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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 몇 마법사들하고는 면식이 있으니…….’
리오가 한참 총판에서 이름을 떨칠 때, 마법사들이 리오를 찾아온 적이 있었다.
머리가 좋다는 소식에 마법사로 키우려는 것이었던 건지, 아니면 인간이기 때문에 실험 재료로 쓰려고 했던 건지. 목적은 각자 다르겠지만. 모두 리오에게 제안했던 것은 하나였다.
마법을 배워볼 생각은 없냐는 말.
곧 리오에게 마법적 재능이 없다는 걸 깨닫고 되돌아갔지만. 리오는 지금이라면 그들에게 마법을 배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일종의 네비게이션의 역할 수행도 가능한 픽시에게 리오는 이름을 알고 있는 마법사의 자택 안내를 부탁했다.
그러나 픽시는 곧이 곧이 안내를 하기보다, 리오에게 자택을 가는 이유를 물어왔다.
가이드 주제에 건방지긴 해도, 이런 식으로 묻는 건 보통 그저 그런 궁금하단 이유에서는 아닐 것이었다.
리오는 입술을 씹으며 답했다. 자신의 무능함을 인정하는 건 좀처럼 힘들었기 때문이었다.
“… 아무래도 마법이라는 건 혼자 배우기 힘든 것 같아서. 그 사람들에게 도움을 좀 받으려고 하는데…….”
리오의 말에 픽시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건 안 되요.”
자신의 말에 단칼에 거부 의사를 밝히는 픽시에게 리오는 기분이 상하고 말았다.
“왜? 또?”
“탑의 축복에 관해서는 가능한 알려지지 않는 게 좋아요. 마나의 축복이 없던 인간이, 갑자기 생겨났다. 이건 절대로 있을 수 없는 일인데… 마법사들이 가만히 있을 리가 없거든요. 어떻게 해서든 조사를 할 거에요. 그렇게 되면 탑의 축복에 대해서 알게 되겠죠.”
“탑의 축복이라는 건, 신의 기적 같은 거 아니었어? 고작 마법사들이 조사를 한 다해서 들켜지나?”
“당연히 안 들켜지죠. 단지 마법사들의 모진 괴롭힘을 받은 리오님의 그 못된 입에서 이런 저런 이야기가 줄줄 흘러나올 뿐이죠. 비명과 함께.”
리오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확실히 이런 세상이라면, 가능성 있는 이야기였다.
어차피 탑의 내부가 아니라면 죽지도 않는다는 조건이 있으니.
“……….”
픽시는 리오의 정면에 앉으며 입을 열었다.
“이참에 말씀드리는 거지만…. 뭐 눈치는 채고 계시겠죠.”
“뭘?”
“제가 왜 리오님의 곁에 타인이 있으면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지. 그 이유를요.”
탑의 축복이랑 비슷한 이유이리라.
픽시라는 쓸모 있는 가이드가 인간족에게만 붙어있다는 건 다른 종족의 입장에서는 부러울 것이었다.
픽시는 단순히 인간에게 이 세계의 기본 개념, 상식조차 뒤떨어지는 인간을 서포트하기 위해서 있는 것이었지만. 없는 자에게는 필요가 없어도 부러울 따름이다.
괜히 그런 일을 방지하기 위해 픽시는 리오 외의 인간이 곁에 있으면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것이었다.
리오가 꿀 먹은 벙어리가 되자 픽시는 분위기를 풀 듯 가볍게 웃었다.
“앞으로는 조심하도록 해주세요.”
가이드를 자처하고 있지만 리오에게는 이미 가이드 이상의 존재가 픽시였다.
화를 내면 막 다루고, 잘못한 점이 있으면 질타를 가하지만, 그 반대로도 마찬가지나 다름이 없어 보였다.
“내 누나 행세라도 하고 싶은 거냐?”
“누나는 맞는데요?”
“……”
리오가 할 말을 잃고 입술을 다물었을 때, 갑작스럽게 픽시는 모습을 감추었다.
그 반응으로 리오는 지금 누군가 테일러의 집에 가까이 왔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 누구지? 그동안 아무도 찾아오는 사람이 없었는데?’
테일러와 친한 인물이라면 골치 아픈 일이었다. 테일러라는 인간을 리오가 죽였다는 건 이미 공공연하게 알려진 사실이었다.
테일러와 리오와 2층의 포탈로 들어가는 장면을 많은 주민들이 보았고, 2층에서는 리오가 홀몸으로 나왔다.
거기다 리오가 해낸 업적은 2층에서는 절대로 불가능하다고 알려진 ‘솔로 클리어’.
어떻게 한 것인지는 몰라도, 2층에서 리오는 혼자 나오며 주민을 죽였을 때만 나타나는 상징이 두 눈에 새겨져 있었다.
그것으로 많은 탑의 주민들은 추측 할 수 있었다. 리오라는 사내는 테일러를 죽였다고.
‘… 곤란한데.’
어차피 탑의 밖에서는 보복이 불가능하지만, 죽음에 준하는 고통은 가능했다.
심지어 죽을 수 없을 뿐이지, 영원한 고통을 주는 법도 있었다.
이곳 주민들은 리오의 관점을 볼 때는 정신이상자인 이들이 많았다. 그 때문에 리오는 행동은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없는 척하자.’
숨과 행동을 멈추고 방문자가 물러나기를 기다렸다.
그러나 잠시 뒤, 방문자는 리오가 있는 테일러의 집문을 두들겼고, 안에서 아무도 대답을 하지 않자 굵은 목소리를 내었다.
“… 안에 있는 거 안다. 문을 열어라.”
이종족들의 감각은 당해낼 수 없다며 리오는 한숨을 내쉬었다.
하는 수없이 문을 여는 순간, 리오의 머리만한 손바닥이 목덜미를 붙잡았다.
“컥…!”
순식간에 온몸이 들린 리오는 상대의 모습을 눈에 담기 위해 애를 썼다.
‘드라칸……?’
탑의 세계에서 최강의 종족이라 불리는 드래곤의 변종.
드래곤들이 자신들을 섬기는 충실한 부하를 얻기 위해 만들었다는 종족이었다.
리오는 자신을 노려보는 용인의 눈을 보고 몸이 굳어오는 것을 느꼈다.
“네가 리오라는 인간이더냐?”
“…….”
목덜미를 붙잡혔던 리오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 몸에게 목덜미를 붙잡혔음에도 눈빛만은 살아있구나. 테일러 자식보다는 나은듯하니 살려주도록 하마.”
덜컹!
드라칸. 용인은 리오를 벽에다 내던지며 테일러의 집안으로 거침없이 들어왔다.
발걸음을 보니 테일러의 집에 자주 왕래를 한 모양이었다.
그는 리오가 꺼내어 읽고 있던 마법서를 보더니 웃음을 터트렸다.
“너도 마법을 배우고 싶은 모양이군?… 하지만 듣자하니 넌 마법을 배울 수 없는 체질로…… 음?”
용인의 짐승 같은 눈이 다시 리오를 향했다.
짐승의 눈이 자신에게 향해지는 순간, 리오는 픽시의 말이 떠올랐다. 그러나 마나의 축복에 대해 들킨 듯. 용인은 리오에게 다가왔다.
“… 이건? 반년 전. 타 종족의 마법사들에게서 넌 마법을 배울 수 없다는 체질이라고 이야기를 들었는데……?”
리오는 무슨 변명을 내뱉어야 하나 눈동자를 굴리기 시작했다.
보아하니 이 드라칸은 마법에 대해서 전문가인 모양이었고, 어수룩한 거짓말로는 넘어가지 않을 이론가였다.
거짓말을 했다는 걸 들켰다간… 저 불같은 성격에 무슨 화를 당할지 감조차 잡을 수 없었다.
“재미있구나. 반년 동안 무슨 일… 아니, 얼마 전부터 탑을 오르기 시작 했으니… 필시 탑을 오를 때 즈음에 무슨 일이 있었던 게로구나? 그렇지 않고서는 나약한 인간이 미치지 않고서 탑을 오를 일이 없으니… 순순히 말해보는 것이 어떻겠느냐?”
마치 리오의 과거를 모두 들여다 본 듯한 드라칸이었다. 리오는 낯빛을 변하지 않고 유지했다.
‘… 뭐라고 하지? 그냥 사실 대로 말 할까?’
리오가 우물쭈물 하는 사이, 드라칸은 허리띠에서 짤막한 금속 지팡이를 꺼내었다.
곧 지팡이의 끄트머리 보석에서 영롱한 빛이 내뿜어지기 시작했다.
“나는 꽤나 대단한 마법사란 말이지…… 정신지배란 선택권도 있다만?”
시간을 끌면 끌수록 지팡이의 영롱한 빛은 밝아지기 시작했다. 픽시와의 관계를 저버리고 자신만의 안위를 위할지를 고민할 때. 갑자기 드라칸은 지팡이를 거두었다.
“뭐, 보나마나 축복이랑 관련 된 것이겠지. 괜히 피곤한 짓은 그만두도록 하지.”
리오는 그 말에 깜짝 놀랐다.
‘탑의 축복에 대해 알고 있어?’
리오의 ‘강탈’에 대해서는 모르고 있는 말투였으나, 탑의 축복으로 인한 결과라고 추측을 드라칸은 하고 있었다.
“뭘 그렇게 놀란 얼굴이지? 탑의 세계에서 최강의 종족이라는 드래곤의 피를 이은 드라칸족이다. 그 정도는 상식으로 알고 있다.”
드라칸은 리오가 앉아있던 쇼파에 앉더니 건너편을 가리켰다.
“거기 멍하니 있지 말고 이리 와서 앉아라. 할 말이 있다. 테일러를 죽인 빌어먹을 자식.”
“… 예.”
화들짝 놀라며 리오는 드라칸의 앞에 앉았다.
상대에게 무슨 의도가 있는지는 몰라도, 하나는 알 수 있었다. 자신을 해코지 하려는 생각은 없어보였다.
단지 무언가 요구를 하려고 하는 듯 했다.
“네놈이 무슨 짓을 한 건지는 알고 있느냐?”
‘알 리가 있나. 그냥 해선 안 되는 짓을 했다는 건만 알고 있지.’
리오는 드라칸이 테일러의 지인이었다고 생각하며 진심을 담아 말했다.
“저에게는 정당방위였습니다만…… 몹쓸 짓을 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아니, 나는 네가 그 녀석을 죽인 걸 책망하는 것을 아니다.”
“그럼……?”
“그녀석이 해야 할 일이 있었다. 근데 그 녀석을 네가 그 꼴로 만들어버렸으니…….”
말꼬리를 흘리는 드라칸의 말에 리오는 무슨 말을 하고자 하는 지 이해를 했다.
“제가 테일러가 하던 일을 대신 해야 한다는 말입니까?”
“그렇다. 보통 일이었다면 다른 이가 그 일을 맡겠지만. 워낙 중요한 일이기도 하고, 정황상 적임이 너밖에 없군…….”
드라칸은 입가에 웃음을 띠며 말을 이었다.
“거기다 마법에 흥미도 있고 말이지.”
탑의 세계의 수많은 종족 중, 열 손가락에 꼽히는 드라칸에게 테일러는 어떤 중요한 일을 부여 받았을지 리오는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 마법사였으니까 마법에 관련 된 일이겠지. 아니, 그보다 인간에게 가능한 일을 시켰겠지?’
상념에 빠져있던 리오에게 드라칸이 호통을 내리쳤다.
“뭘 그렇게 생각에 빠져있더냐? 감히 거부할 생각은 아니겠지?”
어차피 거부할 권리 따위는 없던 모양이었다. 리오는 씁쓸하게 웃었다.
“… 무슨 일을 하면 됩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