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의 탑-53화 (53/1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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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으음…….”

민정은 개운한 느낌과 함께 잠에서 깨어났다.

‘응…?’

아니, 자신은 4차선 도로에서 사고를 겪었다. 사고를 겪은 직후에 개운한 느낌이 들 리가 없었다.

그러나 오랜만에 낮잠에 들었던 것 같은 이 개운함은 어떻게 설명하란 말인가.

‘… 여기는?’

비몽사몽한 정신으로 몸을 일으켰다.

사고의 지점과는 동 떨어진 장소였고, 주변에는 수십 명의 사내들이 끙끙대며 바닥을 기고 있었다.

“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졸음이 싹 가시며 머리에 피가 돈 민정은 재빨리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었다.

경찰을 부르고 뒤처리 수습이 가능한 자신의 비서에게 상황을 알렸다.

대한민국 굴지의 그룹인 선상전자의 회장 딸인 그녀는 이 상황이 어떻게 흘러 간 것인지 쓰러진 사내들만 봐도 사태를 파악할 수 있었다.

‘회장님의 사업에 차질이 생기셨나. 나를 납치하려고 하다니…….’

이런 위기는 어린 시절부터 항상 겪어왔지만, 그래도 익숙해지지 않는 경험이었다.

민정은 혹시 쓰러진 사내들의 정체라도 할 수 있을까 싶어 경찰들이 오기 전에 그들의 수집품을 뒤지려 했다.

“그만두시죠. 상처 입은 호랑이는 아무리 지쳐 쓰러져도 무서운 법입니다.”

어디선가 들려온 말에 민정은 고개를 돌렸다.

‘회장님이 고용한 시크릿 가드인가? 대단한 사람인가 보네, 수십 명을 혼자 쓰러뜨리다니.’

“어차피 고용 되서 한 일이겠지만은… 고맙습니다.”

태준은 고용이라는 말에 자신을 경호원으로 착각한다는 걸 알아차렸다.

경호원을 쓸 정도의 여자라니, 중소기업의 사장 가족이라던가, 대기업의 낮은 직책쯤은 아닌 모양이었다.

“고용자를 지키는 게 일이니까요.”

태준은 민정 대신에 쓰러진 사내들의 신분증 같은 것을 빼앗았다.

조직적인 움직임을 가진 자들이고, 정부와 연관되어 있다는 걸 아까 말해주었으니 필시 신분증 또한 위조되었겠지만, 혹시 모르는 일이었다.

빼앗은 신분증이나 도움이 될 만한 것들을 민정이 있는 곳으로 내던졌다. 마치 극도로 여자를 싫어하는 것처럼, 혹은 얼굴을 보여주기 싫은 것처럼 행동하는 모습에 민정은 의아한 얼굴이 되었다.

‘왜 그러지? 날 지키면서 얼굴이 다쳤나?’

“성함이 어떻게 되세요? 해야 할 일을 하셨다지만, 가장 도움이 필요할 때 도와주셨으니 사례라도 해야 제 마음이 풀리겠어요.”

태준을 향해 다가오며 핸드폰을 꺼내었다. 그녀가 전화번호를 저장하며 얼굴이라도 보려는 찰나, 태준은 뒷걸음쳤다.

그러나 그 짧은 시간으로 나마 민정은 태준의 옆얼굴이라도 볼 수 있었다.

낯익은 얼굴이지만… 도저히 자신과 미래를 약속한 사람과 동일인물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고생의 흔적이 엿보였다.

‘태준이…? 그럴 리가…….’

혼란스러워진 정신을 일깨우는 경찰의 사이렌 소리가 들려왔다.

태준은 이름도 모르는 여자에게 말했다.

“워낙 골목길이라 경찰들이 찾아오기 힘들어 할 겁니다. 저쪽으로 나가시면 도로가 있으니… 거기 서 있으시면 만날 수 있을 테죠. 전 여기서 이놈들을 붙잡고 있겠습니다. 아가씨께서는 경찰들을 데려와주셨으면 합니다.”

“에… 예. 알겠어요. 혹시 모르니 조심하세요.”

민정이 자리를 떠났다. 골목길 저 멀리, 건너편으로 지나가 태준의 눈에 보이지 않는 곳으로 갔다.

***

“누나!”

민정의 아버지에게 회사일을 배우고 있던 태준은 사고가 일어났다는 말에 즉시 현장으로 달려나갔다.

경찰들과 거의 동시에 도착한 태준은 피딱지가 묻은 자신의 반쪽을 보고 비명을 질렀다.

“이게 무슨 꼴이야! 어떤 놈들이 대체……!”

“난 괜찮아. 그보다… 어서 여길 어서 정리하고 떠나는 편이 좋겠어. 기자들이 금방 몰려올 테니까.”

“일단 막아두기는 했는데……. 그래요 그럼. 일단 여기는 다른 사람들한테 맡기도록 하죠. 자세한 건 나중에 침착해졌을 때 정리해요 누나.”

미리 민정이 전화를 했기 때문에 사고 정리에 대처가 빠른 직원들이 벌써 움직이고 있었다.

그들을 믿고 자리를 뜨려던 민정은 깜박하고 있던 것을 떠올렸다.

‘아, 그 사람…….’

“잠깐… 만날 사람이 있어. 날 구해준 비밀 경호원 같은데…. 저 골목길 안쪽에서 현장을 지키고 있거든. 아직 답례를 하지 못했어.”

“그래요? 누나를 구해준 사람이라니, 그럼 저도 만나야서 고맙다는 말을 전해야겠네요.”

태준의 옆에선 민정은 이 일로 인해 숨 가쁘게 뛰던 심장이 잔잔해지는 것을 느꼈다.

역시, 연인의 옆에 있으면 무서운 일을 겪어도 침착해질 수 있는 법인 모양이었다.

기분이 푸근해지자 민정은 태준의 옆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수분 전. 자신이 속으로 말했던 것을 무심코 밖으로 내뱉고 말았다.

“… 역시 닮았어.”

“예? 뭐가 닮았다고요? 연예인? 동물?”

어리둥절한 태준은 고개를 갸웃했다. 형인 신해준과는 많이 닮았지만. 민정의 말투를 보아하니 형과 닮았다 안 닮았다를 말하는 것 같지는 아니었다.

“응. 날 구해준 사람이랑 너가 닮은 것 같아서. 뭐 세상에는 자신과 비슷하게 생긴 사람이 여 명 있다는 말이 있잖아? 우연히도 너랑 닮은 사람을 만난 그런 거겠지.”

“헤에. 궁금하네요. 저랑 닮았다니.”

골목길 안 쪽으로 둘은 팔짱을 끼고 들어갔다.

이미 경찰들과 선상그룹의 직원들이 사태파악을 위해 헤집어 놓고 있고, 쓰러진 이들을 포박중인 가운데서, 그들은 자신들이 찾는 인물을 찾아내려 눈동자를 굴렸다.

그러나 아무리 물질만능주의시대의 재벌가가 찾고 싶다고 해도. 그들이 찾는 인물은 이미 지구에 있지를 않았다.

16장 한계충돌

탑의 세계로 돌아온 태준과 픽시.

탑의 대기실에서 탑 밖의 풍경을 살폈다.

이제 막 노을이 지고 있는 것을 보고 태준은 한 마디 내뱉었다.

“지구로 가 있는 동안… 이곳은 하루도 지나지 않은 모양이군. 하긴, 거기서 하루도 있지를 않았으니까.”

픽시는 태준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지구가 아니므로 태준을 이곳에서의 이름으로 불렀다.

“리오님. 지구에서 귀환권을 모두 사용하지 않고 귀환하셨기 때문에 남은 시간에 대한 TP가 환불 처리가 되었어요.”

“응…? 그런 이야기는 없었잖아?”

픽시에게 전혀 듣지 못했던 말을 이곳으로 돌아오고 나서야 듣게 되자 리오는 인상을 찌푸렸다.

하지만 마냥 픽시를 미워할 수도 없는 것이, TP를 돌려받는 것이 어쩌면 픽시의 계획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리오는 하루귀환을 대가로 11층 이상의 탑을 쉽게 오를 수 있는 기회를 놓쳤다.

여러 가지 능력상승의 권한을 스스로 놓아버렸고, 그것은 인간인 리오가 남들 보다 더 한 노력한 해야 함에도 또 배 이상의 노력을 해야 하는 결과를 가져다주었다.

하지만, 픽시가 지구에서 마법을 사용하고, 그 탓에 귀환을 한 결과.

하루를 채우지 않고 귀환했기 때문에 리오는 TP를 환불 받을 수 있었다.

평상시 장난스럽게 ‘깜빡했어요.’ 라는 말을 줄곧 내뱉는 픽시지만… 어쩌면 그런 행동들이 다 계산에서 나오는 것일지도 몰랐다.

세계를 관장하는 탑의 명령과, 자신이 가이드를 해야 하는 리오.

그 둘을 속이고 행동하려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넌 하여간……. 정말이지.”

선의에 기분이 좋아진 리오는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자신의 연상이라고 줄곧 주장하지만, 외모와 행동이 여동생처럼 느껴지니 어쩔 수 없었다.

“나에게 돌아온 TP는 얼마나 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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