 대한 우선권이 주어지는 것이 아니었다.
그 때문에 아무리 드라칸이 대단한 마법지식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리오에게 대단한 아티팩트나 무구를 선물하는 것은 힘들었다.
“도움 말씀입니까?”
리오는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마법은 포기했으니 탑의 규칙상 도움을 청할 만한 것은 없었다.
무언가를 달라고 하는 것은 리오의 자존심이 걸렸고, 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러나 이 기회를 놓치기는 아깝고 하니, 리오는 어떠한 도움 보다는 궁금한 것을 묻기로 했다.
“도움 보다는… 하나 궁금한 것이 있는데…….”
리오가 우물쭈물하며 눈치를 보자 안드레이는 무엇이든지 대답해주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로써는, 제자에게 아무것도 해주지 못한 죄책감이 조금이라도 덜 수 있는 기회였다.
“무엇이더냐? 무엇이 알고 싶은 것이 길래 그리 눈치는 보는 것이더냐?”
리오는 최악의 마법사라 불린 알터의 마법서를 자신에게 던져주었던 용인이라면… 아마 자세히 알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인간에 대해, 여지껏 귀환을 해낸 인간들에 대해.
“제 조상님들에 대해 알고 싶습니다.”
“뭐……?”
가끔씩 모만이 어떠한 인간이었다. 어떠한 일을 저질렀다. 라는 식으로 이야기를 해주고는 했다.
하지만, 그는 정작 중요한 것을 알려주지 않았다.
그 인간이 어떤 이름으로 탑의 세계에서 불렸는지, 어떤 특징을 가졌는지.
말투는 옆에서 지켜본 투로 하지만, 본인조차 누군가에게 전해들은 것처럼 설명을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을 비껴간다.
그 미묘한 점을 리오는 얼마 전의 템플러를 만나면서 깨닫게 되었다.
과거의 기록을 분석하고 추측하여 미래를 예측하는 템플러들. 그 템플러들을 오라클이라는 이름으로 부른다.
그런 자들이 리오가 결국 템플러가 될 것이라고 예고했다.
‘아마도….’
애써 부인하려 해도, 템플러들이 미래를 보지 않고, 실제로 있는 과거의 기록(템플러들이 상대한 모험가들)을 통해 추측한 리오의 미래.
아마도 리오의 앞에 있던 대부분의 인간들은 템플러가 되었을 것이다.
리오는 그것을 확인하고 싶었다. 모만이 리오에게 마치 구전처럼 인간의 이야기를 해야만 하는 이유를……. 확인하고 싶었다.
“어째서냐? 아니. 이유는…… 그렇군.”
안드레이는 어두운 얼굴로 변했다.
리오에게 선물했던 팔찌를 통해 모든 것을 보고 있던 그는 리오와 템플러의 대화도 엿듣고 있었다.
리오의 가장 오랜 기간 옆에 있던 인물은 모만과 그라고 할 수 있다.
리오가 앓고 있는 고민은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을 정도다.
탑의 축복 : 강탈에 대해 자세히 알지 못해도, 리오가 10층을 오를 때 템플러 몇을 죽일 수 있었음에도 죽이지 못한 태도.
그것들을 통해. 리오가 누군가를 죽이는 것을 꺼리고 있다는 것쯤은 간단히 알 수 있었다.
그런 리오가 ‘과거의 기록을 통해 추측한 결과. 잔혹한 템플러가 되고 말 것이다.’ 라는 말 들었으니, 지금 당장이라도 확인 하고 싶은 것이었다.
정말. 자신의 선조들은 템플러가 되었는지.
“가장 궁금해 할 것 같은 이야기를 해주마. 분명 인간들 중에 템플러가 된 인간도 있다. 하지만…… 모두가 그렇지는 않다. 얼마 전에 만난 그 템플러의 말은 신경 쓰지 마라.”
“그, 그렇습니까? 하, 하긴 저런 인간도 있고 그런 인간도 있지. 하하…….”
“과 반수 이상의 인간들이 모두 정상적인 사고를 유지한 채로 탑을 올랐고, 정복했다. 리오. 너도 이야기는 들었을 텐데? 인간들이 해낸 그야말로 위대한 업적이라 불릴 만한 일들을……. 이 나조차도 해내지도, 생각하지도 못한 일들을 인간들은 해내었지. 심지어 그분조차도.”
리오는 고개를 끄덕였다.
지구를 살다 온 인간이라면 지구의 사회의 시스템을 그저 이곳에 옮긴 것뿐이었지만, 그것은 이곳에서는 혁명과도 같은 일었다.
혁명을 일으키는 것은 무척이나 어려운 일이고, 그것을 템플러 같은 정신이상자. 사이코패스들이 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그렇죠. 그건 분명… 템플러들이 할 리가 없어요.”
“잘 알고 있구나. 그래. 대부분의 인간들은 멀쩡한 정신을 유지한 채 탑을 정복했고, 극소수의 인간들만이 템플러였을 뿐이다.”
당연한 이치였다. 리오는 마음 속 무거운 것이 씻겨 내려가는 걸 느꼈다.
‘제정신이 아닌데 탑을 정복했을 리가 없잖아. 당연한 걸 나도 참 흔들렸군.’
“감사합니다. 스승님.”
“네 선조에 대해서 더 듣고 싶더냐?”
리오는 시간을 보고 고개를 저었다.
“마음 같아서는 듣고 싶지만… 밤이 늦었네요. 다음에 듣기로 하겠습니다. 스승님.”
밖이 어느새 어두워져 있었다. 안드레이는 식사 같은 걸 하지 않기 때문에 저녁대접 같은 걸 굳이 할 필요가 없었다.
“그럼…….”
안드레이는 리오의 인사를 받으며 마치 쫓기는 사람처럼 밖으로 나왔다.
‘스승과 제자인데… 난 너에게 줄 수 있는 게 없구나.’
스승과 제자.
상황상 할 수 없었기 때문에 시작한 관계.
그러나 제자는 스승의 은혜를 거부할 수밖에 없는 체질이었다. 결국 다른 마법사 덕분에 마법을 배울 수 있었다.
간신히 마법을 가르칠 수 있었지만, 안드레이는 자신의 마법을 가르쳐도, 리오에게 마법을 가르친 다는 기분이 들지 않았다.
첫 바퀴가 틀려먹었기 때문에, 스승으로써의 만족감이 없다.
그리고 또.
안드레이는 리오의 고민을 해결 해주고, 밝은 미소로 배웅 받으면서도 만족감을 얻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