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7화-1] 영웅의 자손들 >
[67화] 영웅의 자손들
학명: 코뿌랄(다산을 상징하는 독사)
서식지: 사막, 해변
특징: 콧등에 뿔이 뾰족!
위험도: 4종 보통
비고: 번식력이 무시무시해요!
***
사람들은 2,222년 2월 22일의 대격변 이후, 온갖 괴수의 창궐로 엉망진창이 된 세계가 더는 변하지 않으리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건 오산이었다.
그로부터 100년하고도 조금 더 지난 2,333년, 사람들…. 지구인들은 또 한 번 경악할 수밖에 없는 사건이 터졌다.
운석 ‘오더마인드’의 파편이 바로 그 원흉!
지구에 떨어진 살점에서 ‘신인류’가 발원(發源)한 것이다.
『신인류(新人類)』
...이러면 뭔가 그럴싸하게 들리지만, 그 실체를 파헤쳐보면 ‘괴수를 닮은 인간’ 혹은 ‘인간형 괴수’다.
그래서 이들을 ‘괴인(怪人)’이라고도 부른다.
이 괴인들은 대단히 강하고 성장도 빨랐지만, 수명이 짧고 ‘순수한 인간’과 교합 없이는 번식을 못 한다는 한계가 뚜렷했다.
대립과 화해, 공존까지….
인류연구회 1대 회장 ‘유키나 미나미’의 주도로 2,345년에 법이 제정되며, 인간과 괴인이 섞여 사는 세상이 도래했다.
“세상이 괴수처럼 변했네.”
예전 같으면 가리고 다녔을 흉측한 왼팔이지만, 현재는 이렇게 내놓고 다녀도 그를 알아보기는커녕 관심 가져주는 사람조차 없다.
의도했던 바이긴 하지만, 정말로 그렇게 돼버리고 나니 시원섭섭한 게 사실.
‘나를 수많은 괴인 중 하나로 보는 거겠지.’
인간과 닮거나 비슷 혹은 특징을 가진 이들이 괴인이니까.
그러니 겉보기에는 그도 영락없는 괴인.
그 괴인들의 활약으로, 극소수 고위괴수를 제외하고는 전부 ‘위험한 야생동물’ 취급으로 변하면서 지구도 살기 편해졌다.
도시 밖에서 산다는 건 가상현실게임에서나 가능한 일이었는데, 그게 현실에서 가능해졌으니 오래 살고 볼 일이다.
스르륵-.
그런 감상도 잠깐, 한무일은 공간이동을 했다.
자신은 우주에서 산화한 ‘위인’으로 되어 있으니까. 고깔모자 하나 쓴 것만으로도 신분이 감춰지는 걸 보면 꼭 그렇지도 않은 것 같지만.
“이 중2병 계집애야!”
“제가 뭘 어쨌는데요?”
“어린 년이 벌써 색기 넘치는 게 그냥 마음에 안 들어!”
“헤에~, 그거 칭찬이죠?”
“딱 들어도 아닌 거 모르겠어? 이 중2병아!”
...도저히 모녀(母女)의 대화 같지 않다.
계모도 아닌 친모에게 신데렐라와 콩쥐 이상의 구박을 듣고 자란 ‘친딸’을 보며, 뭐라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기분이 들었다.
선지혜의 미색만 닮고 성격은 정반대인 딸.
아빠 역할을 해주지 못한 한무일로서는 천성이 유하고 착한 딸 ‘한유지’를 볼 때마다 태양신과 이 아이에게 늘 고마울 뿐이다.
“어? 여보, 언제 왔어?”
“마누라가 딸에게 중2병이라고 할 때부터.”
“잘못 키운 것 같아. 엄마한테 벌써 대든다니까!”
한유지가 ‘철부지 엄마’에게 ‘안녕히 주무세요.’라고 공손히 인사하고 자기 방으로 떠난 것까지 확인한 무일로써는 조금도 공감할 수 없었다.
하지만 딸을 편들면 곤란하다.
삶의 지혜라고 할까?
잘못했어도 잘했다고 해주길 바라는 선지혜에게 쓴소리를 하면, 그 피해와 보복은 고스란히 한유지에게 간다.
“자자, 지혜는 착하지?”
“...응. 많이 착한걸.”
“밤도 대단히 짧지?”
“으, 응.”
딸을 옹호하지만 않으면 고분고분해지는 선지혜.
매우 불성실한 것 같지만, 한무일은 나름대로 자식들을 보살피고 있었다. 주기적으로 애 엄마인 선지혜를 달래는 것도 그 일환.
완전범죄를 위해 자지러지며 기절하듯 잠든 선지혜의 몸에서 흔적을 지우는 건 물론이고, 침대보까지 말끔하게 청소한 무일은 다시 이동했다.
아침 늦게 깨어난 선지혜의 섭섭해 하는 얼굴이 선했지만….
‘딸에게 들킨 순 없지.’
마법으로 물증을 지워도 심증은 남는다.
여자의 직감이라고 할까?
한무일의 [예지]를 뛰어넘지 못하고 늘 실패하지만, 앞으로 2분 뒤에 방음처리가 완벽한 엄마 방을 습격하리라.
“이상하네….”
...이처럼 말이다.
선지혜의 방에 무단침입한 한유지는 고개를 갸웃하며 샤워장부터 옷장, 침대 밑, 커튼 뒤에 이르기까지 샅샅이 돌아다니며 ‘남자’를 찾았다.
엄마와 딸의 역할이 바뀐 게 아닐까?
완전히 곯아떨어진 선지혜는 한유지가 소란 피워도 깨어날 기미가 없다. 깨어나지 않는 편이 세계평화에 더 도움되니 잘 된 일일지도….
‘모든 자식이 뛰어난 건 아니라서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반대로 못난 아이들도 있다. 아니, 이건 애교다. 빼어난 능력을 삐뚤어지게 사용하는 애들은 무일의 힘을 쫙 빠지게 하곤 한다.
그리고 이런 아이들 때문에 무일은 보험을 들어놨다.
아이들이 삐뚤어지는 주된 원인에는 ‘한무일의 그림자’가 있는데, 지나치게 뛰어난 부친의 후광에 숨이 막혀 자포자기한 경우다.
남의 자식들처럼 평범하게 자라주면 그걸로 충분한데….
애 엄마나 당사자들은 그렇지 않은 모양이다.
“선배님, 오셨습니까.”
“흠. 세웅이, 너도 이젠 연륜이 절로 풍기는 것 같네.”
“하하! 선배님에 비하면 멀었습니다.”
그래서 한무일이 들어둔 보험이란?
대한민국 최강의 사내로 통하는 에쏘스트 ‘문세웅’이었다. 뛰어난 괴인들이 많이 등장했지만, 여전히 에쏘스트의 아성은 넘지 못했다.
아무튼, 아무리 삐뚤어진 아이들도 ‘최고의 우상’ 문세웅 앞에서는 위축되고 순한 양으로 돌변할 수밖에 없다.
문세웅이 훈계하면 말발 떨어질 때까지 노력하는 척이라도 하니까.
물론, 이러한 과보호도 15살까지만이다.
이후에는?
“추방해야 할 정도로 문제를 일으킨 아이는 없던 것 같았는데,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쫓아낸다. 도시가 아니라 지구에서 완전히.
몬스터월드와 슈퍼월드는 인구가 풍족하고, 지구도 괴인의 가세로 빠르게 따라잡고 있지만, 판타지월드는 그렇지 않다.
엘프의 고향.
그곳은 여전히 사람이 부족하다.
세 차원에서 추방된 자들은 판타지월드로 보내진다.
“내가 오는 게 싫어?”
“하하! 아닙니다. 그럴 리가요. 선배님도 참 짓궂으시네요. 하지만 저는 선배님이 용무 없이 움직이는 걸 여태 본 적이 없습니다.”
죽었다고 알려진 선배가 몰래 방문했을 때는 얼마나 놀랐던가?
힘든 고비를 수십 번 넘기며 지옥에서 생환하는…. 드라마 같은 이야기 보따리라도 풀어줄 줄 알았더니 여기저기 자식 농사 중이었다.
그리고 한다는 얘기가 자식 부탁.
대한민국의 안보와 안녕을 책임지고 있는 문세웅으로서는 ‘위대한 영웅의 자손’이 잘못되는 꼴을 좌시할 수 없었기에 흔쾌히 수락했다.
“쯧. 다음에는 이유 없이 오도록 해보마.”
“역시! 그래서 무슨 일이십니까?”
한무일이 살아있다는 사실은 대한민국 내에서 셋뿐이 모른다.
선지혜, 문세웅, 이승필.
심지어 국모 ‘선유나’와 바람의 여왕 ‘박선영’마저도 그가 살아있다는 확신을 못 가질 정도로 철저하게 비밀에 부쳤다.
그런데 이승필이 아닌 자신을 찾아온 이유는?
『자식 문제』
보수적인 이승필은 아이 달래기에 대단히 서툴렀다. 심지어 방식도 보수적인데, 잘못한 아이는 무조건 회초리로 다스려야 올바르게 선정한다는 주의였다.
그래서 패스.
적재적소라는 게 있다. 한무일이 이승필에게 부탁할 때는 ‘미래에 벌어질 수도 있는 범죄’ 관련이 많다.
당연히 그 범죄는 좀도둑이나 성폭행 같은 자잘한 사건이 아니다.
미리 대비하지 않으면 막지 못할 정도로 큰 대란(大亂).
물론, 한무일이 나서면 1초도 안 돼서…. 어쩌면 사전에 진압될 문제다. 하지만 그러면 번거롭게 전사(戰死)로 위장한 의미가 없다.
그걸 아는 무일은 ‘예고’의 횟수마저도 줄이고 있었다.
“이번에는 어느 사모님의 애가 사고 쳤습니까?”
한무일이 이승필을 찾아가는 횟수가 줄어든 만큼 문세웅을 찾는 일이 많아졌다.
아이들이 하나둘 사춘기에 들어서면서 생긴 문제.
만약, 문세웅이 ‘에쏘드’의 ‘체력 보정’을 받지 못했다면 진즉 나가떨어졌을지도 모른다. 그만큼 그도 바빴고 아이들은 늘 골치 아팠다.
“조금 다른 문제야.”
“다르다고요?”
“추방된 아이 중에 ‘최무일’을 기억해?”
“물론입니다. 최이슬 대책반장님이 사퇴하게 된 원인인데 어떻게 잊겠습니까. 선배님의 정자로 인공수정해서 태어난 아이…. 2기 중에서도 가장 뛰어난 아이였죠.”
한무일의 자식은 세계적으로 대단히 많다.
일일이 이름을 떠올리지 못하고 무더기로, 태어난 연도를 기준으로 1기, 2기, 3기…. 이런 식으로 기수를 붙여야 할 정도다.
이렇게 된 원인에는 인류연구회가 많이 관여하고 있는데, 그건 ‘유키나 미나미’를 포함한 여러 여인의 자연임신을 감추기 위해서 내린 조치였다.
죽은 남자의 아이를 처녀가 잉태한다는 건 말이 안 되잖는가?
이런 설명에도 불구하고 석연치 않은 부분이 있는데….
깊게 파고들면 대단히 복잡하니 이 이상은 생략하도록 하자.
“그 아이가 판타지월드 ‘판도라’를 탈출했다.”
“예에?! 무슨 수로?!”
“모르지. 하지만 그보다 더 큰 문제는 최무일이 내 생존을 알고 있다는 거야.”
“그, 그건 정말 심각한 문제인데요.”
추방된 아이들이 전부 한무일을 알고 있는 건 아니다. 하지만 재능이 아깝다고 생각되는 아이들은 그가 거둬들인 게 사실.
어차피 이들은 평생을 판타지월드에서 살게 될 테니까.
비밀이 새나갈 확률은 전무(全無).
게다가 한무일이 이 아이들에게 가르친 분야 중에는 ‘마법’은 없었다. 그래서 차원이동 같은 고차원적인 마법은 당연히 쓸 수 없어야 정상.
설사, 할 수 있더라도 [예지]에 걸려들었을 것이다.
그런데….
“도망쳤단 말이지. 녀석이 지구로 왔다면 대한민국을 가장 먼저 떠올리지 않을까, 생각되어 찾아왔지만, 여전히 조용하니 확신이 안 서.”
“호옹~. 선배님이 헤매시는 모습이 대단히 신선하네요.”
“쩝. 어쩔 수 있나. 변명처럼 들리겠지만, 판타지월드를 ‘판도라’라고 이름을 붙인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인데.”
해명되지 않는 지식이 많다.
비록, 다른 차원에서 넘어온 괴수에게 밀려 쑥대밭이 되었지만, 그건 ‘회귀본능’이란 사기적인 맷집 때문이지 판타지월드가 못나서가 아니다.
정령계, 마계, 신계, 천계….
부차적으로 딸린 차원도 대단히 방대하며, 여기에 ‘엘프 유산’이나 ‘드워프 걸작’ 그리고 ‘드래곤 레어’ 등도 무시할 수 없다.
하여간 미답지 영역이 많았다.
“흐음…. 일단은 제 [예감]에도 안 잡히는 것 같습니다.”
“무언가 보호를 받는 거려나.”
“아니면 슈퍼월드나 몬스터월드에 있을 수도 있죠. 아니면 그 외의 차원. 일단은 선배님의 말씀은 잘 알았습니다. 발견하면 꽉 붙잡고 있겠습니다.”
“...만약 죄를 지으면 죽여도 좋아.”
“선배님도 형님처럼 은근히 보수적이라니까요. 그전에 제가 잡겠습니다.”
대한민국 영웅다운 든든함이 느껴지는 미소다.
한무일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다시 공간이동 했다.
대한민국에 녀석이 없다면 다음으로 확률이 높은 곳은 일본. 최무일이 짝사랑했던 이복동생이 사는 곳이다.
한무일의 친딸이기도 한 아이의 모친은,
천녀(天女) 유키나 미나미.
이건 어디까지나 명예직이고 본직은 인류연구회 명예회장이다.
“다시! 이것도 다시! 아니, 그냥 전부 다시!”
“하, 하지만 회장님! 이 많은 걸 다-.”
“입 아프게 하지 마. 못 하겠으면 다들 사직서 쓰라고 해. 너희 밥그릇을 노리는 인재는 길가에 돌멩이처럼 많으니까.”
...유키나 미나미하고 비슷하면서도 다른 딸.
선지혜가 딸을 구박한다면? 이쪽은 과중한 업무로 요절시키려는 모양이다. 꽃다운 19살을 책상에서 보내고 있는 게 그 증거.
절반은 일본인이고 일본인으로 사는 딸의 이름은….
“키리 짱! 엄마랑 게임하자!”
“어머니! 딸이 열심히 일하면 좀 거들 생각을 하셔야죠!”
“안 들려, 안 들려. 나는 할 만큼 했다, 뭐. 아아, 슬프다, 슬퍼. 애 아빠가 엄마를 구박하는 딸을 보았다면 얼마나 가슴 아파할까?”
“됐어요! 혼자 노세요!”
키리 짱은 애칭이고 본명은 ‘카라 미나미’.
명백한 자연수정이었지만, 외부에는 인공수정으로 알려졌기에 부친의 성 ‘한’과 한국식 이름을 따르지 않았다.
...딸들이 고생이 많군.
무일은 한숨을 내쉬며 기다렸다.
< [67화-1] 영웅의 자손들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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