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괴수처럼-281화 (281/287)

< [67화-4] 영웅의 자손들 >

『초인동맹』

이 조직은 15년 전쯤에 출범했다.

인류연구회가 그 이름처럼 ‘인류 개발’에 초점을 뒀다면, 초인동맹은 인간과 괴인, 초능력자의 ‘화합’에 더욱 힘을 준 단체다.

좀 더 깊게 파고들면…. 침략자로서 좋은 평을 못 받고 있는 초능력자들의 구제에 집중하는 구호성향이 짙다. 질시와 경멸의 대상인 그들이 차별대우 받지 않도록.

‘슈퍼월드도 손을 보긴 해야 하는데….’

초인동맹 맹주 ‘한은아’가 힘써보고 있지만, 혼란으로 점칠 된 ‘초능력자 세계’는 20년이 지난 지금도 맥을 잡기 힘들었다.

가장 큰 원인은 ‘차원이동 페널티’라고 불리는 효과다.

괴수는 슈퍼월드만 가면 바보가 돼버리니까. 그나마 괴인들은 ‘회귀본능’ 덕분에 강력한 전력이 되지만, 통제가 힘들다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다.

괴인 범죄.

그건 슈퍼월드로 파견 나간 괴인이 힘에 취해 ‘악’으로 전향한 경우다.

몬스터월드에서는 빌빌거리던 괴수들이 지구에서는 활개 치듯이.

(주주! 망나니 녀석은 못 찾았지만, 그 흔적은 찾았습니다.)

그런 기준에서 본다면 판타지월드는 대단히 위험천만한 곳이다.

오랫동안 ‘신’으로서 군림해온 초월적인 존재들이 있고, 거기에 버금가는 생명체도 적지 않게 존재하는 탓에 행성 전체가 넝마로 변했다.

괜히 ‘추방지’로 정해진 게 아니다.

힘만 있으면 무엇이든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무법지대인 건 맞지만, 마음대로 할 여자도, 남자도, 부하도, 땅도…. 그 무엇 하나 없다.

심지어 그들의 힘마저도 이곳에서는 미약하기 짝이 없으니!

그래서 판타지월드로 추방된 자들의 목표가 하나같이 탈출인 것도 당연하다.

(추적하면 되잖아?)

유럽 대륙에 있다는 걸 알아낸 이상, 찾아내는 건 시간문제다.

한무일만큼은 아니지만, 특별하게 제작된 육체에 깃든 이들의 능력은 초능력자와 괴인 이상. 게다가 숫자도 많다.

영혼석 내의 모든 영혼을 풀어놓으면 지구…. 아니, 몬스터월드의 인구보다도 많으리라.

아들 한무성은 독재자가 될 뻔했다고 했다.

하지만 그건 크나큰 오해인데, 한무일이 마음만 먹으면 ‘창조신’에 버금가는 절대권력과 신성불가침영역을 만들 수 있다.

그저 안 하고 있을 뿐.

손을 뻗으면 닿을 수 있는 목표에 매달리는 사람이 없듯이.

(비행기로 북극해를 넘어간 것 같습니다.)

(공항에서 신분검사…. 아! 그렇군.)

인류연구회가 출범하며 가장 큰 변화, 혁명을 가져다준 것 중 하나가 해외이동이다.

그리 멀지 않은 20년 전까지만 해도 항공로는 ‘날치 괴수’ 볼트윙 때문에 차단되었었지만, 괴인이 민간항공기를 보호함으로써 해결됐다.

물론, 그 과정에서 무수히 많은 시행착오가 따랐지만, 그것도 한두 해에 그쳤고 그 뒤로는 비행사고 한 번 없이 안전운행 중이다.

어떻게 이게 가능할까?

괴인이 비행기에 매달리는 건 아니다.

『사역마』

마녀의 그것처럼 괴수를 복종시키는 능력을 보유한 괴인과 초능력자가 있다.

그들은 ‘비행형 괴수’ 혹은 ‘수상형 괴수’를 길들여서 수송선의 안전을 도모했다. 그래서 이 운송업은 괴인과 초능력자들의 가장 큰 수입원 중 하나.

그 탓에 신분검사는 느슨한 편이다.

성형수술을 안 해도 외형을 얼마든지 바꿀 수 있는 괴인이 생각보다 많은 탓에, 가장 많은 괴인이 몰리는 유럽…. 특히, 영국은 출입국 심사가 대단히 허술하다.

비행기 테러?

그건 프로사냥꾼의 [예감]으로 미리 감지할 수 있다.

대단히 건성 같지만, 사고 한 번 없었다는 것으로 안전성이 증명된 지 오래.

(목적지는?)

(중국 상하이 같습니다.)

(...이해하기 힘든데. 무슨 연관성이 있지?)

최무일과 중국은 아무런 접점이 없다.

녀석이 지구로 넘어온 지 하루도 안 돼서 바짝 조이기 시작했다.

『죽었다고 알려진 영웅이 살아있다!』

지구로 오자마자 잡혀가고 싶진 않기 때문에 미친놈처럼 소리 지르고 다니진 않겠지만, 알려지면 약간 성가신 게 사실이다.

헛소문으로 무마해버리긴 쉽지만, 판타지월드로 ‘생존’을 확인할 사람을 파견하면 나름대로 일이 번거로워지니까.

하면, 중국으로 넘어가서 뭘 어쩌겠다는 걸까?

(무일. 하북팽가에 몸을 의탁하려는 게 아닐까?)

(흠…. 모르면 그럴 수도 있겠군.)

중국의 3대 가문 중 하나인 하북팽가의 가주(家主) ‘시링 팽’이 한무일의 생존 사실을 20년 전부터 알고 있었다는 걸 모른다면 가능하리라.

게다가 유럽이 아닌 중국에서 소문이 나버리면 간단한 문제가 아니긴 했다.

중국은….

한무일이 어딘가에 살아있다고 굳게 믿는 나라였기 때문이다.

마신의 침공 당시, 그나마 여유가 있었던 나라는 한국과 중국이 유일했다. 그랬기에 한무일의 탄생과 전투를 제법 상세하게 기록할 수 있었다.

『압도적인 강함!』

문팽이와 배틀씹 같은 번외의 존재를 제외한 8종과 맞먹던 ‘라그나뢰크 클론’을 짚단처럼 쓸어버리던 한무일의 위용.

그걸 보았다면 ‘죽음’은 상상하기 힘들다.

이런 중국인데, 최무일이 가서 ‘내가 봤소! 산증인이오!’라고 부채질하면 어떻게 될까?

인류는 다시 20년 전의 정체기로 돌아갈 것이다.

한무일이란 한 남자에게 모든 걸 의존한 채, 안 도와주면 원망하고 도와주면 당연시하는 풍조가 인류의 숨통을 조이리라!

“비행기라…. 녀석, 생각이 짧군.”

판타지월드 고유의 냄새가 단시간에 지워질 리 없다.

그걸 밀폐된 비행기로 감추겠다는 의도는 나쁘지 않지만, 상대가 나빴다. 아니, 애초에 한무일에게서 도망칠 수 있다는 생각 자체가 잘못됐다.

무일은 곧바로 공간이동 했다.

목적지는 중국이 아닌 북극해 상공.

비행기가 떠난 시간과 속도를 통해 현재 위치를 [예측]하고, 단숨에 비행기 안으로 이동해버린 것이다.

(주인영감. 우리는 어떻게 합니까?)

(...돌아와도 좋아.)

(나이스! 다음에는 딴 녀석들을 불러주시오!)

유럽에 흩어져서 최무일을 수색 중이던 영혼들이 영혼석으로 귀환했다. 차원만 같다면 거리는 별다른 장애가 아니었기에 순식간에 이루어졌다.

남은 육신은 ‘괴수의 피’로 회귀.

초창기에는 그 광경을 본 사람들이 혼비백산했었다. 갑자기 눈앞에서 사람이 핏덩이로 변해버린다면 누구나 놀라리라.

하지만 지금은 바로 옆에서 살인사건이 벌어져도 그러려니 할 정도로 세상이 변했다.

이걸 좋다고 할 수 있을까?

“혼나기 전에 나가. 여긴 출입금지라고.”

비행기 화물칸으로 순간이동 한 무일을 보고도 승무원이 당황하지 않은 이유도 같은 맥락.

순간이동은 그리 먼 별나라 얘기가 아니다.

간혹, 승객석과 화장실 사이를 걸어가기 귀찮다고 순간이동 해버리는 괴인과 초능력자가 종종 있으니까.

아니면 좀도둑이라던가.

승무원은 한무일을 그런 부류로 생각했다.

비행기 처음 타본 초짜!

화물칸으로 순간이동 해서 비싼 물건만 잽싸게 빼돌리면 금세 부자가 될 수 있다고 착각하는 멍청이 말이다.

“이크! 실례했습니다.”

한무일은 변명 한마디 안 하고 걸어나갔다.

실수로 화물칸에 온 게 아니다.

혹시라도….

승무원이나 승객 중에서 ‘장거리 공간이동’을 의심하는 자가 나오면 이래저래 곤란해지기 때문이다.

단거리 텔레포트 능력자는 많지만, 장거리는 대단히 희귀하다. 하물며 음속을 찢어발기는 속도로 날아가는 비행기 안이라면 아예 불가능한 영역.

그래서 화물칸을 선택한 것이다.

‘다행히 의심하지 않는군.’

여럿이라면 장거리 텔레포트를 의심하는 자가 분명 나올 테지만, 화물칸을 지키는 남자 하나만 속이는 일이라면 ‘누워서 떡 먹기’다.

무일은 승객석 칸으로 들어서자마자 오감을 극대화했다.

역시나! 최무일의 흔적이 있었다.

다만….

문제라면 흔적뿐이란 점이다.

(무일! 녀석이 도중에 내린 것 같다!)

(인간이 성층권에서 번지점프 해서 살아남을 수 있을 리가…. 그렇다고 자살은 아닐 테니, 내가 모르는 어떤 능력을 얻었다고 보는 편이 맞겠군.)

(게다가 공간이동도 했다.)

(...아니. 그랬다면 비행기 표를 끊지 않았겠지.)

날아가려는 비행기로 텔레포트 해서 몰래 타고 가는 방법도 있다. 물론, 지정석이 없어서 착석하지 못하기 때문에 금방 승무원에게 들키겠지만.

뭐가 됐든 무단탑승은 무리수가 따른다.

(하지만 녀석이 없다, 무일. 게다가 비행 중인 비행기 문이 열린 적이 있었다면 이렇게 조용할 리 없다.)

(그러니 순간이동이다? 차원이동도 했으니 순간이동쯤도 했을 수 있지만….)

사람들은 순간이동보다 한 단계 높은 수준을 차원이동이라고 ‘착각’하는데….

그건 말 그대로 잘못된 상식이다.

시공간을 무시하고 장소를 옮기는 순간이동, 머무는 세계를 옮겨타는 차원이동. 이 둘은 완전히 별개의 능력이다.

순간이동이 벽 너머의 방으로 이동하는 난이도라면?

차원이동은 정상적인 문을 통해 옆집을 방문하는 수준이다.

뭐가 더 어렵다고 말하기 힘들다.

(너를 이곳으로 불러들이기 위함이라면?)

(가능성이 전혀 없진 않군.)

한무일의 생존을 알릴 증거품을 확보할 의도라면 나쁘지 않다. 이 비행기 안에는 감시카메라가 곳곳에 설치되어있으니까.

다만, 정말로 그럴 목적이었다면 진짜 헛걸음한 셈이다.

한무일이 이 비행기에 온 시점부터 모든 감시카메라는 ‘엑시리얼 온드미온’의 관리를 받고 있으니까.

역으로 본인의 흔적을 남길 뿐.

(소년. 네 사생아는 1시간 32분 28초 전에 이 비행기에서 사라졌다.)

(그렇습니까.)

(영상을 각막에 투영해주겠다.)

근심과 걱정 하나 없는 얼굴로 평범하게 얌전히 승객석에 앉아있던 황인계 미청년. 그는 기내식(機內食)을 많이 먹은 것 외에는 특별한 사항이 없었다.

그러다가 화장실 가듯이 자연스럽게 일어난 후에는 돌아오지 않았다. 다른 감시카메라에 찍힌 사진으로도 그의 마지막 행선지는 화장실이 끝이었다.

잠기지 않고 열린 화장실 내부는 당연히 텅텅 비었고.

(봐라, 무일. 공간이동이 맞다.)

(투명화 마법일 가능성은…. 흠…. 없군.)

이 거리에서 한무일의 시야를 속일 수 있는 능력이란 없다. 그건 판타지월드의 신들도 할 수 없는 일이니까.

하지만 방심하지 않고 다른 가능성도 열어뒀다.

그쪽이 더 신빙성 높으리라.

‘기척을 감추고 숨어있을 수도 있지.’

최무일이 판타지월드에서 습득한 호흡법의 장점이다. 자신의 호흡을 죽여서 소리가 안 나도록 하는 건 물론이고 움직임도 절제할 수 있다.

다만, 그 능력의 치명적인 약점은 ‘적외선 센서’에 걸릴 수밖에 없다는 것!

생명체는 ‘열기’를 띄고 있으니까.

무일은 곧바로 눈을 변형해서 열 감지 능력을 추가했다. 색을 분별할 수 없어서 평소에는 안 쓰지만, 잠깐뿐이라면.

(봐라, 무일. 없다. 공간이동이 맞다.)

(...그런 모양이군.)

하지만 그게 말이 될까?

판타지월드의 전설적인 영웅이 남긴 호흡법을 익혔다지만, 그 능력은 본고장에서만 극대화되고 지구에서는 ‘엘프의 마법’처럼 거의 힘을 못 쓴다.

그 증거가 레인.

판타지월드를 통일했다는 녀석이 맥없이 죽었다.

제주도에 완전히 뿌리를 내린 하이엘프의 마을도, 주인 한유일의 지시를 받은 ‘최은설’의 보호가 아니었다면 진즉 창녀촌으로 전락했을 것이다.

(무일. 지금이라도 역추적하는 게 어떠냐?)

(...아니. 가끔은 이런 것도 좋겠지.)

최무일의 좌석에 태연하게 앉은 무일은 창밖을 내다봤다.

바로 옆자리에 앉은 여성은 ‘어머! 잘생긴 오빠가 바뀐 것 같기도? 아닌가?’ 정도의 의문을 품으며 힐끔거릴 뿐이었다.

피가 이어진 만큼 외모는 닮았으니까.

겉보기에는 나이도 비슷하기에 초면인 사람들은 더욱 구별이 힘들다. 왼팔이 좀 걸리긴 하지만 ‘남의 팔이 무슨 색이다.’ 이상으로 깊게 관심을 두는 사람은 거의 없다.

(네 아들 녀석. 북극에서 얼어 죽은 건 아니겠지?)

(글쎄…. 어떨까나.)

한유일은 녀석이 순간이동으로 비행기를 탈출하여 북극 어딘가에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무일의 생각은 다르다.

새하얀 대지 위는 도시보다도 모습을 감추기 어렵다. 공기가 차면 후각으로 찾기 힘들어지는 건 사실이지만, 그보다는 단점이 훨씬 많다.

가혹한 환경, 열린 시야, 목적 없는 장소….

최무일이 북극에서 하차할 이유는 아무리 생각해도 없다. 북극에서 죽을 고생을 바에는 포기하고 판타지월드로 끌려가는 편이 행복하리라.

‘차원이동 때처럼 내 감각을 속이고 있겠지.’

이 비행기 어딘가에 최무일이 숨어있다고 무일은 [예측]했다.

돌아다니면서 찾아볼 수도 있지만….

괜히 건드렸다가 이 비행기까지 휘말릴 가능성이 전혀 없진 않기에 지금은 조용히 비행기여행을 즐기기로 했다.

심심하지도 않고 말이다.

외간여자와 나누는 오랜만의 대화!

“저기…. 오빠는 혼자 오셨어요?”

“그렇습니다.”

하지만 길게 대화 나눌 순 없었다.

우주에서 모든 걸 내려다보는 프로메시아 때문에.

(소년. 딴짓하지 말고 잠이나 자라.)

(엑시온. 이건 그저-.)

(떳떳하다면 현재 모습을 유키나에게 보내겠다.)

(하하! 잠이 보약이죠!)

< [67화-4] 영웅의 자손들 > 끝

ⓒ 파르나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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