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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의 탑-3화 (3/1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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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오는 처량하게 누군가 먹다 남긴 것이 분명한 음식으로 끼니를 떼워야만 했다.

21세기를 살던 자신이 왜 이런 신세가 되어야하는지 불만을 느낄 수밖에 없었지만. 참기로 했다.

‘참자. 유통기한 지난 편의점 김밥이나 이거나… 다를 게 없어.’

리오처럼 누군가에게 일자리 주선을 받거나, 여관에서 일을 하는 이들은 한 방에 모여 생활했다.

마치 다단계 합숙소 같은 풍경에 절로 인상이 찌푸려졌던 리오는 적당히 자리를 잡고 들이 누웠다.

외지에서의 생활, 익숙하지 않은 노동 때문인지 리오는 금세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해조차 뜨지 않은 시간에 일어난 리오는 멍하니 누워있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여기서 이러고 있는 건 뭔가 효율적이지 않아.’

모든 것이 익숙하지 않은 곳에서 정상적인 사고와 적응을 하려면 리오는 과거의 경험을 토대로 최소한 비슷한 행동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곳은 소설로나 접했던 판타지 세상. 조금 특이한 부류의 세계관을 가진 곳이었지만. 가이드 픽시는 ‘온라인 게임’과 비슷하다는 말을 자신에게 했었다.

그렇다면 간단했다.

어제 하루는 경황이 없어 그저 흘려보내고 말았지만, 오늘 부터는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온라인 게임의 초보자 유저답게 행동하면 되는 일이었다.

‘가이드도 있고, 마을 앞에 일자리 사무소의 직원도 있지. 아마 그 호빗은 일자리 주선과 함께 이 마을로 들어오는 새 주민을 조사하는 일도 겸업하고 있을 거야.‘

게임이 아닐 뿐인 세상이지 기본적인 구조는 게임이나 다름없다.

사실 현실을 게임으로 생각하는 건 정신병에 가까웠다. 스스로도 그 사실을 인지하고 있었음에도 이런 낯선 환경에서는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 편하다고 납득했기에 넘어갔다.

‘나 같은 사람들을 위해 길이 잡혀있는 세상이야. 그렇다면 이렇게 여관에서 고생을 하는 것보다…….’

아직 해가 뜨지 않은 시간.

여관을 슬금슬금 기어 나온 리오는 마을의 정중앙에 우뚝 솟은 건축물을 바라보았다.

마치 하늘을 이어주는 듯한 착각을 주는 탑.

픽시는 본래 세상으로의 귀환을 목적으로 탑이 세워져 있다고 했다.

하지만. 이 세상에서 정착하기로 마음을 먹은 주민에게는 탑은 그저 금은보화가 쌓인 던전 일 뿐이라 했다.

그렇다면 간단한 이야기였다.

이런 초보자 가이드. 초보자 라인이 잡혀있는 세상에서 탑의 1층은 분명 리오라도 깰 수 있을 것이다.

대게 게임이라면 1층은 누구나가 클리어 할 수 있게 손쉽게 해놓을 것이다. 일종의 프롤로그나 다름이 없으니 말이다.

‘큰 보상은 얻을 수 없겠지만. 적어도 저 여관에서 고생하는 것보다는… 큰 걸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위험에는 보상이 따르는 법. 여관의 일이 탑 1층의 일보다 보수가 많을 리가 없었다.

생각을 정리한 리오는 우뚝 솟아 어디로 도망칠 리가 없는 탑을 향해 이동했다.

가까이가면 갈수록 멀어지는 듯한 탑은 리오의 애간장을 타게 했고, 처음에는 걷던 리오는 기어코 뛰어가기 시작했다.

마을이라고 부르기에는 미안할 정도로 규모가 큰 곳을 가로 지르며 이동 할 때, 리오는 모퉁이에서 낯선 인물과 부딪치고 말았다.

“윽!”

흡사 돌덩이와 부딪친 것 같은 기분에 사로잡힌 리오는 반발력으로 인해 뒤로 넘어지고 말았다.

엉덩이는 아프고 부딪친 얼굴은 마치 주먹이라도 한 대 맞은 듯 했다.

조심하지 않고 뛰어서 이동하던 자신의 잘못이었으니, 어쩔 수 없이 리오는 구겨진 인상을 피고 먼저 고개를 숙이기로 했다.

“죄, 죄송합니……다.”

흔히 말하는 도마뱀 인간. 푸른 비늘을 가졌으며 인간보다 머리 두 개는 더 큰 리자드 맨은 리오를 내려다보며 물었다.

“인간이… 이 시간에 어딜 그렇게 뛰어가는 것이더냐?”

일으켜줄 생각도 없이 팔짱을 끼고 자신을 내려다보는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는 리자드 맨이었다.

리오는 상대의 생김새를 호기심 있게 바라보다가 불쾌함을 느끼며 퉁명스럽게 답했다.

“… 탑에 갑니다만?”

그 말에 리자드 맨은 긴 입에서 혀를 내보였다.

“인간 주제에 탑을? 죽고 싶어서 환장을 한 모양이군.”

자신을 무시하는 태도가 영 기분이 나빴다. 하지만 리자드 맨이 허리에 차고 있는 곡도가 범상치 않았고 이런 식으로 시비를 거는 인물은 자신 쪽에서 먼저 피하는 것이 낫다고 판단했다.

똥은 더러워서 피하는 거니까.

“… 제 맘입니다만?”

“뭐, 인간 남자 한 명이 죽든 말든 내 알바는 아니다만. 이 탑의 세계에서는 인간을 보기가 꽤나 어렵다. 목숨은 귀하게 여기도록. 모처럼 좋은 세상에 왔다면 말이지.”

푸른 비늘만큼이나 성격도 차가운 리자드 맨은 리오를 다시 한 번 툭 치고 지나갔다.

마치 탑으로 가지 말라는 듯한 태도였다.

기분이 한껏 나빠진 리오는 이를 으드득 갈며 다시 탑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빌어먹을 도마뱀 자식. 뭔데 인간을 무시해?’

마치 인간 따위는 탑에 오르지 못한다는 말투가 아닌가.

세상의 중심은 인간이다. 그것은 불변의 진리이며 그 어느 세상이나 다름이 없다.

‘넌 내가 성공해서 꼭 어깨로 밀쳐주마.’

푸른 비늘의 리자드 맨.

얼굴을 기억하며 리오는 탑으로 가까이 이동했다.

멀리서 보았던 탑은 다가가면 다가갈수록 리오의 발걸음을 점점 멈추게 했다.

거대한 탑이 스스로 내뿜는 위엄은 리오 자신을 작은 존재로 느끼게끔 했다. 분명 탑이 자신을 내려다본다면, 작은 개미나 다름이 없다.

“… 허.”

넋을 놓고 바라보던 리오는 문득 주변의 시선을 느꼈다. 밤이라 아무도 없을 줄 알았건만, 탑의 주변에는 의외로 많은 이종족들이 있었다.

머리에 뿔이 달린 자, 흉측한 꼬리와 날개. 음울한 스모그를 계속해서 내뿜는 갑옷 기사.

그들의 모습을 보고 리오는 상황을 파악했다. 이 탑의 세계는 인간의 세상이 아니라 이종족들의 세상이다.

가지각색의 종족. 몬스터라고 불리는 종족은 물론이며 언데드도 지성을 가지고 움직인다.

그리고 현재 탑의 근처에 있는 대부분의 종족들은 흔히 밤의 종족이라 불리우는 악마. 마족들들이었다.

‘왜 날 보지?’

그들은 각자 대화를 나누고 있지만, 하나 같이 시선이 리오를 향하고 있었다.

픽시를 통해 인간이 이 세상에서 흔치 않고, 그 때문에 이런 동물원의 원숭이 신세라는 것은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런 심한 관심은 무언가 이상했다.

‘… 신경 끄자.’

탑의 앞에서 동료라도 모으고 있는 듯한 밤의 귀족들을 헤치며 리오는 안으로 들어갔다.

활짝 열려 있는 거대한 흑철의 문의 안쪽은 마치 블랙홀처럼 리오를 끌어당겼다.

첫발을 내딛고 안으로 이동하는 순간. 리오는 기이한 기분에 사로잡혔다.

땅을 밟고 있음에도 마치 허공을 밟는 기분. 수초 뒤에는 눈을 뜨고 있음에도 모든 것이 보이지 않게 되었다.

‘빛이… 사라졌어?’

당황하며 뒷걸음질 쳤다. 탑 밖으로 나온 것일까? 기이한 감각은 모두 사라지고 리오의 시야가 회복되었다.

“인간. 탑을 들어갈 거면 빨리 들어가라. 짜증나게 입구에서 서성거리지 말고.”

뒤에서 성을 내는 마족 한 명의 말이 들려왔다.

등골이 오싹해질 정도의 살기를 느낀 리오는 자신도 모르게 다시 탑 안으로 들어가고 말았고, 또 다시 기이한 기분에 사로잡히고 말았다.

‘윽!’

스스로 예상하지 못했던 행동. 그 결과로 리오는 넘어지고 말았다. 몸을 일으키는 사이 짧은 빈혈을 느꼈고 제정신을 차리자 주변의 환경이 변하기 시작했다.

화려한 녹색의 숲,

그 어느 곳에서도 본적이 없는 푸름이 가득한 풀숲이었다. 동물들이 날 뛰며 과일과 산뜻한 바람이 불어오는 장소로 탑의 내부는 순식간에 변해갔다.

-1층 숲지기

홀로그램도 아닌 글씨가 리오의 눈앞에 나타났다.

마치 망막에 새겨진 듯한 글은 수초 뒤에서야 천천히 스르륵 사라졌다.

“완전히 게임이구만.”

1층 따위는 금방 클리어 할 것 같은 자신감.

그런 것을 느끼며 리오는 웃음을 터트렸다. 뭐 자랑할 만한 게임전적은 없었지만 그래도 한국에서 남들만큼은 했던 리오였다.

만약 1층이 단순한 프롤로그. 초보자에게 탑이 어떤 곳인지 알려주기 위한 곳이라면. 손쉽게 넘어갈 수 있을 것이었다.

여유를 가지고 리오는 그 어떤 곳에서도 본적이 없던 이 풍경을 바라보았다.

CG로도 본적이 없던 아름다움. 산뜻한 바람은 자신의 기분을 풀어주었고 나무에 걸린 과일들은 달콤한 향기로 자신을 유혹했다.

거기다 사람을 보고 도망을 가지 않는 동물들.

서울에서 보기 힘들었던 사슴, 앙증맞은 토끼, 볼을 부풀린 다람쥐는 리오의 시선을 끌었다.

“이런 층이라면 그냥 여기서 살고 싶은데?”

마음이 절로 편안해지는 곳이었다.

그러나 리오는 여기서 본래의 목적을 상기했다. 자신은 무언가 보상을 얻고 탑의 세계에서 편히 살기 위해서 온 것 이었다.

여기도 나쁘진 않지만, 인간이란 사회적 존재다. 누군가와 교류를 해야 한다.

‘다음 층으로 나아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지?’

힌트는 이미 자신에게 주어졌을 것이다.

힌트에 대해 생각을 하다 리오는 맨 처음 자신의 눈앞에 나타났던 글을 떠올렸다.

‘1층 숲지기…. 숲지기를 찾으면… 되려나?’

숲지기란 숲을 지킨다는 말이다.

그런 존재는 찾는 것보다 등장시킨다는 말이 어울렸다.

이 아름다운 숲을 파괴하면 된다.

현대를 살아온 문명인인 자신이 이런 곳을 망가뜨린 다는 것이 내심 양심에 가책을 느꼈지만. 리오는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조그만 더… 여기서 쉬자. 어차피 밖은 아직 아침도 안 되었고…….’

배가 출출했던 리오는 돌을 주워 주변의 사과나무를 향해 돌을 던졌다.

‘나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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