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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의 탑-59화 (59/1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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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 다음날.

또 다시 눈앞에 가득 점멸하는 쿠란의 업적 갱신 메시지는 리오를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 마법을 쓰고 있는 거 아니야?’

약속을 어기고 마법을 쓰고 있다고 생각되었다.

‘아, 아냐. 나랑은 약속을 한 것이나 다름없어. 마법사는 스스로의 말을 어기면 죽을 때까지 안고 가야하는 패널티를 감수해야 하니까… 할 리가 없어.’

마을이 떠들썩해지기 시작했다. 아무도 넘어설 수가 없던 리오의 벽을 깨부순 마족.

쿠란의 이름으로 탑의 세계가 요동 쳤다.

모만이 리오를 비교의 눈으로 보았던 것처럼, 마을 주민들도 쿠란과 리오를 비교하기 시작했다.

리오의 모든 기록을 깨부술 수 있을지, 쿠란을 기대의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애초에 리오를 자신의 파티로 넣을 생각도 있었던 쿠란은 그 기대에 호응하듯 마치 리오처럼 하루에 일층씩 올라섰다.

매일 벼랑에 몰리는 듯한 기분에 사로잡히면서도 리오는 여전히 모만을 도왔다.

그러나 대피소였던 마을 입구는 리오를 환영 할수 없었다.

“음…?”

마을 입구를 향해가다 이상한 점을 리오는 알아차렸다.

보통이면 이 시간에는 마을의 새 주민들이 슬쩍 보이거나, 리오와 모만이 소개한 일자리가 마음에 들지 않는 주민들이 이곳에 모인다.

그러나 오늘은… 아무도 없었다.

“자네 왔는가?”

“아. 예…. 늦어서 죄송합니다.”

리오는 입구와 모만을 번갈아보았다.

“이게 어떻게 된 겁니까?”

“이 세계를 관리하는 신의 마음을 내가 어떻게 알겠나? 요즘 들어 점점 보내는 수가 줄어들고 있었다는 건 자네도 알고 있을테고……. 뭐, 그런 거겠지. 이 마을의 주민들이 다시 채워졌다는 거 아니겠는가. 일 자리도 항상 오던 놈들만 왔으니 이제 적응 할 때가 되었지.”

그 말대로라면 모만은 다시 여유 있는 생활로 돌아가게 된다. 리오 또한… 탑의 모험가로 돌아가야 했다.

‘벌써…….’

리오에게는 좀 더 마음을 다 잡을 시간이 필요했다.

잃어버린 톱니바퀴를 다시 채워 넣을 방법.

언제든지 쓰다가 버릴 수 있는 톱니바퀴를 채웠다가 버릴 수 있는 방법.

리오의 탑의 축복 : 강탈은 그러했다.

혼신을 다해 그 재능에 모든 것을 쏟을 수 없다.

무한히 늘어나는 재능의 선택권을 가졌는데, 한 가지에 혼신을 쏟는 것은 가혹했다.

상황에 따라 가차 없이 재능을 버릴 수 있어야 하는 것이 강탈을 사용하는 자의 자격이었다.

아무리 아까워도, 아무리 그 재능에 모든 것을 쏟았어도,

“… 음. 뭐 그렇다네. 지금까지 수고해줘서 고맙네. 덕분에 올해는 고생하지 않았군. 껄껄.”

리오는 아무렇지 않는 척, 표정을 관리했다.

“아. 예…. 괜찮습니다.”

“또 바빠지면 자네에게 도움을 청하지도 모르겠네. 가능한 그러지 않을 생각이긴 하네만…. 자네는 앞으로 어쩔 생각인가?”

모만의 말에 리오는 잠깐 눈을 감았다.

모만을 돕던 것을 이제 할 수 없게 되었다. 쿠란 덕분에 마을 곳곳에는 리오를 바라보는 시선이 그다지 곱지 않았다.

어서 탑을 올라가지 않고 무엇을 하냐, 옹호하는 시선도 있었고 패배자를 바라보는 시선도 있었다.

그 눈을 피해 리오는 더욱더 모만이 있는 곳으로 왔다.

아무것도 모르는 새로운 주민들만큼은 리오를 그런 시선으로 보지 않았기 때문에.

‘이제 어쩔 수 없나.’

벼랑 끝으로 몰렸는데, 벼랑은 무너져 내렸다.

이제 다시 기어 올라가는 수밖에 없다.

-쿠란님께서 8층의 최단 시간 내 통과 업적을 새롭게 갱신하셨습니다.

때 마침 눈앞을 점멸한 메시지는 리오의 미간을 좁히기에 충분했다.

그녀에 의해 오갈 곳이 없어진 리오. 리오의 모든 것을 갈아치우며 리오의 모든 것을 앗아가는 쿠란.

리오가 탑의 세계에서 살다간 흔적이라고 불릴 수 있는 것들을 쿠란은 하루에 하나 씩 없애간다.

쿠란이 너무나도 밉고, 괜히 불쾌감이 들었다.

‘10층 밑을 오를 땐 최선을 다하지 않았던 것 같아. 스승님에게 배운 마법을 이것 저것 시험해보느라 업적 같은 건 생각지도 않았었는데…….’

핑계가 아니었고 사실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쿠란이 마법 없이도 리오의 기록을 깨가는 것이라고 리오는 생각했다.

‘그럼 간단해. 앞으로는 그 어려보이는 마족이… 아니, 그 누구도 내 기록을 갈아엎을 수 없도록…….’

모만을 향해 리오는 입을 열었다.

“일이 없으면 당연히 탑을 올라야 하지 않겠습니까? 저는 앤서러의 이름을 부끄럽지 않게 해야 하는 인간이니까요. 아직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리오에게 귀환의지가 불 붙은 것은 아니다.

귀환은 그저 먼 미래의 일이라서 뒤편으로 밀려났다. 미래 계획서를 짤 때. 자신이 죽는 시기를 가늠하지 않는 것처럼, 가늠 할 수가 없기 때문에 밀어두는 것과 같다.

‘당분간은 하루 귀환 같은 건 하지 않을 생각이니까.’

지금은 그저… 탑을 오르는 탑의 주민, 탑의 모험가로써, 쿠란과의 내기 덕에 불이 붙은 것 뿐 이었다.

경쟁심.

뒤에서 누군가 쫓아오고 있다. 지금까지의 모든 것을 대격변 시키며 치고 올라오는 것을 리오는 가만 두고 볼 생각이 없었다.

18장 재회

이른 아침.

탑을 향하는 모험가들은 마을의 중앙으로 향하고, 그 반대의 자들은 대부분이 본래 자리를 지키거나 반대로 향한다.

평소라면 리오도 자신을 내려다보는 탑에게서 멀어지기 위해 마을 입구로 향했을 테지만…… 오늘은 질끈 두꺼운 설인 가죽 코트를 동여매고 마을의 중앙으로 향했다.

탑을 향해가던 이들은 그 행동으로 눈을 둥그렇게 떴다.

리오가 탑을 향한다니, 이제 포기한 것이 아니었나 싶었지만, 그저 다른 볼일을 보러 가는 것이라 생각했다.

탑 주변에는 다른 곳보다 시장이 활성화되어 있는 편이니까.

그러나 오늘 리오의 복장은 단순한 볼일을 보러가는 것은 아닌 듯 했다.

마치… 탑을 향해 가는 듯한. 앤서러 리오라는 인간만의 독특한 전투를 갖추고 있었다.

온 몸을 철갑으로 둘러도 죽는 주민이 수두룩한데, 인간 따위가 급소만을 얇은 철판으로 가린 채 였다.

무기는 검 한 자루와 방패뿐.

방랑 기사라도 흉내내는 건가 싶었지만, 그건 리오를 모르는 새내기 주민들이나 하는 생각이었다.

앤서러 리오에게는 저 장비만으로도 충분하다.

맞받아치는 칼에게는 방패마저도 사치다. 리오가 앤서러의 숙련자가 아니기 때문에 사용하는 것일 뿐이다.

“시작이군.”

“… 그렇게 속을 박박 긁어놓는데 탑을 안갈 리가 있나, 슬슬 갈 때가 됬 다고 생각했지.”

자신을 바라보는 주민들의 말이 들려왔다.

리오는 평소처럼 못 들은 척 하며 탑을 향해 나아갔다.

마을의 중앙으로 가면 갈수록 들고 일어난 리오를 향해 숙덕거리는 소리는 커졌고, 응원하는 소리는 커졌다.

“리오. 또 탑을 오르다 멈출 거면 미리 말해달라고, 난 언제나 전재산을 건 도박을 하고 있으니깐.”

“캬하하. 윗동네는 제법 힘들다고? 네가 올라 올수 있을지 의문이지만……. 온다면 나를 찾아 와! 댁이 좋아하는 업적 갱신에 분명 도움이 될 테니까!”

리오는 중앙으로 가면 갈수록 이곳의 주민들이 자신에게 거는 기대가 너무나도 크다는 걸 다시 한 번 깨달았다.

‘이 길이 이렇게 멀었나.’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은 아직까진 들지 않았다. 쿠란의 이야기를 꺼내는 주민이 있을수록 리오의 경쟁심은 불타오르는 듯 했다.

잠시 뒤, 리오는 오랜만에 탑의 내부로 들어갔다.

내부에 도착하자 픽시 또한 반가운 듯. 갑작스레 나타나 주위를 날아다녔다.

“오랜만이라 그런지 아무것도 없는 공간이어도 반갑네요.”

“그래?”

“네. 리오님은 안 그러신 가요?”

탑의 대기실은 말 그대로 대기만을 위한 공간이기 때문에 아무것도 없었다.

오랜 시간이 있으면 정신병에 걸릴 것 같은 백색 공간이어서, 그다지 반갑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단지, 탑에 들어왔기 때문인지. 리오는 가슴속이 꿈틀거렸다.

“온 몸이 근질근질하군. 탑에서는 고생한적 밖에 없는데 말이지.”

왠지 모를 흥분감이 온 몸에 감돌고 있었다.

탑을 오르는 것은 죽음과의 레이스였는데, 이제는 누군가와의 경쟁이 되버린 탓일까. 리오는 여유가 생긴 자신을 비웃었다.

픽시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탑을 멀리하게 되었던 고민은 해결 되신 건가요?”

탑의 축복 : 강탈.

그 고민에 대해서는 무엇 하나 해결되지 않았다.

마법은 이대로도 분명 리오가 죽을 때 까지 도움이 될 것이었다.

하지만 도움이 될 뿐, 성장하지 않은 힘에 대해 리오가 애착을 가질 리가 없었다.

다른 재능에 몰두하게 되고, 그 힘도 한계에 부딪히면 버리고 다른 것을 찾을 것이다.

버리고 다른 것을 찾는다.

이 말은 한 가지 중요한 것을 의미한다.

여태까지 강탈되었던 재능 들을 보면, 탑의 내부 생명체들은 리오가 살해한다고 해서 좋은 재능을 얻을 수가 없다.

마법이나 검의 재능 같은 쓸 만한 것들을 얻기 위해서는… 함께 웃고 떠들었던 주민을 직접 살해하여야 한다.

즉, 리오가 강탈을 효율적으로 이용하며 탑을 올라가기 위해서는… 뿌리 깊게 박힌 도덕윤리를 버려야만 한다.

템플러가 되어 오라클과 함께하는 것이 가장 좋다.

재능 수집가가 되어야 한다.

‘분명… 주민들을 죽이지 않아도, 내가 탑을 오를 수 있는 방법은 있을 거야.’

픽시에게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리오는 다음 층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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