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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주특기인 앤서러가 봉쇄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몸에 마법을 걸고 정신을 똑바로 차린 뒤에 해보려고 했지만, 여전했다.
“… 돌아가자.”
“… 예.”
이틀 연속으로 탑 공략에 실패한 리오의 뒷모습은 처량하기 그지없었다.
탑에서 나오자 숙덕거리는 주민들의 말소리가 들려왔다. 놀라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무려 11층에서 이렇게 고생을 하고 있으니, 다들 리오가 11층이 아니라 다른 층에서 개인 수련을 하고 있다. 라고 넘겨짚으며 이야기를 진행하고 있었다.
“어이. 리오. 여기서 막힌 거 아니지? 네가 어디까지 올라갈지 내기 했다고? 적어도 30층까지는 올라가줘야 해.”
“30층은 무슨. 40층은 될 것 같은데……. 내 전재산이 걸린 문제니까 어서 위로 올라가줘!”
주변에 있던 주민들의 말에 리오는 식은땀을 흘렸다.
11층에 있는 평범한 몬스터에게 처참한 패배감을 맛보고 후퇴했습니다. 라는 말은 전해줄 수가 없었다.
‘아지트로 가서 나한테 잘못된 습관이 생겼는지 확인이라도 해볼까…….’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한 노력을 하려고 할 때이었다.
리오의 팔찌에 박힌 보석이 은은한 빛을 내었다.
안드레이와의 연락용 수신호라는 것을 깨닫는 것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위로 올라가지 못한 것 때문에 연락 하신 건가….’
하는 수 없이 리오는 그가 거주하는 껄끄러운 장소로 발걸음을 옮겼다.
근처로 가기만 해도 인적이 드물어지고, 발걸음이 돌아가고 싶은 장소.
억지로 안드레이의 앞에 당도하자 그는 먼저 앉아서 리오를 기다리고 있었다.
“앉거라.”
“… 예.”
혼을 내려는 듯한 분위기에 압도되고 말았다.
무슨 말을 꺼내야 할지 입술을 깨물며 리오는 그가 먼저 입을 여는 것을 기다렸다.
“팔찌를 통해 난 그동안 네가 탑을 어떻게 오르는 지 지켜보고 있었다. 이 정도는 나와의 약속을 통해 너도 쉽게 예상했을 테지.”
졸업선물로 준 것이었지만, 그가 했던 ‘앞으로의 관계’를 위해서 준 다는 말을 리오는 흘려듣지 않았다.
그 때문에 이것이 자신을 지켜보기 위한 것, 또한 지키기 위한 물건이라는 것을 내심 짐작하고 있었다.
“… 예.”
그렇다면 이렇게 불린 것은 간단한 이야기였다.
어제와 오늘로 이어진 리오의 추한 실수들을 모두 안드레이는 보았고, 어떤 지적을 해주려고 하는 것이었다.
“10층까지는 잘 올라오더니만… 11층 부터는 조금 움직임이 이상하구나. 그 전까지는 빠릿 빠릿하고 힘이 들어가 있었다면… 지금은 기가 죽었어. 무슨 심중의 변화라도 있었나?”
“개인적인 고민이 하나 있긴한데… 말 그대로 개인적인 거라 말씀을 드릴 수는 없네요.”
“큰 문제인가?”
리오는 자신이 고민하고 있는 것이 큰 문제인지 생각해보았다. 귀환과 축복.
“… 예. 큰 문제라고 해야겠네요. 아무래도 귀환과 관련 된 거라…….”
안드레이는 그 말에 한숨을 내쉬었다. 귀환과 관련되어 있다면 적절한 조언이 필요할 것 같았다.
“하나 묻지 리오. 너는 탑을 오르는 이유가 무엇이더냐?”
그 말에 리오는 멈춤 없이 답했다.
“제가 살던 세상으로 귀환하기 위해서입니다.”
흔들림 없는 리오의 확고한 말에 안드레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무슨 고민을 하지? 귀환을 하기 위해서 모든 것을 내다버릴 수 있는 것이 귀환을 목표로 하는 모험가들 아닌가?”
“그… 렇겠죠. 저 또한 그러하니까요.”
“그런데 귀환 때문에 고민을 하다니?”
고민에 대해서 설명하지 않으면 안드레이는 이해를 할 수 없을 것 같았다.
리오는 할 수 없이 그에게 조금이나마 설명을 해주기로 했다.
“아시다시피 전 10층을 올라갔어요. 보상으로 귀환을 할 수가 있는데… 일정 시간 동안 귀환을 하고 오면 귀환의 이외의 것들을 놓치고 말아요. 그것은 다음 층을 오르는 이들과 격차로 벌어지고 말죠. 이런 것들이 쌓이고 쌓이다보면, 마지막 층의 영구 귀환권을 얻을 수 있는 날이 저에게 점점 멀어지고 말아요. 전 그거 때문에 고민하는 거 에요.”
그 말로 안드레이는 모든 것을 이해했다. 리오가 어째서 11층에서 고전하는 지 조차.
“… 아하. 그렇군. 멍청한 놈. 넌 설마 여태 10층의 귀환권을 아무런 댓가 없이, 그저 주어주는 줄로 알고 있었나 보군. 그런 생각을 가지고 오로지 10층의 귀환권만을 바라보며 그런 노력과 고생을 해왔는데… 뚜껑을 열어보니 이 모양이니 제 실력이 안 나올 수밖에.”
안드레이의 말을 듣고 서야 리오는 자신의 문제점을 자각했다.
의욕이 없다. 목표를 상실했다는 느낌이 들었다.
100층이라는 멀고 먼 곳까지 가기 위해서는, 중간 중간마다 쉬는 때가 필요했다.
그것을 위한 하루의 귀환이었는데, 능력 상승을 위해 하루 귀환을 포기하면 100층은 너무나도 벌게 느껴지고 만다.
“… 어찌 해야 하죠?”
리오의 물음에 안드레이는 당연하다는 듯이 말했다.
“당장 다녀오너라. 너의 본래 세상으로. 원래 그것이 너의 목적이었지 않느냐?”
“그렇게 했다간… 전 탑을 오르기 힘들어 질 텐데요…….”
안드레이는 코웃음을 쳤다.
“네 주제에 힘들지 않은 때가 있었나? 넌 크게 착각하고 있다. 축복으로 인해 네 신체가 강화 되든, 귀환을 하든, 네가 뼈 빠지게 고생하며 끝없는 수련을 해야 한다는 것은 변함이 없다. 그럴 바에 나는 차라리 속편하게 갔다 오라고 하고 싶구나.”
‘이거든 저거든 고생이란 말인가…… 하하.’
그 말에 리오는 마음을 굳혔다. 사실 어떻게 되든 모르겠다는 심정이었다.
당초의 목적, 탑을 올랐던 이유.
그리고 이 슬럼프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어떻게든 ‘귀환’을 해야만 했다.
‘가족들을 만나러 가자.’
***
집으로 돌아간 리오는 귀환을 할 준비를 시작했다.
‘준비라고 해도… 챙길 건 이것 밖에 없지만 말이야.’
테일러의 아버지가 썼던 일기장에는 리오에게 도움이 될 만한 이야기가 몇 가지 적혀 있었는데, 그중 하나는 바로 귀환에 관련 된 것이었다.
바로 탑의 물건을 지구로 가지고 돌아갈 수 있었던 것.
지구에서 가난한 삶을 살았던 리오가 지구로 가져갈 만한 물건은 돈과 관련 된 물건들 뿐이었다.
‘보석들이랑… 금괴는 이 정도면 되겠지.’
탑을 오르다 보면 몬스터들은 희귀한 확률로 값비싼 광석이나 희귀한 마법재료들을 떨어뜨렸다.
리오 같은 경우에는 당장 쓸 일이 없었으므로 항상 팔아치웠다.
그때마다 이렇게 귀환을 위한 금괴나 보석으로 자금을 저축해두었다.
‘문제는 이걸 가져가서 어떻게 현금화 시키느냐 인데…… 골 때리는 구만. 암시장이라도 찾아봐야 할 텐데, 나에게 주어진 시간은 하루뿐이야. 그 안에 이것들을 모두 현금으로 바꾸는 건 무리겠고… 역시 가족들에게 맡겨야하나?’
세상 물정을 모르는 건 아니지만, 괜히 가족들에게 이런 것을 맡기는 건 걱정이 되었다.
괜한 일에 휘말 릴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불미스런 일만 없으면 좋겠는데.’
준비를 끝마치고 리오는 탑으로 향했다.
탑의 대기실로 이동 한 뒤, 픽시를 불러내자 그녀는 리오의 모습으로 모든 것을 파악한 모양이었다.
“… 귀환으로 결정하신 거죠?”
“응. 잠시 갔다 올게. 기다려.”
“기다리라니…. 그런 말씀 마세요. 저와 리오님은 이제 단짝이나 다름없다고요. 저도 따라갈 거 에요.”
예상치 못한 말이었지만, 리오는 왠지 모를 안심이 가슴 한편에 생겨났다.
이제 픽시가 없는 생활은 리오에게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그저 네가 지구 사람들에게 들키지 않기를 빌 뿐이다.”
“네네. 그럼 출발 할게요.”
픽시가 수인을 맺는 것과 동시에 오감을 뒤흔드는 두통이 찾아왔다. 마치 탑의 층을 이동할 때 느끼는 어지러움과 비슷했다.
‘윽…….’
참을 수 없는 두통으로 인해 눈을 감았다.
땅에 드러눕고 수초 간 숨을 몰아쉬고 있을 때. 리오는 탑의 세계와 달리 폐속으로 들어오는 탁한 공기를 마쉴 수 있었다.
“… 돌아온 건가.”
감개무량했다. 그 어디를 보아도 탑 같은 것은 보이지 않았고, 포장된 도로와 사람들의 말소리는 끊이질 않았다.
“… 아하하하!”
이동 된 위치는 리오가 탑의 세계로 이동 되었던 곳이 아니라, 그 토록 보고 싶어했던 가족들이 있는 고향 집의 근처였다.
공원의 풀숲에서 튀어나온 리오는 사람들의 내음을 흠껏 맡았다.
‘돌아온 거야. 지구로!’
탑의 세계로 처음 갔을 적. 입고 있었던 복장으로 리오는 지구로 돌아왔기 때문에 시선이 모이는 일은 없었다.
그러나 갑작스럽게 풀숲에서 튀어나와, 이상한 행동을 하기 시작하니, 주변에 있는 행인들이 의아한 눈으로 바라보기 시작했다. 하지만 곧 각자의 할 일을 하러 걸어가기 시작했다.
‘… 그래. 저런 무관심이 바로 지구로 돌아왔다는 증거다.’
싱글벙글 웃으며 리오는 자신의 가족들이 있을 집으로 향했다.
가는 길목에는 인적이 드물었다. 이곳에는 탑의 세계처럼 픽시를 탐지할 능력자가 없는 터라, 인기척이 없으므로 픽시는 곧바로 모습을 드러내었다.
“태준님?”
픽시에게서 자신의 본명을 다시 듣게 되자 리오는 깜짝 놀랐다.
“아… 그렇지. 여기는 지구지… 그 리오라는 그 이름을 쓸 필요가 없구나.”
탑의 세계가 아닌 이상. 리오 라는 이름. 가면에 얽매일 필요가 없다.
이곳에는 탑의 규칙이 적용되지 않는 리오의 현실세계. 지구였다.
“그래. 무슨 일이야?”
“주의사항에 대해서 말씀 드리려고요. 별건 없고… 태준님이 아무리 발악을 하셔도 시간이 지나면 탑의 세계로 되돌아가고 말아요.”
“… 그래?”
사실 무슨 수가 없을지 곰곰이 생각해보던 태준이었다. 마법이라는 것도 배워왔겠다. 상상하면 이루어진다는 조건이니, 탑의 귀환도 어쩌면 막을 수 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었다.
‘돌아갈 수밖에 없겠지… 후.’
“그리고 또…. 이 세계의 특성 때문인지 마법을 사용 하실 수가 없으세요. 앤서러는 무예니까 상관이 없지만, 예전처럼 탑의 규칙이 없다는 걸 기억해두세요. 이곳은 태준님의 세계니까요.”
“하루 있는 건데 앤서러를 쓸 정도로 별일이 있을까? 지나친 걱정이야.”
“모르는 일이에요. 하여튼 앤서러를 쓰는 건 자제해주세요. 이곳에는 탑의 규칙도 없고, 탑의 축복도 적용되지 않으니까요.”
몇 가지 주의사항을 더 듣고 태준은 자신의 집 앞에 당도했다.
‘변한 건… 우편함에 통지서가 더 쌓였다는 것 뿐인가?’
쓴웃음을 지으며 태준은 자신을 반가워할 가족들의 반응을 기대했다.
‘… 탑의 세계에서의 일 년은 지구에서 이 년의 시간이 흐른다고 했던가.’
끝나지 않는 가난의 고통.
그 쓰라림 때문에 탑의 세계로 도망친 태준이 돌아왔다. 해결책을 가지고 서. 처리가 곤란하긴 하지만. 그 어느 곳에서도 구할 수 없는 보석과 금괴를 가지고.
‘금의환향이다.’
끼긱!
잔뜩 녹이 쓴 철문을 밀어젖히려고 할 때였다.
“거기. 무슨 볼일이십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