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의 탑-58화 (58/190)

<-- 58 회: 2-24 -->

‘나와 함께 탑을 올라가고 싶다라…….’

이렇게 직접적으로 리오에게 말하는 주민은 처음이었다. 다들 그저 상황으로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어필을 할 뿐이었다.

인간들은 모두 귀환의 탑을 정복해내었으니, 분명 너도 해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 하는 김에 우리들도 부탁한다.

리오는 방해만 되지 않는다면 모두 끌고 올라가고 싶은 생각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자기 몸도 건사하기 힘든 상황. 누군가와 함께하는 건 피해야 했다.

지금은 오히려 리오가 짐짝이 될 공산이 컸다. 동료가 된 다면 무너지기 쉬운 부실한 기둥이 될 터였다.

‘여성 마족에게 너와 함께 라는 말을 들으니 왠지 고백 받는 기분이지만…….’

아쉽지만 거부하기로 했다.

“난 누군가랑 호흡을 맞추는 건 아직까진 별로라서.”

“괜찮아. 내가 그냥 관심 있는 거니까. 마족 여성들은 강한 남자들한테 끌리는 법이거든. 듣자하니까 강한 것뿐만 아니라 생각 하는 것도 독특하다며? 그래서 남들이 생각 할 수 없는 방법으로 탑을 진행하고, 업적이라는 걸 갱신한다고……. 난 그런 남자가 좋아. 종족을 떠나서. 인간이든, 드워프든, 저기 지나가는 골리앗이든.”

‘넌 골리앗까지 커버할 수 있다는 거냐…….’

고개가 절로 저어지는 남성관이었다. 어떻게든 떼어낼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하던 차에 리오는 번쩍 방법이 떠올랐다.

“난 15층을 도전해야 하는데…. 넌 몇 층이길 래 나에게 동료가 되라 이런 제의를 하는 거지? 모르나 본데, 같은 층이 아니면 파티를 이룰 수가 없다고.”

리오의 말에 깜짝 놀란 마족은 생각에 잠긴 얼굴이 되었다.

“으음… 그럴 줄이야…. 난 이제 막 1층인데…….”

“거기다 난 아무나 동료가 될 생각이 없어. 너도 내 이야기를 들었겠지만, 제법 나랑 어울리고 싶어 하는 놈들이 많거든.”

“그건 무슨 말?”

리오는 조건을 걸 생각이었다. 이 여성 마족이 함부로 또 다시 자신에게 다가오지 않도록, 아무나 자신에게 동료제의 같은 걸 하지 않도록.

‘당분간은 나 혼자… 내가 남들과 어울릴 수 있는 준비가 되어야 하니까.’

10층 때처럼, 모든 힘을 쏟아내어 방전되고, 자신으로 인해 파티 전체가 무리하게 일을 진행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했다.

“나를 파티에 넣고 싶으면, 일단 나와 같은 층으로 올라오는 것이 첫 번째 조건.”

첫 마디에 보기 좋았던 마족의 인상이 구겨졌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리오를 이성으로써 끌려서 동료로 맞이하고 싶었던 것이 아니라, 그저 파티에 넣고 싶었던 그녀로써는 자존심이 상할 수밖에 없었다.

“조건이라니, 건방지잖아. 인간주제에. 쳇.”

“마족이라고 인간을 무시하는 거냐?”

“그건 아니지만……. 그래서. 두 번째 조건은?”

할 마음 가득으로 보이는 마족의 말에 리오는 덜컥 겁이 났다. 첫 번째 조건은 마족에게 있어서 쉬운 편이라는 것을 깜빡하고 말았던 것이다.

“두 번째 조건은… 나처럼 10층까지의 업적들을 모두 갱신할 것.”

리오의 말에 탑을 올라 본적이 없는 그녀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좋아.”

현재 리오가 지나간 층들은 3달이 지났지만 아직까지도 그 기록을 깨내지 못하고 있었다.

그 기록을 깬다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 인간만이 가능한 발상, 21세기를 살다온 인간만이 가능한 방법. 과학적인 사실들을 통해서 리오는 진행해왔다.

최단 기록 같은 건 아무도 깰 수 없다고 리오는 자부했다.

“세 번째 조건은?”

리오는 세 번째 조건을 마지막으로 하기로 했다.

어떤 것이 좋을지 곰곰이 생각하다, 마족의 특성에 대해 떠올렸다.

마족은 태어날 때부터 리오가 지금 가장 떼어내고 싶은 것을 다룰 수 있다.

마법.

엘프처럼 마족은 마법에 대해 선천적인 재능을 가지고 태어나며 리오가 다루는 마나 대신, 마력이라는 에너지를 다룬다.

‘재미있는 생각이 떠올랐어, 이렇게 해도 네가 날 포기하지 않을까?’

“탑을 오르는 동안은 마법을 사용하지 않을 것.”

이것은 리오에게 탑을 오르는 동안 앤서러를 사용하지 말라는 말과 같았다.

이런 조건임에도, 여성 마족은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그렇게 하면… 넌 내 것이 되는 건가?”

당황하게 되는 것은 오히려 리오였다. 아무렇지 않다는 듯, 불가능한 조건들을 마치 가능하다는 투로 말하는 마족이었다.

‘마족들의 신체능력이 높긴 하지만……, 마법 없이도 자신 있다는 건가?’

떨떠름한 말투로 리오는 입을 열었다.

“그. 그래.”

“일단… 내 파티에 들어오게 되면. 그 건방진 입부터 고칠 테야. 은근슬쩍 나한테 말을 놓기 시작하는 그 입 간수 잘하라고.”

자신에게 집착하는 마족을 보며 리오는 한숨을 내쉬었다. 조건의 성공 실패를 떠나서 이유가 궁금해졌다.

아까 전, 남자가 끌린다느니 하는 말은 그저 리오의 환심을 끌기 위해서거나 아니면 동료로써의 말을 빗대어 말을 한 것이 분명했다.

‘괜히 두근거렸잖아.’

괜히 짜증을 내며 리오는 마족이 가기 전에 물었다.

“넌 왜 나한테 집착하나? 아까 전에 어떤 남자가 끌린다. 그런 말은 집어 치우고. 솔직하게 말해 줬으면 하는 데.”

“응? 끌리는 건 진짜야. 난 마족이잖아. 언제가 마왕이 될지도 모르는 몸. 그리고 넌 인간. 인간과 마왕. 숙명과도 같은 거 아니겠어? 마침 인간은 이곳에 너 혼자 뿐이고……. 설화를 보니까 빌어먹게도 항상 마족을 방해하는 건 인간이더라고, 그런 걸 방지하고자 미리 미리 널 포섭해두려는 거지.”

진심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말을 듣고 리오의 얼굴은 황당하게 변했다. 아무 생각도 할 수가 없었다.

깊은 한숨을 내쉬며 리오는 손을 휘휘 저었다. 이런 마족을 상대한 시간이 아까워졌다.

“하아. 그래 그래. 위에서 기다리 마. 죽지 말고 잘 올라오라고.”

“두고 봐. 앞으로는 날 주인님이라고 부르게 할 테니깐. 위에서 기다리라고!”

그 말을 남기며 이름도 듣지 못한 여성 마족은 리오에게서 멀어졌다.

‘주인님이라니……. 오히려 내가 너한테 듣고 싶은데……. 아. 이건 너무 변태 같군.’

최근 들어서 인간에서 멀어지고 있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확실히 이종족 여성들을 보며 밤잠을 설친다던가 하는 일이 있는 걸 보면…….

‘변태가 되더라도 이종교배는 안 된다. 리오야. 인간성을 잃지 말자.’

자신의 볼을 한 번 두들기며 리오는 집으로 향했다.

***

“픽시. 주인님이라고 부르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

“누구를요?”

“아, 아무것도 아니야.”

리오는 후다닥 준비를 하고 모만에게 향했다.

쨍쨍한 아침 해. 햇빛에 반사되는 탑의 위용. 바쁘게 움직이는 탑의 모험가들과 마을 주민들.

모험가들은 마을의 중심. 탑을 향해 걸어 나가고, 리오는 마을의 밖을 향해 나간다.

스스로 퇴보하고 있다는 느낌이 매일 든다.

‘다들 앞으로 가는데, 나만 뒤로 가고 있다. 이게 이런 기분인가?’

울적한 기분에 사로잡히며 리오는 모만에게 향했다. 이런 기분을 경험하며 생활한지 벌써 한 달이 넘었다.

평소처럼 가족에 대해 잊고, 하늘에서 내려다보는 탑을 무시한 채로 열심히 일을 하다보면 지쳐 잠에 빠져들 수 있을 것이었다.

모만에게 인사를 하고 새주민들을 맞이하기 위한 준비를 시작하기로 했다.

그러던 도중이었다. 한참 어제와 같은 일을 하고 있을 때, 리오의 눈앞에 낯선 메시지가 나타났다.

흔히 나타나는 업적갱신 메시지. 탑을 오르는 누군가가 업적을 갱신해내었다.

탑의 세계를 살아가는 주민이라면 눈을 감고 있어도 볼 수밖에 없는 메시지이었고, 리오는 일하던 도중이었으나 어쩔 수 없게도 그 메시지에 흥미를 가질 수밖에 없었다.

‘몇 층의 누가 어떤 업적을……?’

무심코 관심을 가졌던 리오의 눈동자가 커졌다.

‘… 1층? 내 기록이 깨졌다고?’

리오의 방법 이상으로 누군가가 과격한 짓을 저질렀다.

‘누구지?’

달성자의 이름을 찾아내는 것은 손쉬웠다.

“쿠…란?”

익숙한 이름. 어디서 들어보고 입에 익은 이름이었다.

“누군가 한테 지어준 이름이었던 거 같은데…….”

“음? 기억이 안 나는가? 나는 똑똑이 기억이 나네만….”

옆에 있던 모만의 말에 리오는 되물었다.

“사람 얼굴은 잘 기억하는 편인데… 아직 이종족들 얼굴은 특징을 잘 잡을 수가 없어서 기억을 못하겠어요. 특히 오크들 같은 경우는 그 놈이 그 놈 같아요.”

“쿠란이라는 이름을 받은 주민이 들으면 화를 낼 소리를 하는 군. 적어도 자네의 보다 뛰어난 이 쿠란이라는 자는 오크는 아니야.”

자신보다 뛰어나다. 기록 하나를 갈아치웠다는 것만으로 그런 말을 하는 건 조금 성급한 듯 싶었지만 리오는 굳이 모만에게 속마음을 말하지 않았다.

“오크는 아니라면 누구죠?”

“아직도 기억이 안나나? 그 날 자네가 그 쿠란이라는 아가씨를 보고 굉장히 들떴는데…. 아. 그러고 보니 그 다음날 굉장히 피곤해 보였지.”

쿠란, 아가씨. 자신이 이름을 주었다.

그리고 리오는 오늘 아침에 있었던 일을 떠올렸다.

‘설마…….’

“그… 쿠란이라는 여자. 마족이었습니까?”

“기억이 난 모양이군?”

“아, 아뇨. 어쩌다 오늘 아침에 만나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긴 했는데…….”

리오는 왠지 모를 불안감이 자라나기 시작하는 걸 느꼈다.

마법을 봉인한 상태로 마족이 탑을 오른다. 그러함에도 리오의 기록을 깨부순다.

‘1층은 쉬워. 2층은… 절대 쉽지 않아. 내가 한 업적은 둘이서 진행하고, 혼자 통과 한 거니까. 결과를 알아도 방법을 알 수가 없어.’

애써 자신을 위안하며 불안감을 없앴다. 다시 일로 돌아가고 일에 집중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