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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의 탑-18화 (18/1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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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사답게 테일러의 집 안에는 무수히 많은 책들이 어질러져 있었는데, 특별하게 천에 감 쌓인 책 하나가 책장에 꽂혀 있었다.

‘소중한 책인가?’

정성스럽게 밀봉된 책을 리오에게 내민 테일러는 입을 열었다.

“한 번 읽어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전 읽지 못해서요.”

“… 읽어달라고요?”

읽지도 못하는 책을 어째서 소중해한다는 말인가? 리오는 어이없어하며 천을 겉어 내었다.

‘이건…….’

과학 대신 마법이 발전한 탑의 세계에서는 볼 수 없는 인쇄 양식의 책이 리오 앞에 있었다.

낯이 익은 공책.

리오가 어렸을 적. 빵과 함께 동봉된 캐릭터 스티커가 엄청난 인기를 끌었던 애니메이션의 메인 캐릭터가 표지에 그려져 있었다.

“이건…….”

“하하. 표지부터 참 이상하지 않습니까? 탑의 세계에서 이런 몬스터는 본 적도 없습니다. 도서관이나 현자로 유명한 여러 종족들을 찾아가서 보여주었지만. 다들 모르더군요.”

굳은 표정으로 리오는 책을 살폈다.

아들과 아버지의 손을 거쳐 온 공책은 수십 년의 세월이 무색할 만큼이나 깨끗했다.

‘보존 마법이라도 걸린 거겠지.’

그래도 리오는 표지를 조심스럽게 넘겼다. 이 세계를 먼저 거쳐 간 조상의 물건이라고 여겼다.

리오가 속 내용을 읽기 시작하자 가슴이 두근두근 뛰기 시작한 테일러는 기다리지 못하고 물었다.

“어, 어떤 내용입니까? 아버지가 가끔씩 그 공책에 무언가를 적는 걸 보았습니다. 아버지는 마법사가 아니셨는데…… 무얼 적어놓으셨습니까? 혹시 가족에 대해서? 저에 대해서?”

리오는 웃으면서 끄덕였다.

“예. 그렇습니다. 제가 살던 곳의 국어로 일기를 쓰셨군요. 그냥 그날 중요한 일과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그런 것들을 써놓으셨습니다.”

일기라는 말에 테일러는 웃음을 터트렸다.

“이, 일기요? 하하. 그게 고작 일기였습니까?”

한참 박장대소하던 그는 리오의 표정이 굳어지자 간신히 멈추었다.

“… 하하. 죄송합니다. 실은 그 공책 때문에 마음 고생이 심했거든요. 아버지는 평소에 이런 저런 비밀이 많으셨던 분이라…… 아 그렇다고 저희 아버지가 비자금을 숨겨두었다거나 그런게 아니라. 그냥 가족들에게 말하지 않고 끙끙 앓는 분이었죠. 네. 그런 분이셨지요.”

리오는 일기를 마저 읽으며 부자연스러울 정도로 부드럽게 웃었다.

“예. 제가 보기에도 그런 분이신 것 같습니다. 일기를 보니 성격 파악이 되네요.”

테일러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혹시…… 괜찮으시면 그 일기 번역 좀 부탁드릴 수 있겠습니까? 저도 아들 된 입장에서 아버지가 어떤 고민을 계셨는지 알고 싶은데…….”

흔쾌히 고개를 끄덕이려다가 리오는 이상함을 깨달았다.

‘… 잠깐. 분명 모만씨가 본인이 살던 세계에서 글을 알고 있던 상태로 탑의 세계로 왔다면…… 룬어 같은 특수한 문자가 아닌 이상. 대부분의 글자는 모두 읽을 수 있다고 했는데?’

리오는 확인을 위해 테일러에게 물었다.

“혹시. 테일러씨는 글자를 모르시는 겁니까?”

“그 부분에 대해서는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제가 누굽니까? 마법사입니다. 마법에 필요한 룬어를 배웠더니 탑의 세계의 규칙이 적용 되어서 대부분의 글자는 자동으로 읽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탑의 규칙이 적용되어서 한글도 있을 수 있게 되어야 정상이었다.

리오는 그가 그동안 아버지의 일기장을 읽지 못한 것을 보고 설마 하는 생각이 들었다.

테일러 또한 리오와 똑같은 생각을 한 듯. 둘은 눈을 마주쳤다.

“… 잠시. 이걸 한 번 읽어보시겠습니까?”

리오 평소 가지고 다니는 양피지와 펜으로 한글 몇 글자를 써내려갔다.

“…… 못 읽겠습니다.”

“…… 이런.”

이렇게 된 이상 둘 중 한 명이 서로의 글을 배워야만 했다.

테일러는 갑작스럽게 리오에게 제안을 했다.

“… 리오씨. 학자 출신이고, 총판에서 회계쪽 일도 하셨다고요? 그럼 마법을 배우는데 크게 어려움이 없으실 겁니다. 한 번 룬어와 함께 마법을 배워보심이…….”

고개를 저었다.

“… 죄송합니다. 머리는 좋은 편이지만. 세상사가 다 좋은 쪽으로는 흐르지는 않지요. 실은 제가 이미 마법사가 되려고 했습니다만……. 여러 마법사들이 말하길. 저에게는 재능이 없다고 하더군요.”

“후……. 그럼 할 수 없군요. 제가 리오님에게 글을 배우는 수밖에…….”

테일러는 아버지의 일기를 읽고 싶다는 의지가 확고부동한 듯 했다.

“오늘 하루 만 이 일기장을 저에게 빌려주실 수 있겠습니까?”

리오의 물음에 테일러는 고민에 빠졌다. 아버지의 유품을 누군가에게 맡긴다는 것이 여간 껄끄러운 것이 아닌 듯 싶었다.

“무슨 이유로 빌려 가시는 건지 알려주실 수 있을 런지요?”

리오는 이유를 급히 생각해내었다. 다행히 가족들의 일로 거짓말에 능숙한 그는 얼굴색, 눈동자 하나 변하지 않고 부드럽게 말을 이어갔다.

“단지… 일기장을 보니까… 고향이 생각나서 말입니다.”

탑의 세계에서 태어났고, 탑의 세계에서 자라난 테일러로써는 공감할 수 없는 말이었다.

그러나 아버지와 비슷한 외모의 리오가 슬픈 목소리로 그런 말을 하니, 무심코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 알겠습니다. 언제쯤 다시 돌려주실 생각이십니까?”

“내일 당장은 힘들 것 같고…… 이번 주 내에 돌려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어차피 테일러씨는 저에게 글자를 배워야하고… 앞으로 같이 탑을 올라갈 긴밀한 사이지 않습니까? 자주 볼 사이인데 그렇게 걱정하지 마십시오.”

리오의 말에 테일러는 긴 한숨을 내쉬며 소년 같은 미소를 지었다.

“알겠습니다. 오늘은 이만 가보시렵니까?”

“예. 밤이 이 이상 늦기 전에 이만 가보겠습니다. 내일은… 2층에서 뵙도록 하죠.”

“그러도록 하겠습니다. 2층 시험은 얘기를 들어보면 다들 쉽다고 하는데… 저희도 한 번에 통과했으면 좋겠습니다.”

“동감입니다.”

제 5장 일기장

테일러의 집에서 나온 리오는 조용히 자신의 집으로 향했다.

평소처럼 다른 종족의 발걸음이 드문 골목으로 이동하고, 마치 문을 박차며 집에 도착했다.

그리고 소리를 질렀다.

“왜! 말을 하지 않았지!”

리오가 미친 척을 하고 허공에다 말을 하는 것이 아니었다. 혼자 있을 때. 집에 있을 때면 리오의 곁에는 항상 작은 날개를 파닥이는 픽시가 나타났다.

그리고 이번에도 리오의 앞에 픽시가 가련한 어깨를 부들부들 떨며 나타났다.

“… 그, 그게…….”

리오는 거칠게 픽시를 잡았다. 마치 파리를 잡듯이 공중에서 낚아챘다.

“넌! 또 날 기만했어. 저번에도 탑의 축복 같은 걸 처음부터 알고 있으면서 숨기고 있었어! 근데 이번에도……!”

리오가 이렇게 화를 내는 이유는 다름 아닌 테일러에게 빌린 일기장에 있었다.

그의 아버지가 적어놓은 일기장에는 앞으로 리오가 어떻게 해나가야 할지 조금은 도움이 되는 정보들이 있었다.

사실상 일기장의 내용 반 이상이 가족들과 자신의 고민들에 대한 이야기였다.

그러나 초반부는 그야말로 이 험난한 세상을 살아가며 적응한 이야기들이었다.

그가 얻은 탑의 축복, 어떻게 탑을 나아갔는지, 이 탑의 세계에서 선지자에 가까운 이들에 대해서.

‘길드! 길드가 있었어! 하! 온라인 게임 같은 세상이라고…! 당연히 커뮤니티는 있을 건데 왜 길드를 생각지 못한 거지?’

일기장을 통해 알아낸 탑의 길드 시스템은 일반적인 길드와는 달랐다.

보통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길드가 파티의 스케일이 커진 규모라면. 탑의 세계의 길드는 그저 좋고 싫고를 떠나서. 같은 종족이면 무조건적으로 같은 길드에 묶이게 된다.

다른 길드로 속하는 건, 일부 특수한 경우일 뿐이다.

가령 타락하거나 정화되어 종족이 변하는 경우.

오크라면 오크 길드가 있을 것이고, 트롤이라면 트롤 길드가 있을 것이다.

오크가 타락하면 타락한 오크 길드가 있을 것이고. 그 외도 마찬가지다.

리오라면 당연히 인간 길드였다.

길드가 있다면, 당연히 다른 인간들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 탑의 세계에 자신 말고 다른 인간이 있는 것에 대해 진작에 알 수 있었다.

“… 넌! 길드에 대해서 숨겼어! 분명 길드에 대해서 말했으면 날 좋은 길로 인도 할 수 있을 거야. 근데 그걸 숨겨? 무슨 가이드를 해?”

화들짝!

픽시는 변명을 할 수 조차 없었다.

일기장의 내용은 더 있었다. 그 때문에 눈치가 빠른 리오는 그동안 픽시가 어째서 가이드 해야 할 존재에게 중요한 것들을 숨겨왔는지 이미 눈치를 챘다.

“내가 네 인형이야? 빌어먹을!”

한손에 잡히는 픽시를 집어 던지려다 리오는 참았다. 거기까지 하는 건 너무나도 과격한 짓이며 인격을 모독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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