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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1장 10층
탑에 폭풍이 몰아쳤다.
흔히 말하는 개벽버프.
개벽으로 인해 탑의 난이도가 내려갔다. 그로 인해 수많은 탑의 모험가들이 업적을 갈아치웠다,
매일 같이 수많은 탑의 모험가들이 죽는 것은 물론이고 그 위로 나아갔다.
하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이름을 드높이며, 빠르게 탑을 오르고 있는 건, 단 한 명이었다.
폭풍 같은 속도로 업적을 갱신하며, 얼마 전 개벽축제에 충격을 안겨준 이. 맞받아치는 칼 리오.
앤서러 리오였다.
매 층을 오를 때마다 업적을 갈아 치운다. 분명 그날 하루. 업적을 누군가 새로 갱신했건만, 리오가 오르고 다시 갱신한다.
하루에 일층씩. 꾸준히 오르며 리오는 이제 10층을 앞두고 있었다.
‘귀환이 코앞이다!’
귀환 할 수 있는 시간은 고작 하루뿐.
갔다 온다면 귀환욕구는 더욱 활활 타오를 것이며, 고향에 대한 그리움은 사무칠 것이다.
탑을 오른다는 의욕은 의무로 바뀔 것이다.
아침이 되어 늦은 저녁이 되면 리오는 매일 한 층을 클리어하고 나왔다.
그때가 되면 이제 막 탑에서 나오는 주민들과, 이제 막 탑을 들어가려는 주민들이 뒤섞여 무척 복잡한데, 리오는 이 시간이 좋았다.
마치 지구에서처럼, 일을 끝내고 퇴근을 하는 것 같았다.
거기다 탑에서 인간인 리오가 나오는 것을 그 누구도 뭐라 하지 않고, 그 누구도 입씨름을 하지 않는다.
그저 각자 할 일을 할 뿐이었다.
간혹 가다 어느 주민이 리오에게 다가와 재미있는 말을 건넬 뿐이었다.
자신보다 덩치도 크고 육체적인 힘도 우수한 주민들 사이를 간신히 빠져나온 리오는 한숨을 내쉬었다.
탑의 전투보다, 탑의 입구 앞을 빠져나오는 것이 더 피곤한 기분이었다. 원래 출근과 퇴근이 더 힘든 법이었다.
‘죽겠다. 그렇지 않아도 막 탑에서 나오면 여기저기 쑤시는데…….’
리오의 몸이 문제인 것인지, 아니면 앤서러에 아직 숙달되지 않은 것인지 리오는 매 층을 오를 때마다 고생을 하고 있었다.
아직 저층 구간이기 때문에 소형 몬스터들이 나타나고 있었고, 끽해야 오크나 고블린 같은 살짝 덩치가 큰 몬스터들이 나타날 뿐이었다.
타우와 오우거까지 쓰러뜨린 리오에게는 분명 가뿐한 상대였지만, 몸에 축적되는 피로감은 마치 그들을 상대하는 듯 했다.
‘어서 가서 쉬어야지.’
밥을 해먹는 것도 귀찮기 때문에, 리오는 여러 가지 생각해본 결과, 식사는 외식을 하기로 했다.
이제 당당히 밖을 돌아다녀도 될 정도로 리오는 자신감을 가졌다. 아니, 주민 중 그 누구도 리오를 두고 입방아를 찧지 않기 때문이었다.
리오 본인의 흥미를 끌만한 이야기를 할 뿐이었다.
완벽히 이 세계에 스며들었다고 할 수 있었다.
‘… 오늘도 거길 가볼까.’
이곳의 여관 중 가장 크다고 하는 이리나의 여관.
여관에 도착하자 이리나와 종업원들이 리오를 반갑게 맞이했다.
“어서오세요. 리오님.”
“밥이나 먹으러왔습니다. 이리나씨.”
뱀의 하체를 가진 나가족인 이리나의 눈이 예리하게 변했다.
“여긴 식당이 아닙니다만?”
“… 아하하.”
“장난입니다. 어차피 손님이 주무셔도 곤란합니다. 이 여관의 방범장치로는 손님을 지킬 수가 없으니까요.”
이리나의 말에 리오는 의아한 얼굴이 되었다.
“마치 제가 자면 반드시 습격당하는 것처럼 들립니다만?”
그렇지 않아도 얼마 전, 모만에게서 오라클에 대해 경고를 들었던 리오였다. 설마 마을 안에서 불미스런 일이 벌어질 것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지만. 혹시나였다.
그러나 전혀 예상외의 말이 이리나에게서 들려왔다.
“어머. 모르시는지요. 인간과 정을 품고 싶어하는 서큐버스들이 얼마나 많은데…….”
“오늘부터 집에 십자가를 메 달아둬야겠군요.”
서큐버스는 남성이라면 누구나가 욕정을 느낄 정도로 아름다운 여성의 모습을 가진 몽마였다.
다만. 그 모습은 밤에서 한정되어 있었고, 낮이 되면 보기에 정말 추악한 노파로 변하고 만다.
어느 쪽이 진짜 모습일까. 남자라면 황홀한 시간을 보냈던 밤의 모습이 진짜라고 믿고 싶지만, 애초에 같이 시간을 지내서 좋은 건 기분만이다.
영원히 손 안에 담아두지 못할 것이라면, 갖지 않는 것이 좋다.
왁자지껄한 소리가 들려오는 식당으로 안내받은 리오는 음식들 기다리며 자신의 병장기들을 손질했다.
‘별 문제는 없군.’
바쁨에도 리오의 음식은 금방 나왔다.
한참 식사를 하고 있는 가운데, 누군가 리오에게 다가왔다.
“오랜 만이군.”
리오의 앞에 그림자가 드리웠다.
자신을 알고 있는 말투인 듯 하자, 얼굴을 보니 확실히 반가운 인물이었다.
“당신도. 그간 잘 지냈나?”
푸른 리자드 맨. 어지간히도 리오와 인연이 많은 인물이었다.
“건방진 입은 여전하군.”
“미안. 다른 주민들한테는 그렇지 않은데… 당신한테는 왠지 이렇게 대하는 게 익숙해져 버렸네, 이해해줘.”
이제 리오도 무력에는 자신이 있기 때문에 리자드 맨이 두렵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도발을 한 것이었건만, 저번처럼 리자드 맨은 쉽게 도발에 넘어오지 않고 한숨을 내쉴 뿐이었다.
“그런가? 뭐, 이해를 해주지. 넌 내가 여태 알고 있는 평범한 인간은 아닌 모양이니…… 그래. 오늘 9층을 올랐다지?”
예상치 못한 리자드 맨의 반응에 리오는 갈피를 못 잡았다. 저번과 다른 반응.
오히려 본인이 당황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그런데?”
“10층은 조심해라, 아니. 그 어떤 층이든 앞자리가 바뀌는 층은 조심하도록.”
상대의 말이 마치 자신에게 조언을 하는 것처럼 들리자 리오는 인상을 구겼다.
분명 리자드 맨은 마지막 만날 때. 2층에 있었다.
그때. 2층을 못 올라가고 있는 것이렸다.
“앞자리가 바뀌는…? 당신 나보다 아래층 아니었어? 그때 2층이었잖아?”
“멍청한 인간. 그때는 단순히 나와 같은 동족을 만나지 못해서 2층 이상을 올라가지 못했을 뿐. 지금은 동족을 만났다. 난 이미 네가 개벽축제를 준비하는 기간 동안 30층까지 올라왔지.”
2층의 클리어 조건 중 하나는 자신의 동족과 함께 파티를 맺어야하는 것이 있었다.
리오도 그것으로 고민을 했었지만, 우연히 테일러를 만나고 쉽게 해결할 수 있었다.
그러나 리자드 맨은 그 조건 때문에 제법 시간을 보낸 모양이었다.
결국 해결을 보았고, 리오가 3개월 동안 축제를 준비하는 동안, 그는 30층까지 올라갔다.
“하! 이런…!”
라이벌이라고 생각조차 안했지만, 그나마 아는 사람에게 추월당했다고 생각하니 리오는 질투가 났다.
거기다 리오의 들끓는 질투를 폭발하게 하는 장면이 그려졌다.
푸른 리자드 맨과 똑같은 비늘을 가진 리자드 맨이 다가와 스킨쉽을 하는 것이었다.
‘아, 암컷?’
외형을 보아 암컷인 것은 분명했다. 방금 전까지 리오와 대화를 하던 리자드 맨은 수컷이다.
‘2층에서 도, 동족을 만나서 올랐고… 그래서 지금 30층까지 올랐고… 바, 방금 전 스킨쉽은!?’
누군가 설명 해주지 않아도 방금 전 스킨쉽에 대한 이유가 리오의 머릿속에 떠올랐다.
우연히 만난 두 사람. 아니 두 리자드 맨.
위기와 위험, 고난과 역경을 헤치며 그 사이에서 꽃피는…….
“바, 반갑습니다. 리. 리오라고 합니다.”
고작 리자드 맨에게 느끼는 부러움을 애써 무시하며 리오는 새롭게 나타난 인물에게 자신을 소개했다.
“어머? 리사 라고 해요. 여기저기서 이야기 들었어요. 칼에게도 들었고요. 반갑네요 리오씨.”
리오는 리사라는 리자드 맨에게서 이제야 자신이 싫어했던 리자드 맨의 이름을 듣게 되었다.
칼과 리사. 이름을 기억을 하며 리오는 그녀가 앉을 수 있게 주변에서 의자를 가져왔다.
“하하… 리사씨군요. 이름이 참 아름다우십니다.”
“리오씨도 참…….”
리자드 맨이 쑥스러워하는 모습을 보게 되는 것은 처음이었다. 리오는 무슨 표정을 지어야할지 어색한 얼굴이 되었다.
칼은 리사의 귀에 대고 작게 소곤거렸다.
“전 이만 가볼 게요. 남자들끼리의 이야기에 여자가 끼는 건 아니겠죠. 다음에 또 뵈요.”
그녀가 자리에서 떠나자 리오는 칼에게 물었다.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네 여자를 저리 보내나?”
“긴히 할 이야기가 있다.”
칼과 개인적인 이야기를 할 정도로 친한 사이는 아니었다.
그러나 그가 이런 관계를 원한다면, 리오는 응할 수 있다. 이미 탑의 세상에서 귀환한 다른 인간들과 다르게, 리오는 자신 혼자 귀환할 생각이 없었다.
모든 일을 혼자 해내기에 분명 힘들다. 그렇기 때문에 이종족들과 함께 해내고, 함께 탑을 올라 귀환을 할 생각이었다.
이건 그를 위한 첫 발걸음이라 생각하면 되었다.
‘이렇게… 탑과 이종족들과 연을 맺으면 되는 거야.’
“… 무슨 이야기?”
조심스럽게 말하는 투인 듯했다. 도마뱀이 인간에 가깝게 진화를 한 리자드 맨은 목이 긴 편이었다.
그 긴 목을 낮추고 빼며, 칼은 조심스럽게 말했다.
“아까 내가 30층에 있다고 했지.”
“… 그게 이렇게 조용히 말 할 이야기인가?”
고개를 젓고는 말을 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