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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의 탑-2화 (2/1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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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예전에는 마을이었죠. 지금은 도시라고 불릴 정도로 규모가 커진 것 뿐.”

탑의 세계에 유일한 마을이기 때문인지, 입구에는 흔히 보일 법한 경비병도 보이지 않았다.

단지, 태준처럼 이제 막 이 세상에 도착한 인물들을 관리하는 공무원이 있을 뿐이었다.

픽시는 마을로 향하기 전에 태준에게 말을 걸어왔다.

“마을로 들어가기 전에, 중요한 것을 말씀 드릴 것이 있어요.”

모습만큼이나 발랄하기까지 했던 픽시의 목소리가 진중해졌다. 태준은 귀를 쫑긋 세우며 시선을 고정했다.

“말해봐.”

양해를 구하는 듯한 태도로 픽시는 공손하게 말했다.

“앞으로 이 세계에서는 신태준이라는 이름을 사용하실 수 없어요. 그 이름으로 불러드리는 것도 이게 마지막이에요. 이곳에서 살아가시려면… 새로운 이름을 사용하셔야 해요."

태준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무언가 항변을 하고 싶었지만, 그동안 들어온 픽시의 말을 생각하니 이해를 할 수밖에 없었다.

새로운 세계를 살기 위해서는 새로운 이름이 필요한 법.

스스로 탈피를 해야 한다.

그 어떤 게임에서도 주민등록상의 이름을 그대로 사용하는 것은 없다.

가상의 공간에서 사용할 이름을 만드는 절차일 뿐이지만, 이곳은 새로운 세계인 만큼, 새로운 자신을 만든다는 상징적인 의미가 있다.

태준은 나이도 먹을 만큼 먹었으니, 떼를 부리지 않기로 했다.

이곳은 서구적인 문화를 가지고 있는 모양이고, 마침 주로 인터넷에서 사용하던 이름도 있었다.

“그래. 그럼 어쩔 수 없지. 앞으로는 리오라고 불러줘.”

흔쾌히 이 세계의 규칙에 따라주자 픽시의 표정이 밝아졌다.

이따금씩 이런 규칙에 따라주지 않는 새주민들이 있기 마련이었다.

“감사합니다. 리오님.”

“근데, 넌 이름이 없니? 가이드, 픽시, 요정이라고 계속 부르는 것도 우숩다.”

픽시는 멍한 얼굴이 되었다. 이내 고민하는 얼굴로 변했고 리오는 혹시나 하는 생각에 말했다.

“급하게 생각할 거 없어. 이름이란 중요한 거니까 천천히 생각하라고.”

“… 네.”

하늘엔 붉은 노을이 지고 있었다. 마을로 어서 들어가 어떻게든 숙소를 잡거나 하루 묵을 곳을 잡아야만 했다.

리오는 마음을 다잡고 마을로 향했다.

마을 입구에는 무장하지 않은 채로 하품을 내뱉는 작은 호빗이 리오를 기다리고 있었다.

멀리서 다가오는 리오를 보고 손짓으로 반갑다는 제스쳐를 취했다.

“마을 밖에서 오는 걸 보니… 이곳은 처음인 모양이군. 반갑네. 난 자네 같은 친구가 이곳에서 쉽게 적응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사람일세. 이름은 모만이지.”

어린 아이 같이 작은 키를 가졌음에도, 얼굴에는 주름이 가득한 호빗족이었다.

모만의 인사에 리오는 당황하지 않고 마주 인사했다. 이 세상에서는 모만 같은 이종족들이 넘쳐난다. 오히려 인간은 적은편이라고 픽시에게 사전에 이야기를 들었었다.

“반갑습니다. 리오라고 합니다. 도움이라니… 감사합니다.”

“뭘, 감사할 것까지는 없네. 난 그저 자네에게 식사와 하룻밤을 제공해줄 수 있는 곳을 주선해줄 뿐이네. 당연한 말이지만… 공짜는 아니지.”

무상의 친절함 기대했던 리오는 모만의 말에 인상이 굳어졌다.

‘식사와 숙소를 제공. 그리고 난 노동력을 제공한다. 그 일을 주선한 대가로 이 호빗은 중간에서 무언가를 받는 모양이군. 어느 세상이나 공짜로 먹고 사는 건 어렵구만.’

한숨을 내쉬고 리오는 마음을 다잡았다.

요정이 말한 이 세계는 적어도 노력하면 보답 받을 수 있는 세상이다.

돈을 모으고, 스펙을 쌓고, 인맥을 쌓는다면 사회의 중심이 될 수 있다.

자원이 안정적인 사회인만큼, 안정적인 살림을 차리는데는 그렇게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을 것이다.

오늘은 그 첫 발판이었다. 흡사 아르바이트를 처음 하는 기분으로 리오는 호빗 모만이 주선해준 직장으로 향했다.

“여관인가….”

모만이 그려준 약도를 통해 이동한 리오는 여관 앞에 당도했다.

픽시는 마을 안으로 들어오자 리오에게 인사를 한 뒤 어디론가 사라졌다.

“제법 큰데… 힘들겠어.”

통나무로 지어진 여관은 제법 분위기가 났다. 이름 있는 여관인 듯. 가지각색의 이종족들이 여관을 계속해서 들락날락거렸다.

리오는 한동안 여관 앞에서 입이 떡 벌어지는 낯선 종족들을 멍하니 구경을 하다 어느새 날이 어두워진 것을 깨닫고 안으로 들어갔다.

기름칠이 안 된 나무문을 열자 후끈 달아오를 법한 열기가 리오를 엄습했다.

술을 먹고 나자빠진 주정뱅이, 큰 소리로 노래를 부르는 뚱뚱한 드워프. 그에 어울려 하프를 키는 긴 귀의 아름다운 엘프.

흉악한 모습의 트롤들은 잔을 부딪치며 흥을 돋았고 더 이상 말로 표현하지 못할 종족들이 리오의 눈을 어지럽게 했다.

“어서오세요. 한분이신가요?”

낯선 언어로 누군가 리오에게 말을 걸어왔다.

언뜻 보기에는 상대가 자신과 같은 인간으로 보였지만, 리오는 상대의 동공이 뱀과 같다는 것을 깨닫고 주춤했다.

“… 아. 소. 손님은 아니고. 그게…….”

말을 떨다 리오는 모만이 해준 말을 떠올렸다.

“호빗 모만씨의 주선으로 오게 되었습니다. 듣자하니 일할 사람을 구하신다고……?”

“아. 그러시군요. 그럼 빨리 말해줄 것이지……. 이봐. 거기 오크. 이 인간을 마구간 청소에 합류시켜.”

리오의 말을 듣자마자 태도가 바뀐 상대는 하대를 하며 주변의 돼지 인간. 오크를 불러 리오를 안내하게 했다.

“취륵. 따라와라.”

얼굴에 불만이 가득한 오크는 두꺼운 입술로도 가리지 못할 송곳니가 무시무시했다.

오크라면 판타지 소설에서는 그냥 지나가는 하급 몬스터로 치부했었던 리오는 입을 꾹 다물었다.

‘… 엄청난 덩치잖아.’

리오는 오크를 따라 마구간으로 향했다.

근처로 이동했을 즈음이었다. 취륵 취륵. 콧소리를 내며 걷던 오크의 숨소리가 점점 줄어들기 시작했다.

그 일에 별 이상함을 느끼지 않았던 리오였지만, 잠시 뒤, 마구간을 코앞에 두고서야 리오는 이유를 깨달았다.

“빌어먹을 말똥…….”

역한 냄새에 코를 부여 막으며 리오는 헛구역질을 했다.

“취, 취. 취륵. 나. 난. 이만 가보겠다. 처. 청소 도구는 안쪽에 있고… 이미 먼저 청소 중인 내 동족들이… 추, 취륵 이만!”

리오를 안내했던 오크가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후다닥 사라졌다.

잠시 뒤, 구린내에 조금씩 적응한 리오는 마구간의 안쪽으로 이동했다.

“청소도구들… 먼저 와 있다는 오크들은 어디에… 헉!”

마구간의 중앙에서 실신한 서너 명의 오크들!

가까이 다가가니 안색이 창백했다.

숨을 급도로 참고 있는 기색이 역려 했으며 어쩌다 숨을 쉬려 할 때면 흉악한 얼굴에 어울리는 인상을 보여주었다.

“괘, 괜찮습니까?”

푸짐한 볼 살을 두들기며 리오는 오크들의 생사(?)를 살폈다.

“취, 취륵… 전사 투르크. 이계에서 용맹하게 싸우다 전사하다.”

“자신의 부고를 자신이 알리지 마!”

대화가 통하는 듯한 오크에게 리오는 계속해서 말을 걸었다.

살고 싶다는 의지가 강한 오크는 리오의 손을 붙잡고 말했다.

“취륵… 나와 내 동료의 시신을… 밖으로……!”

“말똥 청소하다 죽은 척하지 말라고!”

투덜거리면서도 리오는 자신보다 몸무게가 두 배 이상은 나가는 오크들을 땅에 질질 끌며 마구간 밖으로 옮겼다.

워낙 말똥 천지이다 보니, 오크들의 몸 밑에 말똥들이 깔려 그럭저럭 청소가 되는 듯 했다.

힘이 들기는 했지만, 주변에 있는 적당한 밧줄을 이용하기 시작하자 옮기는 작업은 더욱 수월해졌다.

‘… 미안하다. 옮기면서 너희들 몸으로 어떻게든 청소를 해볼게.’

“취륵. 드. 등이 따갑다.”

“도. 독인가보다. 취륵.”

오크들을 마구간 밖으로 옮기고 그들이 정신을 차리기 전까지 리오는 홀로 청소를 시작했다.

한참 뒤에서야 제정신을 차리고 만반의 준비를 갖춘 오크들은 리오에게 감사한 마음을 전하고 청소에 합류했다.

확인을 위해 여관 직원이 마구간에 도착할 즈음에서야 간신히 끝난 청소는 리오에게 뿌듯한 마음을 주기보다 무언가 불쾌한 기분을 주기만 했다.

‘이게… 탑의 세계?’

개인차가 있겠지만, 처음 이 세계로 온 인물에게 이런 더러운 일을 시키고, 거의 무임금이나 다름없는 중노동은 리오에게 꺼림칙함을 느끼게 했다.

픽시는 리오에게 이 세상이 온라인 게임과 비슷하다고 했다.

‘온라인 게임과 비슷하다면… 이런 청소를 해서 언제 살림 차려?’

첫술에 배부를 수는 없었지만, 리오는 오늘 하루가 만약 정말 게임이었다면 30분 만에 언인스톨로 직행되는 과정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 여관까지 오면서 바라본 마을의 풍경, 픽시가 극찬한 이 세계의 장점.

애초에 이 세계로 소환되는 조건들을 볼 때. 리오는 무언가 자신이 잘못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사람은 좋은 점들은 눈치 채지 못하고 나쁜 점들만 알기 마련이었다. 지금의 자신은 그것과 같았다.

‘일단 오늘은… 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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