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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의 탑-31화 (31/1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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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은 리오가 이 탑의 세계로 와서 첫날을 보내었던 곳이었다.

좋은 추억은 없었다. 단지 그때의 기억을 상기시키자 구릿한 마구간 냄새와 오크들이 떠올랐다.

‘… 잘 있으려나? 그래도 이곳으로 와서 신세를 진 오크들인데.’

2층에서 오크 여럿에 의해 고생한 리오였지만, 탑의 내부와 탑 밖은 전혀 다른 세상으로 보기로 했다.

게임과 현실을 착각하지 않는 것과 같았다.

게임 속에서 돼지와 비슷한 몬스터에게 죽었다고, 돼지고기까지 싫어할 순 없는 노릇아닌 가.

오크들의 행방이 궁금해진 리오는 여관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오늘은 개벽축제이기 때문에 마을 전역의 여관 시설들은 모두 무료로 이용할 수 있었다.

술과 음식 또한 무료였다. 지출되는 비용들은 모두 신이나 다름없는 탑의 시스템이 ‘행운’과 비슷한 것으로 돌려주기 때문에 여관 주인들에게 아쉬울 것이 없었다.

누구든지 들어오라는 듯. 활짝 열린 여관문은 리오를 맞이했다.

안에서는 벌써부터 술냄새가 풍겨오고 있었고, 맛난 냄새가 리오의 코끝과 혀를 자극했다.

절로 입술을 축이는 리오에게 누군가 다가왔다.

“어서오…….”

바쁘게 움직이는 직원들 사이에서 낯익은 여성이 다가왔다.

언뜻 보기에는 분명 아름답다고 할 수 있으나, 치마폭 사이로 드러난 뱀의 형상은 남성의 시선을 다시 위로 올리기에 충분했다.

뱀의 눈과 부딪친 리오는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생각해보면, 이 나가족 여성. 여관 주인에게는 사죄해야할 일이 있었다.

자신은 탑의 세계로 온 첫날, 여관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무책임한 일을 저질렀다.

아무 말 없이 여관에서 도주를 했던 것. 현대를 살다온 리오에게 ‘직장 도주’라는 겁 없는 짓은 입이 두 개라도 할 말이 없는 멍청한 행동이었다.

아르바이트 수십 개를 하며, 근무 중 도주를 하는 사회 초년생들을 비웃었던 것이 수십 번이었다.

그 행동을 자신이 해버렸다는 사실을 이제 와서 깨달은 리오는 나가족 여성에게 고개를 숙였다.

“… 죄송합니다.”

그녀는 화들짝 놀란 듯 눈이 크게 뜨였다. 이내 먹이를 눈앞에 둔 뱀처럼 예리하게 변했다.

“역시 그때 그 인간이 맞구나…… 아니, 이제는 이렇게 불러선 아니 되지요.”

처음에는 고고한 말투를 사용하는 듯 했다. 마치 나가족의 여왕처럼, 본래 이 여관의 여왕이니 그 말투는 너무나도 어울렸다.

그러나 그때와 달리 리오의 위치는 한 낯 여관 주인인 그녀가 막대하기에는 너무나도 높아졌다.

탑의 세계 최상위 종족중 하나인 드라칸의 제자. 리오를 막대 하는 것은 드라칸의 명성에 흠집을 내는 것과 같았다.

‘굳이 그런 이유가 아니더라도, 이제는 여관직원이 아니고 손님일 뿐이니까.’

옷매무새와 자세를 바로 잡고 나가는 입을 열었다.

“고개를 드시지요. 리오님.”

드라칸과의 관계는 겨우 3개월 뿐인 관계였기 때문에, 리오는 안드레이에게서 제자라는 이유로 어떤 파급력이 있는지 설명을 듣지 못했다.

본인 또한 아직 약육강식의 세계를 제대로 맛보지 못했기 때문에 그 영향을 알지 못했다.

그 때문에 리오는 단순히 여관 주인이 자신의 사과를 받아준 것이라고만 생각을 했다.

“아… 예. 그때 도망간 건 정말 죄송합니다.”

“무슨 생각이 있으셨겠지요. 인간인 리오님이 아니시더라도. 도주자는 언제나 있으니 신경쓰지 마시길.”

여관 주인에게서 받은 이미지는 차갑고 호된 이미지였다.

그러나 지금 보여주는 성격은 부드러운 어머니 같았다. 리오는 본래 이런 성격인지 고개를 갸웃했다.

‘… 으음. 여자란 어려워.’

“헌데… 리오님께서는 이런 바쁘실 때에 사과를 하시려고 오셨습니까?”

리오는 고개를 저었다.

오늘은 개벽축제. 3개월 전. 안드레이와의 약속을 이룰 날이었다.

그의 제자가 되어, 다른 드라칸들의 제자들과 대련을 한다.

대련 전까지 리오는 컨디션을 조절하고 최대한 대련에 대한 준비를 해야 했다.

여관주인은 그것을 지적하는 것이었다.

“아, 아뇨. 우연히 주변을 지나가다 이 여관이 보여서…….”

“그렇습니까? 전 또 다른 이유 때문 인줄 알고…….”

“다른 이유라뇨?”

리오는 자신이 이곳에 올 이유가 또 있는지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오크들? 우연히 생각이 났을 뿐. 그들로 인해 리오가 굳이 이곳으로 올 필요까지는 없다.

어쩌다보니 잘 지내고 있는지 호기심이 생겼지만, 그전에 이 여관으로 발걸음을 향하고 있던 건 리오 본인의 의사였다.

“이런 축제에, 그리고 매년 있는 누군가들의 예정된 대련에는 당연히 무엇이 있겠습니까?”

머릿속에 빨간 전등이 켜졌다.

“… 도박?”

“예. 그리고 이 여관은 이 마을에서 가장 큰 곳이지요. 도박판이 크게 벌어질 만한 곳 아닙니까?”

나가족 여성이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지 리오는 이해했다.

도박판으로 자신이 나가, 무언가 행위를 해주기를 바라는 것이다. 그것만으로도 도박판은 들끓 것이고 축제는 흥이 날 것이었다.

“눈치를 채신 것 같습니다만. 그냥 여관에서 나가시렵니까?”

“도박이라…….”

리오는 수중에 있는 돈을 계산해보았다.

반년에 가까운 시간동안 일했지만, 그만 둘 때 병장기와 이것저것들을 구입하느라 꽤나 돈이 나갔다.

거기다 그 이후에도 마법을 배우면서 안드레이의 지시로 구입할 수밖에 없었던 마법재료들이 있었다.

소득이 없던 리오에게 도박은 흥미가 당기는 이야기였다.

‘그냥 흥을 돋구는 것만으로는 심심하지.’

“그러고 보니 그동안 이름도 모르고 대화를 했군요. 성함이 어떻게 되십니까?”

나가족 여관주인은 가슴에 손을 올리며 답했다.

“이곳에서의 이름은 이리나라고 합니다. 데이트 신청은 거부하겠습니다. 인간 남성이 다가오면 팔딱 뛰는 심장이 보고 싶어보고 지거든요.”

섬뜩한 인사말을 남기는 이리나에게 리오는 한숨을 내쉬었다.

단순히 이후의 관계를 위해 이름을 알고 싶었던 것 뿐인데, 괜한 오해를 한 것 같았다.

수초 뒤, 리오는 자신이 원하는 대상에게만 목소리를 들려주는 마법인 ‘텔레파시’를 사용했다.

[… 주변에 보는 눈이 있으니 잠시 한 바퀴 돌고 오겠습니다. 간단한 변장을 한 뒤에 도박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보고…… 어떻게 할지 결정하겠습니다.]

여관 입구에서 대화를 나누는 리오와 이리나를 많은 주민들이 곁눈질로 훔쳐보고 있었다.

둘 다 유명 인사였기 때문에 호기심이 가만있질 않았던 것이었다.

이리나는 리오가 텔레파시 마법을 사용하는 것을 보고 조금 놀란 표정이 되었다. 하지만 곧 드라칸의 제자라는 것을 떠올렸다.

그녀가 고개를 끄덕이자 리오는 육성으로 말했다.

“제 심장을 오늘 밤이라도 보여드리고 싶은데… 오늘은 선약이 있어서… 아쉽군요.”

“여성은 가끔 남자가 보여주는 의외의 모습으로도 가슴이 뛰기도 하지요. 오늘밤은 기대하겠습니다만… 통탄스럽게도 나가족에게 심장이 없군요.”

어깨를 으쓱하며 리오는 여관을 나왔다.

주변을 둘러보는 척하며 자신의 뒤를 밟는 자들이 있는지 주변을 살폈다.

‘… 뭐, 내 감각에 걸릴 정도면 이종족이라 부를 수도 없지.’

인간에 비하면 모든 것이 월등하게 태어나는 탑의 주민들.

공기에 흐르는 먼지의 개수가 보일 정도로 리오는 초인이 아니었다.

그저 감이었다. 유명인사가 되어버렸으니 누군가 자신의 뒤를 밟고 있을 것이었다.

지금부터 할 일은 도박의 조작이다. 그 행동을 들켜서 별로 좋을 것이 없었다.

여관에서 좀 떨어진 곳까지 이동한 리오는 주민들이 길게 줄을 선 요리점에 가까이갔다.

가장 맨 뒤의 줄에 서 있었는데, 인간 리오가 있기 때문인지 요리점 주변에 주민들이 더더욱 몰려들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맨 뒤에 있던 리오는 중간지점으로 바뀌었다. 좀 더 시간을 끌던 리오는 인파속으로 이동했다.

로브의 후드를 눌러쓴 순간. 리오의 입이 바쁘게 움직였다. 그 순간 리오가 입고 있던 로브의 색이 변했다.

‘너무 오버한 것 같은데. 사실 내 뒤를 밟는 스토커가 아무도 없으면 망신인데?’

다시 여관으로 발걸음을 돌리려는 때였다. 음울한 기운이 가득한 정령이 리오에게 부딪쳐왔다.

“…….”

부딪친 충격으로 리오의 후드가 벗겨졌다. 사과의 한 마디 없이. 그림자 정령 녹턴은 모습을 감추었다.

‘… 눈치 못 챈 것 같군.’

변신 마법까지는 사용 못하기 때문에, 리오는 가벼운 환각 마법을 얼굴 전체에 걸어두었다.

다행히 정령은 후드가 벗겨진 리오의 얼굴을 보고도 자신이 쫓던 인물이라고 깨닫지 못한 모양이었다.

다시 로브의 후드를 눌러쓰고 리오는 여관으로 향했다.

여관의 식당 안은 이미 후끈 달아있었다.

아직 전야제까지는 한참 시간이 남아있건만, 도박꾼들은 각자의 정보로 입씨름을 하고 있었다.

“드워프 네밀이 우승 할 것 같다고. 그 자식은 드라칸의 제자가 되기 전부터 이미 탑을 꽤나 올랐다고 들었어.”

머리에서 산양뿔이 돋아난 이의 말에 누군가 고개를 거칠게 흔들었다.

“개소리! 난 도날이랑 직접 파티를 맺어본 적도 있어! 다들 40층의 마스터 골렘에 대해서는 알 텐데? 그 오우거 자식은 마스터 골렘과 오분 동안 스파링을 뜨더군! 정말 미친 자식이야!… 근데 그 자식이 드라칸의 제자가 되어 마법을 배우다니!”

탑의 규칙상 리오는 40층에 대해서 들을 수 없었다. 그 탓에 누군가가 말한 마스터 골렘이라는 단어는 리오에게 들려오지 않았다.

하지만 문맥만으로도 40층이 얼마나 대단한지 리오는 감을 잡을 수 있었다.

파티라는 것은 소수의 인원이 강력한 적을 물리치기도 하지만, 주민들의 이야기를 가만히 듣다보면 짐작가는 내용이 있다.

수십개의 파티가 모여, 단 한 마리의 강력한 몬스터를 처치하는 것도 있다.

‘레이드 파티인가? 소름끼치는 군. 그런 걸 직접 해야 하다니.’

죽으면 다시 살아나지도 않는 세계에서, 강력한 거대 몬스터를 사냥해야 하다니, 리오는 상상만 해도 한숨이 절로 흘러나왔다.

게임이었다면 죽으면서 수십 번을 부딪쳐서 공략을 알아낼 테지만, 이곳은 아니었다. 동료의 죽음을 빌미로, 자신의 죽음을 빌미로 공략을 알아내야 했다.

‘빌어먹을 탑의 규칙. 레이드 같은 건 공략법을 좀 공유하면 좋잖아?’

모든 층에 대한 공략을 공유하는 것은 금지되어 있다. 그 때문에 리오가 방금 전 마스터 골렘의 이름을 듣는 것도 불가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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