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6화-1] 기적은 준비된 자에게만 >
[66화] 기적은 준비된 자에게만
학명: 페어리언(외계 요정)
서식지: 우주
특징: 장미에는 가시가 있다.
위험도: 5종 소형
비고: 머릿결과 날개가 생명♬
***
오더마인드는 인간을 대충 뭉쳐서 만든 살덩이였다. 형태는 간단명료하게 표현하기 어려웠지만, 굳이 비슷한 걸 꼽으라면 ‘해파리’가 아닐까.
그렇다면 ‘말’은 어디서 한 걸까?
멀리 떨어져 있어도 알 수 있었다.
『궁극의 미(美)』
그건, 셀 수 없이 많은 생명체가 불규칙적으로 얽히고 섞인 인해(人海) 안에서도 감출 수 없는 홍일점(紅一點)이었다.
수억, 아니, 수백조…. 어쩌면 그 이상의 천문학적인 숫자의 인간이 뭉쳐져 있음에도 유독 눈에 띄는 한 여성의 나신.
등허리는 오더마인드 본체에 딱 달라붙어 있다. 팔다리는 대충 흐느적거리듯 늘어트리고 있었는데, 그녀는 확실히 아름다웠다.
단언할 수 있을 만큼.
보는 사람의 취향에 따라서 당연히 갈리겠지만, 인간이란 생명체의 ‘암컷’을 가장 잘 표현한 예술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런…!’
그렇다고 계속 감상, 감탄만 하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사람과 사람을 이어붙인 것 같은 끔찍한 촉수가 날아든 까닭!
공기저항 같은 그 어떤 방해도 받지 않는 촉수들의 움직임은 소름이 돋을 만큼 빠르고 강했으며, 그 움직임은 매섭고 날카로웠다.
(무일. 전부 피하기는 무리 같은데….)
(피하지 않아.)
등 뒤에 지구가 있다.
피해버리면?
녀석이 흥미를 잃고 쭉 진격하면 막을 방도가 없다. 정찰병, 길잡이 따위는 가볍게 찍어낼 수 있을 만큼 비대한 몸집.
저런 게 지구와 충돌하면 그걸로 끝이다.
“아주 즐거울 거다, 오더마인드.”
에쏘드의 ‘금강불괴’ 속성을 갖춘 무일의 촉수가 찰흙처럼 뭉치고 뭉친 끝에, 왼팔과 일체형인 거대한 총검(銃劍)으로 변했다.
마법위력이 비실비실해진 현재로써는 이게 최선.
무일은 [예지]로 멀지 않은 ‘0.001초’도 안 되는 짧은 미래를 보며 효과적으로 오더마인드의 촉수를 분쇄하면서 접근했다.
마법으로 보호막을 쳐서 막는다는 선택지는 없었다. 영혼을 석방해주며 약해진 지금의 마법으로는 한 방도 견디기 힘들 테니까.
“훌륭하구나. 말뿐인 피라미가 아님을 잘 알겠도다.”
판타지 애니메이션과 영화에서는, 거대한 적과 싸우는 주인공과 조연의 전투방식을 ‘회피, 회피, 회피, 치명타’로 그려낸다.
여기에 무슨 사족과 변수를 넣든지 간에….
『나비처럼 날아서 벌처럼 쏜다!』
작고 재빨라서 잘 잡히지 않는 ‘짜증 나는 모기’처럼, 요리조리 재치있게 피한 끝에 멋지게 한 방 먹여주는 주인공!
...그러한 감동은 어디까지나 ‘상품’이기에 가능한 얘기다.
무일은 누군가에게 잘 보이기 위해 싸우는 게 아니다. 그리고 ‘작은 고추가 맵다.’는 약자들의 논리는 이 자리에서 통하지 않았다.
힘에는 힘으로!
물러설 곳 없는 싸움이다.
도망치며 상대를 약 올리는 전법은 쓸 수도 없다.
(...왜 안 되는데?)
피똥 싸듯 치열하게 싸우는 한무일을 보던 한유일은, 영혼석 안에서 아리따운 아가씨들의 시중을 받으며 고개를 갸웃했다.
그가 아는 프로사냥꾼 한무일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괴수를 쓰러트리는 ‘비겁한 포식자’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째서 이번에는 그 전략을 쓰지 않는 걸까?
(무언의 약속.)
무일은 팔자 늘어진 파트너를 향해 바득바득 이를 갈며 답했다.
오더마인드도 바보가 아니다. 주인공만 똑똑하고 나머지는 다 정신지체장애로 그리는 소설과는 명백히 다르다.
눈앞의 적을 효과적으로 쓰러트리는 방법쯤은 얼마든지 안다.
가령, 지구를 향해 ‘힘을 모아서 절대적인 한 방’을 쏜다면? 무일은 안 된다는 걸 알면서도 억지로 막다가 죽을 수밖에 없다.
그 사실을 모를까?
아니다. 그렇지 않다. 알면서도 정면승부를 해주는 것뿐이다.
(...착해서?)
(그럴 리가. 서로 하나씩 양보한 거지.)
우주는 방대하고 넓다. 그래서 피할 곳도 없다.
만약, 무일이 이대로 지구를 포기한 채 장기전으로 돌입해버린다면 오더마인드는 언젠가 쓰러질 수밖에 없다.
조금씩, 성실하게 덩치를 키워가는 오더마인드로서는, 자신의 고혈을 짜 먹는 ‘죽일 수 없는 거머리’가 나오길 원치 않는다.
즉, 서로의 약점을 알면서도 건드리지 않는 것이다.
보통은 약점을 잡고 늘어져야 정상이지만, 그러면 피차 좋을 게 없다는 사실이 뚜렷하기에 인지하고 있기에,
(아! 무일, 이해했다! 상부상조라는 거구나!)
(......)
(왜 말이 없어? 내 말이 맞잖아?)
(맞아. 그런 거야.)
그렇다고 공평한 건 아니다.
치고 빠지는 식의 ‘장기전’을 포기하고 오더마인드가 원하는 ‘단기전’ 양상으로 가면서, 무일에게는 대단히 불리한 형국이었다.
서로 한 방씩 주고받으면?
괴수도 ‘소형’보다 ‘대형’의 맷집이 강한 것처럼, 지금도 오더마인드가 유리…. 압도적으로 선전하는 분위기로 흘러갔다.
“즐겁구나, 즐거워! 이 얼마만의 싸움다운 싸움인가!”
오더마인드가 유쾌하다는 듯이 웃었다.
이에 대꾸해줄 법도 하건만, 무일은 침묵을 고수했다.
그 대신, 맹렬히 생각했다.
‘나도 그렇지만, 녀석도 질 마음은 눈곱만큼도 없다. 그렇다면 당연히 필승의 보험쯤은 몰래 준비하고 있을 터.’
서로의 약점은 건들지 않기로 약속했지만, 계약서로 만들어둔 것도 아니다.
그렇다면 통수 맞을 가능성도 염두에 둬야 한다.
(몰래 힘을 모으고 있겠네? 게임으로 치면 필살기 게이지 모으기?)
(...유일. 게임은 해본 적도 없으면서 잘 아네.)
(흥! 그건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냐. 나는 하렘의 왕. 요즘은 게임을 잘하는 남자가 인기가 많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열심히 공부했다.)
그 게임이론을 실전에서 써먹지도 못하고 죽게 생겼는데….
참으로 태평하지 않은가!
한 번 죽은 이후로 위기에 무뎌진 한유일을 보며, 한무일은 뭐라 해줄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 죽음이 자신 때문이었으니까.
녀석이 준 목숨을 허투루 날려선 안 된다는 책임감!
그래서 한유일이 한가한 소리를 할수록 그러한 감정은 더욱 커졌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이긴다!’
오더마인드가 ‘보험’을 준비 중이라면, 무일은 ‘반격’이었다.
그리고 [반격]은 타이밍이 생명!
촉수를 쳐내며 힘겹게 막는 것처럼 보이던 조그마한 인간이 빠르게, 행성파괴자가 생각지도 못한 속도로 깊이 파고들었다.
뚜렷한 목표는 딱히 정하지 않았다. 이 거대한 살덩이 전부가 오더마인드의 심장이자 뇌였으니까. 문팽이처럼 치명적인 부위 같은 건 존재하지 않았다.
하지만,
“사령탑은 있겠지.”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가는 법.
왼팔의 총구가 정확히 ‘궁극의 미’로 향했다.
이 ‘한 방’의 노림수!
무일은 오더마인드와 전혀 다르면서도 비슷한 괴수를 알고 있다.
【쑨우쿵 / 8종 소형】
정찰병도 그렇지만, 하나의 ‘정신’이 오더마인드의 이 거대한 몸뚱이를 전부 통제한다고 보긴 어렵다.
인간만 해도 그렇다.
사람의 육신을 ‘영혼 하나’가 움직인다고 쉽게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수많은 세포’의 보조를 받고 있다.
지시하지도 않았는데 심장이 뛰는 이유는?
잠들었을 때도 숨을 쉬고 꿈을 꾸는 건?
예상하지 못한 위협에 먼저 반응하는 몸은?
이것들 외에도 많은 부분이 본인의 의지와 관계없는 자연의 산물이며, ‘내 영혼 외의 존재’의 보조를 받는다는 증거.
인간을 비롯한 모든 생명체가 그럴진대 저 덩치라고 다를까!
“이걸 노렸구나!”
“잘 가라.”
“...나도 이걸 기다-.”
“뭣?”
대답은 들을 수 없었다.
적이 준비된 대사를 읊을 때까지 기다려주는 예의를 모르는 한무일답게, 그의 왼팔에서 쏘아진 마법이 ‘궁극의 미’를 완전히 날려버린 탓!
하지만 오더마인드가 무슨 말을 하려던 건지는 직후에 깨달았다.
‘기다렸구나! 미리 함정을 파놓고!’
그 사실을 [예지]로 한발 앞서서 읽었지만, 피할 수 없었다. 근처에서 대기하고 있던 촉수들이 빼곡하게 해일처럼 달려들었기 때문이다.
녀석은 막대한 피해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무일을 집어삼켰다.
(무일. 어떻게든 해봐라.)
(또 그 소리냐.)
(아니면 정말 죽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놈에게 흡수되어 살덩이 중 하나가 되던가.)
(정말 고맙다. 끔찍한 소리를 들었더니 없던 생각도 떠오른다.)
무일은 흡혈귀의 능력을 한껏 개방했다.
놈이 자신을 흡수하길 원한다면?
앞서서 이것부터 어떻게든 해결해야 할 것이다.
『각인』
송곳니를 뾰족하게 세운 무일은 망설이지 않았다. 그대로 코앞에 있는 ‘흉측한 형상의 여자 살덩이’의 목덜미로 짐작되는 부분에 박았다.
몬스터월드에서도 경계했던 지배력.
티끌보다도 작은 변화였지만, 뱀페스트의 감염속도는 오더마인드마저도 금방 눈치채고 경악할 만큼 경이로웠다.
“큭! 네 녀석! 진짜 노림수는 이거였구나!”
완전히 사라졌어야 할 ‘궁극의 미’가 비명을 질렀다.
시간이 충분히 주어지거나 소량이었다면 이 미지의 세균에 대한 저항력을 키울 수 있겠지만, 그럴 틈이 없었다.
완전히 ‘세균 덩어리’나 다름없는 걸 삼킨 탓!
그뿐만이 아니다.
분명, 오더마인드의 육체를 이루는 건 ‘인간’이다. 그렇기에 ‘여성의 피’가 못해도 절반!
백혈구울 힘의 원천이었다.
“끝장을 보자!”
오더마인드가 뭐라고 하든 대꾸해주지 않던 한무일이 외쳤다.
몸에 좋은지 나쁜지도 아직 판명되지 않은 피를 꾸역꾸역 삼키며 빠른 속도로 힘을 키우며 세를 확장했다.
암세포처럼 ‘각인’은 빠르게 번졌다.
감염된 인간은 오더마인드의 통제에서 벗어났다. 그리고 괴물의 일부가 되며 강제로 참아야 했던 고통을 보상받기라도 하겠다는 듯이 울부짖었다.
지배할 것도 없었다.
통제에서 벗어난 ‘인간처럼 생긴 살덩이’들은 매우 협조적이었으니까.
“감히!”
오더마인드의 감정이 격해졌다. 여기에 맞춰서 행동도 파격적으로 변했다.
저항력을 키우는 건 포기, 감염이 더는 번지지 않도록 그 부분을 아예 파괴하거나 도려내는 방향으로 방침을 바꾼 것이다.
제 살을 깎는 선택이었지만, 탁월했으며 효과적이었다.
거기서 멈추지 않고 함정에 빠트려 집어삼켰던 한무일을 도로 토해냈다.
“우앗?!”
가래침을 뱉어내듯 오더마인드 육체에서 튕겨져나간 무일은 자세를 안정시켰다.
그리고 보았다.
해파리처럼 생겼던 오더마인드는 ‘병든 문어’처럼 변해 있었다. 물론…. 병든 문어를 실제로 보진 못했지만, 놈의 상태가 정상이 아님은 딱 봐도 알았다.
오더마인드에게 우세했던 싸움.
하지만 이젠 한무일에게 완전히 기울어져 있었다.
천운이라고 할까? 아니면 기적?
만약, 오더마인드가 단 한 번이라도 뱀페스트를 먹고 배탈(?) 날 전적이 있었다면 이 주먹구구식 시도는 실패했을 것이다.
그 뒤는 별로 상상하고 싶지 않다.
“네놈…! 내가 이대로 끝날 줄 아느냐!”
분노한 ‘궁극의 미’가 처음으로 여성스럽게, 앙칼진 음성으로 외쳤다.
승패가 갈릴 만큼 ‘힘’의 격차가 벌어졌기 때문일까?
오더마인드가 친절하게 설명해주지 않아도 무일은 알 수 있었다. 간신히 ‘0.001초’ 미래를 [예지]로 내다보는 게 아니라, 놈의 속셈을 한참 앞서서 보았다.
그것은 수많은 살덩이.
무일을 고전하게 했던 ‘정찰병’이 속속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살덩이 소행성 무리.
애초에 그딴 게 하나뿐이라고 안일하게 생각했던 것 자체가 실수였던 것이리라!
(이중보험이라니?!)
이때만큼은 한유일도 태평함을 벗어던지며 허둥댔다.
어떤 위기든 어떻게든 막아내는 파트너지만, 저 많은 숫자가 지구로 떨어지는 것까지는 아무리 긍정적으로 생각하려 해도 불가능하다고 판단됐기 때문이다.
늘 침착했던 무일도 이때만큼은 몸을 떨었다.
지구에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막아 보이겠다!”
< [66화-1] 기적은 준비된 자에게만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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