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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총판의 상단장의 집이라는 걸 믿을 수 없는 집.
그래도 중요한 인물인 만큼 엘프 검사와 마법사들이 입구를 지키고 있었다.
그들은 리오가 앞으로 다가오자 누구냐고 물을 것도 없이 먼저 말을 걸어왔다.
“사전에 이야기를 미리 들었습니다. 어서오십시오. 리오님.”
“그럼 여기가 조렌 상단장님의 저택이 맞긴 맞나 보군요.”
“예. 그렇습니다. 안에서 많은 분들이 기다리고 계십니다. 어서 들어가 보시길.”
경비병의 인사를 받고 리오는 저택 안으로 들어갔다.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조렌과 그의 가족들의 말소리가 들려왔다.
그들 또한 문소리를 들었는지 대화를 멈추었다.
“어서오게. 리오군.”
직속상관인 아론이 리오를 먼저 반갑게 맞이했다.
둥근 테이블에 총판에서 일하는 조렌의 가족들이 오순도순 이야기를 나누던 모양이었다. 리오는 인사를 하고 빈자리에 앉았다.
“마침 자네의 이야기를 하고 있었네. 덕분에 총판이 성장하는 게 눈이 확실하게 보여.”
“별 말씀을. 그게 어디 저 혼자만의 일입니까?”
조렌과 그의 가족들은 리오가 지난 반년 동안 해온 일을 칭찬했다.
자신을 습격한 괴인에게 정신적인 피해를 주기 위해서 시작한 일.
직원들 한 명 한 명에게 잘못된 계산법을 지적. 옳은 회계론을 알려준 결과. 총판 모두의 능력이 올라가고 말았다.
‘자격증을 따긴 했지만… 실무경험은 아주 잠깐이었는데. 이렇게 될 줄이야.’
지구에서는 별거 아닌 지식. 그리고 나이를 먹으며 수십번 반복 했던 사칙연산.
리오는 태어나 처음으로 대한민국의 교육시스템에 감사함을 느꼈다.
“우리가 사는 곳은 어떤가? 인간의 시선으로 보았을 때 어떤 감상이 나올지 무척 궁금하군.”
아론의 물음에 주변에 있던 엘프들의 시선이 모였다. 나이가 지긋하며 그들의 수장이나 다름없는 조렌은 묵묵히 라프라스의 차라고 불리는 것을 마시고 있었다.
‘라프라스의 차… 녹차였던가.’
아론이 끓여주었던 경험을 떠올렸다. 차향과 맛은 틀림없이 자주 마셨던 녹차였고. 그리운 고향과 가족들을 떠올리게 했다.
“… 리오군?”
아론이 자신을 부르자 회상에서 깨어났다.
“… 아. 예. 집 말씀이십니까?”
그들이 사는 집은 안과 밖의 느낌이 같았다.
분명 지갑이 무거운 사람들 임에도 집은 형편이 없을 정도로 검소하다.
단지 그들의 취향인지 벽면에 온갖 무늬들이 새겨져 있었다.
‘마법진인가?’
무기총판의 직원답게 온갖 무기를 접해보기도 한 리오는 벽면에 새겨진 무늬가 마법진임을 알아보았다.
‘… 알아보기만 할 뿐, 무슨 마법이 새겨진 건지는 모르지만.’
좀 더 집안을 둘러보자 실용적인 가구들 밖에 없다는 것을 알아챘다. 검소하고 실용적. 엘프들 다웠다.
그나마 있는 가구들도 마법적 처리가 된 물건들로, 이 집에 누가 사는지 모르고 들어와도 엘프들이 산다는 것을 알아챌 수 있을 것 같았다.
“… 분명 많은 분들이 사시는 집안인데…… 그렇지 않은 것 같습니다.”
“무슨 말인가?”
직설적으로 돈 많으면서 왜 이렇게 사냐는 말은 해서는 안 된다.
말을 고르다가 리오는 어색하게나마 답했다.
“다들 화려한 삶과는 멀리하고 계시군요. 저였다면 분명 버는 만큼 비례해서 집안을 화려하게 해놓았을 텐데…… 좀 본받고 싶습니다.”
적당한 겸손은 상대를 기분 좋게 해줄 것이었다.
예상대로 리오의 말에 아론과 엘프들은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 아부는…….”
“본받고 싶다는 건 정말입니다. 저에게 욕심 없는 생활이라는 건 불가능에 가깝거든요.”
리오의 말에 가장 연장자인 조렌이 갑작스럽게 말을 걸어왔다.
“그럼. 이건 어떠하오? 우리와 함께 살며 무욕의 삶에 대해 배우는 건?”
갑작스런 제안에 리오는 당황했다.
귀를 의심캐 하는 말에 눈을 부릅뜨고 되물었다.
“… 무슨 말이십니까?”
“한 지붕 아래에서 같이 살자는 말이라오.”
청천벽력 같은 말을 아무렇지 않게 하는 조렌이었다.
누군가 자신을 가족으로 여기고 싶다. 그런 제안은 리오에게 솔직히 기뻤다.
그것도 자신이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되는, 훌륭한 가족 구성원들.
그러나 여기서 마치 조렌가의 구성원이 되면, 지구에 있는 가족들을 완전히 배신하는 기분이 들었다.
‘… 이런 고민이 무슨 의미가 있나 싶다. 어차피 이곳 세상으로 온 것 자체가 배신 한 게 아닌가?’
조렌의 권유에 밝은 표정이었던 리오는 시간이 가면 갈수록 표정이 어두워졌다.
이내 입술을 깨물며 답했다.
“… 생각을 좀 해보겠습니다.”
***
하루 종일 조렌가에 있을 예정이었지만. 리오는 예상외의 제안을 받고 양해를 구했다.
생각할 시간이 필요했다. 조렌과 그의 가족들은 리오의 심정을 이해하고 집으로 돌아간다는 리오를 말리지 않았다.
지구의 건축양식과 비슷한 집에 도착하자 대뜸 픽시가 리오에게 말을 걸어왔다.
“생각외이시네요. 분명 그분들도 저랑 똑같이 생각할 거 에요.”
차원의 틈에서 리오를 항상 바라보고 있던 픽시이었다.
가이드이며 조언자이기에 그녀는 리오의 일거수일투족을 세세하게 관찰하고 분석했다.
그런 그녀가 조렌의 권유를 선뜻 받아들이지 않는 리오를 의아하게 생각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했다.
리오는 언제나 성공하기 위해 움직인다.
평상시 진급을 위해 움직이며 오로지 앞으로만 나아가던 리오가 이렇게 조렌의 권유를 선뜻 받아들이지 않는 것은 그동안의 행동과 어울리지 않는 것이었다.
픽시의 말에 리오는 미간을 짚었다.
“… 생각 외라…. 내가 그 제안을 당연하게, 기쁘게 그 자리에서 받아들일 거라고 생각했니?”
“예. 그건 저 뿐만이 아니라, 그 집에 사는 엘프분들이 모두 그렇게 예상했을 거 에요.”
픽시의 말도 일리가 있었다.
리오가 여태 해온 일은 내부감사였다. 하지만 그것은 새내기 말단 직원이 하기에는 적합한 일이 아니다.
그 일을 담당하는 직원이 적당한 직위에 올라야 누가 봐도 이상하지 않다.
그러기 위해서는 리오가 승진을 해야 했지만. 이미 각 부서의 단장급은 조렌가의 일원들이 자리를 꿰차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새로운 자리를 만들고, 그 자리에 리오를 앉히는 것은 괜한 불씨를 만들 것이었다.
불씨를 없애기 위해. 결국 조렌이 선택한 것은 리오를 자신의 가문 안으로 포함시키는 것.
종족이 다르다보니, 족보에 넣는다는 의미는 아니었다. 단순히 한 지붕 아래에서 산다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었다.
즉, 조렌이 같이 살자고 한 것은 리오에게 승진하자고 한 것을 돌려 말한 것이나 다름없다.
리오는 조렌의 말에 담긴 의미를 이제 와서 눈치 챈 것은 아니었다.
처음 듣는 순간 그들이 하고자 하는 말이 무엇인지 알아챘다.
승진과 함께. 인간인 리오가 죽는 날 까지. 자신들과 함께 총판에서 일하자는 의미.
지난 반 년간. 뛰어난 실적이 있었음에도 리오에게 진급 기회가 없었던 이유는 단 하나였다. 조렌가의 일원이 아니기 때문.
그것이 해결되기 때문에 곧바로 눈치 챌 수 있었지만, 리오가 신경 쓰인 것은 그것이 아니었다.
“새로운 가족이라…….”
픽시가 리오의 어깨에 앉으며 장난스럽게 말했다.
“엘프 가족이라고요? 리오님이 잘만 구슬리면 예쁜 엘프 아내 얻는 건 어렵지도 않을 것 같은데요?”
선남선녀로 유명한 엘프족이다. 픽시의 말대로 오늘 조렌가에서 보았던 엘프들은 하나 같이 외모가 빼어났다.
무시하고 있었던 것이었지만, 픽시의 말에 잊고 있던 조렌가의 엘프 여성 몇을 떠올렸다.
‘오늘 잠자기는 글렀군.’
자신이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어쩌면 경국지색의 아내를 얻을 수도 있다. 그리고 미래가 보장된 직장. 약속된 승진.
탑이라는 ‘신’에게 새로운 출발을 할 것이냐고 질문을 받았고, 단 번에 대답에 내렸던 그는 고민을 하며 밤을 샜다.
이튿날.
출근을 한 리오에게 같은 부서의 동료들 몇이 다가왔다.
“리오. 어제는 잘 쉬었나?”
어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어지간히도 궁금한 모양이었다. 보랏빛 피부의 트롤이 은근슬쩍 어깨에 손을 올리며 친분을 과시했다.
“무겁다. 내가 누차 말하지만, 내가 인간이라는 걸 기억하라고. 당신 손가락 하나라도 내 어깨에 올라와 있으면 난 한 발자국도 못 움직이니까.”
“하하. 미안 미안.”
주변에 리오에게 하나 둘씩 총판의 직원들이 아는 척을 해왔다. 하나 같이 리오에게 집중과외 비슷한 것을 받았던 이들이었다.
본인들이 리오를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이제 리오에게는 이름도 기억 나지 않는 그저 그런 동료직원일 뿐이었다.
“… 그런데. 어제 모든 부서의 간부님들과 조렌 상단장님도 휴가계를 내었다고 하던데…… 설마 어제 리오. 그분들과 같이 있었나?”
“날카롭구만. 트롤주제에 머리가 좋아.”
리오는 어제 딱히 간부들과 함께 한다는 일정을 누군가에게 말하지 않았다. 말 할 필요도 없었으며 누군가 묻지도 않았다.
애초에 말을 한다고 해서 좋은 일이 벌어질 것 같지 않았다.
일개 트롤 말단 직원이 이정도로 알 정도이니, 리오는 이미 대부분의 직원이 어제의 일에 어느 정도 알 것이리라 생각했다.
‘무슨 대화가 있었는지는 몰라도, 적어도 내가 간부들과 같이 있었다는 것 정도는 말이지.’
리오가 총판에 입사한 이래로 어떤 일이 있었고, 모두에게 어떤 영향이 있었는지는 총판의 직원 모두가 알고 있었다.
간부가 모두 쉰다. 그런 날에 총판의 일등 공신인 리오가 쉰다.
따지고 보면 상인 출신인 총판직원들이 무언가 냄새를 맡을 수밖에 없다.
트롤은 리오의 말에 껄껄 큰소리로 웃음을 터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