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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방의 재능를 빼앗는 탑의 축복 : 강탈은 분명 좋은 축복이기는 하지만 한계점이 있다.
빼앗은 재능이 썩 좋지 않은 것이고, 한계점이 낮다면 그 재능은 영영 썩힐 수밖에 없다.
한계점이 돈벌이를 할 수가 없는 프로급 밑이라면, 하지 않는 편이 옳다.
‘운이 안 좋았군.’
안드레이는 하필이면 꽃피울 수 없는 재능을 가져버린 리오를 바라보았다.
테일러의 한계가 곧 리오의 한계.
“… 무리를 한다면, 시전이 가능한 마법은 몇 서클까지지?”
“무리를 한다면…, 한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고 오랫동안 준비한다면……. 아마 4서클까지가 아닐까 싶네요.”
4서클.
마음껏 다룰 수 있다면 분명 훌륭한 마법사다. 4서클의 마법들은 살상력과 파괴력이 높다.
오우거, 트롤, 골렘, 드레이크, 와이번 같은 대형 몬스터들에게 치명상을 입힐 정도의 마법들이었다.
그러나 리오에게 4서클의 마법이란 마나를 외부에서 보충 받고, 수분 이상 제 자리에서 준비를 해야 하므로, 실상 탑에서는 사용 불가능 한 것이나 다름없다.
“무리 없이 즉시 시전이 가능한 건?”
“2서클까지요. 3서클의 보조 마법 몇 개는 즉시 시전이 가능해요. 연습을 많이 했거든요. 큰 도움이 될 것 같아서…….”
사실상 4서클 밑의 마법들은 탑의 저층 구간에서나 사용하거나, 견제의 의미가 담긴 마법들이었다.
살상능력은 사실 낮은 편이다. 인간이나 오크, 고블린, 임프 같은 소형이며 힘이 없는 종족들만 당하는 마법이다.
소형 몬스터들이 아닌 그 외의 종족들에게는 그저 견제를 위해 사용하는 마법이나 불과했다.
하지만. 리오의 마법사적 특성상.
마법을 견제로 사용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렇다고 사용하는 마법들이 특별히 다른 마법사들과 다르게 강력한 것도 아니었다.
‘모든 게 똑같군……. 마법을 운용하는 방법이 특이한 것뿐. 테일러와 다를 게 없어.’
안드레이는 리오가 마법을 배우기 위해 고생했던 시절을 떠올리곤 한숨을 내쉬었다.
“어쩔 수 없구나… 리오. 그 녀석의 모든 것을 빼앗았으니, 테일러 녀석이 가지고 있던 문제점조차 네 것이 될 수밖에.”
좋지 않은 예감이 들기 시작한 리오는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무슨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
“귀환을 선택한 너를 위해 훈련메뉴를 만들고 있었다. 그동안 네가 탑을 오른 감시영상들 모두 훑어보던 중. 익숙한 것들이 눈에 보이더구나. 그건 테일러 옛 습관, 문제점들이었다. 엣 제자의 습관과 문제점이 너에게도 보인다니, 이것에 대해 나는 의구심을 품을 수밖에 없었지. 내 교육지도상의 문제인가? 아니면 인간의 문제인가?”
그리고 안드레이는 리오를 만나고 결론을 도출해내었다.
“둘 다 아니더구나. 설마 네가 그런 능력을 지니고 있을 줄 이야……. 리오 잘 듣거라. 지금 너의 마법사로써의 한계는 거기가 끝이다.”
평생 4서클까지 밖에 다룰 수가 없다는 말이었다.
마치 세 번째의 수능을 보고나서, 자신의 점수를 보고 절망하는 기분을 리오는 맛보았다. 자신의 한계에 맛 부딪친다는 기분이 바로 이것일까?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기 위해 누군가는 산을 오르고, 리오는 탑을 오른다. 하지만 이건 선천적인 문제였다. 노력해서 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희박한 가능성을 보고 불가능에 가까운 탑에 도전하는 리오.
리오에게는 분명 불굴의 의지가 있다. 불가능에 도전하고 1%에 몸을 불사른다.
하지만 이번 건은 모든 의욕이 꺾였다.
스승에게서 자신의 한계점을 듣는 순간, 세상이 정지 했다고 느낄 정도로 호흡까지 멈춘 리오.
‘더 이상 마법을… 배우고 싶지 않아.’
의미가 없는 행위. 의미가 없는 노력.
이미 배웠던 마법은 분명 이 이후에도 도움은 될 것이었다.
사실 마법이 없어도 리오는 탑을 오를 수 있는 힘이 있었다.
그러함에도 리오는 모든 것을 내려놓았다.
의욕이 하나 꺾이는 순간, 도미노처럼 연쇄작용이 일어나는 건 순식간이었다.
이때부터 리오는 탑을 멀리하게 되었다.
17장 자극
개벽 축제가 끝나고, 리오가 지구를 갔다 온 뒤로 서너 달.
개벽 버프라 불리우는 탑 내부에서 생성되는 몬스터들의 약체화는 이미 사라질 때 였다.
이맘때는 대부분의 주민들이 탑이 어떤 곳이었던지 다시 한 번 깨닫고, 자중하며 본래의 생활, 또는 직장으로 돌아간다.
오직 싸우는 것만이 자신의 삶이었던 이들, 탑의 세계와서 적응하지 못했던 이들은 계속해서 탑을 올라가려 했고, 그 마저도 적응하지 못한 주민들은 비참한 결말을 맞이했다.
그 수는 매년 적지 않았고, 리오가 느끼기에, 고립된 호수 같았던 탑의 세계의 ‘마을’은 지금 격변을 맞이하고 있었다.
개벽 버프가 끝났음에도 여전히 탑을 올라, 결국 죽어버린 이, 개벽 버프가 있었음에도 죽었던 이들.
그 빈자리를 메꾸기 위해 새로운 주민들이 밀물처럼 탑의 세계로 오고 있었다.
“성함이 어떻게 되십니까?”
리오는 호빗인 모만을 돕고 있었다.
리오는 종종 탑을 가지 않는 날에만 모만을 종종 도와주고는 했는데, 요즘 들어서 자주 탑을 가지 않기 때문에 매일 같이 그와 함께 마을 입구를 지키고 있었다.
예전이었다면 마을 주민 맞이하기는 리오가 도와줄 것이 없었다. 하지만 탑을 우습 게 보고 실패한 주민이 많은 개벽버프 기간에는 바쁠 수밖에 없었다.
‘정말 톱니바퀴처럼 돌아가는 세상이야. 죽은 주민의 수만큼 다시 채워 넣다니.’
흉측하기만한 오크는 이제 리오에게 두려움의 상대가 되지 않았다. 탑을 오르며 지겨울 정도로 만나기도 했지만, 이 주민 맞이를 하면서도 오크들을 지겹게 만났다.
그들은 지구에 인간이 가장 많은 인구 수를 자랑하는 것처럼, 이 탑의 세계에는 가장 흔히 볼수 있는 종족이기도 했다.
장례식장에 사람만이 들락날락 거리는 것처럼, 이 주민 맞이도 마찬가지였다.
지겨울 정도로 죽고, 지겨울 정도로 번식하여 수를 불리고 또 다시 죽고 채운다.
“취륵. 이, 인간? 여, 역시 이런 세계도 인간이 있는 건가….”
“인간을 맛본지가 오래 됬긴 했는데…….”
이제 막 마을에 처음 온 주민들에게 이런 저런 주의사항과 앞으로 잘 지낼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일이 모만의 일이었다.
리오는 성질을 긁는 오크들의 말이 있음에도 가능한 참으며 수도 귀성길처럼 줄을 이은 마을 출입자들을 안내했다.
“여기선 누굴 죽이거나 맛볼 수가 없어, 자세한 건 살다보면 알게 되겠지만…. 네가 살던 곳과 습관은 버리는 편이 좋아.”
“취, 취륵! 인간이 오크어를 한다! 타릭신의 사자다!”
“신의 사자다!”
호들갑을 떨며 자신들의 신앙을 울부짖는 오크를 향해 리오는 으르렁거렸다.
“바쁘니까 본인들이 쓸 새로운 이름 정도는 지어둬, 여기서는 원래 있던 곳의 이름은 쓰지 못한다는 규칙이 있으니까. 이유는 묻지 마. 설명하기 귀찮아. 뒤에 기다리는 놈들 많으니까 아무거나 하라고.”
어쩌면 죽기 전까지 사용할 이름을 급하게 리오는 급하게 재촉했다.
‘내 입장에서는 어쩔 수 없잖아. 뭐…, 바쁜데.’
이곳의 모든 것을 관리하는 신은 마치 리오와 모만의 하루 할 일을 주듯. 일정 수의 주민을 매일 같이 보낸다.
마치 이 인원만 처리하면 오늘은 일찍 퇴근해도 된다는 듯이.
모만은 돈을 받고 일을 하는 입장이니 주민들이 모두 마을 안으로 들어올 때까지 퇴근을 할 수가 없는 노릇이고, 리오는 돕기 시작하는 바람에 모만을 혼자 두고 집에 돌아갈 수는 없었다.
그렇다면 리오에게 남은 방법은 하나. 효율적인 방법으로 업무를 가속화 하는 것.
할 수만 있다면, 모만도 좋고 리오도 좋고, 새로운 주민들도 좋은 일석삼조의 일이었다.
‘할 수밖에 없어!’
야근과 추가 업무는 리오가 가장 싫어하는 것이었다. 거기다 지금 리오가 하고 있는 것은 그저 은인을 위한 봉사.
은인을 위해 잠까지 설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 거기 오크. 둘. 앞으로 셋을 셀 때까지 앞으로 쓸 이름을 정하지 않으면 나의 기발한 머리로 너의 이름을 정하겠다.”
새로운 주민들은 대부분이 자신이 쓸 새로운 이름을 정하는데 애를 먹는다. 리오 같은 경우. 애지중지하던 어느 게임의 캐릭터가 쓰던 이름이었기 때문에 아무 망설임 없이 쓸 수 있었다.
하지만 다른 이들은 그렇지 않다.
고민하고, 새로운 이름을 정하는데 수 분, 수 시간, 며칠, 몇 달이 걸리기도 한다.
그 고민을 이해할 수 있지만 리오에게는 기다릴 여유가 없었다.
“마음에 안 들어도 어쩔 수 없어. 너희들 머리로는 아무리 시간을 줘도 의미가 없다는 걸 알았으니까……. 넌… 도야지. 그 옆의 너는 산도야지.”
“도야지… 취륵. 심금을 울리는 이름이다. 마음에 든다.”
“산도야지. 용맹무쌍한 나와 어울리는 듯하다. 좋다.”
마음에 들어하는 듯 하자 리오의 마음도 편해졌다.
급한대로 지구의 방언이나 단어들을 빌려다 쓰면 어떻게든 넘어갈 수 있었다.
‘도야지나 돼지나 같은 의미지만……. 여기 사람들은 모르겠지.’
그렇게 하루의 일과를 보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