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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픽시. 1층은 돌파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지?”
리오의 질문에 픽시가 모습을 드러내며 답했다.
“전 탑에 대한 질문의 답은 해드릴 수 없어요. 탑은 귀환이라는 보상이 있잖아요? 탑에서 일어나는 일까지 모두 조언해드리고, 답변을 해드리면 형평성에 너무 어긋나버려요.”
“그래?”
역시 귀환의 길은 쉽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리오는 귀환에 대한 정확한 조건을 듣지 않았다는 걸 깨달았다.
“… 아 잠깐. 그 동안 탑에는 관심이 없어서 듣지를 못했는데, 어떻게 하면 귀환을 할 수 있는 거지?”
“간단해요. 탑을 오르면 10 층마다 본래 세계로 귀환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져요. 기한은 하루뿐이지만요.”
리오의 인상이 구겨졌다.
“말로는 간단해보이긴 하네.”
“지금이라도 포기하시는 게 어때요? 원하시는 영구 귀환권은 100층까지 가야지만 얻을 수 있는 건데…….”
리오는 검에 묻은 그린 독의 피를 닦아내며 말했다.
“웃기지마. 나와 같은 사람들이 영구 귀환권을 얻었다고? 그럼 나도 할 수 있어.”
***
리오는 1층의 이름이 무엇인지를 먼저 떠올렸다.
자신의 시야 상단에는 마치 온라인 게임처럼 그동안 걸어온 길이 미니맵으로 표시가 되어 있었고, 그 위에 ‘1층 숲지기’라 쓰여 있었다.
1층을 돌아다니며 꽤 많은 수의 그린 독들을 쓰러뜨렸지만, 계속해서 이어지는 숲은 끝이 보이질 않았다.
하지만 마냥 아무런 소득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탑의 축복 : 강탈에 대해서는 자신의 예측이 맞았다는 것을 증명했다.
그린 독들을 아무리 죽여도 처음 얻었던 ‘독 내성’ 이외의 재능은 얻어지지 않았다.
분명 그린 독들이 입에서 줄줄 흘리는 산성을 다루는 재능도 있을 것이었다며 리오는 아쉬움을 삼켰다.
‘그나저나… 여긴 분명 루프맵이야. 일정 범위의 지형이 계속해서 반복되고 있는 거지.’
적지 않은 수의 그린 독을 쓰러뜨렸더니 이제는 더 이상 리오를 습격하는 몬스터는 없었다.
주변에는 평화를 즐기는 동물들 뿐이었다.
‘1층의 이름이 숲지기인데, 숲지기가 이런 똥강아지뿐이라고? 그럴 리가 없어. 분명 진정한 숲지기가 있다. 그리고 어떤 출현 조건이 있고.’
리오는 강수를 두기로 했다.
생각해보면 그것만큼 숲지기라는 존재를 자신 앞으로 불러내기에 좋은 방법은 없었다.
‘더 이상은 그린 독은 나오질 않아, 숲은 루프맵이야… 어차피 진짜 현실에 존재하는 장소도 아니고. 그저 탑의 내부에 존재하는 곳이니… 한 번 해볼까?’
리오는 숲에서 모은 마른 나뭇가지에 불을 붙였다.
어린 시절에 자주한 불장난 실력은 스물이 넘은 나이에서도 발휘되었다.
화려한 불길이 금세 숲을 잡아먹기 시작했다.
아름다운 녹색 숲은 잔디를 타고 숲 전체. 아니, 1층 전체가 타오르기 시작했다.
오로지 리오가 있는 강물만이 불의 마수에서 벗어나고 있었다.
“콜록 콜록…….”
눈과 코를 괴롭게 하는 매연 때문에 몸을 숙였다. 리오는 처참하게 타들어가는 숲을 지켜보았다.
이미 더 이상 숲지기라는 존재가 있다고 한들, 숲의 파괴는 막을 수가 없다.
픽시는 재주도 좋게 강물을 자신의 주변에 둘렀다. 흔히 말하는 워터 실드라는 걸까.
“… 놀랍네요. 1층을 이런 식으로 돌파하는 방법이 있을 줄이야.”
“귀찮잖아. 숲지기라는 게 뭔지도 모르겠고. 정공법이라는 게 애초에 있는 거 였어?”
한숨을 내쉬며 픽시는 그제야 1층의 해답법을 입 밖으로 내뱉었다.
“1층을 돌파한 것이나 다름이 없으니 말씀드리는데……, 사실 1층에서 일정시간 멀쩡히 계시면 숨어있던 숲지기가 등장하거든요.”
“그런데 나는 그 시간을 채우지도 않고……. 숲에 불을 질러버렸군…… 콜록 콜록. 괜히 독한 연기만 마셨잖아.”
짜증을 내며 기침소리를 내는 순간이었다. 화염에 뒤덮인 숲속의 어딘가에서 고통에 찬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리오에게 또 다시 현기증이 찾아왔다.
눈앞이 흔들리며 오감이 뒤틀렸다.
-인간 리오님이 탑 1층을 최단 기간으로 정복하셨습니다.
모든 감각이 정상으로 돌아올 즈음. 하나의 메시지가 눈앞에 보였다.
‘최단기간…?’
인간이라는 종족보다 우월한 종족은 이 세계에 수없이 많다.
그러나 자신보다 1층을 최단기간내로 빠르게 정복한 종족은 없다.
묘한 우월감을 느끼며 리오는 픽시를 바라보았다.
“최단기간이야. 최단기간 정복. 최단기간 클리어라고? 뭐 보상 같은 거 없어?”
픽시는 예상대로의 질문이었던지, 한숨을 내쉬었다.
"있긴 해요. 하지만 탑의 내부에서 이전 기록을 갈아치우는 업적에 대한 보상은…… 기대하시는 금은보화가 아니에요.“
돈이라면 충분히 있던 리오는 애초에 금전을 기대하지를 않았었다.
탑이라면 돈으로 구할 수 없는 보물 같은 걸 줄 것이라고 기대했었다.
“… 뭔데? 좀 더 다를 형태이려나?”
입을 뻥긋거리더니 픽시는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아쉽게도 지금의 리오님에게 그 보상에 대해서는 말씀드릴 수가 없어요. 이건 탑의 규칙이라서요. 단지 하나 말씀드리자면… 귀환을 하는데에 있어서 큰 도움이 될 것이라는 거죠.”
구체적인 것은 알 수 없었지만 하나는 분명했다. 어디서 구할 수 없는 가치의 물건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은 틀림없었다.
‘이런 걸 다음에 또 할 수 있을까…….’
픽시는 이 일을 업적이라고 불렀지만, 리오는 딱히 대단함을 느끼지 못했다.
고작해야 1층에서 벌어진 일이다.
100층까지 있는 이 탑 중에서 가장 첫 번 째 층에서 일어진 일 뿐.
스스로에게 대견함을 느끼지도 못했다.
‘업적이라니, 그런 것까지 챙길 여유는 없어. 내 몸 하나 챙기기도 바쁜데 무슨…….’
귀환을 위해서 행동하고 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의 안위였다.
‘업적에 대해서는 잊는 편이 좋겠어. 기회가 온 다면 노려보는 것도 괜찮겠지만. 지금은 염두에 두고 움직이는 건 좋지 않아.’
머릿속에서 업적에 대한 것을 잊고 리오는 곧장 다음 층으로 나아갈지 고민했다.
1층과 달리 2층은 아는 것이 전무했다.
탑에 대해서 공략을 공유하는 것은 금지되어 있기 때문에 2층에 대해서 알 수 있는 방법은 직접 부딪쳐 보는 수밖에 없었다.
리오는 어찌 할지 고민을 하다가 탑의 밖으로 나가기로 했다.
이제 막 1층이다.
하루에 한 층씩 올라간다는 보장은 결코 없지만. 오늘은 한 층을 올라갔으니 이만 쉬기로 했다.
픽시의 안내를 받으며 출구로 나가자 왁자지껄한 주민들의 소란스러움이 들려왔다.
‘오늘 따라 유난히 시끄러운데…….’
입고 왔던 로브의 후드를 눌러썼다.
괜히 얼굴이 붉어졌기 때문이었다.
탑의 앞에 있던 주민들이 어째서인지 자신의 이름을 거론하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아무래도 아까 전의 메시지는 자신에게만 보인 것이 아니었던 모양이었다.
***
2층에 올랐다고 해서 리오의 생활 리듬이 흐트러지는 일은 없었다.
이른 아침에 일어나, 남들보다 부족한 체력을 위해 과격한 운동을 시작했다.
아침 식사를 하며 하루 일정을 생각하던 리오는 2층을 바로 향할지 말지 고민했다.
‘… 픽시가 어제 1층을 가도 괜찮을 것 같다는 말을 한건… 내가 1층을 이미 갔다 온 적이 있기 때문에 한 말이겠지.’
그렇다면 2층에 대해 속을 끙끙 앓는 것보다. 한 번 부딪쳐보는 것이 나을 것이었다.
식사를 치르고 리오를 곧장 탑으로 향했다.
탑의 안으로 들어가자 어제와 달리 바로 2층으로 이동되지 않았다.
탑의 대기실이라는 하얀 방으로 이동 되었고, 대기실에 있는 수많은 문중에 오로지 ‘1층 숲지기’라 쓰여 진 문만이 다른 문과 다르게 색을 가지고 있었다.
“… 활성화인가. 음… 엘리베이터 같은 건가 보군.”
어쩌면 집에서 허공에 검을 휘두르는 것보다, 이전에 지나갔던 층으로 되돌아가서 몸을 단련하는 것도 괜찮아보였다.
여러 가지 계획을 세우며 리오는 수많은 문들이 있는 곳이 아닌, 거대한 문이 있는 곳으로 이동했다.
아마 다음 층으로 이동하는 문이 아닐까 싶었다.
발을 내딛자 리오의 예상대로 다음 층의 이동을 알리는 현기증이 찾아왔다.
도저히 적응이 될 수 없는 오감이 뒤틀리는 감각. 그 이후에 리오의 눈앞에는 낮선 문구가 보였다.
-2층 두 명의 호흡
‘두 명의 호흡?’
1층에서는 층의 이름으로 공략법을 찾아내었으니, 리오는 이번에도 마찬가지로 생각했다.
아니, 이 탑이 제시하는 층의 이름은 최소한의 탑을 오르는 자를 위한 최소한의 ‘지원’이다.
“… 두 명의 호흡이라니. 내 예상이 맞지 않으면 좋겠는데.”
두 명의 호흡이라는 말을 듣고 리오는 가장 먼저 생각난 것이 있었다.
2층은 탑의 모험가에게 파티를 맺기를 강요하는 것.
인간인 리오에게 파티라는 것은 무척 불편하다. 2층이 어떤 식으로 설계되어 있을지는 모르지만, 만약 긴 시간이 걸리는 탐험 같은 것이라면… 리오는 상대적으로 모든 것이 우월한 다른 종족을 따라가지 못한다.
‘… 애초에 인간을 동료로 여겨줄 놈이 있을까 싶은데…….’
단순히 파티를 맺고, 2층을 돌파하기만 한다면 쉬운 문제일지도 몰랐다. 하지만 2층은 두 명의 호흡이다.
한 명이 뛰어나고, 한 명이 뒤떨어진다.
호흡이 맞을 리가 없다.
‘단순히 몬스터가 두 마리씩 나오는 거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