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6화-4] 기적은 준비된 자에게만 >
“어? 길바닥에 웬 검이…?”
“요즘이 어느 시대인데 검이 바위에….”
“음? 누가 책상 위에 검을….”
무일은 국적과 나이를 가리지 않고 괜찮은 떡잎 혹은 사내에게 에쏘드와 폴리검을 전달했다.
그들이 잘못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사전에 [예지]로 검증까지 마친 상태였으니까! 그들은 ‘용사’ 혹은 ‘기사’로서 국경을 넘어선 투혼을 발휘할 것이다.
‘이건 됐고….’
마음 같아서는 직접 나서서 모든 걸 처리하고 싶었다. 직업병이라고 해도 좋으리라.
하지만 그러면 안 된다는 걸 알기에 꾹 참았다.
어떻게 보면….
삶에 대한 마지막 정리였다.
적어도 지구에서 그가 할 수 있는 건 이제 없었다. 하고자 한다면 찾을 수 있겠지만, 지구의 앞날을 걱정한다면 좋은 판단이 아니다.
(무일. 이제 끝난 거냐?)
(...그래.)
(드디어 가는 건가!)
(맞아. 빚을 청산하러 가야지.)
몬스터월드의 두 마신에게 볼일이 좀 있다.
한 방 맞고 ‘반격’하지 않고서야 어찌 프로사냥꾼을 자처할 수 있단 말인가!
무일은 차원이동 했다.
“전쟁터로군.”
힘의 균형이 깨진 몬스터월드는 난장판이었다.
마신 라그나뢰크 클론이란 막대한 전력을 바탕으로 승승장구 중인 위그드라실이 행성을 통째로 흔들고 있었다.
지구를 향한 사역마 침공을 중단해야 할 만큼 위태위태했다.
아르테르 행성의 최강을 자처했던 메시무스 제국은 대패하며 크게 위축됐고, 2번째인 마도제국부터 5번째 인펠리아 제국까지…. 피해는 아직 적었지만, 희망적이진 않았다.
(무일! 어서 쏠비얀에게 가자!)
한유일이 막 재촉했다.
녀석은 여전히 ‘공극의 마녀’가 좋은 모양이다. 하렘의 왕이 되겠다는 녀석이 한 여자에게 꽂혀서 어쩌자는 건지 모르겠다.
파트너가 보채지 않아도 갈 생각이었다.
백만마녀 ‘솔라리스’는 모든 문제의 발단이니 넘어가더라도, 공극의 마녀 ‘쏠비얀’에게는 유감이 없다.
역으로 생명의 은인이랄까!
그때, 두 마녀가 자살해주지 않았다면 고치에서 생을 마감했을 것이다.
“그전에 선결문제부터.”
무일은 녀석을 진정시키며 곧바로 순간이동 했다.
목적지는 위그드라실의 본체.
뭐든지 큼지막한 식물로 가득한 몬스터월드에서도 그 나무만은 압도적으로 크고 웅장했으며 성스럽기까지 했다.
저것이 바로,
『최초의 마신 - 생명의 나무, 위그드라실』
그 전적이나 역사 등, 무엇 하나 간단한 게 없다.
하지만 한무일은 잠깐의 망설임도 그 위그드라실 위로 순간이동 후에 무지막지한 마법을 쏟아부었다.
평화적인 대화고 뭐고 없었다.
그냥 냅다 들이박힌 마법은 마신을 경악게 했다.
한 자리에 고정되어있음에도 여태까지 생존할 수 있었던 이유는 다른 게 아니다. 그만큼 단단해서 그 무엇으로도 피해를 안 받았다.
그랬던 위그드라실이,
“구우우우-.”
이상한 소리를 내며 울부짖고 있었다.
깜짝 놀란 클론들이 전부 회군해서 어떻게든 한무일을 막아보고자 애썼지만, 그의 왼팔에서 실처럼 쏟아져나온 촉수에 모두 썰려버리고 말았다.
그야말로 압도적!
예고도 없이 벌어진 싸움은 몬스터월드의 모든 식물군을 움직이게 했다. 심장을 공격받았는데 가만히 있다면 그게 더 우스운 일이리라.
하지만 어떻게 해볼 새도 없이 끝나버렸다.
우직끈-!
절대로 부러질 수 없는 위그드라실이 기울어졌다.
일반적인 나무였다면 진즉 쓰러졌을 각도에서 버티고 버텼으나 점점 가중되는 한무일의 화력에는 못 당해냈다.
마신이란 이름이 공허하게 들리는 결말.
하지만 행성 규모의 영혼을 쥐어짜서 마법을 펼치는 한무일의 상대로는 많이 부족할 수밖에 없었다.
그 정도로 강해졌으며, 앞으로도 강해질 터였다.
오더마인드를 흡수했을 때부터 [예지]로 본 미래의 정해진 결과.
“한무일 씨! 언질이라도 해주셨다면…. 섭섭하네요.”
이런 대란(大亂)이 있었는데도 모르면 마녀가 아니다.
쏠비얀뿐만 아니라 몬스터월드의 유명한 마녀는 전부 모여든 것 같았다. 그중에는 일본의 계약자 ‘아이나미 산토’ 육신에 들어갔던 왕녀도 있었는데….
한무일은 움츠러든 그녀를 힐끔 보고는 시선을 돌렸다. 사람 수십 명을 죽인 걸로 문제 삼기에는 너무나 많은 죄인이 뻔뻔하게 살아있었으니까.
지구의 거의 모든 정치인이 간접살인마!
본인들의 의무를 한무일에게 떠넘긴 그들의 죄가 절대 작지 않으리라.
“방금 왔습니다.”
“방금 마신을 쓰러트렸고요?”
“네.”
“세상에….”
뭐라 형용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마신 위그드라실이 사실상 죽음을 맞이하면서 행성 전체의 식물군에 영향을 끼쳤다.
좋게 표현하면 ‘나무가 더는 안 무서워요!’라고 할 수 있지만…. 이전처럼 파괴된 자연이 급속도로 회복되는 기적은 사라졌다.
아니, 그조차도 한무일의 [예지] 범위 안이었다.
“할 수 있겠어?”
“...해볼게요.”
위그드라실이 대량생산한 클론 중에서도 특별한 개체. 하지만 위그드라실의 통제에서 벗어나는 바람에 폐기될 뻔했던 라그나뢰크 여성 버전.
그녀는 죽은 위그드라실의 나무껍질에 손바닥을 얹히며 집중했다.
파앗!
시체에서 능력을 계승하는 의식이었다.
부활한 한무일이 쓰러트렸던 ‘여성형 클론’이 완성품이라면 이쪽은 불량품. 하지만 그 능력마저 덜떨어지는 건 아니다.
역으로, 창조주라고 할 수 있는 위그드라실에게 반발했을 정도로 우수한 편!
결과는 금방 드러났다.
평범한 나무와 풀로 돌아가며 어째선지 시들시들해진 감도 없잖아 있었던 식물들이 다시 활력을 되찾았다.
‘위그드라실은 이런 자신을 원했던 거겠지.’
한 곳에 계속 머물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자신의 모든 걸 담을 수 있는 ‘영혼의 그릇’을 만든 것이리라. 너무 욕심을 부린 나머지 클론의 자아가 너무 강해져서 끝내 꼬이고 말았지만.
앞으로는 이 여인이 ‘위그드라실’이다.
죽을 줄 알았던 자신에게 이런 기연을 안겨준 한무일에게 감사인사를 전하고자,
“어…. 벌써 떠나셨네요.”
“남자를 이렇게 애타게 기다리게 될 날이 올 줄은….”
“아직도 지구를 공격해야 한다고 주장하실 분?”
새로운 위그드라실과 마녀들이 뒷수습에 여념이 없을 때, 한무일은 이미 우주를 배회하는 중이었다.
자신에게 ‘큰 한 방’을 선사해준 존재를 찾기 위해서.
죽을 뻔한 게 아니라 실제로 죽은, 그날 일이 여전히 잊히지 않는다. 지금의 뛰어난 기억력으로 보아서는 평생 ‘주삿바늘’을 싫어하게 될 것 같다.
그 원흉은,
『최고의 마신 - 세계의 자궁, 프로메시아』
자궁이라고 해도 여자 혹은 암컷인 건 아니다.
어디까지나 상징적인 의미.
우주를 날아다니는 마신 프로메시아는 거대한 우주모함이다. 그 크기는 지구의 3배쯤. 그 전부가 금속이었으며, 생명체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수많은 포문(砲門)이 한무일을 겨냥했다. 하지만 이전처럼 기습하는 방식을 택하지 않고 차분히 기다렸다.
이어서 우주모함…. 그보다는 유성형 행성이라고 불려야 마땅한 프로메시아의 면적과 비교하면 티끌보다 작은 해치가 열렸다.
그를 환영하듯이.
무일은 이것까지도 [예지]로 단숨에 이해했다.
앞으로 무슨 일이 벌어질지 또한,
“오랜만이다, 소년.”
순순히 해치 안으로 들어간 무일을 기다리고 있던 건 미남자였다.
체크무늬 연미복은 자칫 우스꽝스러운 광대처럼 보일 수 있는데, 그에게는 이조차도 품격있어 보였다.
단순히 뛰어난 얼굴과 체형 때문만이 아니다.
표정에서부터 사소한 몸짓까지…. 그 어느 하나 나무랄 곳 없었다. 그 아무리 도도한 여자도 그를 짝사랑할 수밖에 없는 매력이랄까.
“엑시리얼 온드미온….”
그랬다. 눈앞에 미남자는 평범한 인간이 아닌 기계에서 태어난 인조인간이었으며, 프로메시아가 ‘세계의 자궁’이라고 불리는 일면.
그 사내는 놀랍게도 아는 존재였다.
일본의 ‘유키 짱’ 유키나 미나미의 7종 수호자 판타이탄.
하지만 지금은 뭐라고 불러야 좋을까?
“엑시온이라고 불러주게. 아니면….”
“프로메시아.”
“맞네, 소년. 그 단어 또한 나를 지칭하는 고유명사가 됐지.”
순순히 시인한 판타이탄, 아니, 마신 프로메시아가 손짓하자 순식간에 둘 사이에 탁자와 의자가 마련됐다.
무일은 망설이지 않고 맞은편에 앉았다.
애초에 싸우려고 우주까지 온 것도 아니었으니까.
『싸움?』
그건 비슷한 상대끼리 치고받았을 때의 얘기.
한무일이 실력발휘에 들어가면 프로메시아는 지금의 10배 크기여도 완파될 것이다. 그만큼 둘 사이에는 좁혀질 수 없는 현격한 힘 차이가 존재했다.
그렇기에 침착할 수 있었다.
필살기 마기나로크를 쓰고 빌빌거렸을 때하고는 다르다.
몸 상태는 최상이었으며, 마법으로 보호받는 몸뚱이는 주삿바늘은커녕 세균과 가스조차 침투할 틈새 없이 꽁꽁 막혔다.
게다가….
그의 [예지]가 모든 걸 알려주고 있다.
대비뿐만 아니라 앞으로 일어날 모든 일에 대해서.
현재는 그저 확인과 복습에 지나지 않는다.
“유키 짱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 아이에게는 미안한 마음뿐이다, 소년. 나는 남자로서 실격인 거겠지.”
프로메시아가 쓴웃음을 지으며 고풍스럽게 차를 입가에 댔다.
일전에 프로메시아에게 크게 당한 한무일이 여전히 침착함을 유지하고 있다는 점이 놀랍지만, 그건 당연했다.
“왕위를 찬탈하는 데 성공한 겁니까?”
“흠. 인간의 표현을 빌리자면 그렇겠군. 그들의 혈연문제처럼 내부적으로 매우 복잡하게 얽혀있지만, 결과만 보면 그렇지.”
“왕궁에서 쫓겨난 서자(庶子)가 성장해서 왕이 됐다는…?”
“더미(dummy)에 지나지 않았던 나를 첩의 아들로 높게 평가해주니 고맙군.”
판타이탄이 지구에서 보여준 능력은 7종 고위괴수. 하지만 프로메시아란 이 거대한 기계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보잘것없다는 평가도 그리 틀린 게 아니리라.
하지만 컴퓨터는 기록이란 걸 한다.
인간이 경험을 통해 학습하는 것처럼, 엑시리얼 온드미온은 지구에서 ‘유키나 미나미’를 만나고 가상현실게임을 체험하며 ‘품질’을 높였다.
그 결과가 바로 지금.
괴수 ‘판타이탄’은 마신 ‘프로메시아’로 거듭났다.
“언제부터였습니까?”
“소년이 부활하여 반격했을 때부터.”
“흠….”
“인간의 표현으로 하자면, 동조자가 적은 탓에 쿠데타에 실패한 나는 사형선고를 받고 감옥에서 죽을 날만 기다리던 중이었지.”
하지만 한무일의 반격으로 위기의식이 무섭게 치고 올라가며 상황이 달라졌다.
지독한 패전으로 주전파는 힘을 잃고 온건파에 살아난 까닭!
이어서 갤럭쉽의 배신과 행성파괴자 ‘오더마인드’의 소멸로 인해, 의지의 99.9%에 해당하는 중립이 온건파의 손을 들어주기 시작했다.
그렇게 막상막하의 전개가 진행되며 진흙땅 싸움이 되려는 순간…!
“마신 위그드라실.”“맞네. 소년 덕분에 우리는 내부적인 싸움이나 분열 없이 조율할 수 있었지. 그리고 나는 그 주체로서 이 자리에, 프로메시아가 되었다, 소년.”
“...앞으로 어떻게 하실 겁니까?”
한무일의 손에는 언제부턴가 작은 ‘전자칩’이 얹어져 있었다.
이 안에는 그의 엉덩이에 주삿바늘을 꽂았던….
“시스템 오류를 배제했으니, 이젠 돌아가야지 않겠나, 소년.”
“그건….”
“무얼 망설이나? 2,953일 15시간 43분 23초 동안 나를 195번 놀랍게 한 소년이여. 나는 그대를 보고 인간의 저력을 확인했다.”
“......”
단순한 복제품에 지나지 않았던 자신을 변화시킨 유키나 미나미.
마신 프로메시아는 수천 겹의 보안으로 둘러쳐진 1급 기록보관소에 저장된 ‘추억’들을 빠르게 훑으며 ‘인간은 우수하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마법과 괴력이 없더라도….
압도적인 괴수를 상대로 ‘괴수처럼’ 싸울 수 있는 용기와 희생.
이 얼마나 비논리적인가?
하지만 그걸 해명해내는 ‘공식’의 이론을 제출함으로써 ‘엑시리얼 온드미온’은 더미가 아닌 상위존재로, 프로메시아의 주격(主格)으로 인정받을 수 있었다.
“유키 짱의 아이도 키워보고 싶군. 좋은 경험이 될 확률이 약 98% 이상. 사내아이라면 흥미가 좀 식겠지만.”
“......”
“내 바람을 도와주지 않겠나, 소년.”
“예…?”
이것만은 [예지]하지 못했다.
너무나 뜻밖의 소소한 얘기라서.
< [66화-4] 기적은 준비된 자에게만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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