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괴수처럼-273화 (273/287)

< [65화-4] 되돌아갈 시간이다. >

『오더마인드』

갤럭쉽은 그렇게 부른다.

엄밀히 말하면 영문식 해석으로 ‘오더 마인드(order mind)’라고 하는 것뿐이고, 실질적인 의미에서 이름은 ‘정신을 인도하는 자’라고 할 수 있다.

이 무슨 뜬금없는 이름일까?

그건 놈의 실체를 보고 단번에 이해했다.

‘...뭐냐, 저건.’

마주친 오더마인드는 매우 큰 소행성이었다. 하지만 그 소행성을 이루는 물질은 광물이나 유성의 고체가스 등이 아니었다.

생명체.

그것도 무수히 많은 인간을 뭉쳐서 만든 거대한 살덩이였다.

태양계 밖에서 지구까지 3시간 만에 도착할 만큼 빠른 속도로 돌진하는 오더마인드는 기존의 상식과 규범을 완전히 벗어난 존재였다.

(무일! 저딴 걸 어떻게 막아!)

(무조건 막아야지! 고민하고 생각할 시간조차 아까워! 더럽게 빨라!)

(마법으로?)

(뭐든지!)

갤럭쉽은 이런 괴물을 오랫동안 상대해왔단 말인가?

말로는 상대한다고 했지만, 늘 막대한 희생을 치르며 간신히 궤도를 비트는 수준에 지나지 않았다.

어떻게?

『미끼』

오더마인드는 생긴 것처럼 생명체(인간)를 먹어치우는 어마어마한 대식가다. 목적은 끊임없이 생명체를 흡수하여 몸집을 키우는 것.

당연히 이 생명체의 기준에도 급수가 있고 차등이 존재한다. 맛있고 맛없는 음식으로 나뉘는 것처럼 말이다.

갤럭쉽은 전자에 해당한다. 그것도 대단히 훌륭한 편.

그래서 갤럭쉽은 본인들이 직접 미끼가 되어 오더마인드의 방향을 자신들 쪽으로 비튼다. 유혹한다고 해도 좋으리라.

『숭고한 희생?』

해석하기에 따라서는 그렇게 봐도 무방하다.

꼭 지구를 위하는 것 같은데…. 갤럭쉽도 종족의 존속을 위해 하는 일일 뿐이다. 지구 다음은 자신들이란 걸 잘 아니까.

그렇다고 마냥 유혹하며 자살하기만 하는 건 아니다.

할 수 있는 모든 능력을 다 동원해서 공격한다. 다음에 오더마인드가 또 방문했을 때, 지금보다 더 몸집이 커지지 않도록.

때려 부숴서 최대한 덩치를 줄이고자 애쓴다.

‘하! 이게 정찰병이라고?’

더욱 기막힌 것은….

이건 앞서서 길을 뚫는 정찰병에 지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더는 소행성이라고 부를 수 없는 거대함을 자랑하는 본체가 뒤따라 오고 있다.

그것이 진짜 오더마인드.

이번 싸움의 본편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진짜와 마주치기도 전에 졸개에게 밀릴 것 같은데?

‘대단히 안 좋아! 마기나로크도 쓸 수 없거늘!’

뭐든지 흡수하는 왼팔, 라그나뢰크를 잠시 떠올렸다가 지웠다. 아무리 긍정적으로 생각해보려 해도 단번에 먹어치우기에 저건 지나치게 크지 않은가!

무일은 생각나는 대로 마법을 난사하기 시작했다.

갤럭쉽이 했던 것처럼 이 정찰병의 궤도를 바꾸는 것만으로도, 오더마인드 본체가 지구에 처박히는 참극을 막을 수 있으니까.

하지만 화력이 부족했다.

(점점 한계가 다가왔습니다. 오더마인드는 조금씩 몸집이 커지는데, 반대로 저희는 시간이 지날수록 동족의 숫자가 줄어들었습니다.)

영혼석에 흡수된 ‘전 여왕’이 독백처럼 말했다.

죽을 당시에는 꽤 놀란 얼굴을 하고 있던 그녀는 벌써 본인의 처지를 이해한 눈치였다. 그래서 평온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막중한 책임을 내려놓은 노파 같다고 할까?

(악순환이란 거군.)

(그렇습니다. 그리고 그 끝에 있을 파멸이 머지않았기에 극단적인 조치나 해결책이 필요했습니다.)

(언제인데?)

(약 13년밖에 안 남았습니다.)

(......)

뭐라고 해야 좋을지….

짧다면 짧지만, 지구인의 사고를 갖춘 한유일에게는 막연한 미래의 얘기였다.

아무튼, 그런 이유로 오더마인드를 처치할 필요성이 절실해졌고, 지구로 넘어오기 전에 알고 있던 마신 프로메시아의 말에 대뜸 넘어갔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고 할까?

(우리가 있었잖아.)

(...몰랐습니다. 지구에 이런 존재가 있으리라고는.)

어지간히도 무시당하는 지구. 하지만 광대한 우주를 배경으로 모든 사고회로가 연결된 갤럭쉽 관점에서는 미약하긴 미약할 것이다.

저 조그마한 별에서 ‘절대자’가 나오리라고 누가 상상할 수 있겠는가?

이런저런 오가는 얘기.

하지만 그것과 별개로 현실은 치열했다.

‘꿈쩍도 안 해! 아니, 이 녀석! 나를 완전히 무시하고 있어!’

마법을 처박고 촉수를 찔러도 무반응. 확실하게 피해가 누적됨에 따라, 정찰병의 둥글둥글했던 살덩이에도 수많은 상처와 균열이 생겼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이런 피해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가던 길을 가는 것 아닌가!

어디로?

지구까지 최단거리로!

(어떻게든 해봐라, 무일. 어떻게든 해내는 게, 네 전문이잖아.)

(그건 무슨 자격증이냐!)

똥 치우는 해결사로 완전히 자리매김한 게 아닐까?

그나마 이런 농담이 나오는 것도 ‘가망’이 조금은 보인 덕분이다. 가랑비에 옷 젖듯이 정찰병도 슬슬 한계에 치닫고 있었다.

지구에 당도하기 전에 분쇄할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갤럭쉽의 협조가 어느 정도 있어야 살점이 지구로 떨어지는 불상사까지 완전히 막을 수 있으리라.

‘...아니. 내가 해내고 만다!’

본체는 아직 만나지도 못했다. 그런데 겨우 정찰병 따위를 상대로 손을 빌린다면 갤럭쉽의 믿음과 충성심이 흔들릴 수밖에 없다.

그러니 이 정찰병만큼은 혼자서 처리해야 한다. 만약, 만용이었다면 망설이지 않고 협조요청을 했겠지만.

무일에게는 아직 수단이 남았다.

마법과 백혈구울의 능력 외에 또 다른 강력한 힘이!

이젠 정말로 써야 할 때였다.

『라그나뢰크의 손』

필살기 마기나로크처럼 기술명을 외칠 필요도 없었다. 그냥 마신의 왼팔 손바닥을 펼친 채 앞으로 쭉 뻗을 뿐.

...이것도 우스꽝스럽긴 마찬가지였지만!

정찰병과 거리를 ‘제로’로 만든 무일은, 놈의 몸뚱이에 손바닥을 찰싹 붙였다.

슈우우웅-!

진공청소기가 빨아들이듯 주위의 살덩이가 왼손 손바닥으로 흡수되기 시작했다. 전부 어디로 흡수되어 축적되는 건지는 [예지]로도 읽을 수 없었다.

마신 라그나뢰크 본인도 모른다니 어쩌겠는가?

녀석은 ‘원래는 내 능력인데 최악의 도둑놈!’ 어쩌니 하면서 광분상태였다. 시끄럽게 떠든 대가로 주위의 사내들에게 또 몰매를 맞으면서 금방 침묵하게 됐지만.

‘크윽-!’

양이 너무 많아!

한 번에 처리할 수 있는 용량을 한참 넘어섰다.

당장에라도 터질 풍선처럼 왼팔이 부풀었다가, 음식물을 소화하듯 크기가 줄어들기를 위태위태하게 반복했다.

이젠 몸을 뺄 수도 없었다.

살덩이에서 뻗어나온 무수히 많은 팔이 무일의 몸을 붙든 탓이다. 딱히 악력이 센 건 아니라서 뿌리치긴 쉬웠지만, 그것도 한두 개일 때의 얘기다.

완전히 몸이 파묻힐 정도로 들러붙었다. 아무리 힘을 줘서 당겨도 끊어지지 않는 고무줄처럼 살덩이들은 대단히 끈질겼다.

(...무일. 부활하자마자 죽는 건 아니지?)

(태평하게 불안한 소리 하지 마!)

남의 집 불구경하듯 얘기하는 한유일에게 쓴소리를 안 할 수 없었다.

무일은 촉수와 마법을 이용해서 몸에 들러붙은 팔들을 때어내는 동시에, 멈추지 않고 왼팔로 살덩이 흡수를 계속 이었다.

‘너무 서둘렀어. 영혼들을 조금씩, 천천히 해방했다면….’

지난 일은 되돌아보지 않는다는 주의지만, 후회가 살짝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화력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풀어준 영혼의 숫자는 전체의 10%에도 채 미치지 않았지만, 그 10%는 소위 ‘네임드’가 다수 섞여 있었다.

마법의 위력이 90%쯤 감소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만큼 ‘영혼의 그릇’은 마법의 위력을 결정하는 데 있어서 그 비중이 대단히 컸다.

현재도 위력의 50%는 라그나뢰크의 영혼이 담당 중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리라.

(지구와 충돌하진 않겠지만, 피해는 가겠는데?)

(알아! 그래서 한다고 하는 중이잖아!)

이 순간에도 오더마인드 정찰병은 파괴되는 중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부족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좀 더 서둘렀어야 맞을까? 1시간이 아니라 3시간을 전부 할애했다면 수월하게 맞지 않았을까….

온갖 상념이 교차하는 가운데, 마침내 정찰병이 분쇄됐다.

절반쯤 파괴되거나 흡수된 이후에는 관성을 못 이기고 흡착력이 떨어진 살덩이 스스로 갈기갈기 찢어진 것이다.

운이 좋았다고 할 건 아니지만….

그렇지 않았다면 남은 절반이 지구 근처에서 터지는 대참사가 벌어졌을 것이다.

(...무일.)

(왜. 힘들어 죽겠는데.)

바스러지며 우주의 쓰레기로 전락한 살덩이를 왼팔로 흡수하며 한숨 돌리고 있던 무일은 한유일의 지적에 멈칫할 수밖에 없었다.

정찰병은 사라졌지만….

(본체는 어쩔 거야? 이젠 궤도를 수정할 수도 없다.)

그랬다.

길잡이나 다름없는 정찰병을 부수는 바람에 더는 요행을 바랄 수 없게 됐다. 놈을 이대로 방관하면 반드시 지구와 충돌하리라.

그러니 무조건 오더마인드 본체를 그 전에 처치해야 했다.

지구의 그 누구도 모르기에 알아주지도 않는 치열한 전쟁을 홀로 치러야 하는 무일의 표정에는 그 어느 때보다도 비장감이 가득했다.

‘배수진을 치고 놈을 막는다!’

정찰병을 보고 생각이 바뀌었다. 오는 경로에서 만반의 태세를 갖추고 오더마인드가 오길 오매불망 기다리는 건 바보 같은 짓이다.

찾아가야 한다!

조금이라도 일찍 싸워야 한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갤럭쉽 여왕의 기억으로 본 ‘오더마인드 본체’는, 무턱대고 돌진하는 소행성이 아니란 점이다.

무수히 많은 생명체의 집결체란 점은 같지만, 때굴때굴 구르는 공 같은 행동을 하진 않는다. 도전을 걸면 이동을 멈추고 도전을 받아줄 확률이 높다.

(무일. 그건 미래가 안 읽히는 거냐?)

(안 돼. 가능한 미래의 변수가 너무 많아.)

괴수대응연맹과 본부에서 잘못 알고 있는 상식이 있다.

괴수의 [예지]는 ‘고위 종’일수록 성능이 좋아진다고들 생각하지만, 절대로 그렇지 않다. 아주 특수한 괴수 몇몇을 제외하고는 엇비슷하다.

그럼에도 차이가 나는 이유는,

『강함』

미래를 본인의 입맛대로 결정할 힘을 가진 고위괴수의 ‘생각’이 곧 ‘미래’가 되기에 [예지]의 적중률이 더 높은 것처럼 보이는 것뿐이다.

그렇다면 한무일은 어떨까?

지구에서는 이미 먼 미래까지 내다볼 수 있는 경지다.

하지만 ‘오더마인드’를 상대로는 승리를 장담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안위와 목숨도 장담할 수 없었다.

보이는 미래는 딱 2가지.

『지구가 없는 태양계』

『지구가 있는 태양계』

강력한 두 존재의 싸움 결과에 따라 미래가 결정된다는 노골적인 뜻이리라.

미래란?

단정할 수 없다.

그 아무리 뛰어난 점술가와 예언자가 ‘지구는 내일 멸망하지 않아요! 제 목숨과 재산을 걸 수 있어요!’라고 말해도 무일이 오더마인드와 싸우지 않으면 지구는 100% 소멸한다.

그렇기에 누군가 끼어들 여지는 없다.

이건 다시 말해,

행성파괴자 ‘오더마인드’가 그만큼 만만치 않은 상대란 뜻이리라.

‘보이는 미래가 2가지라서 그나마 다행이군.’

만약, ‘지구가 없는 태양계’만 [예지]에 보인다면, 이건 싸워보나 마나 무조건 질 싸움이란 뜻이기 때문이다.

반대로, 비관적으로 생각하자면, 승리를 장담할 수 없다는 해석도 된다.

승리뿐이 안 보였던 목포에서의 전초전(前哨戰)과는 달랐다.

구우우우-.

무주공간에서 소리가 전달될 리 없음에도 그런 환청이 들린 것 같았다.

당장 선공(先攻)을 취해야…!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무일은 멍하니 행성파괴자를 보았다.

길잡이가 사라진 곳까지 천천히, 그 거대함에 비하자면 매우 느릿느릿, 느긋하게 이동해온 오더마인드.

뭐라 형용할 수 없는 그 존재가 먼저, 거리와 상식을 무시한 채 말했다.

어떻게 보면 선공을 빼앗긴 게 아닐까?

“질리던 차에 잘됐구나. 나를 즐겁게 해다오, 그 생명을 담보로.”

< [65화-4] 되돌아갈 시간이다. > 끝

ⓒ 파르나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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