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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의 탑-12화 (12/1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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곁에 있던 리오는 인상을 찡그리며 귀를 막고 옆으로 떨어졌다. 실제로 천지가 요동치는 줄 알았다.

“하하! 우리 트롤족을 무시하지 않는 게 좋아! 이래 뵈도 우리 트롤족은 지능이 높은 편이라고! 마법사는 없지만 천기를 감지는 주술사도 있지!”

‘주술사라… 뭐, 후달리는 게 있으면 누구나가 대체하려는 노력을 하지. 트롤족은 마법사 대신 주술사인가…….’

그 생각을 하다 문득 리오는 걸음을 멈추었다.

자신에게도 부족한 것이 있다. 그러나 자신은 그 부족한 것을 채우려는 노력을 하지 않았다.

트롤처럼 마법사와는 다른 주술사라는 대체행위도 하지 않았다.

‘그게 뭐였지?’

생각이 날 듯 하면서도 생각이 나질 않았다.

언제나 눈앞에 두고 있고, 매일 아침마다 보는 것과 연관이 되어 있음에도 리오는 떠올리지 못했다.

“… 리오?”

트롤의 흉측한 얼굴이 자신의 눈앞에 다가오자 그제야 정신을 차렸다.

“얼굴 치워. 보기만 해도 기분이 상한다.”

“껄껄! 너무 하는 구만!”

“나 말고 다른 인간을 사귈 때는 참고 해둬. 처음에 널 봤을 때 오줌 지릴 뻔 했다.”

“내가 좀 용맹하기는 하지! 그런데… 말 돌리지 말고. 어제 무슨 이야기가 있었나?”

화제를 돌리려고 했던 노력이 물거품으로 돌아가자 리오는 인상을 구겼다.

거짓말을 할까. 순수한 트롤이라면 그럴싸하게 말만 하면 믿어줄 것이었다.

“괜찮은 여자 없냐고 부탁했더니 어제 선을…….”

“이거 이거. 리오군 아닌가?”

누군가 뒤에서 말을 걸어왔다.

익숙한 목소리이었기에, 리오는 말을 멈추고 뒤를 돌아보았다.

“… 회계단장님. 반갑습니다.”

“인사드립니다! 회계단장님!”

트롤은 특유의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인사를 하고 리오의 곁에서 사라졌다.

아론이 리오에게 볼일이 있다는 것을 눈치 채고 자리를 비운 것이었다.

‘… 그러지 않아도 되는 데.’

얼굴에 웃음이 가득한 아론은 리오에게 물었다.

“생각은 끝났나? 여유 있게 농담도 하던데. 아 물론 자네가 들어온다면…… 내 그렇게 할 수 있도록 노력을 해보도록 하지. 물론 리오 자네의 노력이 중요하겠지만 말이야.”

어색한 얼굴로 리오는 답했다. 아직 제안에 대해서는 확실히 결정을 내리지 않았다.

“말씀만으로도 감사합니다.”

아침 회의까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리오와 아론은 잡담을 주고받으며 회계단으로 향했다.

‘같이 있기 거북하군.’

전까지는 그렇지 않았다. 하지만 아론이 계속해서 조렌의 제안에 대한 답변을 촉구하는 투로 말을 하니, 리오는 곤혹스러웠다.

아침 회의를 끝내고, 리오는 할 일을 끝낸 뒤 도망치듯 부서에서 나왔다.

“벌써 퇴근하나?”

“… 아뇨. 잠깐 가볼 곳이 있어서.”

“흠. 알겠네.”

회계단을 나온 리오는 아론과 총판의 간부들이 잘 찾지 않는 장소로 이동했다.

시간을 보낼 목적이었기 때문에 창고 근처에 있을 예정이었다.

‘응?’

무기 총판에는 총판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수많은 창고들이 있었다.

창고의 주변에서 시간을 보내던 리오는 평소 사용하지 않는 창고가 활짝 개방되어 있는 것을 보고 근처의 직원에게 다가갔다.

“33번 창고라… 저기로 들어가는 건 안 팔리는 물건들뿐이죠?”

리오의 물음에 업무를 보고 있던 켄타우로스 직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켄타우로스는 말의 하체와 인간의 상체를 가진 종족이었다.

“그렇습니다. 그 어떤 상단도 주문하지 않는 물건들로… 재활용을 하자니 너무 훌륭한 물건들이라 상단장님을 비롯한 각 부서의 단장님들의 허락 하에 33번 창고로 넣어집니다.”

“팔리지 않을 물건들이라….”

총판의 주변에는 수 많은 대장간들이 모여있다.

총판과 계약한 대장간은 만든 무기를 총판에 공급하고 총판은 무기를 만드는데 필요한 재료와 인건비, 기타 비용을 모두 지급하며 무기를 사들인다.

그런 계약관계인데 대장장이들이 팔리지 않는 물건을 만든다는 것은 총판의 입장에서는 꽤나 곤란한 것이다.

“대장장이들도 저렇게 먼지만 쌓일 걸 알고 있을 텐데… 왜 만드는 걸 까요?”

평소 리오가 나타날 때면 누군가 질책을 하기 마련이건만, 켄타우로스 직원은 질문만 하는 리오의 모습에 신기함을 느꼈다.

“그리워서 만든다고 하더군요. 탑의 세계에서는 리오님 같은 분들이 무기를 휘두르는 걸 볼 수가 없으니, 최소한 가끔이라도 만들어둬서 인간이 무기를 휘두르던 기억을 잊지 않고 싶다고…….”

켄타우로스의 말에 리오는 화들짝 놀라며 그를 바라보았다.

3미터가 넘는 큰 키를 가진 켄타우로스의 눈을 마주보며 리오는 물었다.

“그럼… 저기 33번 창고에 있는 무기들은… 모두 인간의 무기입니까?”

“예.”

켄타우로스의 말에 리오는 발걸음을 창고로 한 발자국 이동했다.

그러나 한 걸음. 두 걸음 옮기고서 깨달았다.

‘… 무기를 든다고 해서 무슨 의미가 있지?’

자신은 이미 탑의 가장 쉬운 층인 1층에서 좌절을 맛보았고 인간의 한계를 느꼈다.

그 이상 올라갈 수 없다.

돼지 목에다 진주를 단다고 해서… 의미는 없겠지만. 예뻐 보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리오도 1층을 올라 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뿐이다.

탑이 귀환의 탑이라고 불리는 이유는 일정 층마다 보상으로 본래 세계로 귀환을 해주기 때문이다.

귀환을 한 번 하고, 다시 이 세계로 돌아오고, 다시 귀환을 하기 위해서는 리오에게는 더욱 아름다운 진주가 필요하다.

더 강력한 무기가 필요하다.

한번 귀환을 한 뒤에 더 극심한 향수병에 시달릴 것이라면, 차라리 시도조차 하지 않는 것이 옳다.

굵직한 켄타우로스의 말이 들려왔다.

“창고를 한 번 보시렵니까? 정말이지… 제가 인간으로 태어났다면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훌륭한 무기들만 안에 가득 있습니다.”

드워프들은 본래 있던 세상에서 인간들에게 지배받고 핍박받았다.

그들이 자주 만들고 가장 잘 만들 수 있는 무기가 인간의 무기일 수밖에 없다.

아무리 여기서 노력을 해보았자. 가장 손에 익은 모양보다 나을 순 없다.

기본적으로 덩치가 크고 완력이 쌘 이종족들에게 인간의 무기가 맞을 리가 없었다.

그래서 드워프들이 만든 훌륭한 인간의 무기는 악성재고가 되어버린 것이다

리오는 관짝 같은 상자에 담겨져 창고로 이동하는 무기들을 보며 입을 다물었다.

“아뇨, 제가 살던 세상은 무기랑은 거리가 먼 곳이라서… 검 같은 건 잡아본 적도 없고, 그림으로만 봐서 그냥 흥미가 동했을 뿐입니다.”

발걸음을 돌렸다.

***

점심식사를 끝내고 리오는 예고도 없이 모만을 찾아갔다.

유유자적 마을 정문을 지키고 있는 그는 언제나처럼 하늘의 구름이라도 세어보고 있는 듯 했다.

“모만씨. 저 왔습니다.”

“음?”

멍한 눈빛에 생기가 돌며 이내 웃음을 터트렸다. 사람이 반가운 것인지 아니면 리오가 반가운 것인지 빈 의자를 가져다 놓으며 바닥을 깨끗이 닦았다.

“어서오게. 심심했는데 잘 되었군.”

이제 어엿한 직장을 다니며, 높은 봉급을 받는 리오는 모만을 빈손으로 찾아오지 않았다.

술을 즐기는지는 모르지만, 이전에 땅의 정령인 노움의 술을 좋아한다는 말을 떠올려 사왔다.

“오오! 이것은 노움의! 어서 한 잔하지!”

“안주도 가지고 왔습니다. 채식만 하시는 것 같아서 일단 따로 사왔습니다만…….”

“준비가 철저하군!”

웃음을 터트리며 모만은 노움의 술을 개봉했다.

하나 둘 술잔을 나누며 어느 정도 술기운이 올랐을 때, 모만은 술에 대한 감평과 옛 추억에 대한 이야기를 멈추고 리오에게 물음을 던졌다.

“그런데, 오늘은 무슨 일인가?”

무언가 훔치다 걸린 애처럼, 리오는 깜짝 놀라며 딸꾹질을 했다.

“무슨 일이라니? 제가 일만 있으면 모만씨를 찾아옵니까?”

“그렇지. 무슨 고민이 있으면 항상 찾아오는 것 같아. 조언을 구하러 오는 것 같은데…… 아닌 가?”

술기운 때문인지 리오는 솔직한 마음을 내비쳤다. 생각보다 노움의 술은 쌨다.

“… 모만씨 때문입니다. 모만씨에게 고민만 말하면 다 해결이 되잖아요.”

스스로 말해놓고 웃음을 터트렸다.

“그런가? 그럼 이렇게 맛있는 술을 얻어먹었으니 오늘도 고민을 타파 해주도록 하지. 어서 말해보게.”

시원한 말에 리오는 조렌의 권유에 대한 말을 꺼내려다 그만 두었다.

조렌의 권유. 그 선택에 따라 자신의 양심이 어떻다 저렇다에 대한 고민은 남에게 조언을 받아서 해결 될 것이 아니다.

“… 아닙니다. 이번 건은 저 혼자 해결하도록 하죠. 가끔은 이래야죠.”

고민에 대한 것은 접어두고 리오는 그동안 묻고 싶었던 것을 그에게 묻기로 했다.

모만은 아무래도 이 세계에서 오랜 시간을 살아온 것 같았다. 그리고 많은 인간을 만나본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렇다면 자신이 궁금해 하는 것에 대한 답을 해줄 수 있을 것 같았다.

“지금 이 마을에 저 말고 다른 인간은 없습니까?”

진작 물어봤어야 하는 질문이었다.

이곳에서 적응하고 잘사는 것에만 급급한 터라 다른 인간이 있는지 살펴볼 틈이 없었다.

이제야 여유가 생겼으니, 다른 인간들과 교류를 하며 살고 싶었다.

‘이 탑의 세계의 특성상 어쩌면 다른 차원의 인간일 가능성도 적지 않지만…….'

미묘한 얼굴로 변한 모만은 술기운 때문인지 머리를 부여잡으며 생각에 잠겼다.

“으음…… 글쌔. 살아있는지 죽었는지…… 기억이 안 나는군. 찾아봐야겠어. 자네처럼 나한테 찾아오는 친구는 없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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