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괴수처럼-276화 (276/287)

< [66화-3] 기적은 준비된 자에게만 >

노력에는 보상이 따른다고 하지만….

이건 노력으로 어떻게 할 수 있는 수준을 아득히 넘어서 있었다.

무일이 실수한 점이라면 사람들에게 제대로 설명을 안 해줘서 ‘운석 하나’라고 잘못된 판단을 내리도록 한 것이다.

덕분에 ‘희망의 불씨’가 피어났는데….

하나라면 몰라도 수십 개나 되는 정찰병을 전부 막기란 현실적으로 불가능했다.

(그…. 흠…. 무일.)

(왜!)(지구는 일단 포기하고 영혼만 회수하는데 치중하는 게 어떨까?)

한유일이 ‘최선’에 대해 제안했다.

이대로라면 지구는 사라진다. 그것도 그냥 사라지는 게 아니라 오더마인드에 몽땅 흡수되는 최악의 결과!

그러니 영혼만 구해서 다른 차원에서 다시 시작하자는 뜻이다.

몬스터월드는 지구인을 반기지 않을 테니 제외, 슈퍼월드는 식민지의 반란 및 봉기로 어수선해서 마찬가지로 빼면….

판타지월드가 있다.

엘프의 고향, 그곳이라면 한무일이 금방 제패할 수 있으리라.

(...살 순 있겠지만, 인류는 끝이지.)

한무일의 부활에는 치명적인 약점이 있다.

생식능력 전무!

겉보기에는 멀쩡하지만, 정자와 난자만 쏙 빠진 빈껍데기다. 인공적으로 만든 몸뚱이의 한계라고 할까.

아니, 그런 건 다 넘어가고….

개똥밭에서 굴러도 지옥보다는 낫다고 해도, 다 죽고 몇몇만 옹기종기 모여 살면 행복할지 의문이다.

구해내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시달릴 확률이 높다.

아니, 복수까지 생각한다면 쉴 틈이 없다.

“크윽…!”

정찰병 하나를 간신히 분쇄하니 바로 옆으로 휙 지나가는 또 다른 정찰병! 무일로서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순간이었다.

무리해서 막느라 몸도 만신창이. 마음은 이미 저만치에 있었지만, 몸이 따라주질 않았다.

물론, 그 어느 괴수보다도 여전히 빨랐다. 하지만 오더마인드와 대등하게 싸웠을 때에 비하면 한없이 느렸으니….

그럼에도 신기했다.

어째선지 [예지]에는 여전히 지구가 존재했으니까.

“아…!”

그 이유를 금방 깨달았다.

오더마인드는 수많은 ‘인간’이 뭉치고 뭉쳐서 만들어진 존재. 그리고 그러한 신체 일부를 파괴함으로써 영혼도 풀려날 수 있었다.

그러한 영혼들이 전부 어디로 갔을까?

(무일! 주민이 마구마구 늘어나고 있다!)

(갑자기 왜….)

의문을 표하자마자 그 원인을 이해했다.

영혼석과 ‘동기화’되길 계속 거부했던 ‘영혼’들이었지만, 한무일이 ‘흡혈’함으로써 동질감이 생겼다.

이로써, 흡수되지 않았던 영혼들이 대거 유입되기 시작!

맨 처음에 파괴한 정찰병과 오더마인드 본체에 준 피해, 그리고 방금 파괴한 정찰병까지 합쳐서 그 모든 영혼을 받아들였다.

그 숫자는 당연히 터무니없이 많았다.

굳이 질을 따지지 않아도 될 만큼.

‘된다!’

오더마인드의 힘이 깎일수록 자신은 강해진다.

단순한 덧셈, 뺄셈으로만 봐도 정찰병 2개를 쓰러트리며 그 힘을 마법으로 승화시킨 무일에게, 정찰병 1개쯤은 일도 아니었다.

그렇게 한 번 가속도가 붙기 시작하니 그 뒤는 쉬웠다. 터무니없는 위력의 마법으로 정찰병을 차례차례 격파!

게다가 부술수록 마법이 강해지니 그 속도는 점점 빨라졌다. 급기야 정찰병을 쓰러트리며 오더마인드를 압박하기에 이르렀다.

“마, 말도 안 돼! 이런 터무니 없는!”

인간을 흡수해서 강해지는 건 오더마인드의 장기.

그런데 그 장기로 자신이 패했다!

초조함을 넘어선 분노에 휩싸인 행성파괴자는 본체마저 나눠서 만든 ‘유성우(遊星雨)’를 지구로 전부 쏘았다.

이대로 패배할 순 없으니까.

지구를 완전히 날려버리고 그 혼란을 틈타서 후퇴할 요령이었다.

“놓칠 줄 알고! 유일!”

“으으…. 야만적인 전투는 내 전문이 아닌데….”

영혼석에서 강제로 끌려 나온 한유일이 투덜댔다.

주위에 널린 핏덩이를 뭉쳐서 부활한 그는 영혼석과 이어진 지팡이를 들고 있었다. 누군가 봤다면 ‘진짜 대박!’이라고 했을 만큼 호화찬란한 지팡이.

그 위력도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대단했다.

행성파괴수준으로.

살덩이로 된 소행성쯤은 가볍게 분쇄했다.

퍼엉! 펑! 퍼버벙!

지구에서도 보일 만큼 요란한 파괴가 우주에서 벌어졌다.

만약, 매질을 통해 소리가 전달됐다면 음파만으로도 대규모 파괴가 벌어졌으리라. 그만큼 말도 안 되는 위력이었고, 그 잔재만으로도 지구는 혼비백산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무일의 경고가 사전에 있었다는 것.

원래 목적은 운석을 요격하는 거였지만, 힘을 합친 인류는 오더마인드 찌꺼기가 도시로 떨어지지 않도록 막는 일에 전력투구했다.

그 정도로 압도적인 싸움.

오랫동안 오더마인드를 상대해온 갤럭쉽마저 몸을 사릴 만큼 파괴적인 공방은 의외로 대단히 빨리 끝났다.

양쪽 다 단시간에 전력을 쏟아부은 결과였다.

“네가 진짜 오더마인드로군.”

“허…. 이 내가….”

“세상에 둘도 없는 절세가인일 줄 알았는데….”

“뭔…?”

“펑퍼짐한 아저씨일 줄이야!”

문화충격보다 더했다.

대부분의 힘을 소진하고 실체가 드러난 오더마인드. 그 외모는 흔하디흔한 40대 초중반의 직장인 아저씨처럼 생겼다.

근육 없는 팔다리와 푸짐한 똥배, 술로 다져진 턱살….

더는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게임에서도 아리따운 여성 캐릭터의 상당수는 남성 사용자니까. 겉으로 보이는 대리자가 뭐였든 그게 무슨 상관이람.

다만, 실체가 드러나며 환상이 깨진 이상, 용서가 없을 뿐이다!

“자, 잠-, 크악!”

오더마인드 아저씨(?)의 결말은 싱거웠다.

그의 영혼마저 흡수하고 기억을 훑어본 무일은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

‘이 펑퍼짐한 아저씨가….’

가상현실게임의 최강자였다는 것.

이유는 모르겠지만, 그 가상현실과 현실이 합쳐지면서 세계를 지배할 수 있게 되었고 그 기세를 몰아서 우주를 정복해 나가던 중이었다.

이런 큰 틀을 제외하고도 세세한 이유와 사연, 짝사랑했던 여자의 이중적인 모습에 배신감을 느끼고 폭주….

많은 일을 겪었던 모양이지만, 알게 뭐람?

“유일. 수고 많-, 벌써 들어갔군.”

오더마인드를 추격하는 무일을 대신해서 지구방어 중이던 한유일은 할 일을 완수하자마자 영혼석으로 복귀했다.

녀석은 상당히 기분 좋은 모양이었다.

천생 ‘왕’답게 다스리는 걸 좋아하는 한유일은 무엇이든 뜻대로 할 수 있는 영혼석 내부를 무척 마음에 들어 했다.

여기서 안 되는 일은 새로운 생명과 영혼을 창조하는 것뿐.

이 때문에 ‘인구’가 적다는 근본적인 문제가 있었는데, 오더마인드를 쓰러트리며 천문학적인 숫자의 ‘백성’이 유입되며 단숨에 해결됐다.

(일단 신분제도부터….)

왕의 총애를 받는 예쁜이들은 왕족, 미모가 조금 처지는 아가씨들은 귀족, 그밖에 나머지는 전부 서민, 문제아들은 노예….

어디서 주워들은 정보를 토대로 그럭저럭 해내는 것처럼 보였다.

무일이었다면 질색했을 귀찮은 일들은 상당히 성실하게.

(다음에는 왕궁과 화폐, 집과 도로 정비….)

건성이었던 누구와 달리 꼼꼼했다. 그리고 이러한 영혼석 내부개선은 놀랍게도 영혼의 강화로 이어졌다.

즉, 마법이 강해진다는 뜻이다.

이젠 쓰러트릴 강적도 없는데 여기서 더 강해져서 무슨 소용일까.

한무일은 다시 한 번 마음을 다잡았다.

‘지구에서 내가 할 일은 없어.’

지구에 계속 남아봐야 문제만 일으킬 뿐!

거목 밑에는 잡초가 자라지 않는 것처럼 한무일이 가만히 있어도 지구와 지구인들은 어떤 식으로든 피해를 보게 되어있다.

근래의 1년이 그 사실을 입증했다.

“...운석을 막고 장렬하게 죽은 걸로 해둘까나?”

자위하듯 중얼거린 무일은 우주에서 모습을 감췄다. 그리고 지구로.

조용히 돌아다니며 살펴봤는데….

살짝 걱정했던 ‘9종 여왕벌’ 워페레스는 황진천의 습격으로 고전하고 있었다.

드넓은 유라시아에서 번식시킨 막대한 전력을 쏟아부어 보지만, ‘변종 백혈구울’은 그 이상으로 강했다.

그렇다고 무작정 밀리는 것도 아니었다.

특수능력에 절대적인 내성을 갖춘 황진천에게도 약점이 있었으니까.

『생화학 공격!』

엘퍼러가 당했던 바로 그 수법!

영악하게도, 워페레스는 괴수대응연맹에서 황진천을 연구한 자료를 토대로 대응책을 마련하고 있었다.

황진천에게만 특히 위협적인 맹독을 품은 말벌!

그것들이 괴수답게 급속도로 성장하고 대량생산되면서 황진천의 승승장구 역사도 빠르게 막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무일은 황진천의 속내를 읽을 수 있었다.

‘마기나로크를 노리는군.’

워페레스를 쓰러트릴 때는 항상 남의 시선을 신경 썼다.

그 증거로, 유럽인들의 분노와 원한을 한몸에 받고 있는 워페레스를 죽이지 않고 생포해서 공개처형 하기도 했다.

분명, 명성도 ‘용사’에게는 필요한 덕목이다.

고대인들이 즐겨 했던 RPG 게임 안의 설정처럼, 주점 아줌마의 어린 딸에게조차 무시당하는 그런 밑바닥 인생이 아니다.

“...그래도 일단은 두고 봐야겠군.”

모든 에쏘스트가 사망하며 쫄딱 망한 유럽은 구세주가 필요했으니까.

속내가 시커먼 영웅이라도 필요한 시점이었다.

유럽 대륙과 달리 아메리카와 아프리카, 아시아는 각각 구심점이 되어줄 인물이 최소한 둘씩은 존재했다.

『남아메리카: 가휜, 그레이트 아마존』

『북아메리카: 캡틴세븐, 조지 휴스턴』

『아프리카: 파라오, 키메라 일리아』

『아시아: 선지혜, 아담, 선유나』

이 밖에도 많은 준걸(俊傑)이 세상을 위해 나서고 있었다.

하지만 유럽과 오스트리아만 지지부진한 상태.

목숨을 부지한, 괴수대응연맹 맹주 ‘아몬 헤이젤’이 고전분투하고 있지만, 실질적인 무력이 없기에 큰 힘은 못 됐다.

그렇기에 황진천이 필요했다.

‘...그렇지만 좋은 검이 너무 많은걸.’

저 젖가슴 빵빵한 정령들은 낯이 익다. 유럽의 에쏘드….

어디서 났는지는 물어볼 필요도 없다.

싱크로율을 여러 개로 나눠서 매우 비효율적으로 사용 중인데, 무일은 조언은 겸해서 조금 거들어주기로 했다.

“흠…. 좋아, 아가씨. 너의 주인은 누구지?”

“저는 당신의 종입니다.”

황진천의 칼날에 죽은 워페레스의 영혼을 회수한 후에 시체를 부활시킨 무일은 제법 많이 잘 통하는 괴수의 싹싹한 태도에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했다.

그는 ‘요정의 황제’니까.

여성의 2차 성장이 전혀 이루어지지 않은 일벌이라도 일단은 ‘여성형’에 해당했기에 여왕의 지배력이 떨어지자마자 바로 넘어왔다.

무일은 이 방식으로 여러 마리의 워페레스를 되살려서 수족으로 만들었다.

“이젠…. 좀 강화해야지.”

직접 나서서 살아났다고 광고할 필요는 없다.

무일은 그녀들에게 ‘마법의 힘’을 심어서 황진천에게 치명적인 맹독을 더욱 강화했다. 그리고 육체적으로도 좀 더 강력하게!

그녀들은 다른 워페레스와 섞여서 황진천을 공격했다.

“음…? 헉?!”

나름 치열하긴 해도 끝까지 여유를 잃지 않았던 황진천은 식겁했다.

어디서 갑자기 튀어나온 독침 공격은 여태까지 봐온 워페레스의 평균치를 아늑히 웃돌았기 때문이다.

게임으로 치자면?

중급 몬스터 지역에 최상급 보스가 난입했다고 할까!

어째서 [예감]과 [예지]에 잡히지 않았는지 분통을 터트릴 틈도 없었다.

‘어디서 저런 괴물 계집들이?!’

간신히 어떻게든 막아내며 그 원흉들을 베어내는 것까지도 성공했지만….

황진천은 그녀들이 노골적으로 노린 손에서 에쏘드와 폴리검을 놓치고 말았다. 그리고 버려둔 채 전장을 이탈할 수밖에 없었는데….

흙바닥에 떨어진 검은 단 한 자루도 없었다.

“독점은 좋지 않다구, 옛 친구.”

에쏘드와 폴리검을 장작개비처럼 주운 한무일이 중얼거렸다.

이것들은 ‘훌륭한 사내’들을 선별해서 남몰래 선물하자.

하늘에서 뚝 떨어진 기연처럼 우연을 가장하여.

< [66화-3] 기적은 준비된 자에게만 > 끝

ⓒ 파르나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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