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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의 탑-14화 (14/1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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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오는 픽시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앞으로… 어떻게 하실 거 에요?”

“당연한 걸 묻지 마.”

픽시가 말한 축복이 무엇인지는 몰랐지만, 최소한 이런 세상을 만든 탑은 몰상식하지는 않을 것이었다.

적어도. 자신이 탑을 오르는데 도움이 되는 것을 준비해두었을 터.

지금 가지고 있는 것을 버리고, 탑에 몰두해도 만족할 수 있는 것을 준비해두었을 것이다.

트롤이 마법사 대신에 대체를 할 만한 존재를 찾아내었듯.

인간에게도 결국 대체할 만한 것이 존재했다.

리오는 하얀 봉투와 하얀 종이를 찾기 시작했다.

***

이른 아침에 출근한 리오는 창고 관리 부서에 찾아갔다.

리오의 명성을 줄곧 들었던 이들은 처음에는 움찔했지만. 이내 창고에 볼일이 있다는 것을 알고 얼굴이 펴졌다.

“33번 창고에 있는 물건들을 보고 싶습니다.”

“33번 창고 말씀이십니까?”

리오가 33번 창고를 왜 보고 싶은 건지 생각하던 직원은 웃음을 터트렸다.

“이야기를 들으셨나보군요. 거기에 어떤 물건들이 있는지.”

“여기에 일하는 어떤 켄타우로스족 분에게 말이죠.”

창고지기는 누구를 말하는 것인지 알아챈 모양이었다. 이내 어제 보았던 켄타우로스의 이름을 소리쳤다.

“알! 이리와봐.”

반인반마(半人半馬)인 켄타우르스. 알은 건장한 체격을 돋보이며 건물 안으로 들어왔다.

익숙한 얼굴인 리오가 보이자 웃음을 터트렸다. 금새 무슨 이유로 아침부터 온 것인지 알아챈 모양이었다.

“창고를 보시려고 오셨습니까?”

“예. 부탁 좀 드리겠습니다. 알씨.”

알을 불러들였던 직원은 잘 되었다는 듯. 알에게 창고 열쇠를 건네며 말했다.

“그렇게 되었으니까 안내 부탁한다고. 아… 그리고. 거기 있는 물건 원하시면 가지고 나오셔서 곧장 구매하셔도 됩니다. 악성재고니까 가능한 그래주십쇼. 절차는 알고 계시죠?”

“예.”

“그럼. 전 이만 가보겠습니다.”

바쁘게 창고지기가 자리를 비웠다. 알과 단 둘이 남게 된 리오는 그에게 안내를 받으며 33번 창고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조만간 다시 오실 거라는 건 예상했습니다만… 이렇게 이른 아침부터 오실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습니다.”

“저도 설마 이렇게 될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습니다.”

그렇다.

설마 서류다발도 겨우겨우 옮기는 리오가 어떻게 탑을 오른다고 생각하겠는가.

평소 33번 창고를 멀리서 지켜보았던 리오는 오늘처럼 가까이서 보는 것이 처음이었다.

그리고 처음 눈치 챘다.

‘… 녹이 슬지 않았어?’

다른 창고들은 모두 오래 된 흔적이 있었다.

아무리 마법적 처리를 했어도, 녹이 묻고 쇠와 쇠가 부딪친 곳은 흉한 상처가 남았다.

그러나 33번 창고는 그런 흔적조차 없었다.

“눈치 채셨습니까? 33번 창고만 특별하다는 걸.”

알의 물음에 리오는 고개를 끄덕였다.

“총판이 자랑하는 대장장이들이 만든 희대의 명검들입니다. 아무리 악성재고라지만 평범한 창고에 보관할 수는 없죠. 뭐… 여기도 꽉 차면 어떻게 처분을 해야 하긴 해야겠지만…….”

알은 보기에도 예사롭지 않은 열쇠로 창고의 자물쇠를 열었다.

딸각거리는 소리가 들리자 쇠사슬을 고정하고 있던 자물쇠가 땅에 떨어졌고, 소란스러운 소리를 내며 굵은 쇠사슬이 풀리기 시작했다.

“들어가도록 하죠.”

알이 육중한 철문을 열자 리오는 차가운 한기를 느꼈다.

가지각색의 병장기들이 마치 관처럼 느껴지는 상자에 담겨져 주인을 기다리고 있었다.

리오는 막상 이곳에 오기는 했지만. 생각해둔 무기가 없었다. 그저 보고, 만져보고, 느낌 가는 게 있으면 그걸 선택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이렇게 모두 밀봉되어 있다면 곤란한 행동이었다.

따지고 보면 이곳은 창고였지 무기점이 아니다.

“…… 생각해둔 무기라도 있으십니까?”

알의 물음에 리오는 입술을 씹다가 어색하게 웃으며 물었다.

“… 추천해줄 수 있으십니까? 죄송하지만… 어제 말씀 드린대로 사실 제가 이런 무기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릅니다. 운동은 깊게 해본 적도 없고…….”

리오의 말에 알은 생각에 잠겼다.

알이 일단 총판에서 일하고 있지만, 켄타우로스는 선천적으로 타고난 전투종족이다. 성격은 본래 야만하고 흉포하다.

자신의 동족들과는 다르기 때문에 알은 총판에서 일을 하고 있는 것이지만… 기본적인 전투에 대한 감각은 있었다.

‘… 리오님의 육체는 다루기 쉬운 한손 검이 좋겠군.’

한손으로 다룰 수 있는 무기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이동하고, 알은 상자를 몇 개를 개봉했다.

하나 같이 날카로운 예기를 자랑하는 명검들이었다.

“이건 어떠십니까?”

푸른 색 날이 리오의 맘을 쏙 빼앗는 매력적인 검이었다.

분명 검의 성능은 흠잡을 데 없을 것이다. 어차피 리오의 손에 들어가면 어떤 명검이라도 의미가 없으니 그저 외관이 마음에 들기만 하면 된다.

“마음에 드는데요?”

“방패랑 같이 쓰도록 제작되었을 겁니다. 찾아보면 그것과 같은 제작자의 것이 분명…….”

알은 리오에게 무기에 어울리는 방패도 찾아주었다.

무기총판이지만 계약한 대장장이들이 여흥으로 만드는 방어구들과 악세사리들도 창고에 있었다.

그것들을 보여주며 리오에게 사용할 것을 권유했다.

“탑에 올라가실 거라면, 한동안은 이 정도면 충분할 겁니다.”

탑에 올라간다는 말을 하지도 않았건만, 머릿속을 들여다 본 듯이 알이 말하자 리오는 깜짝 놀랐다.

“제가 탑을 올라갈 거라는 걸 어떻게 아셨나요?”

“탑의 세계에서 병장기를 사용할 곳이 그곳 말고 다른 곳이 있습니까? 그리고 물건은 사용하려고 구매하는 거죠. 안 그렇습니까?”

누구나가 예상가능한 일이었다. 리오는 집에서 준비해온 것을 빠르게 제출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군요. 예. 맞습니다. 탑에 올라갈 겁니다.”

짐작하고 있었지만. 리오의 입에서 사실을 듣자 알은 한숨을 내뱉었다.

“… 후우. 그럼 여기는 어떻게 하실 겁니까? 양립이 가능할 정도로 둘 다 호락호락하지 않습니다만?”

리오는 그가 골라준 병장기들을 챙기며 지갑의 돈을 세어보았다.

악성재고들이니 그동안 모아둔 돈이면 충분히 살 수 있을 것이었다.

“호락호락 하지 않다는 건. 저도 압니다. 당연히 둘 중 하나를 포기해야지요.”

그 말을 내뱉고 리오는 창고의 밖을 향해 나갔다. 병장기들을 든 채로.

창고에 남아있던 켄타우로스 알은 리오가 남긴 말이 무슨 의미인지 수초 뒤 이해하고 입을 떡 벌렸다.

***

“이, 이건 뭔가?”

“보시는 대로. 봉투에 쓰여 있는 대로입니다.”

가뜩이나 하얀 피부인 아론의 얼굴이 창백하게 변했다.

“… 그러니까… 사직서. 이 말인가?”

“예.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담담하게 말하는 리오와 달리 아론은 그 말을 믿을 수 없는 듯 했다.

“왜, 왜 그런가? 무엇이 불만인가?”

“직장에 불만은 없습니다. 그저 다른 목표가 생겼을 뿐입니다.”

그 말에 화색이 돈 아론은 즉시 마법으로 찻물을 끓이기 시작했다.

“하하. 다른 총판에 스카웃 제의가 온 모양이군. 알겠네. 내가 그보다 더 큰 걸 주도록 하지. 그러니 여길 떠나지 말게.”

금세 라프라스의 차가 리오 앞에 대령되었다.

‘녹차.’

아론이 끓여주는 녹차는 항상 리오를 괴롭게 했다.

먹을 때마다 이곳에서 볼 수 없는 풍경을 보고 싶게 만들었다.

자신을 붙잡는 아론 때문에 탑에 대한 것을 입밖으로 내뱉는 걸 망설이던 리오는 녹차를 한 모금 마셨다.

그리고 결단을 내렸다.

“전 제가 있을 곳이 이 세상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 그 말은?”

“귀환을 할 겁니다.”

눈을 부릅뜨며 아론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무언가 말을 하려는 그의 입을 막듯 리오는 이어 말했다.

“죽으러…….”

“제가 왜 죽으러 간다고 생각을 하십니까? 전 돌아 갈 겁니다.”

리오를 무시하는 말을 내뱉고 말았다. 아론은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고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이미 마음이 돌아섰군.’

자신이 무슨 말을 하든, 상단장인 조렌이 어떤 회유책을 쓰든 이미 인간 리오는 탑의 모험가가 되기로 마음을 먹었다.

화까지 나려는 마음을 진정시키며 아론은 손을 내밀었다.

“…… 그동안 수고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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