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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의 탑-32화 (32/190)

<-- 32 회: 1-32 -->

‘그나저나, 그런 레이드 몬스터를 단독으로 상대했다는 말이야? 하나는 확실하다. 도날이라는 오우거는 나보다 미친놈이군.’

주변의 도박꾼들이 풀어내는 이야기들을 들으며 리오는 혹시 자신의 이야기가 흘러나오지 않는가 하는 기대를 품었다.

그러나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리오’ 라는 단어는 나오질 않았다.

무심결에 도박판을 보자, 자신에게 걸려 있는 금액은 극소수에 불과했다.

‘… 어쩔 수 없나.’

선입관이라는 건 무섭다. 인간이기 때문에 드라칸들의 다른 제자들을 상대로 활약하지 못할 것이다.

리오에게 도박을 건 이들은 어떤 이들일까? 대부분의 인간들이 귀환을 해내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극소수의 이들일까? 아니면 혹시나 하는 심정으로 리오에게 건 이들일까?

어느 쪽이든. 지금 리오가 이 여관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기분만 잡쳤군.’

자리에서 일어나려는 때. 은빛 털이 탐스러운 어린 실버울프 한 마리가 리오에게 다가왔다.

“주문 하실 건 없으신 가요?”

아무것도 시키지 않고 있던 리오가 신경 쓰였던 모양이었다. 리오는 자리를 뜨려고 했으나 상대가 얼마 전 자신에게 곤혹을 겪게 한 실버울프라는 것을 깨달았다.

“없다만.”

“아… 네.”

실버울프 또한 리오의 목소리가 낯이 익은 듯. 고개를 갸웃했다.

곧 손님 중 한 명에게 불려가며 리오에게서 멀어졌다.

‘그만 가볼까…….’

“이봐. 그러고 보니 너… 저번에 리오라는 인간이랑 한 번 얽혔다고 하지 않았냐?”

손님 중 누군가가 실버울프에게 한 말이었다. 무심코 자신의 이름이 나오자 여관 밖으로 나오려던 리오는 걸음을 멈추었다.

고개를 돌리자 실버울프는 그때를 떠올린 듯. 다리를 후들 거렸다.

“… 으으. 그 인간. 분명 인간이 아니라니까요.”

그 모습을 보고 주변에 있던 오크가 한 마디 내던졌다.

“취륵. 네가 우리 오크족이 아닌 게 다행이다. 넌 실버울프의 수치다.”

“수. 수치라니! 그때 그거 저만 본 것도 아닌데! 그 소문 다들 들으셨잖아요!”

“뭐… 앤서러? 요상한 소문 같은 게 있긴 하던데, 그래봤자 인간이야. 아무리 개고생을 다한 노력을 해보았자 우리 이상이 될 수가 없다고.”

앤서러. 맞받아 부딪치는 검.

김체건이 남긴 무술에 대해서 탑의 세계의 많은 종족들이 잊고 있었다.

탑의 수많은 종족들 중에, 인간만이 귀환을 했다는 사실은 모두 알고 있지만, 그 이유에 대해서는 모두가 몰랐다.

리오가 처음 이 세계로 왔을 때. 모만이 리오에게 말했듯이 인간에 대한 이야기는 시간이 지나 희석될 수밖에 없었다.

워낙 수가 적은 종족이었다. 거기다 가장 최근에 있던 테일러의 아버지는 별다른 이름을 떨치지 못하고. 귀환도 하지 못한 채로 죽고 말았다.

금방 누군가 죽고, 금방 누군가로 채워지는 탑의 세계의 특성상. 인간들의 이야기는 주민 일부만 기억할 수밖에 없다.

리오는 눌러쓰고 있던 후드를 벗었다. 금화 주머니를 도박판에 내던졌다.

“인간이 개고생을 해보았자 이종족의 이상이 될 수가 없다면, 그들이 어떻게 귀환을 했는지 설명할 수 있나?”

여전히 마법이 걸려 있으나, 필시 이 여관에는 환각따위는 꿰뚫어볼 수 있는 눈을 가진 종족들이 있을 것이었다.

그런 염두를 모두 고려하지 않은 채, 리오는 도박판에 모습을 드러내었다.

“설명을 못하겠지. 나도 못 하겠으니까. 하지만 나는 귀환을 해낸 인간들의 가능성에, 나 자신에게 이 돈을 걸겠다.”

리오의 말에 몇 이종족들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봐. 자기 자신에게 도박을 거는 규정 따위는 없지만……. 제정신이야?”

“나둬. 돈 버리는 게 취미인가 보지. 꽤 주머니가 묵직한데 우리 몫만 많아질 뿐이야.”

여관에서 나가려는 리오를 누군가 붙잡았다.

소와 인간을 합쳐놓은 듯한 외형을 가진 타우족이었다. 덩치 하나는 리오의 수십 배에 달했다.

오죽하면 붙잡힌 리오가 꼴사납게 붕붕 떠오를 정도였을까. 손가락 하나가 리오 한 명 같았다.

“당신. 도박판에 선수 본인이 왔으면 뭔가 보여 줘야하지 않겠어? 애초에 그럴 생각으로 온 것 같은데.”

안드레이의 제자를 붙잡은 타우에게 여관의 손님들은 휘파람 소리를 내었다. 뒷감당을 생각하지 않는 그의 대범함에 환호성을 내지르는 것이었다.

“거기 타우! 오늘 크게 한 판할 친구인데 얼굴은 상하게 하지 말라고.”

“그놈 스승 오면 골치가 아프니깐. 조심해.”

거대한 타우에 비하면 리오는 마치 모기와도 같았다. 우연히 아래에 있던 실버울프와 시선이 부딪쳤다.

앞으로 벌어질 일이 어린 실버울프만이 짐작이 가는 모양이었다.

더 이상 들끓는 화를 참을 필요는 없었다. 리오는 거침없이 타우를 향한 분노를 표출하기로 했다.

반 년이 넘는 시간 동안 받은 수모, 인간이라는 이유로 받은 알 수 없는 시선과 수근거림. 그로 인한 스트레스.

그것을 풀기에는 이 타우족 한 마리는 너무나도 제격이었다.

“그래. 나는 이게 보여주고 싶었다. 이 자식아!”

노호한 목소리와 함께. 리오는 마법을 시전했다.

무음 캐스팅.

보통 마법사라면 이미지 구현을 위한 시동어가 필요할 테지만, 리오에게는 필요가 없다.

상상 하라. 그것이 곧 현실이 된다.

알레스터 크로울리 라는 인간 마법사가 남긴 말로 인해 리오는 마법 시동어가 필요 없게 되었다.

사실 다른 무엇보다, 마법에는 시동어가 필요 없을 정도의 이미지 구현이 중요했다.

그것은 리오는 다른 부분으로 해결했다. 바로 한국에서 했던 온라인 게임.

온라인 게임에서 보았던 수십 가지의 마법들로 이미지 구현을 대체했다.

어느 한 가지 마법이 있다고 가정 하자.

보통 마법사들은 그 마법에 대한 이름과 설명을 듣고 상상을 먼저 한다. 하지만 리오의 머릿속에는 상상보다 다른 것이 먼저 떠오른다.

어느 게임에서 보았던 마법 스킬 이미지.

무음 캐스팅에 가장 중요한 이미지 구현이 뒷받침이 되어주니, 무음 캐스팅에 특별히 어려움은 없었다.

상상하라. 그것이 곧 현실이 된다. 라는 신념은 거들뿐이었다.

타우는 자신의 손에서 갑자기 화기가 느껴지자 깜짝 놀라며 손바닥을 내리쳤다.

마치 모기를 잡듯이, 자신이 누구를 잡고 있다는 것조차 잊고만 행동이었다.

그 장면을 보고 있던 이들이 화들짝 놀라며 잠시 뒤 있을 처참한 광경에 어쩔 줄 몰라 했지만…… 상황은 정반대였다.

쿵!

이리나의 여관은 수많은 이종족들을 접대하기 위해 만들어졌으므로, 크기와 넓기 하나는 비교할 곳이 없었다.

가뜩이나 타우는 워낙 덩치가 커서 곁에는 아무도 접근하지 않았었는데… 그것이 정말 다행이었다.

리오가 무슨 행동을 하는지 몇 주민들이 지켜보았지만, 이해를 할 수 없는 결과가 펼쳐졌다.

자신의 수십 배에 달하는 타우를 리오는 단 번에 뒤집어 놓았다.

“당신. 생각보다 가벼운데? 칼슘이 부족한 거 아니야? 광우병 걸렸는지 확인해보라고.”

껄껄 웃음을 터트리며 리오는 식당 밖으로 향했다. 안의 광경을 지켜보고 있던 이리나는 놀란 눈으로 있다가 리오에게 한 마디 던졌다.

“크게 불을 질러놓고 가시네요.”

“글세. 다른 불에 비하면 내 불은 금방 꺼질 것 같은데.”

리오는 말을 하고 인상을 찡그렸다.

‘… 역시 타우는 무리였나?’

상대의 충격을 되돌리는 반격술. 앤서러가 마냥 무적인 것은 아니었다.

모든 충격을 되돌릴 수 있는 형편 좋은 기술 일리가 없다.

리오는 온 몸의 뼈가 부서지는 고통을 느꼈다.

이제 와서 고통이 느껴지는 건, 탑의 밖이기 때문이었다.

단순히 앤서러의 후유증이 아니었다. 그저 죽지 않는 탑의 밖이기 때문에 뒤늦게 온몸의 뼈가 부서진 고통을 이제 느끼는 것이었다.

본래대로라면, 탑의 안이었다면 리오는 방금 전의 일로 즉사했다.

‘수련이 부족한 걸까? 아니면 앤서러의 한계가, 인간의 한계가 명확한 걸까.’

알레스터 크로울리의 마법서를 통해. 김체건의 벽화를 가만히 두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든 리오는 매일 마법을 배우며 앤서러를 연마해갔다.

‘알면 알수록 끝이 없군. 마법이나 앤서러도.’

고통에 식은땀을 흘리기 시작한 리오는 조심스럽게 마법을 시전했다. 마비 마법이며 온 몸의 감각을 차단하기도 하는 퍼랠러시스 마법이었다.

자신의 마법이기 때문에 퍼랠러시스를 조정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고통만을 마비시키고 리오는 이리나에게 물었다.

“… 여관…에 남은…방 있습니까?”

말을 더듬으며 땀범벅으로 변한 리오에게 이리나는 속사정을 묻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특실이 남아 있긴 하지요. 안내해드리겠습니다.”

드라칸 같은 특별한 종족들에게만 내어주는 방을 이리나는 리오에게 주었다.

“손님. 의사가 필요하신지요?”

“과도한… 서비스 아닙니까?”

“밀린 대금을 치를 뿐입니다.”

밀린 대금이라는 말에 리오는 순간 무슨 말인지 생각에 빠졌다. 곧 실없는 웃음이 터져 나왔다.

“그때 하루 일한 걸. 말씀하시는… 겁니까?”

그날 하루 일한 것으로 여관주인에게 특실을 대접받고, 이런 융숭한 대접을 받는 것은 너무나도 과분했다. 안드레이의 제자라는 입장이기 때문일까?

곧 이리나의 답변에 리오의 궁금증은 풀렸다.

“손님께서는 모르시겠지요. 손님의 행보가 스스로에게는 별거 아니어도. 사실은 하나하나가 이 마을 주민들의 시선을 잡아끈다는 것을. 그날 하루. 손님이 직원으로써 이 여관에 얼굴을 비춘 것만으로도 그때 꽤나 벌어들인 돈이 적지 않았답니다.”

‘난 동물원의 원숭이니까.’

이종족들이 본래 살던 세계에서는 지긋지긋한 인간이었겠지만. 이곳에서는 희귀종이다.

눈에 담아두면 언제 또 볼지 모르는 종족이었다.

울타리에 가둬두어서라도 관리하고, 이전처럼 막대하지 않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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