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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의 탑-4화 (4/1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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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빨간 사과 하나가 돌에 맞고 흔들거렸다. 이윽고 땅에 떨어지려 하고 있었고 리오는 주춤 거리며 자세를 잡았다.

그 순간, 정확히 리오를 향해 떨어지던 사과를 향해 검은 짐승 한 마리가 으르렁 거리며 입으로 낚아챘다.

콰직!

낮에 보았던 오크들의 커다란 송곳니만큼이나 두려운 이빨을 가진 짐승.

사과를 단 번에 과즙으로 만들고는 땅에 뱉었다.

또 다시 리오의 망막에 지워지지 않는 글이 나타났다. 홀로그램이라면 좋으련만. 마치 앞으로 잊지 말라는 듯 했다.

[그린 독]

‘녹색 개?’

그린 독은 리오가 이름을 읽는 사이 허공을 향해 울부짖었다. 마치 늑대처럼.

얼마 지나지 않고 수풀에서 우순죽순 서너 마리의 그린 독들이 나타났다. 순식간에 포위된 리오는 식은땀을 흘리기 시작했다.

성인 남성 크기의 개. 그런 짐승이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내며 자신을 포위하고 있었다.

평범한 남성이라면 그 누구라도 움찔거리고 만다.

‘그, 그래봤자…! 1층이야! 초보자 사냥터라고!’

자기 자신에게 용기를 불어넣었다. 초보자 사냥터에서 죽는 초보자는 적어도 없다. 게임은 그렇게 만들어진다.

으르르르릉!

컹! 컹!

자신을 향해 위협을 가하는 그린 독들을 보며 리오는 가슴 속에 점차 자라나는 불안감을 느꼈다.

“닥쳐! 이 개새끼들아!”

사람은 궁지에 몰리게 되면 괜한 허세를 부리기 마련이었다.

사실 이때쯤 눈치를 채야만 했다.

픽시라는 가이드는 이 세계가 리오가 알고 있는 ‘온라인 게임’과 비슷하다고 했을 뿐.

‘온라인 게임’ 그 자체라고 한 적은 없다.

어감상의 차이지만 리오는 그만 착각하고 만 것이다.

믿을 수 없는 이런 세상이니, 자신이 게임을 하고 있다고.

현실에 초보자를 위한 사냥터 따윈 없다.

초보자를 사냥하는 ‘터’가 있을 진 몰라도.

“으아아아아!”

압박감을 느낀 리오가 소리를 질렀다.

그것이 기폭제가 되어 그린 독들은 각자의 방향에서 리오를 향해 달려들었다.

아무리 당황을 했어도 리오는 살고 싶다는 의지만은 충실했는지, 멍하니 있지 않고 자신의 앞에 있던 그린 독을 향해 달려들었다.

“넌 얌전히 내 경험치나…… 컥!”

그린 독의 머리를 향해 멋지게 킥을 날렸던 리오는 오히려 힘에 밀려 옆으로 날아가고 말았다.

‘탑의 1층… 맞아? 무슨 초보자 사냥터가 이렇게……?’

탑의 세계의 파워밸런스는 모든 종족들을 기준으로 평균을 잡아 던전의 수준이 맞춰진다.

그리고 이 세계의 인간은 적다.

대부분의 이종족들은 선천적으로 전투능력이 타고난다.

그들에게 있어서 1층은 리오가 말하는 보통 게임의 프롤로그. 초보자 사냥터나 다름이 없다.

그러나 리오에게는 다르다.

1층부터 지옥 난이도이며 일반 몬스터 하나 하나가 정예급이다.

우당탕탕! 첨벙!

그린 독을 먼저 공격했으나 저 멀리 날아간 리오는 땅을 구르고 돌에 부딪치고 강물에 빠져서야 구르는 것을 멈췄다.

찬 물이 온몸을 적시자 그제야 무언가 리오는 깨달았다.

어째서 리자드 맨이 인간이 탑을 오르는 것이 자살행위라는 투로 말했는지, 탑 앞의 이종족들이 자신을 어째서 동물원의 원숭이처럼 바라보았는지.

사족보행 짐승과의 단 한 번의 부딪침으로 리오는 깨달았다.

여기는 인간은 오를 수 없다.

죽으려고 올라가는 것이기 때문에 그들은 리오를 그렇게 바라본 것이다.

이제 막 이 세상에 온지 하루밖에 안 된 리오로써는 이 탑의 세계가 좋은 지 나쁜지는 확실하게 말할 수 없었다.

다만. 적어도 픽시가 말한 이런 저런 조건들만으로 들었을 때.

여기 이 탑의 세계는 분명 좋은 세상이었다.

그런 그들이 보기에 자살하러 가는 리오는 분명 미친놈이었다.

1층부터 어째서 이렇게 험난한 난이도 인지, 리오로써는 자세히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것은 아니다.

파워 밸런스가 인간에게 맞춰져 있지 않고, 전체 종족의 전투력의 평균으로 맞춰져 있다는 사실을 누군가에게 듣고 나면 되는 일.

지금 중요한 것은 여기서 살아서 나가고.

이 세상에서 등 따뜻하게, 배부르게 살기 위해서는 적어도 탑에 오르면 안 된다는 것을 깨달으면 되는 것이었다.

강가에서 일어난 리오는 자신과 부딪친 탓에 피를 흘리는 사슴 한 마리가 눈에 들어왔다.

그린 독들은 강물에 들어오지 못하는 듯. 리오를 향해 울부짖기만 할뿐 어떠한 행동을 취하고 있지 않았다.

그런 그린 독들 뒤로 헐떡거리는 사슴을 바라보았다.

선혈의 피가 강물까지 흐르고 있었다.

아마 저 대로 둔다면 사슴은 분명히 죽는다.

사슴을 구하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건 아니었다. 그저 본래대로라면 저 사슴이 있는 자리에 자신이 있고 강물에 흐르는 피는 자신의 것이어야 했다.

운이 좋게도 강물까지 굴러 떨어진 것 뿐.

강물에 떨어지지 않았다면. 리오라는 인간은 이 아무도 없는 탑의 내부에서 죽는다.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 리오의 눈동자가 커졌다.

‘멍청한 놈.’

인생을 게임으로 생각하는 순간 이미 정신병에 걸렸다.

아무리 대한민국이 아니라지만, 다른 세상이라고 해서, 사회의 시스템이 게임이나 다름없다고 해서 게임과 동일시해서는 안 되었다.

그래서 자신은 게임을 한다고 생각을 했고, 게임을 하는 것처럼 행동했다.

‘죽으면 살아나지 않아.’

어디까지나 참고해야할 부분이지 그 자체로 행동해서는 안 되었다. 그 결과로 큰 화를 당할 뻔 했다.

세상이 달라져도 현실에 충실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머리가 맑아진 기분이 들었다. 리오는 강물을 타고 탑의 출구가 있는 곳으로 이동했다.

탑의 밖은 그렇게 많은 시간이 지나지 않은 듯 했다.

이제야 해의 그림자가 누엿누엿 보였고, 밤의 귀족들은 슬금슬금 탑의 주변에서 자리를 뜨려는 듯 했다.

그러나 일부의 종족들이 ‘그럼 그렇지.’ 라는 투의 대화로 속닥거리는 것이 리오의 귀에 들려왔다.

아마도 리오를 두고 말하는 것이리라.

흠뻑 젖은 리오를 향해 수많은 주민들이 입방을 찧었다. 작은 도시이기는 해도 인간의 수는 적다 했으니, 아마도 리오에 대한 소문은 금방 퍼질 것이었다.

부끄러움, 창피함을 느꼈으나 리오는 자신의 멍청함을 탓하고 인정했다.

한숨을 내쉬고 가슴을 펼쳤다. 욕하려면 마음껏 욕하라는 듯의 태도. 당당하기까지 했다.

그런 리오를 보고 누군가 말을 걸어왔다.

“내 곁에 젖은 채로 다가오지 마라 인간.”

화르르륵!

그야말로 화염인간.

온몸이 화염으로 이루어진 인간의 형체를 가진 정령인 이프리트는 리오를 보고 이맛살을 찌푸렸다.

“아… 죄송합니다.”

상대에게는 젖은 꼴이 불쾌하기만 할 수도 있겠다. 그런 생각을 하며 리오는 먼저 고개를 숙였다.

“… 인간 주제에 사과라는 것을 제법 정중히 할 줄 아는 군.”

“하하… 그냥 예의 중요한 곳을 살다와서요. 그리고… 옷이랑 머리를 말려주셔서 감사합니다.”

등을 돌린 이프리트는 리오의 감사를 받지도 않은 채 탑으로 향했다.

‘설마 부끄러워 하는 건가?’

별 특이한 정령도 있다며 리오는 웃음을 터트렸다.

상대가 사라지자 리오는 앞으로 이곳에서 어떻게 생활할지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어제 있던 여관은 이미 도주를 해버렸으니 다시 들어가기에는 눈치가 보였다.

받지 못한 일당이 있었지만, 어쩔 수 없다.

보아하니 이 탑의 세계의 경제 시스템은 노동력과 재능이 꽃피우기 가장 좋은 듯 했고, 힘쓰는 일이 아니라면 리오는 자신이 있었다.

‘힘쓰고 체력적인 일은 더 잘하는 이종족들이 있는데 굳이 인간을 쓰겠나…….’

조언이 필요했다.

리오에게는 강력한 힘이나 탑을 오를 귀환의 의지는 지금 필요 없었다.

그저 한국에서는 하지 못한 풍족한 삶을 해보고 싶었다. 자신이 번 돈으로 자신이 즐기고 여유로운 삶을 만끽 하는 것.

새출발을 시작하는 이곳이라면 가능할 것이라고 보았다.

‘… 모만씨에게 다시 가보자. 어제 같은 일이 아니라. 내 적성에 대해 말하고. 일자리를 부탁해보자. 그 사람도 결국 내가 일한 만큼 중간에서 마진을 떼어먹는 주민이니까 도와주겠지.’

게임은 현실이 될 수 없다.

그것을 깨닫고 나서야 리오는 탑의 세계가 어떤 곳인지 조금은 알게 된 기분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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