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 회: 1-10 -->
남 좋은 일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어떠랴, 결과적으로 좋은 일을 했다고 생각하니 기분은 나쁘지 않았다.
‘… 보복을 하려고 했던 건데…….’
이 행동은 의도치 않았던 것이었지만, 잘 생각해보면 총판의 직원들을 리오가 성장시키려고 하는 너도나도 좋은 일이었다.
내부 감사원인 리오의 평판도 좋아지며, 내부 감사원의 리오의 고충도 어떻게 해결되기도 할 것이었다.
리오는 그 날 하루뿐만이 아니라, 시간이 날 때마다 문제점이 보이는 직원들에게 직접 찾아가 개인 과외를 시도했다.
같은 부서인 회계단의 직원들과 친해지려는 노력도 아끼지 않았다. 이전처럼 일을 대신 해주는 것은 그만 두었고, 마찬가지로 방법을 알려주었다.
‘사냥꾼에게는 사냥감을 잡아주는 것이 아니라, 잡는 방법을 알려줘야지.’
그로 인해 리오를 뒤에서 까던 소리는 점점 줄어들게 되었다.
오히려 리오를 칭찬하는 소리가 늘어나기 시작했고, 점심시간이 되면 리오의 곁에서 같이 식사를 하려는 이들이 몇 생겨났다.
리오에게서 지도를 받은 이들은 당연히 실수가 줄어들기 시작했고, 총판의 실적이 오르기 시작했다.
그 일이 소문이 나기 시작하자 리오에게 덕을 보려는 이들이 기하수급적으로 늘어나기 시작했다.
“갑자기 혼자 있을 때가 그리워지는데…….”
그렇다고 시끌벅적한 자신의 주변이 싫다는 건 아니었다.
지난 한 달간. 탑의 세계로 홀몸으로 떨어지고. 혼자 지낸 시간은 지긋지긋하고 영겁의 시간 같았다.
사실 누구라도 곁에 있다면 좋았다. 흉측한 트롤이든, 취륵거리든 오크든, 심장이 두근거리는 여성 엘프든.
사무치는 지구의 그리움을 잊게 해준다면.
제 3장 포기하고 떠나다.
“태준아. 이번 달 월급 얼마나 나왔니?”
어머니의 물음에 태준은 당황했다.
솔직히 알려주고 싶지 않다. 불효라는 것은 알고 있지만, 매번 부모님께 갖다 바치는 것도 한 두 번이다.
자신의 미래를 위해서 적금이나 저축을 하고 싶은 생각이 있었다.
그러나 그런 건…… 어머니를 비롯한 아버지. 가족들과 함께 있다면 불가능하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공장에 취업한 태준은 힘든 일을 하는 만큼 꽤나 번다.
하지만 부양해야할 가족들. 그 가족들이 자신이 태어나기 전부터 가지고 있던 빚 때문에 자신의 처지가 나아질 가능성은 좁쌀만큼도 없었다.
만약 혼자 생활을 했다면, 태준에게는 많은 돈이 수중에 있을 것이었다.
그 때문에 태준은 자신을 낳아주고 길러준 부모님과 가족들이 원망스러웠다.
주변의 친구들이 다들 부유하기 때문인지 몰라도, 자신은 가족들에게 받은 것은 없는데 왜 이런 고생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을 줄곧 했다.
그래서 자신의 피땀흘린 결과물. 월급에 대해서 묻는 부모님의 질문에 대해서 태준은 항상 곤혹스러웠다.
“… 잠시만요.”
양심을 저울질하기 시작했다. 월급의 내용을 속이고 자신은 풍족한 생활을 할지, 아니면 성심성의껏 월급을 모조리 부모님에게 내어줄지.
정상적인 인간이라면 당연히 후자를 선택한다.
풍족하지는 않아도, 나름 굶지 않고 살아왔다면 후자를 선택한다.
태준의 선택은 비틀린 21세기의 현대인을 보여주는 것 같이, 전자를 선택했다.
부모님께 이게 무슨 짓인가? 싶기도 하지만. 더 이상 자신의 미래가 망가지는 것은 싫었다.
자신은 분명 인생을 이 이상 잘해나갈 수 있었다.
대학교에 들어가는 유지비만 아니었다면, 분명 4년제는 따 놓은 당상이었다.
가족들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취업전선에 들어가기를 원하기에 선택한 것이었다.
만약.
자신이 대학교를 들어갔다면, 공장 같은 곳이 아니라, 비즈니스맨이 되어 좀 더 잘 나가는 삶을 살수도 있을 터.
외국인 노동자 여성과 알콩달콩한 시선을 교환하는 것이 아니라, 어여쁜 여대생이나 정장을 걸친 직장 동료와 행복한 삶을 누릴 수도 있었다.
결국. 차곡 차곡 돈을 모아서, 대학교를 어떻게든 가기로 한 태준은 부모님에게 거짓말을 한 것에 자기합리화를 했다.
사실 돈을 모은다는 일보다, 당장의 해결 방법이 있었다.
바로 원인의 제거.
하지만 태준의 인생을 망가뜨린 원인은 제거할 수가 없다.
태준이 성공할 수 있었던 가능성을 모두 망가뜨린 모든 원인은 가장 소중하기도 하다.
가족.
태준이 지구라는 세계. 그 사회를 싫어하게 되었고, 삶을 비관하게 까지 만들었던 이유였다.
탑의 세계로 오게 되고, 결국 가족에게서 전염된 가난이라는 병을 벗어났지만.
사람은 어쩔 수 없다.
가족이 그리워지기 시작했다.
***
잠자리에서 일어난 리오는 무심코 주변을 둘러보았다.
당연하지만 이곳에는 함께 자란 형제와 자신을 아껴준 부모님은 계시지 않았다.
‘기껏 내 집 마련에 성공했건만.’
조렌 무기 총판에서 일한지 어언 반년.
반년 만에 리오는 지구였다면 상상도 못했을 삶을 만끽하고 있었다.
조렌 총판에서 벌어들이는 수입이 만만치 않은 것도 있지만. 리오가 아끼고 아낀 습관도 한 몫 했다.
거기다 애초에 이 탑의 세계의 집값이 싸기도 했다.
본래 총판의 숙소를 사용하던 리오는 괜찮은 집을 구입할 수 있게 되자 곧바로 구입했고 혼자 사는 보람찬 생활을 보내고 있었다.
“일어나셨어요? 리오님?”
허공에서 무수한 빛과 함께 가이드 픽시가 나타났다.
곁에 누군가 있으면 나타나지 않던 픽시는 리오가 총판의 숙소를 사용할 때는 단 한 번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었다.
마을 안으로 들어오고 난 지난 반 년간. 거의 픽시랑은 대화를 한 적이 없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러나 이제는 다르다.
자신의 집을 가지게 되었고. 픽시와 마음껏 대화를 할 수 있게 된 리오는 그녀에게 많은 도움을 받았다.
“그래. 너도 잘 잤니?”
“예. 리오님이 주무실 때면 저도 할 일이 없는 걸요.”
투명한 날개를 파닥거리며 픽시가 컵에 차가운 냉수를 떠왔다.
“땡큐. 그럼 출근 준비나 해볼까…….”
식사를 먼저 준비해두고 씻으려가려고 했다. 그러나 픽시는 리오의 앞을 가로 막았다.
“아뇨. 오늘은 쉬는 날 인데요?”
그제야 리오는 오늘 일정을 떠올렸다.
무기 총판의 상단장인 조렌과 하루 종일 약속이 잡혀있었다.
일과 관련 된 약속은 아니었다.
총판의 대부분의 간부들은 조렌과 혈연으로 이어진 엘프들이었는데, 오늘은 그들과 함께 친목을 목적으로 하루 종일 파티를 즐긴다 했다.
말이야 거창한 파티지, 엘프들의 성격상 파티라고 할 것도 없을 것이 분명했다. 그냥 파티라는 이름을 붙여 명분을 준 것에 불과하다.
‘소박한 다과회에 불과하겠지.’
일과는 무관한 하루.
하지만 자신의 직장 상사들과 함께하는 하루였다. 사실상 근무일이나 다름없다.
“… 귀찮다.”
“예?”
리오의 중얼거림에 픽시가 머리를 갸웃했다.
“아침 식사하기가 귀찮으신가요? 그럼 사두신 3분 요리를 추천…….”
“그래. 그래.”
적당한 아침을 치루고 씻기로 했다.
귀찮고 힘들어도 권유받은 이상 갈 수밖에 없다.
이 탑의 세계에서 무너지면 뒤를 받쳐줄 사람이 없으니. 스스로 잘 처신해야 한다.
이곳 문화에 맞는 장식 없는 정장을 입고 리오는 점심 때 쯤 조렌의 저택으로 향했다.
이 세계는 ‘탑’의 세계라고 불린 만큼. ‘탑’이 중요한 곳이다.
탑의 안은 온갖 함정과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데, 말하자면 리오가 이러고 있는 도중에도 누군가는 탑의 안에서 전투를 하고 있다는 말이었다.
탑의 세계를 살아가는 주민들이 목숨을 위협하는 탑으로 들어가는 목적은 대부분 두 가지였다.
자신이 본래 살던 세계로 ‘귀환’을 목적으로 하거나, 혹은 이곳에서 풍족하게 살아가기 위해 ‘돈’을 목적으로 한다.
탑의 안에서 몬스터를 사냥하면 몬스터의 시체, 혹은 탑의 내부에서 보상이 나온다. 일종의 던전이나 다름없다.
금은보화, 혹은 희귀광석이나 막대한 자원.
힘이 있다면 탑을 오르는 것이 리오처럼 2차 산업에 뛰어드는 것보다 시간 적으로 효율적이었다.
그 때문에 많은 주민들이 탑을 오르고 있고, 항상 위험한 전투를 하며 자신을 갈고 닦으려는 노력을 아끼지 않는다.
그런데.
그런 주민들이 자주 사용하고, 소모 하는 물건이 바로 ‘무기’다.
전투에는 필수가결한 물건. 힘을 가진 자라면 누구나가 필요로 하는 물건이 무기다.
이곳에서는 식료품만큼이나 거래가 활발한 것이 무기이고, 그것을 총판하는 곳의 주인이 바로 조렌이었다.
엘프들의 검소한 생활상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조렌은 분명 엄청난 재산을 가지고 있을 것이었다.
그러함에도 리오의 눈앞에 있는 조렌의 저택은 무척이나 누추했다.
으리으리하고 정원을 관리하며, 심지어 엘프답게 저택 안에 숲이 있지 않을까 싶었던 리오는 생각보다 평범한 조렌의 집에 당황하고 말았다.
같이 사는 식구들이 많은 탓에 평수가 크고, 마당이 넓기는 했다.
‘엄청난 구두쇠구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