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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에서 나온 리오는 하루가 지나고 안드레이를 찾아갔다.
‘다녀왔다는 인사정도는 해야겠지. 이미 알고 있겠지만.’
안드레이가 졸업기념이라며 선물한 팔찌는 리오를 위한 이로운 마법들과 위치추적 마법이 걸려있었다.
리오가 탑의 세계로 돌아온 순간, 팔찌를 선물한 안드레이는 이미 리오가 돌아왔다는 것을 알고 있을 테지만, 직접 만나서 다녀왔다는 말을 리오를 굳이 하기로 했다.
‘항상 그렇지만… 안드레이님을 만나러 오는 것까지는 의욕이 넘치는데… 근처만 오면 수그러드는 군.’
탑의 세계에 군림하는 용의 성지는 항상 리오를 주눅들게 했다. 괜히 땅바닥만 보며 리오는 안으로 향했다.
“음?”
안드레이의 방으로 향하던 도중. 리오는 낯익은 인물들을 발견했다.
용의 성지에는 드래곤과 드라칸들의 수발을 드는 다른 인물들은 없는 듯. 리오가 항상 들락 날락 거릴 때 마다 아무도 만날 수가 없었는데, 오늘은 기이하게도 누군가를 만난 것이었다.
그것도, 한 때는 날카로운 살기를 내뿜으며 죽기 살기로 덤벼들었던 이들을.
“오랜이네?”
인간이 거인이 되었다면 딱 그대로의 모습이었다. 순수한 청년의 성격을 가진 채로, 주체 할수 없는 괴력과 야성을 가진 오우거 도날이 리오에게 말을 걸어왔다.
그 외에도 개벽축제의 전야제를 흥겹게 한 이들이 함께하고 있었다. 리오는 가볍게 그들에게 고개를 숙였다.
“반갑습니다. 다들 오랜만이시네요. 그때는 경황이 없어서 별 이야기도 못하고 헤어졌던 것 같은데……. 다시 한 번 인사드리겠습니다. 리오라고 합니다.”
드라칸들의 제자들과 인사를 나누며 리오는 통성명을 나누었다. 각자 잘 나가는 몸들. 친해져서 나쁠 것은 없을 것이었다.
“이곳에서 누군가를 만나는 건 처음인데… 다들 무슨 일로 모여 계셨습니까?”
리오의 물음에 도날이 답했다.
“우리는 개벽축제 이후로 자주 모이는 편이거든. 마침 우리 모두 비슷한 층을 진행하고 있어서 같이 파티를 맺기도 했지.”
스승들이 형제이며, 그 제자들은 친밀하게 지낸다. 이보다 좋은 관계는 없었다.
내심 그들과 함께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지만, 리오는 그들의 무리에 끼어들고 싶다는 감정을 드러내지 않기로 했다.
‘소문으로 듣기론… 도날은 30층 이상을 올라갔다고 하니깐.’
드라칸의 제자가 되기 전에 이미 오우거 본연의 힘으로 30층을 올라갔다고 하니, 드라칸의 제자가 된 이후로 그 이상을 올라갔을 것이었다.
거기다 리오와 다르게 도날은 제자가 된지 한 참이다. 개벽축제는 연초부터 준비되니… 리오가 탑의 세계로 이동 되고, 조렌 총판에서 일하는 기간에도 그는 탑을 오르며 마법을 배웠을 것이다.
‘40층 이상 올라갔겠지.’
“그렇습니까? 드라칸의 제자들이 파티를 맺다니, 탑의 몬스터들이 불쌍해질 정도인데요?”
속마음을 숨긴 리오의 말이었다. 그 말에 주변이들이 웃음을 터트렸다.
“그럴 리가. 아무리 우리가 대단해도 탑이라고. 도전자가 대단하면 똑같은 놈이 나오더라고… 뭐, 그래도 처음엔 확실히 쉬운 편이었지.”
“저 오우거 애송이만 자기 몸을 아낄 줄 알면… 쉽게 올라갈 수 있을 것 같은데 말이야. 클클. 그게 좀처럼 안 되더군.”
“이봐. 드워프 양반. 질 푸른 숲속에서 오우거 보고 날뛰지 말라니, 당신 희귀한 광맥이 묻힌 땅덩어리가 눈앞에 있는데. 곡갱이 안 들고 가만히 있을 수 있어?”
도날의 비유에 드워프의 콧잔등이 흔들렸다.
“저 빌어먹을 오우거는 오우거가 맞나 싶을 정도야. 마법을 배우더니 뭐 이리 머리가 좋아졌지?”
“다 들린다고. 그런 식의 말은 내가 들리지 않는 곳에서 해주지 않겠어? 오우거라고 무식한 법은 없잖아?… 그리고 당신도 드워프 주제에 마법을 제일 독특 하게 다루잖아. 우리들 중에 제일.”
리오는 오우거 도날의 말에 흥미가 생겼다. 드워프가 마법을 잘 다룬다는 것도 그렇지만, 독특하게 다룬다니, 개성이 있다는 말이었다.
드라칸들의 제자들은 하나같이 개성 있는 마법들을 다루고, 존재 자체부터 개성 있다.
드라칸에게 마법을 배운 오우거, 마찬가지의 드워프, 스켈레톤, 평범해 보이는 고양이, 뱀, 밴시, 드레이크, 잭 오 랜턴, 그리고 마지막으로 마족으로 보이는 인물이 있었다.
그러한 개성 넘치는 인물 중에서, 가장 독특한 마법을 다룬다니, 같은 마법사로써 리오는 흥미가 생겼다.
“호오. 어떤 식의 마법을 다루시길 래……?”
몸을 회복시키느라 전야제의 대련을 보지 못했던 리오였다. 아홉 명의 드라칸. 그들이 각자 한 명씩 둔 제자 중. 드워프 네밀이 리오를 향해 입을 열었다.
“맘 같아서는 나도 지금 당장이라도 보여주고 싶네만… 자네는 안드레이님께 가던 도중이 아닌가? 지금 이렇게 우리와 노닥거려도 괜찮은 건가?”
“딱히 약속을 하고 뵈러 가는 것은 아니라서요.”
“그럼 시간이 있겠군. 나도 저 애송이 오우거를 쓰러뜨린 자네와 한 번 붙고 싶었네. 어떤가? 요 앞에 마침 넓은 공터가 있는데…….”
“이봐. 드워프 양반. 리오는 우리와 다르게 얼마 전에 10층도 통과 했다고. 우리는 그때랑 크게 달라진 건 없지만, 리오는 달라.”
“아. 그렇군… TP로 분명 이것 저것 구입했을 테니까.”
탑의 축복은 인간에게만 존재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매 10층 구간마다 다른 종족들도 TP로 탑의 축복 말고 다른 무언가를 구입할 수 있었다.
리오는 그의 말을 듣고 멋쩍은 얼굴이 되었다. 그때와 지금의 자신이 얼마나 차이가 날지 자신이 없었다.
‘보통… 대부분이 TP로 자기 자신을 강화하는데 사용하나 보네.’
드워프 네밀과의 대련.
망신당하는 것이 아닐지, 망설임이 생기려는 찰나. 안드레이에게서 선물 받은 팔찌가 빛을 발했다.
“… 이런.”
“안드레이님께서 부르시나 보군. 어쩔 수 없지. 다음에 내 마법은 다음에 보여주도록 하겠네.”
“… 죄송합니다. 한 번 보고 싶었는데.”
팔찌의 빛이 점점 밝아지며 일초에 여러 번 점멸했다. 리오는 급하게 그들과 인사를 나누고 안드레이에게 향했다.
‘무슨 일이시지, 이렇게 부르시는 건 처음인데…….’
안드레이의 방문 앞에 서자, 옷을 추스를 셈도 없이 안에서 말소리가 들려왔다.
“당장 들어오거라.”
“아. 예.”
인사를 할 틈도 없이 안드레이는 리오의 손목을 붙잡았다.
진중한 얼굴로 리오의 몸을 샅샅이 살피던 안드레이. 리오는 영문을 모른 채 스승이 하는 것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내 몸에 이상한 점이라도 있는 건가…?’
저번에는 몸의 상태를 알아보기 위함이었지만, 이번에는 달라보였다.
그의 방에는 이전과 달리 난잡하게 흩어진 책들과 복잡한 수식이 적힌 스크롤들, 그리고 실험을 한 듯 한 흔적이 엿보였다.
“역시…….”
안드레이의 혼잣말에 리오는 그의 말을 기다렸다.
“테일러와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이더냐? 인간에게만 있다는 축복 때문이더냐?”
“무슨 말씀이신지…?”
“테일러와 네가 상당히 비슷한 부분이 많구나. 마나의 흡수력, 마나의 질, 마나의 조작능력, 마나의 적응도… 너에게 허락 된 마법의 서클 한계까지도.”
리오는 알레스터 크로울리의 진수를 넘겨받았기 때문에 서클의 한계를 넘어서 마법의 수식만 알고 있다면 이론적으로는 모든 마법을 다룰 수 있었다.
단지, 그 댓가로 리오는 마법을 연발 할 수가 없으며 단발성의 특징을 지니고 있었다.
또, 한계를 넘어서 사용할 수 있다고 하지만, 실제로 리오가 사용할 수 있는 마법도 그렇게 대단한 것들은 없었다.
그 이유는 리오에게 마법의 재능을 건네준 이. 테일러의 한계가 거기까지였기 때문이었다.
‘… 강탈의 특징에 대해 눈치 채신 건가?’
안드레이가 급하게 자신을 찾은 이유를 리오는 이해 할 수 있었다.
축복에 대해서는 픽시에게 비밀로 할 것을 당부했지만, 상대는 이미 축복의 존재를 알고 있는 드라칸 안드레이였다.
“자세히는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만… 맞습니다. 테일러에게 있던 마법 재능을 제가 빼앗아왔죠.”
“그렇구나.”
더 이상 추궁할 생각은 없었던 듯. 안드레이는 자신의 책상으로 돌아가더니 더러워진 방들을 청소하기 시작했다.
“그럼 이건 필요가 없겠군.”
안드레이는 리오를 위해 준비했던 것들을 모두 처분하기 시작했다.
탑의 세계로 돌아오면… TP를 소모한 리오를 위해 효율적인 마법수련을 돕고자 이런 저런 준비를 했었다.
그러나 리오의 말대로, 리오가 테일러의 재능을 빼앗았다면… 의미가 없는 일이었다.
본래 리오는 마법사로써의 재주가 없었다.
하지만 어느 날을 기점으로 생겨났다. 테일러의 죽음으로 인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