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6화-2] 기적은 준비된 자에게만 >
생각할 수 있는 모든 수를 생각했다.
혼자서 막아내겠다는 만용은 일절 부리지 않았다.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다면 무조건 끌어들이기로 한 것이다.
마법을 이용해서 지구로 통신을 넣었다.
(하나만 떨어져도 지구가 멸망할 운석이 떨어지고 있다! 힘을 보태!)
설명은 최대한 간단명료하게.
거리상으로 보았을 때, 앞으로 10분이면 도달하리라, 그러리 그전에 대책을 마련하고 사정권에 닿자마자 격추해야 한다.
물론, 상황을 그리 낙관적으로 보고 있진 않았다.
단순히 강력한 괴수라면 힘을 모아서 쓰러트릴 수 있지만, 상대는 우주라는 닿지 않는 곳에서 날아오고 있었으니까.
피해 없이 막으려면 최소한 열권 밖에서 분쇄해야 하는데….
그런 초원거리 수단을 가진 괴수는 손을 꼽을 정도로 적다.
“후암…! 귀염북이…. 발사 준비….”
불특정 다수에게 보낸 통신에 가장 먼저 반응을 보인 건 역시나 선지혜였다. 그녀가 지구에 남다른 애착이 있어서 그런 건 아니었다.
그녀는 ‘내 남자’의 말에 자동반사처럼 행동한 것뿐!
단시간에 상상을 뛰어넘는 쾌락과 만족, 육체적 피로로 곤죽이 된 그녀는 여전히 비몽사몽이었다.
그러고는 다시 쿨쿨 숙면.
하지만 지시를 받은 ‘초원거리 명사수’ 배틀씹은 6개의 머리에 힘을 모으기 시작했다. 브레스를 저 우주 저편까지 쏘기 위해서.
“갑자기 운석이라니…. 뭘 하고 다니는 거람.”
“선영아, 이건 심각한 문제야. 바이러스 때문에 첨단장비를 쓸 수 없는 현재로써는 미사일도 위험해.”
“애초에 한국에는 우주로 쏠 미사일도 없잖아, 유나.”
서울의 두 정점이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었다.
지력을 담당한 국모(國母) 선유나, 무력을 전담했었던 ‘바람의 여왕’ 박선영. 이 둘로서도 당장은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마찬가지로 텔레파시 마법으로 이 소식을 접한 대통령이,
“운석이랍니다! 운석! 내세운 공약 하나 시행해보지 않았는데 멸망이라니요!”
집권한 지 1년도 안 된 ‘대한민국 대통령’ 강민우는 ‘무시무시한 두 여인’을 재촉하는 대담한 모습을 보여줬다.
말리는 데 실패한 비서가 ‘내일 뉴스에 강 대통령 사망소식이 들리는 건….’라고 중얼거렸지만, 그 건방진 태도에 대한 추궁은 나중 문제.
죽으면 다 끝이니까!
“한 오빠가 막을 거예요.”
“윤소영 양?! 여긴 어떻게 들어온 겁니까?!”
“날아서요. 그리고 그게 지금 중요한가요. 운석이 떨어진다면서요. 그렇다면 저희는 할 수 있는 걸 해야죠.”
“...이거, 한국의 영웅 앞에서 국가원수란 자가 추태를 부렸군요. 맞습니다. 윤소영 양. 저희는 한무일 군을 믿고, 우리가 할 수 있는 것만 하면 됩니다.”
함께 염소 젖을 짜면 대한민국의 미래와 딸의 혼담을 얘기…. 음? 아무튼, 그런 남자가 실패할 리 없다.
강민우는 마음을 다잡았다.
과거에는 어땠을지 몰라도, 지금의 ‘대한민국 대통령’이란 명함은 세계의 그 어떤 부호와 권력자도 무시 못 할 힘을 가졌다.
운석은 한무일이 어떻게든 막아줄 것이다.
하지만 그 여파는?
지구에서 멍하니 구원을 기다리지 않고 그 피해를 최소화할 방법을 생각해야 한다.
“그런가, 한국이 그렇게 나온단 거군.”
“네. 주석.”
중국에서도 대책 마련에 착수했다.
국가주석 ‘첸지 죠’는 한국의 대통령 ‘강민우’의 협조공문에 곧바로 긍정적인 답변을 막 보낸 참이었다.
하지만 협조라고 해도….
자존심 상하지만, 한국의 도움을 받으면 받았지, 도움을 줄 형편이나 여유가 없었다. 정확히 말하면 ‘개인’의 힘이 절실하게 필요했다.
그렇다고 무작정 의존할 생각은 없었다. 있으면 좋겠다는 푸념일 뿐, 지난번의 ‘묻지 마, 괴수 낙하!’ 테러 이후로 중국은 늘 운석을 예의주시했다.
거기에 따른 대비책 또한.
“베이징으로 떨어지는 운석은 웨일풍으로 막고….”
“팽 소저가 싫어하겠군요.”
정보과장 ‘위진 창’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중화인민공화국 내에서도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가문 ‘하북팽가’의 장녀 ‘시링 팽’에게 무리한 요구를 하기란 쉬운 게 아니다.
과거에는 ‘아미파’ 소속으로 취급되면서 그녀의 지위도 낮게 비쳤지만, 다시 가문으로 돌아간 그녀는 정계에서도 무시할 수 없었다.
강력한 8종 계약자보다도 훨씬.
심지어 본인도 중국의 국방력에 중요한 역할을 맡은 7종 계약자로서, 그 무력과 영향력마저도 막강한 편이었다.
하지만,
“불행인지 다행인지 누구 말은 참 잘 듣지. 그 이팔청춘 아가씨는.”
“운석을 몸으로라도 막으라고 닦달하면….”
“창 과장. 불안한 소리 말게. 특히, 자네가 말하면 현실로 벌어지는 일이 많네. 꼭 안 좋은 일만.”
“흠흠! 그렇게 되기 전에 아담을 호출하겠습니다.”
“아! 좋은 판단이군. 우리, 중화인민공화국이 낳은 대협(大俠)을 호출하게.”
이 사안은 믿고 안 믿고의 문제가 아니었다.
최강의 사냥꾼 ‘엘퍼러’를 한 번이라도 만난 경험이 있는 국가원수라면 누구나 ‘운석’ 소식을 접했기 때문이다.
농담으로 치부하기에는 상대가 너무 안 좋다.
이 남자는 농담을 하는 법이 없으니까. 게다가 아쉬울 게 없는 그가 세계를 상대로 거짓말할 이유는 아무리 찾아도 없었다.
“이거 참…. 역시 살아있으리라고는 생각했지만.”
유럽을 휩쓴 ‘말벌 괴수’ 워페레스의 도움으로 괴수대응연맹에서 풀려난 황진천. 그도 빠지지 않고 한무일의 텔레파시를 전달받았다.
범죄자, 죄인인 자신에게 이런 지시를 전한 진의(眞意)가 무엇일까?
“미스터 황! 지금의 무례를 그만두면 감면될 수 있도록 힘써주겠다!”
황진천에게 그런 도발적인 언사를 쏘아붙이듯 말한 여인은, 전(前) 영국 여왕 ‘엘리시엘 하이로드’였다.
흡혈 당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지배받지 않았다.
행운이었다고 할까? 아니면 자격 미달?
자신의 ‘왕’에게 ‘귀족’으로 인정받지 못한 황진천은 보유할 수 있는 ‘노예’ 숫자에 심대한 제한이 걸린 덕분이었다.
그녀는 ‘각인’ 우선순위에서 밀린 것이다.
“주인님께 그 무슨 말버릇인가요.”
“맞아요. 주인님께서 살려주신 은혜도 모르고.”
하지만 꼭 ‘각인’이 심어져야 따르는 건 아니다.
대학살의 현장에서 황진천의 사심(私心)과 변덕(變德)으로 구원받은 ‘유럽의 절세미녀’들이 황진천을 극진히 모시고 있었다.
내심이야 어떻든 간에.
그녀들은 유럽 전역을 돌아다니며 생존자 혹은 저항군 말살 중인 워페레스에게 가족과 지인을 잃었다.
그들처럼 끔찍하게 살해되지 않으려면?
살기 위해 그녀들은 황진천의 노예를 자처했다. 과거에 고위계약자였든 뭐였든 간에 그런 건 아무짝에도 쓸모없었다.
“감면(減免)? 그걸로는 턱없이 모자라지.”
황진천은 사방에서 자신만을 바라보는 여인들을 쓱 훑으며 말했다.
흉악한 살인마이자 괴물로 알려진 그는 마신 위그드라실의 ‘인류 멸살’에 건성으로 협조하면서 많은 사람을 살렸다.
학살이란 말로도 부족할 만큼 많은 유럽인이 죽었지만, 이곳에 옹기종기 모여있는 여자들의 가치만큼은 아니다.
계약자였거나 계약자를 낳을 확률이 높은 여인들.
물론, 황진천이 아무리 열심히 뛰어다녀도 유럽 전체에 흩어져있는 미녀들을 전부 구해내기란 무리였다.
하지만 이곳에 여인들만 보존한다면?
유럽에 나라 한두 개를 건국할 만큼의 국방력을 확보할 수 있다.
(황진천. 들리는가?)
(호오~. 이 목소리는 맹주인가? 바이러스가 들끓을 텐데 잘도 연락했군.)
(의외로 소식이 늦군. 지구가 멸망할지도 모른다는 소식을 접하자마자 판타이탄은 살기 위해 몬스터월드로 철수했다.)
(...나쁜 소식인데.)
황진천은 상황을 심각하게 받아들였다.
천체망원경을 포함한 우주 관련 시설은 판타이탄에게 빼앗긴 지 오래. 그걸로 관측한 녀석들이 ‘진짜 위험하다.’고 판단했다는 뜻이다.
하지만 이상하다.
그렇다면 밖의 저 말벌 떼는 뭘까?
황진천의 도움으로 간신히 명맥을 이으며 사람들을 구출하고 이끄는 중인 괴수대응연맹의 맹주 ‘아몬 헤이젤’의 설명과는 모순됐다.
(어쩔 생각이지?)
(나?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나는 도망치지 않는다. 무서운 괴물이 득실거리는 외계보다는 지구가 좋거든.)
용의 꼬리보다는 뱀의 머리가 되고 싶다.
그렇게 되기 위한 힘도 이미 모은 상태.
“용사님. 훌륭하신 판단이세요.”
“그런 용사님의 뜻을 저희가 적극적으로 돕겠습니다.”
비현실적인 젖가슴이란 공통점이 있는 가지각색의 여인들이 공손히 답했다.
그녀들은 전부 ‘용사의 정령’ 에쏘드.
유럽의 에쏘스트와 계약자에게서 받은 선물(?)들이었다. 감사의 뜻으로 시체가 ‘괴수 먹이’로 쓰이지 않도록 해줬다.
어떻게?
뱀페스트의 재생력으로도 부활할 수 없도록 철저하게 분쇄했다. 본인의 에쏘드에 찔리며 확인사살까지 당한 기분이 어떨지는 모르겠지만.
『간웅(奸雄)』
에쏘드 관점에서 황진천은 이 길을 걷고 있었다.
그것도 아주 착실하게!
과거의 기록은 중요하지 않다. 누구는 돗자리 장수였지 않던가? 또 어느 유명인은 목수의 아들이었고….
에쏘드는 ‘현재’가 얼마나 ‘용사’다운 지로만 판가름한다.
그런 의미에서 황진천은 심각하게 타락한 이전 계약자들보다 훨씬 뛰어났다. 그리고 위험천만한 유럽의 구세주(용사) 역할을 충실히 해내고 있었다.
“든든한 답변인걸. 그럼…. 내 나름대로 친구에게 점수를 따러 가보실까.”
황진천은 뚜렷한 목표가 있었다.
개과천선(改過遷善)한 건 절대 아니었다.
『마기나로크』
프로사냥꾼 한무일만 도달했다는 미답지 영역! 무엇이든 소멸시키는 그 ‘절대적인 힘’을 손에 넣기 전까지는 계속 ‘착하게’ 살 생각이었다.
시간은 흡혈귀 편이니!
계속 용사답게 살다 보면 언젠가 ‘싱크로율 100%’라는 말도 안 되는 영역에도 도달할 수 있지 않을까?
...영영 무리일 것이다.
황진천은 장기전을 생각하는 모양이지만, 아무리 그가 노력해도 ‘100%’만큼은 절대로 도달하기 힘들다.
이 ‘100%’에는 절대적인 조건이 있으니까.
『희생』
하지만 황진천의 성향은 희생하고는 거리가 대단히 멀다.
지금처럼 자신이 손해 보지 않는 선에서 남을 도우며 생색낼 순 있어도, 자신의 것을 포기하며까지 남을 돕진 못한다.
그가 본 한무일의 삶은 어리석음의 극치!
그 힘이면 세계를, 우주를, 다른 차원마저도 지배할 수 있을 텐데….
‘나는 그렇게 살지 않는다, 한무일.’
언젠가 마기나로크를 익혀서 녀석을 밀어내고 일인자가 되고 말리라!
그런 마음을 품으며 황진천은 마신 위그드라실을 배신했다. 백혈구울의 힘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을 만큼의 ‘여성의 피’를 모았으니까.
인도의 ‘파괴의 신’ 아수라처럼 팔을 추가로 만든 황진천.
그는 무려 6자루나 되는 에쏘드와 폴리검을 쥐고 워페레스를 학살하기 시작했다.
운석이 떨어진다고?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시민들은 그 사실을 모른다!
황진천은 ‘뛰어난 용사’가 되려면 ‘명성’이 필요하다고 봤다. 그리고 그 명성은 지금부터 빠르게 쌓일 것이다.
유럽의 구세주가 됨으로써.
“하핫! 싹 다 죽어서 나의 명예점수가 되어라!”
이어서 아프리카와 아메리카 대륙도 어떤 식으로든 행동을 보였다. 그것이 미래에 긍정적으로 적용할지는 앞으로 두고 볼 문제.
그들이 어떤 선택을 하든 한무일의 [예지]를 벗어나긴 힘들겠지만….
그 증거!
대한민국 목포에서는 황진천이 꿈꾸는 ‘절대적인 힘’에 가장 근접한 기술을 준비한답시고 대단히 부산스러웠다.
한무일의 마법위력을 대폭 감소시킨 원인.
부활한 ‘여성형 괴수’들이 옹기종기 모여서 힘을 모으고 있었다.
“이걸로 될까?”
“부족할 확률이 대단히 높도다.”
“당근이 곁에 있다면 힘이 좀 날 텐데….”
아무리 생각해도 무리였다. 지상형 괴수와 해양형 괴수가 서로 불가침영역이라면, 우주형 괴수는 ‘상위 종’이라고 할 수 있었다.
일방적으로 짓밟을 게 가능한 위치라고 할까!
절대영도와 무중력 등의 온갖 악조건을 견뎌낸 생명체가 약하겠는가? 하물며 이번에 한무일이 상대 중인 ‘우주형 괴수’는 그중에서도 최상위권 포식자였다.
그런 적을 상대로 이렇게 힘을 모으는 건….
부질없는 발악 아닐까?
“저도 힘을 보태겠습니다.”
“정말 싫지만, 무력하게 죽는 건 더 싫으니….”
초능력자들도 이번 방어전에 강제로 동원되긴 했었다. 하지만 99% 자멸할 위험성을 내포한 두 여자만은 예외였다.
공간붕괴 초능력자, 성예린.
플라스마 초능력자, 윤미라.
각자 무슨 생각 중인지 알 수 없었지만, 그녀들은 초능력을 쓰면 죽을 수도 있다는 걸 알면서도 자진해서 이 자리에 섰다.
그녀들은 우주에도 확실히 통하는 초능력!
그렇게….
지구에서 조금씩 ‘희망의 씨앗’이란 낯뜨거운 무언가 싹트는 와중에 마침내, 한무일과 오더마인드가 다시 충돌했다.
번쩍!
< [66화-2] 기적은 준비된 자에게만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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